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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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에 있어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났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냄새도 가지지 못한 그르누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스물다섯 명을 살해하면서까지 완성하지만 결국 삶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그가 오로지 바랐던 것은 타인으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기의 모습을 인정받는 것이었으나 스스로조차도 자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다.


세상 가장 낮은 곳, 썩은 내가 진동하는 생선더미에서 냄새없이 태어난 아이는 사생아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조차도 아이의 생명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생명을 부여받고 성장하면서 학습되어지는 자아상이 그르누이에게는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가 '냄새가 없다'는 결핍과 반복된 '버려짐'을 안고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자발적 고립이었다. 그르누이는 가능한 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탯줄이 끊어지자마자 울음을 터뜨렸고 투명인간처럼 몸을 웅크렸다. 사랑보다는 증오가 삶의 원천이었기에 따뜻한 인간의 영혼이라고는 없는 그가 바랐던 자신의 내면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소설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르누이와 엮인 사람들의 최후가 썩 좋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르누이를 혹독하게 착취했던 그리말은 그를 발디니에게 넘긴 그날 술에 취해 익사한다. 그르누이를 비열하게 이용했던 발디니 또한 야심만만한 사업계획과 함께 집이 무너져 죽고 에스피타스 후작은 피레네 산맥에서 실종된다. 세 사람이 그르누이와 헤어진 직후 사망하거나 실종된 것과는 다르게 보모 가이아르 부인은 자신의 소망과는 반대로 긴 여생을 소란스러운 곳에서 비참하게 마감했다. 이들은 주로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기의 편익을 위해 무관심하거나 억압과 착취한 자들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18세기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충분히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못생기고 왜소하며 결핍을 갖고 있는 그르누이가 예외적인 인물상으로 보이는가? 피고용자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그리말,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발디니와 드뤼오, 출세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에스피타스 후작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우리 자신의 단편적인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그저 '사람 냄새'가 나는 보통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했던 그르누이는 현재에도 존재한다. 숨쉬는 동안 자아를 찾아 헤맸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사람.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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