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도둑
해나 틴티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이 아이예요. 얘가 틀림없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모르고 어릴 때 기억이 아예 없는 렌은 성 안토니오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이다. 렌은 보육원에 맡겨질 때부터 왼손이 없이 손목은 봉합된 상태였고, 그의 이름은 맡겨질 당시 잠옷 목깃에 짙푸른색 실로 수놓여 있었던 R. E. N 세글자에서 비롯됐다. 소년이 자라고 잠옷이 해어지자 수놓인 목깃 부분만 따로 챙겨 고이 간직했다. 
 
포도를 수확해 와인을 공정해서 판매하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은 고된 노동을 하고 여러 이유로 등받이 없는 체벌 의자에 서서 채찍을 맞는다. 해마다 겨울이면 새로운 신발과 이불이 지급된다고 하지만 한 번도 구경조자 못했다. 성장한 아이들이 일정 나이가 될 때까지 입양에 성공하지 못하면 군대에 보내지고, 존 신부가 그 대가를 받고 아이들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모종의 계약서를 쓴다는 말이 돌았다.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은 불안했고, 렌은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왼쪽 손목의 흉터가 점점 더 근질거렸으며 때때로 물건을 훔쳤다. 보육원 아이들은 너나없이 돌멩이를 수집한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채우려는 듯. 
 
어느날 동생을 찾으러 왔다는 벤저민 냅이라는 젊은 남자는 렌을 덥석 안으며 틀림없는 동생이라고 말한다. 짐을 싸라고 말하는 존 수사. 렌이 짐을 챙기는 동안 곁에 있던 조지프 수사는 렌이 훔친 책 <성자들의 삶>을 발견한다. 
 
"왜 이 책을 훔쳤니?"
"기적을 갖고 싶었어요." 

 
형을 따라 보육원을 나온 렌. 그러나 형이라는 남자는 렌을 데리고 보육원을 나오는 순간부터 거짓말과 도둑질로 일관한다. 하룻밤 재워준 집에서 말과 마차를 훔친 벤저민은 렌의 예상대로 그의 형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게 무어냐고 묻는 벤저민에게 '가족'이라고 답하는 렌. 오후 늦게 조그만 항구 마을 그랜스턴에 도착한 두 사람. 그곳에서 렌은 벤저민과 한패인 톰을 만나고, 벤저민은 렌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도굴꾼이자 사기꾼이었다.
 
어둑해질 무렵 노스엄브리지에 도착한 렌 일행은 샌즈 부인이 운영하는 여관에 숙박한다. 그곳은 근처 쥐덫공장에서 일하는 여자애들이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기도 하다. 본격적으로 사기 행각에 가담하게 된 렌은 닥터 밀턴에게 의뢰받은대로 밴저민, 톰과 시체를 훔치던 중 의도치 않게 무덤에서 산 채로 묻힌 청부살인마 돌리를 꺼내게 되고, 그는 일당에 합류한다. 벤저민은 쥐덫공장의 사장 맥긴티가 밀수 시장을 운영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큰 돈을 벌 기회를 노린다.
 
어느날 아파서 쓰러진 샌즈 부인을 닥터 밀턴 병원에 입원시킨 후 밤마다 굴뚝으로 찾아오는 의문의 난쟁이를 부인 대신 챙기기 위해 부엌에서 기다리는 렌. 드디어 그를 만나 샌즈 부인의 상황을 알리고 두 사람이 남매라는 것과 그가 외부의 어떤 접촉도 없이 외롭게 지붕에서 혼자 지내왔음을 알게 된다. 
 
한편 사라졌던 톰이 보육원 쌍둥이 브롬과 이키를 데려왔다. 렌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오는 내내 협박에 시달린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렌은 샌즈 부인이 자신에게 했던대로 쌍둥이들이 씻을 수 있게 해주고 잠옷과 이불을 가져다 주었고, 밤이 되자 다시 '낚시'를 나간 일행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모자단과 맞닦뜨리고 황급히 도주하지만 결국 잡혀 노스엄브리지로 끌려온다. 
 
모자단은 지명수배자를 잡아 돈을 버는 인간 사냥꾼 집단이다. 모자단 우두머리 파일럿은 만신창이가 된 벤저민 일행을 쥐덫공장의 사장 맥긴티에게 끌고 갔다. 맥긴티는 렌이 성 안토니오 보육원 출신이며 왼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소년만 남겨두고 벤저민 일행을 쫓아낸다. 
 
그리고 마주한 진실. 
 






 
근친강간을 하는 아버지를 죽인 남매. 강간과 살인의 충격으로  실성하다시피한 누이는 어느날 아이를 낳았다. 오빠는 누이를 임신시킨 누군지 모를 남자를 향해 복수를 다짐했고, 누이는 아이가 손을 잃은 후 죽었다고 거짓말한 후 보육원 앞에 놓아두고 열병으로 죽었다. 렌이 알게 된 사실은 엄마는 죽었고 외삼촌은 조카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제니의 도움으로 탈출한 렌이 찾아간 곳은 샌즈 부인이 입원해 있는 병원. 그런데 톰과 쌍둥이가 있었고 벤저민은 어디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닥터 밀턴은 렌에게 톰의 다리 골절 수술비와 샌즈 부인의 입원비 대신 렌의 사후 신체 기증서에 서명하라며 서류를 내민다. 렌은 닥터 밀턴이 내민 서류에 서명을 하고 샌즈 부인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여관으로 향하고 얼마 후 톰과 쌍둥이, 돌리가 돌아온다. 그러나 다시 쫓아온 모자단에 의해 쥐덫공장으로 잡혀온 렌. 이제 렌은 자신의 손목을 잘라낸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아버지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다그치는 맥긴티. 
 
렌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벤저민의 사기가 빛을 발하는 마지막 반전! 그리고 두번 째 진실.
마침내 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467.
그렇지. 이제야 우리는 서로를 찾은 거야. 안 그러냐? 오랜 시간을 헤매다 이제야 서로를 찾은 거야. 

 
 
■ ■ ■ ■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라고는 잠옷 목깃에 새겨진 이니셜과 잘린 손목이 전부인 고아 소년 렌. 소년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족이 생기는 기적이다. 소년의 바람과는 다르게 형이라고 나타난 젊은 남자는 그를 사기에 이용할 뿐이다.  
 
보육원 침대 맡에서 늘 상상해 왔던 가족은 고사하고 렌의 앞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유별나기 짝이 없다. 학교 교사를 하다가 사기꾼이 된 톰, 도통 속내를 알 수 없는 벤저민, 우악스럽고 거친 샌즈 부인, 지저분하고 걸신들린 듯 먹을 것만 찾는 쥐덫공장 소녀들, 산 채로 매장 되었던 청부살인업자 돌리까지. 그러나 숨겨져 있던 아픈 사연을 공유하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벤저민은 십대 중반에 그의 삼촌이 도박 빚을 갚으려고 군대에 팔아 넘겼다. 끔찍한 전쟁터를 견디지 못해 탈영했고 사기꾼이 되었다. 그래서 벤저민은 곧 군대에 보내질 렌을 선택했다. 비록 거칠지만 샌즈 부인으로부터 목욕을 시키고 몸에 맞도록 옷을 수선해 주고 끼니를 챙겨주는 마음 씀씀이를 처음 경험하는 렌은 그녀가 병원에 입원하자 일당의 돈을 털어 병원비를 내주고 그녀 대신 그녀의 난쟁이 동생의 끼니를 챙기며대화를 나눈다. 친구는 중요하다며 렌에게 친구를 찾아주기 위해 보육원에서 쌍둥이 형제를 데려온 톰, 자신을 무덤에서 꺼내주고 수발을 들어준 렌을 목숨을 걸고 지키며 친구라고 말하는 돌리, 돌리가 살인마라는 말에 자신의 이형연구를 위해 그의 신체에 관심을 보이는 닥터 밀턴에게 돌리는 친구라고 말하는 렌, 쥐덫공장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렌의 탈출을 도왔던 제니 등 그들은 서로의 결핍을 연민하며 연대한다.  
 
소설에는 편견과 선입견에 쌓인 사회적 약자들이 등장한다.
기억할 수 없는 시절부터 왼손이 없었던 소년, 쌍둥이는 불행을 몰고온다는 인습에 입양이 안되는 쌍둥이 형제, 물건처럼 팔리는 고아들, 열악한 환경에서 악랄하게 노등을 착취 당하는 소녀들, 세상 사람과 단절하며 살 수 밖에 없는 난쟁이, 먹고 살기 위해 사기와 도둑질로 연명하는 하층민들. 사회적 약자들은 현대 사회에도 존재하고 여전히 차별과 싸우고 있다. 
 
또한 혈연중심 가족의 틀을 벗어난 연대중심의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서로를 측은지심으로 바라봐주고 공감을 한다면 가족이 되지 못할 까닭이 무엇일까? 돈 때문에 가족끼리 소송을 하고 절연을 하는 세상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한 모험 성장소설이다. 찰스 디킨스의 빅토리아 시대의 음습한 분위기보다는 좀더 명암이 밝다. 소설은 내내 진실과 거짓의 경계에서 오락가락 하며 팽팽하게 진행하고, 특히 진실을 찾아가는 후반부의 긴장감은 소설의 맛을 배가시켜 주며 결말의 통쾌함은 짜릿하다. 또한 매력 넘치는 벤저민과 사랑스러운 렌의 조합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즘, 따뜻한 소설 한 편을 권한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1 - 현실 편 : 역사 / 경제 / 정치 / 사회 / 윤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1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지적인 대화에 목말라 있거나, 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복잡하다고 느끼거나, 다양한 분야에 관심은 많으나 현실적 제약으로 독서할 여유가 없거나, 대학에서 교양 수업을 듣기 전에 기초적인 지식을 얻고 싶거나, 가난하면서도 보수 정당을 뽑고 있거나, 정치는 썩었다고 습관적으로 말하면서도 뉴스는 사고와 연예.스포츠 부분만 보거나,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 불안하지만 어디서부터 생각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읽기를 권한다. 








[역사]

역사의 단계는 ,원시 공산사회,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사회, 근대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 세계1차대전, 세계대공황, 세계2차대전, 냉전시대를 거쳐 현재는 신자유주의 시대다. 


근대 자본주의에 새로운 권력이 탄생한다. 사회계급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 무산계급)로 나뉘어진다. 사회 갈등의 본질은 실제 노동은 프롤레타리아가, 부의 축적은 부르주아의 몫. 비용 절감과 이윤 극대화로 인해 고용주와 피고용인에 따른 갈등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근대 자본주의의 전개는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자본주의가 성장하면서 공급이 과잉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다. 정복할 식민지가 부족해지자 일어난 것이 세계1차대전이고 전쟁 종식 후 초공급과잉으로 상품 가격을 내리고, 원가 절감을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자 소비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1929년 경제대공황이 발생한다. 이 난국을 전쟁으로 해결하고자했던 독일의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다시 전쟁의 회오리에 휘말린다. 이 전쟁을 연합국이 승리하면서 세계의 중심은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으로 재편된다. 미국은 자본주의, 소련은 공산주의로 두 국가는 강력한 힘의 균형을 위태롭게 유지한다. 그래서 직접적인 충돌은 없으나 다른 국가들의 국지적인 전쟁 발발을 통해 대립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는 이유 는 공산주의 생산수단을 독점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무역 거래를 하지 않는 공산국가가 증가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입장에서 시장 축소를 의미하며, 이는 공산주의 국가의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에 위협이 되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노동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자본가들을 제거하고 하고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즉 내부적 공산주의 혁명의 위험성이다.


공산주의 체제 몰락으로 자본주의 독주 시대가 도래했다. 신자유주의의 탄생이다. 냉전시대 이전과 이후의 자본주의는 차이를 보인다. 이후 자본주의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거부하고 자유 시장을 추구한다. 세계는 매우 소비적이고 시장중심적인,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독특한 사회에 살고 있다. 


왜곡된 세계에 서 있는 왜곡된 '나'를 이해하는 과정, 이것이 역사를 알아야하는 이유다.



[경제] 

경제체제는 초기 자본주의, 후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공산주의(사회주의) 네 개로 구분한다. 이를 구분하는 기준은 정부의 시장 개입 정도이다. 


시장의 주체는 개인, 기업, 정부이고 정부의 개입 방법은 세금, 규제를 통해 이뤄진다. 시장 자유의 범위에 따라 세금과 복지의 규모가 달라진다. 경쟁률, 경기활성화, 사회불안, 빈부격차 등 개입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두 경제체제를 구분 짓는 것은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 인정 여부에 따른다.


18세기 근대에시작한 초기 자본주의는 시장의 자유만이 존재한다. 애덤 스미스는 시장의 자정능력을 믿었는데, 개인적으로 그는 부에 대한 인간의 열망을 너무 쉽게 간과한 듯 하다. 후기 자본주의(수정 자본주의)는 냉전시대 붕괴 전까지 이어졌다. 시장의 자유를 축소하고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제체제로써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제시했다. 정부는 세금을 높이고 다양한 규제를 통해 시장 실패를 막고, 거대 자본이 산업을 독점하는 것을 견제하며, 노동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경제체제로 자리매김한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한다.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으나 시장의 독점과 극심한 빈부 격차가 우려된다.


정책을 비교해 보자면 성장중심정책과 분배중심정책으로 나눌 수 있다.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기업.국가 경쟁력 강화, 빈부격차 심화, 사회약자 소외를 들 수 있고, 분배 중심의 후기 자본주의는 빈부격차 해소, 사회약자 구제, 기업.국가 경쟁력 약화로 말할 수 있다. 성장과 분배는 기본적으로 반비례 관계일 수 밖에 없고 이에 대한 핵심은 분배의 시기에 있다. 어디에 주안점을 둘지는 사회 구성원의 몫. 넓고 긴 안목이 필요하다.




[정치]  

정치란 '경제체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시장자유주의를 주장.옹호하는 정치적 보수, 정부의 개입을 주장하는 정치적 진보로 구분할 수 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진보라 할 때 그것이 지칭하는 것은 후기 자본주의나 사회민주주의다. 신자유주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자본가다. 세금을 낮추고 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정부의 재정과 복지정책은 축소된다. 삶의 질이 높은 자본가에게 공공서비스나 복지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세금 인상보다 복지확대가 실질적인 이득이다. 정치의 본질은 경제체제를 선택하는 문제이며, 구체적으로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객관적이라고 믿는 미디어. 그러나 객관적인 미디어는 없다. 이 사실을 전제하고 언론과 방송을 접해야 그나마 객관적인 사실에 근접할 수 있다. 미디어의 상품은 시청자이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기업이다. 즉 기업은 시청률을 사고, 미디어는 시청자를 기업에 판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수익 창출을 위해 기업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언론사와 방송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객은 거대 재벌그룹이다. 미디어의 수익구조가 한국에서 보수 정당이 지속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주요 요인을 제공한다.


226.

미디어에서 비정치적 성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지 않는 것, 정치적 사안의 심각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은 중립이나 비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에 구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 보수적 세계관이다. 날카로운 풍자와 시사가 배제된 예능은 대중의 말초적인 재미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만드는 정치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본가와 노동자 계급은 현실에서 기업과 노조. 궁극적인 측면에서 한쪽에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노사의 협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집단의 이익을 우선할 것이냐에 따라 정치적 입장이 구분된다. 노동자 파업을 윤리적.도덕적 관점에서만 접근하려는 미디어의 속성을 고려해 파업에 대한 막연하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지 않고 파업의 원인과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유권자는 대기업과 유착하는 미디어와 정치 세력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하는데 더 신중해야만 한다. 노동자들이 신자유주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세금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의 지적을 예로 들어보자. 세금을 낮추고 건강보험을 민영화로 전환한다고 가정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국민의 대다수가 자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옹호한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서 사회 구조적 문제는 개인이 극복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각자 깊은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 반대말은 독재와 엘리트주의, 공산주의 반대말은 자본주의다. 두 체제의 차이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주체의 수에 있다. 민주주의는 대의제 형태로써 장점은 거시적으로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한다(정당 선택). 문제점은 선거를 통해 독재자 선출, 혹은 다수의 독재가 될 수 있는데,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만들어낸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현실적으로 결국 소수에게 권력이 주어질 수 밖에 없다. 소수를 선출하는 시민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권력이 주어지는 계층의 소양과 소명의식을 갖을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민교육이 절실하다.

261.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과 공정한 절차가 보장되고, 각 구성원이 소수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관용의 태도가 전제되어야만 이상적인 형태의 민주주의가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경제체제는 어쩔 수 없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며, 그만큼 다른 집단의 이익을 희생시킨다는 특성상 완벽한 경제체제는 없다. 따라서 완벽한 경제체제가 없는 한 완벽한 정치체제가 없으므로 이상적인 정치는 불가능하다. 특히 독재나 소수 엘리트에 의한 이상적인 사회는 허구이다. 정치에서 요구되는 것은 뛰어난 인물이 정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서 충돌하는 이해당사자들이 대화와 협의를 통해 이견을 조율할 절차가 마련되는 것이다.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 정당이 공존한다. 사민주의 체제가 전제하는 것은 시민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다. 시민이 국가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서 성장과 분배,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 세금 축소와 복지 확대 중 개인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가치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체제의 문제점은 국가 채무의 증가다. 북유럽 사민주의 국가들의 평균적인 부유함은 사민주의 때문이 아니라 유럽 전체의 환경과 역사(제국주의로 의한 안정적인 경제상황)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북유럽 국가와 같은 적극적 복지를 무조건 실행하기에는 타당하지 않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의 정치 논쟁의 핵심도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방향에 대한 논의다.

이익 추구에 대한 견해가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까닭에 민주주의는 팽팽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쉽게 변하기 어렵다. 유독 한국이 신자유주의에서 멈춰있는 까닭은 첫째 역사의 문제가 있다(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적대적 경험),  둘째 교육의 문제다(교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층으로 교육은 보수적인 측면을 띤다), 셋째 대중의 비합리성이다.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체제' 자체가 아니라 '체제 선택의 합리성'이다. 대중 스스로의 비합리성에 대한 책임은 대중 스스로가 져야 한다.



[사회]  
개인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사회의 이익이 대립한다면 개인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호되어야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사회라는 개념이 허구라는 데 있다. 사회는 단순히 개인들의 총합이라는 것. 

집단주의는 같은 상황에서 사회의 이익이 우선한다. 근거는 사회가 실체라고 본다.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행사를 한다. 사회없이 존재하는 개인이란 가능하지 않고, 개인의 존재 의미는 언제나 사회 안에서 규정된다.

이기주의는 개인의 문제로써 이를 억제할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국가나 사회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개인들을 희생시키려고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 전체주의는 개인의 도덕적 부채를 대신 해결해 주기 때문에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자연권이란 천부적 권리, 하늘이 부여해준 권리로서 국가라 하더라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배타적인 권리(생명, 재산, 자유)를 말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국제기구가 개입하지만 이에 대한 한계는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폭력에 개입하기는 어렵고, 국제기구의 구조상 소수 선진국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문제가 있다.

미디어의 보도를 의미론과 화용론의 측면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독재 사회는 정부 입장을, 민주주의 기업 입장을 대변한다. 현재는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전반적인 상황을 기반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332.
신문과 방송이 광고주인 사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주고, 사기업들은 광고로 언론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잘못된 이익의 먹이사슬이 형성됐다. (노암 촘스키)



[윤리]
모든 윤리적 판단에 앞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시점이다.
윤리적 정의를 보면 도덕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합의하고 암묵적으로 준수하는 규범이나 규칙이고, 윤리는 규범과 규칙이 정당한지를 의심하고 검토하는 것을 말한다. 

당위명제는 참과 거짓의 판단을 넘어서 있고, 이에 따라 윤리적 명제 역시 참과 거짓을 말할 수 없다. 당위명제는 사실명제를 통해 증명될 수 없고, 사실명제와 무관하게 그 문장 자체의 내용만을 토대로 판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윤리적 판단은 실제 세계가 어떠한지와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의무론은 도덕 법칙이나 의무를 준수하는 행위로써 과거에서부터 주어져 있는 의무를 고려하며 비결과주의다. 목적론은 다수의 이익을 창출하는 행위로 미래에 발생할 결과를 고려해서 행동하고 결과주의다.

칸트의 정언명법은 개인적으로 하려는 일이 동시에 모든 사람이 해도 괜찮은 일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 벤담은 양적 공리주의, 윤리라기 보다 경제적 이익에 가깝다. 밀은 질적 공리주의, 쾌락과 행복의 질적 차이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자유, 평등 등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와 가치들을 지켜낼 수 있다.

하이에크는 절대적 신자유주의 옹호했고, 롤스는 개인의 특수한 상황을 벗어났을 때, 사회 전체가 합리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분배 방식을 주장했다.

376.
정의롭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개개인이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결과를 고려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재분배를 추진해야 한다. 


■ ■ ■ ■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것 처럼 이 책은 가장 기초적인 교양서이다. 복잡한 이념 이론과 역사, 경제, 사회 문제 등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이러한 기본 개념을 토대로 현실에서 접목시키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분명한 건 이 책이 깊이 있는 독서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에서 지원한 도서로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앨리스 더 원더 킬러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장래희망이 명탐정인 앨리스는 아버지로부터 열 번째 생일 선물을 받는다. 아버지가 지정한 오두막에는 자신을 아버지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젊은 남성 '코모란트 이그리트'가 기다리고 있다. 앨리스는 그를 통해 아버지가 선물한 기계를 이용해 가상현실의 세계로 빠져든다. 잠시 후 앨리스가 눈을 떠보니 게임을 설명해 줄 진짜(?) 흰토끼가 서 있다. 

 

"<앨리스>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섯 게임을 종료하는 제한 시간은 24시간,  앨리스는 흰토끼가 준 회중시계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자,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다. 




[SOLVE ME] 
방에는 다리가 세 개인 유리 탁자가 있고 벽에는 탁구공 크기만한 구멍이 뚫려 있으며 다른 한 면에는 문이 있다. 유리 탁자에는 쿠기와 시럽병이 놓여있고 우리가 아는대로 두 음식으로 앨리스는 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첫번째 미션은 방에서 탈출. 다음 게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옆방의 똑같은 탁자 위에 있는 열쇠를 가져와야 한다. 게임 마스터인 토끼가 쿠키와 시럽을 얼마든지 보충해 줄 수 있지만 옮겨줄 수 없으며 옆방에는 두 매직 아이템이 없다. 더구나 옆방에 시럽을 가져가는 순간 말라버린다. 쥐구멍을 통과해 옆방으로 가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열쇠를 가지고 돌아와야하는 게 관건이다. 앨리스는 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공작부인]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안테나 역할을 하는 토끼의 구부러진 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곳은 공작부인의 집. 공작부인은 사산을 하고 큰돼지 패티로부터 새끼돼지를 사서 자식처럼 키우고 있다. 새끼돼지는 쌍둥이인데, 입양된 돼지는 오른쪽 엉덩이에 화상 자국이 있는 라이티이고 왼쪽 엉덩이에 자국이 있는 레프티는 큰돼지가 사육하고 있다. 앨리스 일행이 지독한 후추냄새를 견디다 못해 공작부인 집에서 나온지 얼마 안되서 패티는 레프티를, 개구리는 라이티를 찾아 다닌다.  


사건을 정리해 보면 공작부인이 방에 라이티를 눕히고 각자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 후 돌아와보니 라이티는 사라지고, 부인의 체셔 묘안석 머리핀을 저택 지붕 위에 던져 놓으라는 쪽지만 남겨진 채 뒤쪽 유리창문이 깨져 있었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가 제시된다.  
 

'라이티는 어디에 있을까?' 


단서를 참고해 라이티를 추적하는 앨리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공작부인은 사건을 해결해가는 앨리스가 돌아가주기를 바란다. 뭔가 수상쩍은 앨리스.




[까마귀와 책상의 닮은 점은?] 
앨리스는 클로버 병사와 맞서다가 위기에 처하고 때맞춰 자신을 구해준 3월토끼와 함께 비밀 아지트로 가서 수수께끼 모임에 참석한다. 모자 장수가 낸 수수께끼는 원작과 같은 <까마귀raven랑 책상writing desk이랑 닮은 점은?>이다. 이게 세 번째 문제일까? 역시 아무도 풀지 못한채 아지트에서 나온 앨리스는 다시 병사들에게 쫓기고 이번에는 게임 마스터 흰토끼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둘은 다시 아지트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살해당한 모자 장수와 피투성인 채로 던져진 잠쥐를 발견한다. 세 번째 문제다.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라! 


트럼프 병사에게 쫓기는 앨리스는 탐문수사가 불가능하고 이 세계에는 지문 채취 기술이 없으며 수수께끼 모임 멤버 중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세 명, 3월토끼는 앨리스와 함께 있었다. 힌트는 이 방, 그리고 다잉 메세지 뿐이다. 이 이니셜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할까? 



[달걀이 먼저인가] 
원작에서처럼 담장에서 떨어진 험프티 덤프티. 그런데 사고가 맞을까? 집 근처를 둘러보는데 뒤쪽 창문이 깨져 집 안에 조각이 흩어져 있다. 그렇다면 험프티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것이 네 번째 문제? 천만에! 험프티를 지키는 것에 지친 병사의 부탁으로 흰토끼는 '마법의 약'을 병사에게 구해 주었다. 네 번째 문제는 바로 이것! 현실 세계에서는 흔하디 흔한 이 마법의 약은 무엇인가? 



[Hurt the Heart] 
이제 앨리스와 흰토끼는 마지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트성으로 출발! 앨리스가 마주한 하트성은 아슬아슬하게 꽂혀있다시피 서있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회랑을 지나면 미로 정원이 나온다. 사이사이 앨리스는 여왕의 잔인함을 듣게 되는데, 미로정원에서 마주친 여왕의 실체를 확인한 앨리스는 놀라고, 유리 요람에 갇힌다. 그때 나타난 체셔 고양이가 다섯 번째 문제를 풀 힌트를 앨리스에게 일러준다. 그런데 아직 다섯 번째 문제가 무엇인지 모른다. 앨리스가 해결해야 할 다섯 번째 문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사건의 진범은?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 그리고 그 반전을 뒤집는 반전! 


● ●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열 살 소녀 앨리스. 장래희망이 아버지같은 명탐정인 딸에게 아버지는 가상현실을 선물한다. 앨리스는 가상현실에서 다섯 개의 문제를 풀어야 승리한다. <이상한 나라 앨리스>에 등장하는 인물이 조금씩 변형되어서 등장하고 우리의 주인공 앨리스는 기상천외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언어의 유희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원작과 가상현실, 그리고 수수께끼가 만나 흥미로운 추리소설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국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잔혹함, 값싼 노동력과 낮은 임금, 경쟁에서 도태되는 젊은이와 소수 엘리트 의식, 언론의 자유 저해, 허술하고 안이한 범죄 예방과 대처, 호기심을 억압하는 주입식 교육의 현주소 등을 지적하고 있다.  

소설의 하일라이트는 마지막 두 번의 반전에 있지만 소설의 제목에서도 묘미를 찾을 수 있다. 
 

'Wonder Killer' 


수수께끼의 죽음인가, 경이로운 킬러인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 200주년 기념 풀컬러 일러스트 에디션 아르볼 N클래식
메리 셸리 지음, 데이비드 플런커트 그림, 강수정 옮김 / 아르볼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삽화와 함께 만나는 프랑켄슈타인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기대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령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7
정용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부의 고위급 인사들과 현직 국회의원 열두 명을 죽인 후 정치적 의도와 공범 없이 모든 혐의를 인정한 사형수 474번. 주민번호도 없고 지문 등록도 되어 있지 않으며 범죄기록도 없다. 서류상으로 존재하지 않는 남자. 그는 변명도, 억울함도 토로하지 않고 교도관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며 위장과 위악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든주눅들지 않는다.  


474번에게 호기심어린 관심을 두는 이가 있으니 그의 담당관 '윤'이다. 474번의 내면을 훔쳐보고 싶은 윤에게 기회가 온다. 일가붙이 하나 없다는 그에게 면회를 신청하는 여자가 있다. 40대 후반 여성 신해경. 474번은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반응한다. 윤은 그를 관찰하고 질문을 던지며 조금씩 다가가지만, ,474번은 경고한다. 알고 싶어하지 말라고, 각오를 해야할 거라고.


신해경과 면회한 후 474번은 교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온 안 목사에게 당장 자신의 사형을 실행하지 않으면 교도관과 수형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안 목사가 방송국 인터뷰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사실상 사형 금지국과 다를 바 없었던 정부는 다른 사형수와의 형평성 문제 등으로 일은 일파만파 커진다.


도대체 신해경은 누구이고, 그는 어째서 세상에 증명되지 않은 존재이며, 왜 그토록 죽고 싶어 하는 것일까?







선천적 무통각증 병을 안고 사는 남매는 오로지 둘이 전부였다. 어머니 없이 방치와 학대를 자행하는 아버지의 몸에 칼을 꽂은 누나는 동생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무통각증으로 언제라도 목숨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누나는 동생에게 항상 다짐을 두었다. 항상 스스로 몸을 잘 살피라고, 절대 부주의해서는 안된다고. 그러던 어느날 동생이 돌로 두더지를 처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누나는 떠났다. 동생은 자신의 솔직함을 후회했고, 자신을 두려워해서 떠난 누나를 원망했고, 오랜 세월이 흘러 누나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를 빼앗기로 했다. 바로 자신을.


누나에게 버림받은 후 스스로 누군가를 죽이는 운명을 타고 났다고 믿는 해준은 청부살인업자의 삶을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그 어떤 죽음에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다. 증명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한 자신의 존재, 그래서 '유령'으로 불리며 안착하지 못하고 혼란스럽게 부유하는 삶을 멈추고 싶었던 해준. 그러나 누나가 자기를 버리고 떠났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자신이 거부당한 존재가 아닌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였었음을 깨달은 후 삶의 의욕을 보이고, 해경은 이제라도 동생의 곁을 끝까지 지키고자 한다.




■ ■ ■ ■ 




비극적인 가정사와 불우한 유년 시절 때문에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 설정의 소설은 이 작품만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타인에게 유해를 가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이 정당화 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삶의 인과관계를 말하고자 함이 아닐 것이다.


우리 안에 내재된 악의 본성.
해경이 해준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청부살인업자가 되지 않았을까? 해준 스스로 죽고 싶었던 이유는 존재를 거부당한 것에 기반한다. 그러나 누나가 떠나기 이전부터 해준은 살의 욕구가 있었고, 이는 해경도 다르지 않다. 해준은 죽고 사는 것에 있어 옳고 그름에 대한 인지가 없었으며 선과 악에 대한 학습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해준을 지켜본 교도관 윤에게서 악의를 느낀다. 


39.
무표정한 얼굴로 쪼그리고 앉아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 윤은 그것을 잘했다. 스스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그것은 선한 일은 아니지만 결코 악한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기다리고 지켜봤다. 누군가 몰락하는 풍경을, 누군가의 비밀이 어떤 이유로 인해 탄로 나는 모습을, 후회와 절망으로 무너져 침 흘리며 우는 모습도 지켜봤다. 직접적으로 엮이지 않고, 인과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나 완전히 무고하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것을 지켜볼 수 있도록 윤은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고 선 앞에 서 있었다.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윤이 해준에게 호의를 베풀지만, 윤이 죄수 474를 관찰한 기저가 선한 의도는 아니었다. 그는 예전부터 직접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윤의 모습은 곱씹어볼수록 익숙하다. 타인의 고통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며 그들의 불행과 절망을 나몰라라 하는 모습은 우리가 쉽고 흔하게 저지르는 잘못이다. 우리는 정규 교육 과정 내내 도덕과 윤리를 배우지만 이를 실생활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는 거의 전무하다.


악의 본성이 내 안에 있음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만이 '악'일까? 근거 없는 사실을 진실인 양 유포하고, 사실 확인이 되지 않는 기사에 악플을 달고, 불법 촬영과 신상털기, SNS 마녀 사냥 등 손가락 두 개만으로도 타인의 일상을 난도질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 각자가 내재한 악을 스스로 마주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악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슨 지극히 사적인 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