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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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 

 

1974년 2월 20일 수요일 저녁, 여성 카니발 전날 밤, 어느 도시에서 스물일곱 살의 젊은 여성 카트리나 블룸은 엘제 볼터스하임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한다. 그 파티에서 자신을 탈영병이라고 고백한 루트비히 괴텐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의 도주를 돕는다. 그러나 경찰은 그의 말과는 다르게 괴텐이 절도와 강도 용의자임을 카트리나에게 알리며 그녀를 참고인 자격으로 연행한다. 

 

하룻밤 사이에 카트리나는 경찰이 추적 중인 강도의 연인이며 그의 도주를 도왔을 뿐만 아니라 공범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받는다. 괴텐의 사건을 쫓던  <차이퉁> 신문기자 베르너 퇴트게스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자극적인 기사로 이슈몰이를 하고 그로인해 카트리나의 주변인물까지 고통당함은 물론 그녀의 어머니는 쇼크로 사망하기에 이른다. 더이상 견디기 힘든 카트리나는 결국 퇴트게스를 총으로 살해한다. 

 

 

■ ■ ■ ■

 

소설의 부제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소설에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백히 드러난다. 작가가 지적하고 싶었던 폭력은 어떤 폭력을 말하는 것일까? 

 

카트리나 블룸은 어떤 사람인가? 

어린시절과 결혼생활은 불운했지만, 친절하고 차분하며 계획성 있게 맡은 일을 처리하는 데에 책임감 있다. 필요 이상의 금전적 호의는 거절할 줄 알며 여건이 되는대로 일거리를 찾아서 자립하는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또한 다정함과 치근덕거림을 구분할만큼 자신의 감정에 예민하고 상대를 선택하는데 있어 외적인 조건에 상관하지 않으며 주관이 뚜렷하다.

 

이토록 자신의 생활에 있어 반듯한 그녀를 언론은 어떻게 탈바꿈시켰을까? 

 

먼저 괴텐과 그녀가 2월20일 처음 만난 것이 아니라는 추측을 확신하듯 보도한다. 괴텐과 카트리나가 파티장에서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춤을 추었던 사실, 그들의 눈빛과 몸짓 등을 지켜본 이들을 인터뷰하면서 '~ 같았다' 혹은 '공산주의 냄새를 맡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인터뷰이의 말을 사실처럼 기사화한다. 

 

카트리나가 가정부라는 신분으로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의 노동의 과정과 전문성, 성실함은 삭제시킨 채 강도질에 동조하고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인양, 그리고 과거에 그녀와 관계있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정보를 전부인 듯 오도한다. 이제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녀는 오랜 친분이 있는 몇 사람을 제외하면 고립된 상태다.

 

또한 언론은 카트리나와 그녀의 가족, 주변인들까지 사찰에 가까운 신상털기에 나서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마녀사냥으로 확대시켜 개인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간다. 암수술 이후 안정을 취해아 하는 카트리나의 어머니를 찾아가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를 강행해 사망까지 이르게 하고(심지어 그 죽음도 딸의 행실에 대한 충격이 원인이라고 기사화한다), 그녀의 고용주였던 블로르나 부부를 좌익 공산주의 빨갱이로 몰아붙여 사회적 지위와 생계를 위협하고, 파티 호스트였던 엘제 볼터스하임의 부모까지 들춰낸다. 도대체 이들이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사건에서 악질적인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카트리나를 희롱했던 슈트로입레더와 <차이퉁> 신문기자 퇴트게스이다.

슈트로입레더는 자신이 카트리나에게 억지로 떠안긴 반지와 열쇠로 그녀가 궁지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입지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퇴트게스는 허구와 사실을 교묘하게 섞어 기사를 이슈화 한다. 그가 그토록 쓰레기 기사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소설에 언급되지는 않는다. 데스크의 지시였는지, 개인의 출세욕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널리스트로서 가져야할 기본 소양이나 양심, 소명감 따위는 그야말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놓은 사람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렇다면 카트리나는 왜 슈트로입레더에 대해서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을까?

 

그녀가 슈트로입레더 같은 사람을, 그러니까 부유할 뿐만 아니라 정계나 재계, 학계에서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매력 때문에 영화배우만큼 유명한 사람을 거부한다고 하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어 주겠는가? 그리고 그녀 같은 가정부가 영화배우 같은 사람을 거절한다고 하면, 그것도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취향을 이유로 거절한다면, 누가 그녀의 말을 믿겠는가?

p112

여론은 한낱 가정부에 불과한 자신보다 명망있는 유명인의 말을 더 신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중의 머릿속에 '설마 신문이 거짓말을 하겠어?'라는 무의식의 지배를 무시할 수 없다. 지금이야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고, 국민의 의식도 높아져 예전보다는 여론몰이에 덜 휘둘리기는 하지만, 1970년대에 신문의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차이퉁>이 가장 대표하는 신문이라는 것이 카타리나를 더 두렵게 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언급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차이퉁을 통해서 듣게 된 것이네', '내가 아는 사람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처럼 <차이퉁>에 실린 기사는 경찰이 수사한 내용보다 더 진실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식에 저항할 힘을 잃었을테다. 그리고 소설 초반에 살인 사건 이후 카니발 고위급 위원이 한 말과 다른 기자 쇤너의 죽음은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카니발을 통해 지역 경제를 걱정하는 그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후 언론 플레이로 결국 살인자가 되어버린 카트리나와 더불어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그의 지인들을 생각하면 '즐기고 노는 데'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은 신뢰의 무게가 어디에 있어야하는지, 경중이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작가가 지적하고자 하는 폭력이 무엇인지를 독자는 안다.

언어와 글의 폭력.

문명인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교양이 폭력이 되는 순간 인생 전체가 어떻게 곤두박질 치게 되는지, 시대의 저널리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지 여실히 보여준다. 요즘 시쳇말로 '기레기 기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기자의 자질 문제일 뿐일까? 기자가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 기사를 쓴다고 해도 데스크와 언론사를 스폰하는 기업 혹은 권력의 영향은 지대하다. 결국 한 사람의 기자가 양심을 지킨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결국 저널리스트들이 본연의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함은 물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여론의 눈도 절실한 시대가 되었다. 작가가 희망하듯 모쪼록 신뢰가 살아 있는, 죽지 않은 저널리즘을 기대한다.

  

 

그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카트리나 블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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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웃는 숙녀 비웃는 숙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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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라면, 나는 분명 사람을 죽이고 말 거야...... .

첫문장

 

 

1992년.

따돌림과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중학생 노노미야 쿄코 앞에 전학생으로 나타난 사촌 가모우 미치루. 쿄코는 아름다운 외모와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로 남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미치루의 도움으로 학교 폭력에서 벗어나고, 재생불량성 빈혈로 쓰러진 후 그녀의 골수 기증으로 이식 수술까지 성공해 건강한 삶을 얻게 된다. 미치루를 향한 동경을 넘어 이제는 그녀와 동일시 되고 싶은 쿄코. 그러던 어느날  미치루가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과 성적 학대를 받는 현장을 목격한 쿄코는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미치루의 계획에 동참한다. 

 

 

2006년.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해소해 왔던 사기누마 사요는 쇼핑 중독에 걸리고 그에 따라 재정의 한계에 도달한다. 카드 돌려막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직장인 은행에서 사퇴를 강요받을 수 있는 처지까지 내몰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동창회에서 만난 쿄코의 주선으로 만나게 된 생활 플래너 미치루.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낼 뿐만 아니라 불법이 아닌 편법을 돌려 말하며 사요에게 공금횡령을 은근슬쩍 조언한다. 사면초가에 놓인 사요는 미치루의 컨설팅을 받아들이고 빚을 갚은 후 쇼핑 유혹에 다시 빠지고 만다. 어느새 횡령 금액은 2억 엔이 넘어갔고, 본사에서 감사가 나온다는 쿄코의 정보에 차명계좌를 확인하자 통장은 이미 비어 있었다. 그리고 사라진 미치루와 쿄코. 

  

 

2007년.

대학을 졸업하고 여든아홉 번 구직에 실패한 노노미야 히로키는 아버지 회사인 산업폐기물처리 업체에서 일한다. 어느날, 사정상 두 달 정도 집에 머물기로 한 미치루를 집에서 마주한 순간 그녀에게 이성으로서 매료된다. 스물아홉 살에 경영인이라는 타이틀을 단 미치루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녀 앞에 남자로서 당당해지기 위해 자립하리라 결심한다. 며칠 후 누나인 쿄코와 미치루의 성애 장면을 목격하고, 다음날 미치루로부터 놀라운 고백을 듣는다. 또한 그녀는 히로키가 스스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조언을 덧붙인다. 히로키는 미치루를 위해, 그녀의 남자가 되기 위해 장도리를 손에 쥔다.  

 

 

2012년.

남편은 2년 전 정리해고를 당한 후 재취업은 고사하고 느닷없이 작가가 되겠다며 히키코모리 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후루마키 요시에. 아무리 절약해도 점점 조여오는 생활고에 지쳐간다. 직장 동료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털어 놓자 그녀로부터 생활 플래너 상담에 대해 듣게 된다. 소개받아 간 자리에는 미치루라는 삼십 대 중반의 아름다운 여성이 나와있다. 컨실팅을 떠나 자신의 괴로움을 알아주는 그녀의 위로에 감동한 요시에. 두번째 만남에서 미치루가 건넨 조언은 두 가지.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것, 현재 모은 자산의 가치를 높일 것. 그런데 여기서 자산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요시에는 남편을 자산의 가치로써 활용할 수 있을까? 

 

 

경찰 다카도노, 아소의 집요한 추척으로 꼬리가 잡힌 미치루. 그들이 제시한 증거물을 확인 후 변호사 선임을 요구하고, 그녀가 지목한 변호사는 의외로 형사 재판의 이력이 전혀 없는 호라이 가네토다. 그녀는 왜 경찰.검찰이 꺼리는 베테랑 형사 재판 변호사가 아닌 민사 전문 변호사를 선임한 걸까? 

 

재판 현장에서 벌어지는 반전의 반전 쇼.

그녀는 희대의 악인인가? 치밀한 플래너인가? 아니면 천재인가? 

 

 

 

■ ■ ■ ■ 

 

 

소설은 가정 폭력, 아동 학대, 존속 살해, 쇼핑 중독, 금융 사기, 보험 살해 등 자극적인 소재와 극단적인 사건 진행을 보여 준다. 그러나 소설에서조차 잔인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매체를 통해 보도 되고 있다.

 

돈을 주지 않는 노부모를 살해한 아들, 딸에게 성적 학대를 가하는 생부, 수입을 초과한 소비 생활 때문에 쏟아져 나오는 신용불량자, 보험금을 노리고 아내 혹은 남편을 살해하는 부부, 고객의 돈을 임의로 차용해 개인적으로 사용하다가 적발된 금융업 종사자. 

 

소설을 읽다보면 등장인물 들은 미치루에게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넘어간다. 아니 뻔히 보이는 이 수작에 넘어간다고? 하지만 정작 미치루의 무기는 아름다운 외모도, 1급 플래너라는 직함도, 뛰어난 지능도 아닌 피해자들의 약해진 마음을 읽어낼 줄 아는 능력이다. 

 

부모조차 못 알아본ㅡ따돌림과 학교 폭력으로ㅡ피폐해진 마음을, 전문대를 졸업한 후 쉴 틈 없이 동료보다 몇 배 더 고군분투하며 살아왔건만 돌아오는 건 승진 누락에 대한 허무함과 고단함을, 루저 취급을 하며 멸시하는 가족들로 인해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자존감과 좌절을, 생계는 뒷전이고 이기적이고 권위적이며 자식 미래에는 관심도 없는 남편을 감수하면서 혼자 아둥바둥 하루하루를 버티는 고통과 괴로움을, 미치루는 알아준 것이다.

 

그러한 그들에게 미치루는 속삭인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죄가 없다고, 인정하고 기다려줬다면 너는 능력을 발휘했을 거라고, 너는 이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너를 꺾어 벌레 취급하고 기회를 박탈한 건 그들이라고,  그러니 그 대가를 치르게 하라고. 

 

피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들의 공통점은 주변인들과 소통의 부재다.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학교 폭력을 혼자 감수하는 쿄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과한 노동량을 출세를 위해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스트레스를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 사요, 누나인 쿄코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고민을 가족에 대한 선입견으로 인해 진정성을 담아 나누지 않는 히로키, 남편을 가족의 구성원이 아닌 그저 돈을 벌어오는 포지션으로 단정하고 딸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조차도 짐작만 할 뿐 대화하지 않으며 또한 남편이 가정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까지 혼자 결정하는 요시에.

사치성 쇼핑은 열심히 일한 나에게 면죄부가 되고, 타인의 화려한 일상은 동경에 머무르지 않으며, 복수를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킨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요는 돈이 곧 행복이라고 단정짓는다. 돈은 아무리 벌어도 만족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나'는 세상에서 돈이 제일 많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와 비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으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것은, 너무나 식상하게도 공감과 이입이다.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미치루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그녀가 그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공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20년 동안 수많은 범죄를 저질러 오면서도 다른 사람의 그림자에 숨어, 한 번도 사건 표면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여자 

p379

 

이는  미치루에게만 해당할까?

우리는 살면서 보이지 않는 수많은 유혹을 받는다. 사소하게는 불필요한 쇼핑 목록, 마음이 맞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편한 심기부터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복권, 널 뛰듯 뛰는 주식 시장, 부동산 시장, SNS에서 보여지는 타인과의 괴리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공금 횡령을 하고, 가족을 죽이고, 친구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일 뿐, '남들도 다 그래'라는 명분 뒤에 숨어 있는 나의 또다른 이면은 없는지 돌이켜 볼 일이다.  

 

가모우 미치루는, 모든 이들의 내면 저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다가 언제든 튀어 올라올 기회를 보고 있다. 그러니 방심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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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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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가치가 있는 일은 뭐든 항상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밥 딜런

 

시간과 지속성에 관한, 그리고 시간의 망각과 고요함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예외없이 시간 안에 살고 있다. 현대 사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플래너를 시작으로 각종 계획과 시간 관리에 관련한 상품과 강의가 넘쳐나고, 그것도 부족해 초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생활습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끝이 없는 길을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일상에서 잠시 멈춰 볼 필요는 있다는 말이다. 

 

'종종 무의미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함께 아무것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듯한 불만족감(p40)'을 느껴본 적은 없는가? 하루를 통틀어 완벽하게 방해받지 않은 휴식을 취할 틈이 있는가? 현 사회는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복무한다.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된다고 여기는 경쟁 심리와 우월주의에 충실한 욕망에 기인한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는가.

 

책에서는 지루할만큼 오랜 시간을 축적하고 인내한 건축물, 책, 인물, 식료품, 과학, 예술, 저장 등에 대해 언급한다.

타임머신, 페르디낭 슈발의 꿈의 궁정,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피치 드롭 실험, 이집트의 문화재, 백과사전, 고전 악기, 주택 등을 들어 쌓여진 시간의 존엄함과 느림의 미학에 대해서 강조한다. 

 

 

사진 작가 스티글리츠가  완벽한 한 순간을 찍기 위해 눈보라 속에서 세 시간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7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지 않았다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기다림과 인내없이 조급함을 먼제 내세웠다면, 어땠을까?  

 

악기를 생각해 보라. 듣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주는 악기는 대부분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수공예품이다. 나 또한 30년이 훌쩍 넘은 피아노를 가지고 있는데, 요즘에 만든 피아노와는 건반의 눌림이나 소리가 많이 다르다(고작 30년이 넘었을 뿐인데!).

버리는 것이 익숙한 풍요로운 사회에서 이제 집은 여러 세대를 위하고 가정의 역사를 쌓는 공간이 아닌 감가상각비에 맞는, 자산의 가치 척도로만 인식되는 '주택'일 뿐이다. 우리는 오래된 사찰, 궁, 성곽, 문화재를 답사할 때 천년이 지난 당시를 만날 수 있지만, 현 세대는 지금부터 천 년 후의 세대에게 시멘트 폐기물만 남겨줄 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을 인내한다는 것은 단순히 힐링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존폐 여부까지 달려있다. 빨리 변화하는 세상과 시장자유주의 원리에 발맞추기 위해 인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경쟁적으로 생산해내고 있으며 이는 인간을 피폐하게, 지구는 황폐하게 만든다. 순수 자연 변이를 무시한 채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유기체를 인간에게 맞추고 있어 종자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고,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고 있다. 예술가 마셜 매클루언이 '지구라는 우주선에는 승객이 없다. 우리는 모두 승무원이다(p115)'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유기체의 한 종에 불과할 뿐이다.  

 

 

할 말이 많다면 일단 침묵을 지켜야 한다. 번갯불을 일으키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구름으로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니체

획일적이기만 한 나날은 인생을 짧게 만들고, 세월이 흘러 돌이켜봤을 때 회환만이 남는다. 잠시 멈춤과 침묵은 우리의 기억을 정돈할 시간이 된다.

시간은 모든 자원 중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이 자원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후대에 물려줄지에 대해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만 한다.

[책 속 문장]

 

10.

어떤 대상에 시간을 들이는 일은 모든 사람에게 불안의 시대 한가운데서 내면의 중심을 잡아 주는 방호벽이 될 수 있다. 

 

71.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계획이 없는 사람이다.

 

75.

잠시 멈추어 생각한 후에야 비로소 우리 영혼의 풍경도 이런 자연의 모습과 거울처럼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한 시간은 단지 한 시간이 아니다.
향기와 소리, 계획과 날씨로 가득 찬 항아리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시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감각과 기억 사이의 특정한 관계에 다름 아니다. /마르셀 프루스트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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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스티브 잡스가 반한 피카소
이현민 지음 / 새빛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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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 Why not?

영화와 미술의 만남.

영화에 등장한 혹은 관련이 있는 미술 작품을 영화와 함께 읽어주는 책이다.

실린 영화 중에서 두 편-누드모델, 아르테미시아-을 제외하면 모두 관람했고, 미술 작품 또한 간적적으로나마 한번 쯤은 접해봤기에 한편으로는 익숙하게, 한편으로는 새롭게 접했다.

 

저자는 작가와 작품을 단편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당시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흐름과 변화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짚어가며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아르테미시아, 바스키아.

(아르테미시아는 다른 책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좋아했는데, 영화가 있는 줄은 몰랐다. 조만간 찾아서 보기로).

렘브란트를 좋아하는 지인들이 다수 있는데, 나는 그의 그림은 너무 어두워서 보고 있으면 나까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은 어두운 듯 하면서도 은은한 밝음이 있고, 집중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좋다. 아르테미시아 그림의 확 와닿는 현실적 표현과 (나에게 있어)그 연장선에 있는 바스키아. 바스키아가 절대적 멘토이자 후원자였던 앤디 워홀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을 우리는 만나지 못했을까? 앤디 워홀이 아닌 다른 후원자를 만났으면 어땠을까라는 의미없는 상상을 해 본다(나는 앤디 워홀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여성 작가를 다루면서 대표적으로 아르테미시아, 카미유 클로델, 프리다 칼로를 들고 있다. 그들은 예술가로 인정은 고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로 재능을 억압 받고, 그들의 작품을 폄하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때를 잘못 만났다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고, 근대까지도 그 현상은 지속된다. 1970년대 페미니즘의 활동과 더불어 미국 예술계에는 여성 작가의 위상이 점차 높여졌다고 말하는데, 현재는 어떨지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저자의 의견에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하고 동의했던 부분은 자본주의가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다. 이념이 맞서는 세상에서는 정지적 도구로 이용당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함으로써 예술의 창의성과 자유, 공공의 역할은 사라지고, 돈으로써 권력을 움켜쥔 이들에 의해 선전 도구로 전락하거나 예술가 고유의 영역을 침범 당할 뿐만 아니라 생계까지 좌지우지 되고 있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문학이든 순수 분야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의 창의성과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는 순수 학문이나 예술을 만나는 기쁨은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개인적인 사고를 통해 공공의 역할을 할 수 있게끔 사회적 제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우리는 권위적인 예술문화에서 벗어나 놀이도 미술이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일상에서 또는 자연에서 만나는 색, 형태, 소리 등에 상상력을 보태어 예술로 승화할 수 있고, 이러한 경험은 적어도 우리를 정서적 무능의 상태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어디에서든 미술을 만날 수 있다. 작은 미술관을 비롯해서 지역마다 종종 열리는 원화전, 길거리의 설치 미술, 어린 아이들의 낙서 등 열린 사고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무심코 지나치는 조형물에 관심을 보이시라.

잠시나마 그곳이 곧 미술관이다.

 

상상력이란 세상과 사물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바라보게 하는 능력이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 자신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존 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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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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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아오면서 어떤 호의와...... 얼마만 한 경멸과 때로는 악의를 만나왔기에, 자신을 지키는 부적을 온몸에 그릴 수밖에 없었을까요.

p136

아파트 10층 한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했지만 그 집외에 다른 집은 그을름조차 없고, 거주자는 거실 창 밖으로 추락사한 아버지와 가해자라고 보여지는 딸이 있다. 그러나 상처 하나 없는 딸이 가해라고 하기에는 정황상 맞지 않다. 

 

자신이 혼자 살던 빌라에서 피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 33세 K 씨. 발견 당시 창문 유리창은 부숴져 있었지만 방범창이 설치되어 있어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 정도만 드나들 수 있는 정도다. 살림은 쏟아지고 사방에 피가 튀어 격투의 흔적은 역력한데,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 그런데, 경찰은 두 손목이 등 뒤로 둘러진 채 가슴에서부터 발목까지 청테이프로 묶여있는 한 여성을 옷장에서 발견한다. 이 여성이 범인일까? 그러나 여성에게서 격투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집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Y 씨. 그가 죽은 현장은 거실 바닥에 흥건하게 물어 퍼져나가고 거실 벽면의 벽지가 벽시계 높이까지 젖어 있었다. 감식반이 벽지를 쓸어내리자 묻어 나온 하얀 가루에서는 짠맛이 느껴졌다. 누군가 바닷물을 집 안에 채워넣었단 말인가? 

 

강제로 아이와 떨어져 긴 세월 동안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온 시미. 남편의 훼방으로 아들이 성장하는 동안 만날 수 없다가 제대 이후 찾아갔을 때는 아들이 엄마와의 만남을 원하지 않는다.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다고, 아빠를 혼자 견뎌냈다고, 그래서 엄마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만 듣고 돌아섰다. 

 

우연히 신입사원 화인의 뒷목 아래 부분에 새겨진 타투를 보고 관심이 생겨 그녀로부터 소개 받은 타투이스트를 찾아간 시미. 예상과는 다르게 쥐색 양복을 입고 있는 삼십대 중후반의 남자. 그는 왜 장년층이 입을 법한 넉넉한 양복을 입고 있으며 자신의 작품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걸까? 

 

그리고 시미는 왜 나이 쉰이 넘어 문신가를 찾아갔을까?  

 

■■■■

소설에서는 가정폭력, 직장내 폭력 및 갑질, 스토커로 인해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피해자에게 있어 그 고통은 아물어 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어질 때마다 바늘로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져 찌르는 듯한 고통을 전달하는, 영원히 굳지 않아 딱쟁이가 될 수 없는 상처다.

하지만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순간순간 불쑥 올라오는 분노의 충동은 어쩔 수 없다. 피해자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터져나오는 열망을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리의 몸에는 얼마나 많은 상흔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을까.

화인의 문신을 바라보는 시미의 시선. 

'어쩔 수 없어, 사는 게 다 그래' 혹은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외면과 핑계와 폭력을 가하는 (방관자를 포함한)가해자와 약자들의 아픈 외침을 향한 작가의 시선.

150쪽이 채 되지 않은 작은 소설이 웬만한 장편소설 이상의 임팩트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번에도 작가가 놓지 않은 사람을 향한 온기. 역시 구병모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소설 속으로] 

132.

하나만 딱 새기고 끝나지 않는 분들이 계셔요. 일단 시작하면 대여섯 개까지는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 데 없이 자기 몸을 다 채우도록 그려 놓는 사람도 있지요. 

  

148.

스스로가 빛나지 않는다면, 시미는 다만 몇 발자국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보고 싶었다. 바라는 건 그뿐이었다.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p138

 

 

 

실은 피부에 새겨진 건 자신의 심장에도 새겨지는 겁니다. 상흔처럼요. 몸에 입은 고통은 언제까지고 그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고 맴돌아요. 아무리 잊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이지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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