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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ㅣ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평점 :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열 편의 단편소설들은 대체로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비인간적인 관계, 내면의 혼란, 존재의 거부, 폭력과 고통과 소외, 그리고 소통의 단절 등 무서울 정도로 지극히 현실적이다.
교사임에도 대화를 혐오하는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전 근무지에서 불면증과 아이들한테 시달리다 못해 밤에 소리를 내는 짐승의 머리를 총으로 쏜다. 그런데 새로 발령받아 온 이번 근무지에서도 재앙의 징후를 감지한다며 나란히 걷고 있는 교사에게 용서를 구한다. "부디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두 명의 교사)
두통과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차라리 미치고 싶고, 미치지 않을까봐 두려운 이 사람은 우연히 모자를 줍게 되고 이 모자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리에 쓰고 다닌다. 마을에 내려가 주인을 찾아주려고 했으나 그들은 이미 남자가 가지고 있는 모자와 똑같은 모자를 쓰고 있다. 모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남자는 모자에 지배당하고
집으로 돌아와, 두려움에 모든 사람이 쓰고 있는 모자를 쓴다.
(모자)
어머니는 외삼촌과 함께 산지기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자살한다. 4년이 지나 외삼촌의 채석장에 일하러 온 '나'. 이 꺼림칙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장을 다닌다. 외삼촌은 '나'를 무시하고 회사 동료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를 비난한다. 그렇지만 그는 코미디언처럼 우스갯 소리를 해가며 버틴다. 어머니처럼 파멸하지 않기 위해.
(야우레크)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게오르크는 당연히 가업을 이어받아야 하는 외아들이다. 그러나 가족은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가 얼른 죽기를 바랄만큼 거부한다. 가족에게 있어 아들은 외모도 수치스러운데 심지어 시를 짓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다. 그는 모든 면에서 달랐다.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
누이를 폭행하고 착취하던 목수는 5년간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감한다. 감사 인사를 위해 당시 사건 변호사를 찾아가지만, 정작 변호사는 그 사건 뿐만 아니라 목수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암울하게 성장한 그는 따뜻한 가정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변호사는 그에게 호의를 보이며 개선해 보려고 하지만, 목수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목수)
길을 갈 때 상대의 얼굴을 보는 '나'와 옷과 신발을 보는 재단사 후머. '나'는 후머의 얼굴을 보고, 후머는 '나'의 옷과 신발을 보고서 서로 상대를 수년간 길에서 스쳐지나간 상대임을 안다.
(비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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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작품 안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사회적 문제를 시사한다.
뚜럿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인간의 광기, 정상성의 테두리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는 절망감, 자신의 고통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지만 서로 일방통행만 하는 단절, 불분명한 사건으로 복수조차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비애, 개별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존재조차 거부 당하는 상실감,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악은 다시 악을 낳는 폭력의 순환, 끝나지 않는 고통의 연장 등 소설은 '지금'을 직시한다.
우리의 현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의 불평등, 소수자의 고립, 점점 더 과격해지는 폭력성, 묻지마 범죄, 소통 부재로 인한 지역 주민 간의 갈등 등 갈수록 사회는 건조해지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가 우스갯 말로 쓰이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가. 타인의 불행에 나의 안온함을 감사하는 얄팍한 심사는 나무랄 일이지만, 누구라고 얼마나 별다를까.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나를 돌아볼 일이다. 이 소설에서 섬찟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소설에서 현실까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일테다.
말하지 않는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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