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유럽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1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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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의 주민들은 남슬라브족으로 세르비아인이나 크로아티아인이었는데, 많은 이들이 세르비아와의 합병 대신 합스부르크가(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데 대해 분개했다. 민족주의 청년들은 암살 음모를 꾸미고 1914년 6월 28일, 육군 검열을 하기 위해 사라예보에서 행진을 하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를 암살했다. 이 사건은 앞으로 벌어질 제1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됐다.


당시 국제 정세는, 독일과 영국은 우호적인 관계였고 독일의 실업가들은 경제만으로도 유럽의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전쟁을 원치 않았다. 더구나 영국과 프랑스의 사람들은 독일보다는 러시아를 더 염려했다. 전반적인 상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즉 의도적으로 전쟁을 도발하겠다고 결정할만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쇠퇴를 시작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이전부터 세르비아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겼었던 제국의 통치자들은 이를 빌미로 삼았다. 거기에 독일이 러시아가 개입할 경우 오스트리아의 뒷배가 되주겠다고 약속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 정부가 사라예보 사건에 관련있다는 증거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하자, 오스트리아는 굴욕을 주겠다는 의도로 세르비아와 관계를 단절하고 전쟁을 선포했지만 어디까지나 외교적 술책이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현실적인 안보와 교역, 생존의 문제를 들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강력한 위협으로 대응했다. 실제로 전쟁의 의사는 없었음에도 자국의 위신 지키기와 오해로 동원까지 들먹이며 서로에게 위협만했던 러시아와 독일. 결국 동원과 전쟁을 하나로 묶어 실행하는 독일이 동원을 진행한 러시아에게 최후통첩을 보냈고, 이를 러시아가 거부하자 8월 1일, 독일은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틀 뒤에는 프랑스에까지 전쟁을 선포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 시작됐다.


독일은 프랑스로 가기 위해 벨기에 정부에 통과를 요구했고, 벨기에가 이를 거부하자 영국도 끌어들여졌다. 영국은 '약소국 벨기'의 중립과 독립이라는 명분과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이상으로 참전했다. 영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연합국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혼란을 야기시킨 장본인인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에 떠밀려서 마지못해 8월6일이 되어서야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러나 세르비아를 침공하고 두 달 여만에 밀려났고, 오히려 세르비아가 남부 헝가리에 쳐들어왔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마지못해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관계를 끊었다.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만장일치로 전쟁에 찬성했고, 백만 단위의 병력을 동원했으며, 그들 모두가 이 전쟁이 침략이 아닌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규모 군대의 식량 보급은 중요하지만 쉽지 않다. 현지에서 해결하기에도, 본국에서 보급을 받기에도 어렵다. 승리를 구축하기 위해 조직된 대규모 군대가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게 된 것이다. 이후로 전쟁은 교착상태로 4년간 이어진다.


신속하게 속도전으로 끝날 거라 예상했던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끝나지 않을 것처럼 계속 이어졌다. 대체로의 국가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했고 물자 부족을 겪고 있으며 총포와 포탄은 무한정 필요했다. 이러한 이유로 산업과 경제 시스템에 변화가 왔고, 복지와 생활 유지와 매점매석, 부정 축재, 난민 발생 등 사회적 문제가 야기했다. 이와같은 혼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한 대체적인 열정은 여전히 존재했다. 전쟁 전에 있었던 파업, 여성참정권 집회 운동, 민족 분쟁 등이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각 국가는 자국이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무도 전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았고 독일인들은 이기기 위해, 연합국은 지지 않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의 분명한 목표가 없었다. 이 전쟁의 시작으로 국제관계의 양상이 바뀌었는데,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의 진정한 적이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고 무기들이 개발된다. 독가스를 만들어냈고 항공기 수준도 정찰기에서 전투기로, 생산량도 늘어났다. 특히 독일의 유보트(잠수함)은 전함의 보조적인 역할에서 강력한 공격성을 갖추게 되었다. 영국의 루시타니아호를 침몰시킨 것이, 미국이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게 하는 최고의 프로파간다가 된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전쟁이 그 자체로 전쟁 목적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었다.

전쟁은 대규모 산업이 되었다. 총포와 포탄의 생산량은 상상 못할 정도였고, 해양 전투가 수상에서 잠수로 전환되면서 잠수함 건조 체제로 바뀌었다. 영국은 1916년 5월에 병역을 의무화하면서 산업 현장의 노동력에 구멍이 생기자 물가와 환율의 안정이 깨졌다. 정부의 화폐 발행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식량 가격은 상승했다. 독일은 굶주림을 피해 군대에 복무했고, 농민들은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가축을 시장에 내다팔면서 물자가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제외하면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부에 협조했고, 노동자들은 임금이 올라 조용했다.


전쟁은 어느쪽에게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각국의 정부도 국내적인 위협을 느끼지 않았고, 위협을 느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독일의 통제에 묶여 있어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정치가들은 약속했던 결정적인 승리를 얻지 못할 경우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것만을 염려했다. 1916년, 독일과 연합국에서 각각 강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독일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의해, 연합국은 전쟁 승리를 염원하는 영국에 의해 진척이 어려웠다. 그들은 각자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며 승리를 확신했다. 독일과 연합국(사실상 영국)은 안보를 강화해 또다른 전쟁이 없게 하자는 동일한 목적으로 싸웠다. 그런데 오로지 승리만이 확실한 안보를 보장한다고 여겼고,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제거하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전쟁을 수행했다.

1917년을 기점으로 이전 유럽의 역사는 종료되었다. 이제부터는 세계사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 중심에는 윌슨과 레닌이 있었다.


1월 31일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즉각적으로 개시한다고 발표했고, 2월 2일 윌슨 대통령은 독일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응답하듯 독일 잠수함들이 바로 미국 선박들을 침몰시키면서 4월 6일 미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자국의 안보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미국은 오로지 도덕적인 입장으로 전쟁에 임할 수 밖에 없었다. 구리, 면화, 밀 등 대서양 건너로 대량 공급되었고, 공장들은 영국과 프랑스의 주문량을 소화하기 위해 연장 가동을 했다. 경제가 활황을 맞았고, 미국은 번영을 지속하고 부유한 미국인들을 더욱 부유해지도록 하기 위해 전쟁에 참전했다. 미국에게는 육군도, 군수 공장도, 전자도, 항공기도 없었지만, 연합국에 엄청난 규모의 신용 공제를 해줄 수 있었다.


여름이 되자 강화 논의가 재등장했지만 서로가 전리품이 없는 강화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을 입이 아닌 몸으로 감수해야하는 아래 계층 사람들은 승리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물음표를 찍기 시작했다. 혹독한 겨울과 경제적 상황은 불만을 야기시켰다. 파업과 수병들의 시위 등 독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쟁을 통해 돈을 벌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은 전쟁이 계속 되기를 원했고, 보통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기를 바랐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왕조가 종말을 맞았다. 소비에트라 이름 붙은 노동자 군인 대표자 회의로 실권이 넘어갔다. 이 기구에 의해 자유주의 정치인들로 구성된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그런데 4월 16일, 망명 중이던 레닌이 돌아왔다. 뒤이어 그의 동지이자 뛰어난 웅변가인 트로츠키 역시 미국에서 귀국했다. 그들은 참전을 반대했다. 러시아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정부가 볼셰비키의 수중에 들어갔다. 의장이 된 레닌은 사회주의 건설을 선언했으며 전쟁의 휴전을 제안하며 소비에트 의회에서 평화령을 낭독했다. 이에 독일은 휴전에 합의할 의향이 있었던 반면 오히려 서유럽은 당황스러워했다. 최고전쟁위원회가 11월 29일에 열렸고 영국은 최종적으로 볼셰비키의 제안에 분명하게 거절했다. 연합국이 전면 휴전 제안을 거절하자 볼셰비키들은 단독 강화 협상을 진행했다. 12월 15일 러시아와 독일 사이에 휴전이 조인되었고, 브레스트 리토프스크에서 강화 협상이 이루어졌다. 이제 러시아는 전쟁에서 떨어져나갔다. 독일과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볼셰비키가 몰고 올 파장까지 걱정해야할 지경이 되었다.


1918년 3월, 독일은 연합국의 봉쇄로 식량과 산업 원자재가 심각하게 부족했고, 미국군이 점점 더 많이 프랑스로 오고 있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삐걱대고 있었다. 시간은 독일인들 편에 있지 않았다. 독일의 루덴도르프는 강화를 통한 종전은 정치적 파멸을 불러올 수 있었기에 전쟁에서 승리해야 했다. 독일에게는 전차도, 보병을 수송할 기계화된 수단도 없었다. 그렇다고 병력에서 수적인 우위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은 5월 내내 병력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6월 3일까지 마른 강에 도달했지만 프랑스 방어선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더하여 스페인 인플루엔자 전염병이 육군 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해 많은 사람이 죽고 민간인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독일은 전투에서 계속되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승리를 잡지 못했다. 8월에 영국의 공격으로 시작한 전투는 9월까지 이어졌고, 독일의 방어선이 뚫린 곳은 없었지만 후퇴한 독일군의 사기는 떨어졌고,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9월, 독일의 루덴도르프가 휴전을 주장했다.


10월 20일 군사적 휴전에 대한 윌슨의 조건이 받아들여졌다. 독일은 윌슨의 조건을 수용함으로써 전쟁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해 속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폴란드에 영토를 내주어야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여전히 '적'으로 대우받을 것이라는 발상은 더더욱 떠올리지 못했다. 여태까지 가장 적은 짐을 지고 가장 조금 싸웠던 미국이 연합국과 적국 모두에 강화의 조건을 부과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내심 바라는 것이 있었지만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이상만 남았을 뿐이었다.

휴전 혹은 종전 선언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투가 계속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미국 내 윌슨의 입지가 무너졌고, 독일 또한 오스만제국, 합스부르크제국 등 동맹국들이 무너지면서 마찬가지 입장에 처해졌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서는 체코슬라바키아와 헝가리가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체코인, 남슬라브인, 폴라드인, 루마니아인들은 연합국에 들어갔다. 독일 내부에서도 혁명이 확산되고 있었다. 독일은 이제 패배가 문제가 아니라 혁명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끝내야만 했다. 11월 11일, 휴전 협정이 이루어졌다.


1919년 1월 18일 파리에서 강화회의가 열렸다. 전승국들은 각자 전쟁 동안 쌓인 원한에 대한 보상을 통해 자기 나라의 이익을 챙기기를 바랐다. 안보, 배상, 정의까지 모든 것이 얽혀있었고, 각 국가들은 원하는 형태로 보상을 받고자 했다. 독일은 독일 황제가 제거되고 전투가 종료되면 독일이 평화를 사랑하는 민주적인 국가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독일은 안보 문제에 있어서 무장해제되었으나 파리강화회의에서 해결한 독일의 국경은 사실상 독일에게 유리했다. 합스부르크제국이 사라진 후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은 독일에 편입되기를 원했지만, 프랑스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 금지 조항이 조약에 명문화 되었고, 창설을 앞둔 국제 연맹의 동의가 있어야만 병합이 가능했다. 다만 독일은 한 명의 오스트리아인을 얻었는데, 그가 아돌프 히틀러다.


1919년 6월 18일,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인류에 남긴 것은 무엇일까?

일단 전대미문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물질적인 파괴가 있었지만 오히려 전쟁으로 인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하면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1923년 부터는 전쟁 전의 생산량을 넘어섰다. 경제적 자원이 너무 많이 촉진되어 과잉생산이 인류의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유럽의 생활 수준은 그 어느 때 보다도 높았다. 사실상 전쟁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입은 대상은 인간의 마음이었다.


유럽에는 사유 재산과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었고, 왕국보다 공화국이 많아졌으며 제국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전승국은 전쟁을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독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합스부르크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신민들이 민족적 자유를 얻었고, 벨기에가 해방되었으며, 독일의 유럽 지배를 늦추었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은 치른 대가는 분명히 과도했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전쟁보다 결과가 좋았다고 평한다.


흥미로웠던 몇 가지 사실 중 하나는 전쟁 중 독일의 경제 시스템을 관장해 독일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유대계 자본가인 발터 라테나우라는 점이다. 수십 년 후 독일계 아리아인들이 유대민족을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보면, 인간사 참 알 수 없는 일이지싶다.


다른 하나는 터키(오스만 제국)의 합리적이지 못한 참전이었다. 독일 편으로 참전한 터키는 이 전쟁에서 얻을 것이 없었다. 전쟁에 참여해야할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해야 지난 한 세기 동안 러시아와 영국이 번갈아 윗사람 노릇을 하는데 진절머리가 났다는 게 그 이유였다. 터키는 한겨울에 보급도 없이 수행된 전투에 10만 병력을 코카서스로 보냈고, 그중 7만 명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프랑스 군인 조프르, 전쟁에서 무능력한 리더를 만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의 새삼 깨달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물리적인 파괴가 있는 전쟁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듯 싶다.


상처 뿐인 승리.

확실한 명분도 없이 시작했고, 허울 뿐인 승리만 남았으며, 그나마 자치국으로 독립한 나라가 있었지만 희생이 너무 컸던, 도대체 왜 시작했는지 아무도 설명해 줄 수 없는 제1차 세계대전.


정의와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전쟁을 일으키는 아이러니.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영화 속 어벤저스들처럼, 정의를 명분으로 하는 폭력은 정당한가!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 의한 명분이며, 누구를 위한 정의와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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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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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서른아홉 살 유명작가 플로라 콘웨이의 세 살 난 딸 캐리가 2010년 4월 12일에 아파트 안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도중에 실종됐다. 플로라는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CCTV를 확인한 결과 경찰은 플로라를 캐리 실종의 용의자로 의심한다.

캐리의 실종 사건은 사회면의 가십 거리가 되었고, 플로라의 집이 있는 랭카스터 빌딩 아래에는 기자들이 장신진을 치고 있었다. 언론의 무차별한 의혹 제기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악의적인 기사, 네티즌들이 수사대가 되어 유포하는 가설들은 잔인하고 가혹했다. 여러 의혹들이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고 사실처럼 퍼져나갔다. 캐리의 실종은 저열한 사이비 저널리스트들에게는 오락거리에 불과했고, 메이저 언론사들에게는 상업적인 이익일 뿐이었다. 거기에 플로라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에 있어 동반자와도 같은 팡틴은 캐리를 잃은 고통을 문학으로 승화해야 한다고 부추기며 플로라에게 만년필 한 자루를 선물한다. 던힐 나미키 만년필이었다.

팡틴이 다녀간 다음날, 캐리의 수사를 담당하는 루텔리 형사가 찾아와 팡틴이 찾아간 <더 라이터 숍>이라는 상점의 특색을 말하며 팡틴이 상점으로부터 건네받은 상품 목록을 보여준다. 목록에는 팡틴이 선물한 만년필 ㅡ 버지니아 울프가 실제로 <올랜도>를 집필했을 당시 사용한 펜, 그리고 첨부된 마술 잉크 ㅡ 뿐만 아니라 유명 작가의 각종 물품과 플로라의 딸 캐리가 신던 실내화까지 있었다. 가게 주인 웨이탄 보가트는 사기꾼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 플로라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팡틴이 놓고 간 잉크로 글을 쓰면, 눈앞에 글대로 나타났다가 꿈에서 깨듯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때마침 루텔리 형사가 분석을 의뢰하기 위해 가져갔던 만년필의 잉크에서 피가 검출되었으며 그 피가 캐리의 혈액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플로라에게 전한다.

루텔리 형사의 말에 온몸이 찢기는 듯한 현기증을 느끼던 플로라는 문득, 현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사전에 이미 쓰여져 있다는, 누군가가 자신을 제어하고 있다는, 그리고 자신의 집에 유폐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플로라는 조종당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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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민에게 한눈에 반해 결혼했지만 그녀가 유리하게 이혼을 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조작한 증거물로 인해 가정폭력 가해자가 되어 파경을 맞고 양육권까지 빼앗긴 소설가 로맹 오조르스키. 그는 함께 일하는 편집자 재스퍼와 정진과 의사 라파엘의 조언대로 픽션과 현실의 세계를 구분하고자 현재 집필 중인 소설에 직접 등장하기로 한다. 로맹은 픽션 속 뉴욕으로 뛰어들었고, 또 다른 그는 파리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소설 속 플로라를 만나고 온 후 양육권 문제를 담판 짓겠다고 작정한 로맹은 알민을 찾아간다. 조만간 애인과 함께 아들을 데리고 미국의 생태 오두막에 들어가 살겠다는 알민에게 아들 테오를 두고 가라고 설득하지만 소득이 없자 로맹은 문득 플로라를 떠올리며 다시 픽션 속 뉴욕으로 향한다. 그런데 플로라는 로맹을 불러들이기 위해 자살 소동을 부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아이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이 알민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잠에서 깨어나듯 알민을 찾아나선 로맹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보트에 쓰러져 있는 그녀를 발견한다. 이대로 놔두면 알민은 사망한다. 순간 로맹의 머릿속에는 양육권 문제가 스쳐가고 이를 기회삼아 차로 돌아와 보니 플로라가 앉아 있다. 소설 속에 있어야 할 그녀가 어떻게 현실 세계 속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 플로라가 자신에게 알민을 구하라고 재촉하자 갈등하던 로맹은 선택을 그녀에게 던진다. 로맹이 알민을 방치하고 떠나게 놔두면 캐리를 되찾게 될 것이고, 반대로 알민을 구하기 위해 구급차를 부를 경우 캐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플로라는 어떤 선택을 할까? 플로라에게 이러한 악의적인 선택지를 던져준 로맹에 의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그리고 캐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플로라 콘웨이와 그녀가 쓴 소설의 실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설정들이 낯설지 않다. 열아홉 권의 소설을 발표하고 작품마다 성공을 거두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로맹 오조르스키는 기욤 뮈소, 작가 본인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름에서 전달되는 것처럼 로맹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수여하지 않는다는 콩쿠르 상을 가명으로 두 번 수상한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를 연상시킨다. 이렇듯 소설에서는 우리가 오랫동안 만나왔던 작가들과 작품들이 사이사이 등장하기도 하고 연상되기도 한다. 픽션 세계와 현실 세계의 인물이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존재한다는 판타지적 요소는 작가의 기존 작품에서도 보아왔던 장치들이라 익숙하다. 워낙 독특한 구성을 해왔던 작가이니만큼 스냅 사진처럼 엮여진 장치들이 꽤 익숙하다.

이 소설이 정작 흥미로웠던 부분은 등장인물의 정서적인 부분이었다.

로맹과 로맹이 창조해 낸 인물 플로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의 배우자는 양육에 관심이 없고, 어떤 형태로든 아이와 이별하며, 편집자에게 소설을 쓰라고 재촉 당한다. 무엇보다 SNS와 상업적 이익과 자극적인 가십에 집중하는 매체들에게 폭력적으로 시달린다. 그와중에 로맹이 플로라를 찾아가 그녀의 작품을 지독하게 혹평하는데, 결과적으로 플로라가 소설 속에서 쓴 작품도 따지고 보면 로맹 본인이 쓴 글이지 않은가. 결국 자신을 등장인물에게 투영함으로써 스스로 갖는 작가적 한계와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고민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감정을 공유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소설 전체에는 작가가 갖는 여러 고민들이 눈에 띈다. 직업상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되어야 하는 고통, 마감에 맞춰 글을 써야하는 강요와 창작의 고뇌, 그리고 자신의 작품 안에서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을 책임지어야 하는 압박 등 작가가 짊어져야하는 무게가 느껴진다.

픽션 세계에서 여전히 삶을 이어가는 플로라처럼, 그리고 현실과 픽션의 모호한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했던 로맹처럼, 우리는 수시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운명의 고약한 장난질을 버텨내며 견디는 것이삶을 지속시키기 위함이 아니면 무엇이랴. 삶으로 돌아오려는 선택의 매순간들이 곧 인생이고, 소설이지 않겠는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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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로 산다는 것 - 워킹푸어의 시대, 우리가 짓고 싶은 세계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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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에 늘 긴장하는만큼 기대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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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 - 지혜를 찾아 138억 년을 달리는 시간 여행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개정판)
채사장 지음 / 웨일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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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편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와 동.서양의 고대 철학과 종교에 관련한 거대 사상에 대해서 정리한다. 저자는 본문에 들어서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어야 할 것 두 가지, 세계의 구조화와 판단중지를 말한다.

세계의 구조화란, 가장 근본적인 구조에 따라 수많은 개체를 분류하는 것으로써 세계를 추상화해서 단순하게 바라보는 과정을 말한다. 가장 근원적인 차이를 갖는 자아와 세계는 두 개의 근본 구조로 세계를 나눈다는 측면에서 이원론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세계관이 하나의 편견이나 선입견일 수 있음을 의심하는 이와 자신의 세계관이 진리일 것이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 자아와 세계의 진실에, 인류의 거대 사상에, 닿고자 한다면 판단중지가 필요하다. 진리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내가 믿는 진리가 거짓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며 과거의 상실과 미래의 불안으로 나아갈 용기, 진실의 태양 아래에서 색안경을 벗어낼 용기야말로 인류의 거대 사상과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임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일원론, 관념론으로 이어지는 동양의 관점과 이원론, 실재론으로 이어지는 서양의 관점, 이 두 관점은 균형을 이루었는데 근현대의 역사가 서양의 승리로 균형이 깨지면서 동양의 근현대는 서양을 배우고 모방하는 역사가 되었다. 저자가 오늘날 우리는 동양인으로 태어난 훌륭한 서양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공감이 되어 고개를 주억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 유럽인이 스스로를 '유럽인'이라는 단일한 개념으로 묶어 사유하게 된 것이 로마 제국이라는 단일한 역사에서 기원하는데 정작 당시는 다문화, 다신교 정책으로 번영했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유럽의 죽음>의 저자가 이 사실을 각성한다면 어떤 답변을 할지 궁금해졌다.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시대를 코앞에 둔 21세기에 우리가 왜 시대착오적인 고대 사상을 알아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고대인의 사상과 중교를 되짚어보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진리의 사실과 거짓 여부를 밝기기 위함이 아니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삶,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인간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는 점점 축소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낙오와 도태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 SNS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도 어렵고, 어디에 기준을 두어야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주입식으로 교육받은 대로의 삶이 정답이라고 여기며 한치의 의심도 없이 닦아놓은 길로만 가려고 한다.

우리는 자의로 혹은 타의로 쳐놓은 울타리에서 과감하게 나올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아마도 이 과정이 자아를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스승들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올 것이다.

철학과 종교를 읽기 쉽게 정리해 놓아 무리없이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본질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길, 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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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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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에 있어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났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냄새도 가지지 못한 그르누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스물다섯 명을 살해하면서까지 완성하지만 결국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그가 오로지 바랐던 것은 타인으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기의 모습을 인정받는 것이었으나 스스로조차도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생선더미에서 냄새없이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조차도 아이의 생명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생명을 부여받고 성장하면서 학습되어지는 자아상이 그르누이에게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가 '냄새가 없다'는 결핍과 반복된 '버려짐'을 안고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 고립이었다. 그르누이는 가능한 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탯줄이 끊어지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투명인간처럼 몸을 웅크렸다. 사랑보다는 증오가 삶의 원천이었기에 따뜻한 인간의 영혼이라고는 없는 그가 바랐던 자신의 내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르누이와 엮인 사람들의 최후가 썩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르누이를 혹독하게 착취했던 그리말은 그를 발디니에게 넘긴 그날 술에 취해 익사한다. 그르누이를 비열하게 이용했던 발디니 또한 야심만만한 사업계획과 함께 집이 무너져 죽고 에스피타스 후작은 피레네 산맥에서 실종된다. 세 사람이 그르누이와 헤어진 직후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과는 다르게 보모 가이아르 부인은 자신의 소망과는 반대로 긴 여생을 소란스러운 곳에서 비참하게 마감했다. 이들은 주로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의 편익을 위해 무관심하거나 억압과 착취한 자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18세기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못생기고 왜소하며 결핍을 갖고 있는 그르누이가 예외적인 인물상으로 보이는가? 피고용자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그리말,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발디니와 드뤼오, 출세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에스피타스 후작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그저 '사람 냄새'가 나는 보통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그르누이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숨쉬는 동안 자아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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