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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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삶도 다른 여덟 명의 한국 여성이 주인공인 옴니버스 소설집이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한 꼭지마다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이 사례들이 과연 한 사람한테 한 가지씩만 일어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갈 곳이 없어 도움을 얻고자 찾아간 선배의 아르바이트 주유소에서 알게 된 건호와 동거하는 정아,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만 고시생 남자친구 뒷바라지에 열성을 다했으나 제대로 뒤통수 맞은 정정은 씨, 처음으로 교제한 남자가 유부남인 것도 모자라 오히려 뻔뻔하게 몰랐냐며 되묻는 그에게 물 한 잔도 끼언지 못했던 영진, 명예퇴직을 당했다는 사실에 결혼을 전제로 5년간 교제한 남자친구가 위로는 커녕 맞벌이가 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로 작별을 선언하면서 야무지게 결혼자금 공동 통장의 돈까지 삼켜버린 그로부터 맥없이 당해버린 지윤, 큰 욕심 없이 지금만큼만 딱 지금만큼만 행복하면 더는 바랄 게 없었건만 하필 그 시간에 공용 화장실에 들어간 죄로 살해를 당한 수연.
 



 

소설을 읽다보면 처신 똑바로 하지 못한, 영악하게 굴지 못한, 좀 인내심을 갖고 참지 못한 그녀들의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이런 사람들 꼭 있다). 각 소설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십수 년 전부터 꾸준히 회자되었던 사회 문제이자 많은 이야기의 소재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게 문제라는 걸 직시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런 일이 있어?' '예전에는 이랬단 말이야?' 라는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안전하지 않은 밤길이 문제가 아니라 여성이 밤길을 다니는 걸 문제 삼고,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을 대상으로 칼을 휘두르는 묻지마 범죄자보다 해 떨어진 시간에 술집 화장실을 드나드는 것이 원인이라고 여긴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고 비하하며 상품화하는 건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차고, 여성의 성욕구는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한다. 직장 내 성추행은 입 아픈 얘기이고 회식 자리에 여성 직원이 일찍 자리를 비우는 건 소속감이 부족해서라고 혀를 차면서 자기의 아내가 회식으로 늦게 오는 건 탐탁해 하지 않는다. 도대체 이런 이중적인 잣대는 어디에서 근거한 것일까? 
 




 
이 소설집의 결정타는 고작 다섯 쪽에 불과한, 에필로그다.
만약 여덟 사례를 보여주고 앞으로 태어날 성별을 선택하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성별을 선택할까?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어느 설문 조사의 결과를 읽은 내용을 썼다. 시간여행을 하여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으냐는 것. 압도적 1위가 "결혼하지 마"였다고 한다. 엄마가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만큼 인간 세상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특히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녹록치 않다. 
 
요즘에는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과 정.재계 진출, 대기업 임원, 공무원과 교사 비중이 높아진 것을 들어 더이상 차별은 없다고,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지난 대비 상승률이 아닌 현재의 평균 비율과 표면적인 수치가 아닌 오랜 관습도 함께 짚어봐야 할 것이다.  
 
어느 한 쪽이 권력을 잡고 우위에 서는 관계가 아닌 진정한 '공존'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136.
시위장에서 본 '함께 살자'라는 깃발이 떠올랐지만 우리는 함께 살고 있는 걸까. 사각사각, 김은정의 마음속 빈자리에서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공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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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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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중국편3,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부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실크로드란 길로 나 있는 선이 아니라 오아시스 도시에서 오아시스 도시로 이어지는 점의 연결. 
  
 


이번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순례 답사기다. 
저자의 답사기는 나에게 늘 유용한 지침서가 되어 주었다. 이번 순례기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요, 언젠가 가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실크로드의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는다.  
 
책의 표지를 펼치면 약도가 나온다. 동쪽에 있는 누란을 시작으로 투르판을 거쳐 천산산맥 아래쪽의 쿠차로 가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해 호탄, 야르칸드, 카슈가르를 종착으로 한다. 간단한 지도만으로도 이 엄청난 구간이 놀라운데, 하루에 거의 10시간을 버스를 타야하는 일정은 병적으로 멀미가 심한 나로서는 가능할지 쓸데없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답사기는 여행의 과정이나 문화유산의 자료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현장에서 느껴지는 답사가들의 감흥과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지는 자연의 경관이 인상적이고 깊게 들어온다. 이 책에서도 인상적이고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사라진 누란을 비롯해 가는 곳마다 남겨진 문헌들을 읽고 있자면 삶과 세상을 통찰하는 혜안들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누란에서 발굴된 가로슈티문자로 기록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살아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베면 말 한 필을, 작은 나무를 베면 소 한 마리를, 묘목을 벤 자는 양 두 마리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그들은 나무 한 그루를 키우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와 나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란 사람들도 신도시 건설로 인해 생태계 파괴를 불러왔고, 현재는 사라진 나라가 됐다. 현대 사회에도 도시화라는 명분으로 산은 깎여 나가고, 화석 연료 사용으로 오염과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안타깝게도 누란의 경고가 아무 소용이 없다.  
 
 
휴먼 스케일은 인간 감각과 신체조건의 한계에 바탕을 둬 한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크기를 말한다. 현대에는 이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는데, 투르판의 교하고성 도시는 이러한 휴면 스케일을 일찍이 완성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투르판의 인공수도 카레즈인데 카레즈는 위구르어로 '우물'이라는 뜻으로, 지하에 우물을 파고 이 우물들을 서로 연결해서 물길을 만든 지하 관개수로를 말한다. 연간 강우량이 16밀리미터밖에 안되지만 증발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지상에 수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단다. 그래도 지하에 만든 인공수로라니... 모세혈관처럼 연결되어 있어 그 길이가 무려 5천 킬로비터가 넘는다. 굉장히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만리장성, 대운하와 함께 중국의 3대 불가사의 공정으로 꼽힌다고 한다. 
 
 
이번 답사기에는 오아시스 도시를 탐험했던 탐험가와 학자들, 그리고 이들이 도굴하고 훔쳐간 문화재에 대한 이야기가 꽤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인간을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동력은 제각각일 터다. 고고학자, 탐험가 등 입장에 따라 지적 호기심, 금전적 욕망, 명예욕 등 다양하겠지만, 타국의 문화재를 제멋대로 떼어내 가져가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내심이야 어떻든 명분은 문화재를 보존할 소양이 안되는 나라에서 훼손되느니 선진국인 제 나라에서 잘 보관해 주겠다는 건데, 그렇다면 협의 하에 서로 납득할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닌가. 주로 독일과 프랑스, 영국의 도굴이 심했는데, 꽤 놀라웠던 것은 19세기에 일본도 서역 탐험에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속내가 학문에 비중을 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외에도 실크로드의 실질적 상인이라고 살 수 있는 소그드인, 불경 편찬에 절대적 역할을 했던 쿠마라지바, 신라와 교역을 했다는 증거로 보여지는 키질석굴의 장식보검 벽화, 그리고 키질석굴의 엄청난 입장료(키질석굴의 입장료는 한화로 10만원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의 경복궁 입장료 3천원이 너무 싸다며 3배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막이 없는 나라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막에 대한 로망이 있는 이들이 있다. 모래라면 진저리를 치는 나도 사막에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저자의 설명과 사진을 보니 쿰타크 사막에 앉아 물결치는 모래 언덕과 끝없는 지평선, 그리고 천산신비대협곡의 한가운데를 맨발로 걸으며 자연의 경외감을 느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불교와 이슬람의 종교, 동.서문화가 만나는 곳. 
저자는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냐는 물음에는 투르판이라고, 어느 '오아시스'가 매력적이냐는 물음에는 쿠차라고,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는 물음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을 건너간 일이라고, 어느 코스가 제일 '감동적'이었냐는 물음에는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천산산맥이라고 대답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오아시스 도시는 각각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다르고 사막을 한가운데 놓고 발달한 지역적 특성이 잘 살아 있어서 답사지로서 꼭 가보고 싶은 곳이다. 
 
저자는 이 책이 여행자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현장에 가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 유물.유적을 실감 나게 묘사해 현장감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새로운 시각의 일깨움을 통해 유익한 독서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바람을 갖는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세 가지가 충분히 전달 되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답사을 넘어 역사를, 과거에 살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터전의 이야기가 무엇보다 좋았고 즐거웠다. 
 
  
좋아하는 시인 이상은의 시가 나와 남겨놓는다. 
 
날은 저물고 기분이 울적하여
수레 몰아 높은 언덕에 올라보니
석양은 한없이 좋기만 한데
단지 아쉬운 것은 황혼이 가까운 것이다
(등낙유원 登樂遊原) 

  
 
 
 
[책 속으로] 
  
61.
답사는 찾아가는 유적지 못지않게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한 장소의 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유적지가 처한 지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186.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경험을 확대시켜주기 때문이다. 해외 여행에서 우리는 크게 세 가지를 보고 배운다. 문화유산 답사는 인류의 역사와 인문정신을 가르쳐주고, 도시 여행은 인간 삶의 다양한 면모를 엿보게 하며 자연 관광은 대자연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229.
색色이란 형태가 있는 것을 말하고 공空이란 실체가 없고 변해가는 것을 말하지만 결국은 둘이 같다고 말한다. 이를 쿠마라지바는 개념화시켜 이렇게 번역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色卽是空 空卽是色' 이 여덟 글자 속에 삼라만상의 세상만사가 다 들어 있는 것이다.  
 
261.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 사라지면서 한편으로 남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그 폐허에서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 나름의 또 다른 종교 감정이 아닐수 없다. 
 
388.
티베트인은 신앙의 힘으로 버티는 느낌이다. 오체투지의 인내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이에 반해 실크로드 오아시스 도시 사람들은 춤과 음악으로 인생을 위로한다. 그런가 하면 차마고도 사람들은 종교고 가무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생존의 시간에 충실하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일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느 것이 더 낫고 부족하고가 없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자연조건에 맞추어 사는 인생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현대 도시인들은 이 세가지에다 문명이란 복잡하게 뒤엉킨 삶을 영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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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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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주제로 고전 톺아보기를 통해 삶과 죽음, 가족 구성원 내의 차별, 인간의 본능, 덕목으로 여겨졌던 관습의 오류와 허점 등이 허구와 지난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비판하며, 현실을 통찰한다. 
 
쥐 변신 설화, 옹고집전, 배따라기, 열녀함양박씨전, 홍길동전, 사씨남정기, 춘향전, 구운몽, 옥루몽, 홍계월전, 흥부전, 심청전, 헨젤과 그레텔, 장화홍련전, 여우누이, 최고운전 등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옛 이야기들을 통해 마녀 사냥, 열녀 이데올로기, 가부장제에 따른 희생, 그리고 혁명을 위한 가족의 재탄생 등 늘 들어왔던 식상한 주제로 비칠 수 있지만, 읽어보면 그 당연한 문제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에 놀라게 된다. 
 
 
 
'쥐뿔'의 의미를 아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그런데 뜻과 숨겨진 의미를 알게 되면... 낯 뜨거워서 사용할 수가 없다. 지금으로 치자면 고시 준비를 하기 위해 절로 간 선비가 깎은 손.발톱을 쥐가 먹은 후 선비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의 집에서 한동안 그의 역할을 하며 살았다는 것인데, 문제는 부부관계다. 아이까지 임신한 아내를 향해서, 돌아온 진짜 선비 남편은 '쥐뿔'이라는 단어를 쓰며 비난하는데, 여기에 시부모 및 가족까지 합세해서 아내를 그야말로 쥐잡 듯 한다. 여기에 마녀 사냥 메커니즘이 등장한다. 선비를 못 알아본 사람이 아내 뿐인가? 하인은 그렇다치고 낳아 키운 부모도 못 알아봤다. 그런데 왜 시부모는 며느리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변명조차 못했을까?  
 
당연히 시대적 환경을 들 수 밖에 없다. 아내가 설령 동침을 통해 남편이 진짜가 아님을 알아봤다고 하더라도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다. 성관계를 통해 진위 여부를 알아냈다고 하면, 더구나 그 시대에 정숙한 여인이라고 누가 여기겠는가?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손가락질과 비난을 받을 상황이다. 알든 모르든 내색을 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시부모는 왜?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모두 며느리에게 덮어 씌울까? 며느리를 희생양 삼아 죄를 은폐가 아닌 소멸시키고자 함이다. 
 
49.
희생양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희생양에게 자신들의 죄를 모두 옮겨버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은 속죄하게 되는 메커니즘이다. (르네 지라르)
 
51.
인간 내면에 감춰진 폭력성이 극대화되는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은 보이지 않는 가상의 적을 향한 두려움과 광기를 쏟아내기에 더 강렬하고 더 치열해 진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성性의 문제에 있어서 지금은 크게 다를까? 남편의 외도와 아내의 외도는 사회나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가 다르다.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는하나, 남성의 외도는 살면서 한번쯤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지만 여성의 외도는 얘기가 다르다. 이처럼 아직도 여성에게 있어서 성에 관해서만큼은 여전히 보수적이고, 부계 관습을 생각해 보면 성의 독립과 평등은 아직도 요원한다.  
 
   
 
 
□ □ □ □ 
 
 
'홍길동'하면 떠오르는 것은 의적, 도술, 율도국 등을 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분제를 타파하고 인간 평등을 이루자는 혁명적 정신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만 느꼈을까?했던 부분을 저자가 시원스럽게 집어냈다. 홍길동 마지막을 읽다보면 율도국 왕이 되어 자식을 몇 낳았고, 누구의 소생이라는 부분이 나온다. 그렇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으로 부를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 제 어미는 투기가 심한 첩에게 그토록 괴롭힘을 당했었는데, 결국 그도 왕이 되어 처와 첩을 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홍길동은 처첩의 자식들을 공정하게 대하자는 것일 뿐, 그가 품은 평등 사상에 여성은 없다.  
  
 
책 속에는 투기하는 여성들과 방관을 넘어 방조하는 남성들이 등장한다. 
구운몽과 옥루몽, 홍계월전이다. 이 소설의 남성들은 기녀에게 순결을 요구하고, 현숙함을 들먹여 한쪽 편을 대놓고 든다. 남성은 아쉬울 게 없다. 일부다처제가 합법적이니 죽도록 사랑하는 여인과 굳이 결혼하지 않아도 첩으로 들이면 그만이기에 출세와 욕망을 동시에 충족한다(물론 죽도록 사랑하는 여성이 같은 신분이면 얘기는 조금 다르겠지만). 사랑해서든 아니든 결혼한 '처'는 죽든 살든 남편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에서 애정을 한몸에 받는 다른 대상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힘들다. 이렇게 살벌한 눈치 게임판을 벌여놓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남성의 태도는 폭력에 다름하지 않다. 이 투기 싸움에 있어 주범은 남성이지만 이를 직시하는 이는 드물다. 
 
물론 일부다체제가 현대 사회에 무슨 해당이냐 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비혼녀의 순결을 따지고 남성들의 단톡방의 외모 품평회, 여성의 상품화,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데이트 폭력 등 문제가 되는 것이 어제 오늘에 그치지 않는다.  
 
183.
투기의 본질은 모두 남성 가부장제의 폭력적 구조 때문이지만, 누구도 그 욕망의 삼격형을 알아내지 못한다.   

 
  
 
□ □ □ □ 
 
 
책에는 무능한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심봉사와 흥부다. 저자는 심봉사와 흥부는 다르다고 말한다. 심봉사는 무능할지언정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동냥젖을 먹이고 적선을 받아가며 딸을 키운다. 심청이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를 닮아 야무지고 똘똘하게 자란다. 심봉사의 잘못이라면 눈이 뜨고 싶어 앞뒤 생각을 못한 어리석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흥부는 무기력하다. 저자의 표현을 빌자면 제비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굶어 죽었을 거라고 말하는데, 동의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징징거리기만 할 뿐 그 많은 자식 중에 구걸조차 나가는 녀석이 없다. 그래서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 했던가.
 
기실 부모들이 가장 흔하게 쓰는 말 중에 하나가 "누구를 닮아서"이다. 누구를 닮았겠는가, 당연히 제 부모를 닮았겠지. "걔네 아빠 뭐하니?", "몇 동에 사니?" "걔 성적은 어떠니?" "공부 못하는 애랑 놀지 마" 등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이 자신의 가치관에 기반해 있고, 그 가치관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흡수된다. 몇 년이 지나 아이들의 냉랭함에 서운해 하지만, 그건 모두 아이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어른들이 뿌린 씨앗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요즘 매체에 종종 보도되는 뉴스 중 하나가 근친 상해다. 
보험을 들어 배우자를 살해하고, 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모를 때리고, 친아버지가 딸을 성폭행하며,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식의 미래를 담보 삼아 몰아붙인다. 이 책에도 만만치 않은 부모가 등장한다.  
 
그 중 한 명이 장화와 홍련의 아버지 배 좌수이다. 외모, 성품, 집안 뭐 하나 빠질 게 없는 자매가 죽은 어미를 꼭 닮아 아버지가 아낀다는 이유만으로 혼인도 하지 않은 채 살고 있다. 배다른 동생 장쇠가 누나를 연못에 빠뜨릴 정도면 장화의 나이가 어린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장화가 죽자 홍련은 언니를 따라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계모의 눈에 거슬리면 혼인시키면 그만인데, 왜 딸들이 말 한마디 못하고 그 지경까지 내몰렸을까? 저자는 근친 강간을 의심한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지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해 꼭 닮은 장화의 방을 자주 찾았고, 계모 허씨가 장화의 낙태를 의심했으며, 장화가 끝까지, 심지어 죽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홍련은? 홍련 또한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침묵했던 언니가 죽음으로써 아버지가 곧 자신의 방을 찾을 것임을 알기에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의 부모와 가난한 살림에 입을 줄이기 위해 어린 자식을 버리겠다는 <손순매아>도 언급되는데,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는 바는 "부모, 그들은 무엇을 했는가?"이다. 세상이 불황이고 태어날 때 부터 가난했는데 어쩌라는 항변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럼에도 그들은 먹는 입 줄이기 위한 패륜적 행위가 아닌 다른 방편을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외환 위기 이후에 끊이지 않는 뉴스 중 하나가 경기 불황으로 인한 일가족 동반 자살이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부모의 선택에 의해서 삶이 결정된다. 그들 중 누가 아이들에게 죽겠냐고 물어봤을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삶 뿐만 아니라 죽음까지도 대신 선택을 하는 이 월권을 어떻게 막아야 할까? 
 
역으로 넘쳐서 화근인 경우도 있다. 자식 뒷바자리에 언감생심 노후대책은 고사하고 수입의 절반을 사교육에 쏟아붓는다. 학교와 학원 셔틀은 보통 일이고, 성적부터 입시 설계까지 부모가 다 해준다. 심지어 법적 성인인 나이에도 부모가 수강 신청을 해준다. 실제로 직접 들은 지인의 경험담으로, 아르바이트생 면접 온 학생을 불합격 시켰더니 학생의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웃지 못할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렇게 키웠으니 배우자인들 제 맘대로 선택해서 결혼할 수 있으려나. 힘들다고 하면서도 자식에게 매달린 끈을 놓지 못한다. 
 
저자는 이러한 작금의 세태를 <여우누이>를 통해서 꼬집는다. 제 오라비와 부모의 간까지 빼먹는 여우누이 말이다. 과연 이렇게 넘치는 사랑이 자식을 위한 희생이라고 위안 삼으며 살텐데, 이것이 과연 옳은 희생이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외에도 <춘향전>을 통해 체제의 확장, <아기장수>를 데려와서 젊은 세대들이 이루어야 할 혁명에 대해서 말한다. 그 다름과 확장과 혁명이 기존 세대에게는 안정을 뒤흔드는 배반으로 여겨질지 모르나, 그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씩 나아져 왔다. 
 
캐캐묵은 옛 이야기와 고전을 들춰내 읽고 사고하고 확장해야 하는 이유는 미처 우리가 각성하지 못했던 바를 깨달아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변화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희망이라는 사실이다.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무척 소중하다. 
  
 
 
 
세상 모든 것들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정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던져지듯 있다는 무의미에서 허무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오히려 그렇게 이유 없이 던져진 듯하기에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창조적 존재가 된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혜안이다. 본래부터 결정되고 정해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본질적으로 구속하는 것이 없는 진정한 자유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스스로 선택하고 생동하고 책임짐으로써 자기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어떠한 인간이다[본질]'라는 것보다는 '스스로 선택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실존]'것이 더 먼저 있다는 거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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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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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예전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무언가 희미한 진전이 있음을 포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르포는 그것이 무엇을 향한 진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르주 제르포는 파리의 대기업 중간급 임원으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여유로운 일상을 사는 평범한 삼십대 후반 남성이다. 어느날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시간, 외곽순환도로를 달리던 제르포는 교통사고를 목격하고 부상을 입은 운전자를 병원에 데려다준 후 별다른 사후 조치 없이 의료진에게 한 마디 언질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 사고가 앞으로 제르포의 인생을 뒤흔들어 놓을 줄이야. 교통 사고 부상자라고만 여겼던 그는 총상 환자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 여름 휴가를 떠난 제르포와 가족들. 바닷가 물에 들어간 순간 그를 향해 린치를 가하는 두 남자.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빠져나온 제르포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다. 누가? 왜? 휴양지에서 어슬렁거리는 불량배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미심쩍다고 여기고 혼란스러움을 느낀 조르주는 아내와 딸들을 남겨 둔 채 파리의 집으로 돌아간다. 
 
 
알론소 에메리크는 도미니크 공화국 출신으로 거칠게 살아온 이력 덕분에 누구도 믿지 못해 아무도 집에 들이지 않고 엘리자베스라는 개를 키우면서 홀로 은둔하다시피 살고 있다. 그는 바스티앵과 카를로, 두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해 필요한 일을 처리한다. 그는 얼마 후 죽을 것이다. 그의 개, 엘리자베스까지. 
 
 
바닷가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제르포의 집을 지키고 있는 두 살인 청부업자. 그러나 제르포는 아파트 관리인을 통해 휴가지 숙소 주소를 낯선 남성 두 명이 알아갔음을 알게 되고, 렌트한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다가 미행하던 두 남자와 주유소에서 마주한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자동차와 총알, 여기저기 부숴진 주유소에서 제르포는 라이터를 켠다. 화상과 부상으로 제정신이 아닌 제르포는 미친듯이 철길을 향해 도망가고, 그들 중 바스티앵이 죽었다. 
 
제르포가 눈을 떠보니 열차의 화물칸이고, 앞에는 낯선 남자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부랑자는 이미 그의 지갑과 현금, 수표책을 훔쳤다. 그것도 모자라 그 남자에 의해 제르포는 열차 밖으로 내던져진다. 추락한 이후, 의식을 잃었지만 곧 정신이 돌아오자 자신이 죽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 이러한 상황이 영화나 꿈이 아니라 정말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 맞는 걸까? 실패와 좌절이라고는 몰랐던 인생이었다. 여전히 그는 믿기 힘들다. 
 
114.
안락한 유년기와 성공적인 사회적 신분 상승으로 점철된 청년기를 보낸 후 겪은 최근 사건들로 인해, 그는 자신이 무적이라고 어느 정도 확신하게 된 차였다. (...) 지금 제르포가 생각하는 본인의 이미지는 10년 전에 읽은 추리소설, 그리고 작년 가을 올랭피크 영화관에서 본 짤막하고 형이상학적인 그전 웨스턴 영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다. 

 
걷기를 며칠,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밀입국자 포르투갈인 벌목꾼이었다. 다리가 부러진 그를 위해 벌목꾼들은 외진 산동네에서 사냥꾼이자 의사 노릇을 하고 있는 라귀즈를 데려온다. 조르주는 자신을 조르주 소렐이라고 소개하며 신분을 속이고, 그와 함께 생활한다. 
 
  


■ ■ ■ 

 
신문에는 주유소 총격 화재 사건과 피해 차량의 소유주가 조르주 제르포이며 현재 실종 상태라는 기사가 실린다.   
 
 
알론소는 조르주를 처리하라는 오더를 내렸는데, 두 청부업자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소식도 끊겼다. 예감이 좋지 않다.  
 
 
카를로는 제르포의 실종으로 알론소에게 연락을 끊었다. 몇 달이 지나는 동안 그는 다른 일을 맡았고, 수입도 괜찮다. 알론소와의 계약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바스티앵이 죽었으니 복수를 해야한다. 카를로는 부랑자를 찾아 내어 제르포의 뒤를 쫓고 지도를 들고 그가 도망쳤을 구간을 샅샅이 뒤진다. 그러다 산골 마을에서 꼬리를 잡았다. 이제 그를 잡으러 간다.  
 
 
늙은 라귀즈가 죽고 그의 손녀 알퐁진이 집과 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다. 몇 달 후 그녀가 다시 찾아오고 두 사람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그녀만 온 것이 아니다. 얼마 후 카를로가 도착한다. 사냥을 하기 위해 외출하던 두 사람을 향한 총구. 카를로가 쏜 총알에 알퐁진은 숨지고, 조르주는 그에게 총구를 겨냥한다. 조르주는 더이상 모른 채 있을 수가 없다. 누가 그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제르포는 배후를 찾기 위해 기억을 몇 달 전 외곽순환도로 교통사고로 되돌린다. 제르포가 병원에 데려다 준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왜 한적에 외곽순환도로에서 사고를 낸 것일까? 얼른 이 사건의 고리를 끊어내고 집으로 돌아가야 겠다.  
  
 
제르포는 도대체 자신도 전혀 모르는 어떤 사건에 연류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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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포의 일상을 뒤흔든 계기는 그가 선의를 가지고 한 작은 행동 하나였다. 교통 사고가 난 환자를 응급실에 데려다 준 것이 전부다(이 소설은 1976년에 출간 한 작품이다). 이 별 거 아닌 사소한 일이 멀쩡한 남성을 살인자로 만든다. 
  
 
소설을 읽다보면 제르포의 투사같은 대응과 전투력,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손에 총을 쥐고 사람을 죽이는 모습에서 과거에 미스터리한 혹은 살인과 연관한 직업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했었다. 그러나 지나치다 싶을 만큼 모범적으로 성장한 그는 천연덕스럽게 주유소에 불을 지르고, 열차에 올라타고, 산을 뛰어내려 총을 쏜다. 늘 그래왔던 사람처럼. 그리고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수개월 만에 집에 돌아와서는 아내에게 고작 한다는 말이 "다녀왔어" 이다. 아내는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어디 갔다왔냐는 물음에 모르겠다는 말만 할 뿐이다.  
 
제르포는 단기 기억상실증을 가장해 그간의 기억을 모두 잃은 것으로 위장한다. 어차피 자신이 주유소에 불을 지르고, 포르투갈인 벌목꾼들의 숙소에 머물렀으며, 카를로와 또 한 명을 죽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에 머물 뿐이다. 
 
 
누와르 소설을 표방하면서 이토록 담담하게 긴장감을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또한 소금기 가득한 바닷가의 끈적함과 제르포가 언급하는 재즈 요소가 가득한 블루스, 그리고 미래의 사고를 예고하는 듯한 트릭에서 오는 긴장감 등이 진하게 전해진다. 
  
 
나는 제르포가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 베아에게 대답한 "모르겠어"를 다른 의미로도 해석해 본다. 그는 정말 그가 겪은 일이 왜 일어난 건지, 그토록 사소한 일로 인생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 휴가지 숙소의 사소한 불편함도 못참는 자신이 냄새나고 더러운 밀입국자 벌목꾼들 숙소에서 지내고  낯선 여인과 외도를 하며 익숙한 듯 사람을 죽이다니. 
  
 
이렇듯 영화에서나 일어날 것만 같은 일들을 우리는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겪는다. 끊임없는 사건.사고들이 나와는 무관한 듯 하지만, 당장 2020년 지구는 상상조차 못한 전염력을 가진 역병으로 국가 간 이동이 거의 막힌 상태 아닌가. 
  
 
작가는, 말하는 게 아닐까?
사소한 사고로 일상의 균열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인간은 내면에 여러 군상을 갖고 있다고, 그래서 어떤 모습도 이상하지 않다고, 누구도 예외는 아니라고, 그러니 방심하지 말라고. 그럼에도 세상은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간다고. 
 
  
 
217-218.
조르주 제르포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정확히 알 방도는 없다.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전반적으로는 알 수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법이다. (...) 언젠가 한번 모호한 상황에서 그는 파란 가득한 피투성이 모험을 경험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찾아낸 할 일이라고는 가축우리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이제는 우리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 우리 속에서 조르주가 파리 주변을 시속 145킬로미터로 달리고 있다는 것은 그저 조르주가 자신에게 속한 시공간에 자리해 있다는 사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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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의 집밥레스토랑 - 이정현의 행복한 집밥이야기 101가지 요리
이정현 지음 / 서사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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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인지, 늦은 저녁 시간에 TV를 켰는데, 이정현 배우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를 하고 있었다. 무슨 프로그램인가 싶어 보고 있는데, 편의점에서 판매할 음식을 경쟁하는 요리 프로그램이었다. 내 기억으로 그때 그녀는 결혼기념일을 축하할 요리를 하는 중이었고, 연어 덮밥을 시작으로 연오를 주재료로 하는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냈었다. 
 
당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음식을 참 단정하게 만든다는 것과 양념으로 쓰이는 기본 베이스를 손수 만든다는 점이었는데, 이후 그녀가 출연하는 몇 장편을 찾아 시청했는데, 대부분의 소스와 양념을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흥미로웠다. 물론 요리를 취미 이상의 수준으로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하겠지만, 대체로 화려하거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단 책에 실린 음식들을 보면 우리가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국, 찌게, 밑반찬 등을 비롯해서 이탈리아 음식이나 분식들도 있다. 사람마다 제각각 가지고 있는 레시피가 있고, 입맛은 다르니 책의 레시피가 더 맛있다 없다는 그다지 중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동안 내가 접하지 못했던 요리 방식이나 메뉴 등을 참고 하면 좋을 듯 하다. 
 
눈에 띄는 부분은 그녀의 음식은 모두 그녀가 직접 조제한 <만능간장>이다. 아마 이 만능간장때문에 그녀의 요리가 무척 쉬워보이기도 하는데, 만능 간장에 들어가는 재로를 보면 맛이 없을 수가 없겠더라는. 그렇다고 해서 재로만 가지고 맛을 낼 수 없는 것이 재료마다 혼합 비율과 방식이 있어 달리하면 맛의 차이도 조금은 있을 테다(백종원 님이 그랬다지 않는가. 재료가 들어가는 순서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고). 여튼 이 만능간장은 꼭 만들어보리라. 
 
개인적으로 대부분 집에서 해 본 음식들이었는데, 몇 가지는 경험이 없어 궁금하고 흥미로웠다. 
 
먼저 '달걀노른자 간장조림' 

 


 
정말 낯설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계란 반숙 후라이에 간장가 버터를 넣고 비벼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음식은 달걀노른자를 분리해 만능간장에 담아 숙성시키면 끝. 구미가 당긴다. 
 
 
 


다음은 '명란오일 파스타' 

 


 
명란의 비릿한 맛이 걱정되어 아직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음식인데, 그녀의 시그니처 음식이라하고, 조리 과정도 그닥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아 도전해봐야겠다. 
 
 
그외에도 호텔 조식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을 한 상차림으로 레시피를 올렸는데, 이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어디 나가기 부담스러운 요즘에 집에서 기분전화으로 가끔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실린 음식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부수적으로 곁들이지 않아도 한끼 식사가 될 수 있어 종종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의 레시피와 비교하면서 만들어 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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