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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
히사이시 조 지음, 박제이 옮김, 손열음 감수 / 책세상 / 2020년 7월
평점 :
쇼가쿠간에서 발행하는 잡지 <클래식 프리미엄>에 2014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첨가 및 재구성한 음악 에세이다.
히사이시 조, 혹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을 모르는 이는 없을 터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등 국내에서도 유명한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작곡한 사람이며 클래식 음악 지휘자이기도 하다.
책을 펼치기 전에는 그의 영화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막상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보니 음악의 전반적인 이야기와 클래식 음악과 지휘가 주를 이룬다. 특히 2장에서는 악보 등 음악이론적인 부분, 4장에서는 음악의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어 음악의 기초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한테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저자는 클래식의 중요성과 깊이를 음악에 입문 뒤 한참 후에 깨달았다. 어릴 때는 가요나 팝송이 더 친근했고, 중학교부터 대학 시절까지는 현대음악에 심취했다. 그런데 서른 전후에 마음이 바뀌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현대음악은 시종일관 어떻게 사고했느냐하는 문제만 다루기 때문에 상대방의 논리적인 허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논파함으로써 자신의 음악 개념을 세우려 한다. 소리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어떻게 사고했느냐 하는 증거로만 존재한다. 아무도 그 음악을 듣고 즐거워할 사람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에 마음이 떠났다고. 결과적으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를 넘어선 듣는 이의 감정까지 고려하게되었다고 생각하면 될까?
저자가 지휘를 시작한 이유는 작곡 활동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였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신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려면 제 손으로 그 작품을 지휘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클래식은 연주자, 지휘자, 청자 모두에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나는 주로 청자가 되겠지만, 나 역시 같은 음악을 여러번 들어도 들을 때 마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서 감동이 전해지는 부분이 달라지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부분이 들리기도 한다. 또한 지식을 위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순수한 음악의 즐거운 체험을 위한 청자라면 어느 정도 노력과 인내를 갖추길 요구한다. 그러한 체험이 음악적 하루하루를 일군다면서.
곡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점에서 해석이 생겨난다는 히사이시 조. 그래서 음악을 시각화한 악보와 음악을 전달하는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크다고 말한다. 음악은 귀로 생각하는 것이고 시간축과 공간축에 세워진다. 가로선이 시간축, 세로선이 공간축이라고 하면, 리듬은 새겨가는 것이므로 시간상에 성립하고 하모니는 울림이므로 각각의 순간을 둥글게 썰어나가는 느낌으로 여긴다. 이른바 공간을 파악하는 것. 멜로디는 시간축과 공간축 안에서 만들어진 것의 기억장치다. 시간축의 산물인 리듬과 공간축의 산물인 하모니, 그것을 일치하기 위한 인식 경로로 멜로디라는 기억장치가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음악에 해당된다(p160). 저자는 수많은 현대음악이 본래의 멜로디와 하모디가 지닌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는 음악이 필요한 때라고 전한다.
264.
음악은 구축하는 것입니다. 떠오른 생각을 차례로 이어놓기만 하다면 그저 음의 나열일뿐이지요. 그것들을 한데 묶는 요소가 필요해요.
히사이시 조는 획일화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인한 음악 교육의 부재와 상업주의 사회에서 음악이 대량생산됨으로써 발생하는 폐해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는, 음악은 시간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작품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본다. 연주보다는 작곡에 더 기쁨을 느낀다는 히사이시 조. 지금이라는 시대 속에서 단순히 과거를 보고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돌아와 현재의 흐름 속에서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사람. 그의 음악 세계를 응원한다.
236.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업주의 속에서 음악은 정말 풍요로워졌는가? 사람들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도 없이 인기 많은 사람이 여흥처럼 부르는 음악을(물론 그렇지 않은 진정한 가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취향에 호소'하는 대중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일까? 감동이 있을까? 컴퓨터로 음악을 정보화해서 정액 요금으로 마음껏 들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음악의 존엄을 짓밟는 행위다. '상업화로 대량생산된' 음악의 미래가 이것이라면 세상에서 진정한 작곡가는 사라질 것이다(밥을 못먹고 사니까). 이제 미래는 없는지도 모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