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 개정판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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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단편에은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의 희노애락이 담겨져있다. 그 잔잔한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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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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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그동안 많이 다뤄져왔던 인간의 존엄을 어떤 필력으로 써내려갔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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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 셜록 홈즈 130주년 기념 BBC 드라마 [셜록] 특별판 셜록 홈즈 에센셜 에디션 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마크 게티스 외 엮음, 바른번역 옮김, 박광규 감수 / 코너스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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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 가의 사냥개]

찰스 바스커빌 경의 의문의 죽음을 손에 쥐고 홈즈를 찾아온 그의 주치의 모티머 씨. 찰스 바스커빌 경의 죽음에 대해 공개된 사실은 이렇다. 찰스 바스커빌 경은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바스커빌 저택 주변에 있는 산책로를 걷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그가 죽은 날에도 찰스 경은 늘 하던대로 야간 산책을 위해 저택을 나섰으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은 날씨가 축축했기 때문에 산책로를 따라 난 찰스 경의 발자국을 쉽게 추적할 수 있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주인을 찾아 나선 집사 배리모어는 산책로 끝에서 찰스 경의 시신을 발견했다. 사후 검시를 통해 밝혀진 사인은 고질병인 심장 질환에 의한 자연사였다. 신문기사를 들어 홈즈에게 여기까지 사실을 전달한 모티머 씨는 앞서 말한 바스커빌 가에 대대로 전해오는 저주를 상기시키며 찰스 경의 죽음에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찰스 경은 자신의 가문에 내려오는 끔찍한 운명을 믿고 있었고, 사건이 일어나기 3주 전쯤 밤에 저택의 입구에서 의문의 검은 짐승을 목격했으나 곧바로 사라졌으며, 무엇보다 시신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거대한 사냥개 발자국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모티머 씨가 홈즈에게 의뢰하는 것은 찰스 경의 죽음이 아니라 얼마 후면 미국에서 도착할 상속자 헨리 바스커빌 경에게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려야할지에 대한 조언이다.


헨리 바스커빌 경과 모티머 씨가 도착하고 헨리 경은 홈즈에게 '황야에서 멀어지라'고 쓰여진 협박 편지를 보여준다. 수신처가 노섬벌랜드 호텔이라고 되어 있는데, 헨리 경은 도착한 후에 호텔을 정했고, 그가 노섬벌랜드 호텔에 묵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영국에 도착한 후 별다른 일이 없었냐는 홈즈의 질문에 헨리 경은 호텔 방문 앞에 놓아둔 구두 한 짝이 사라졌다는 말을 전한다. 사건의 전후 사정을 모두 들은 헨리 경은 바스커빌 가의 저택에 갈지 여부를 두고 심사숙고 후에 결정을 내리겠다는 말과 함께 오후에 다시 만나자고 한 후 돌아갔다. 오후에 홈즈와 왓슨이 호텔에 도착해보니 이번에는 헨리 경의 다른 구두 한 켤레 중 한짝이 또 사라졌다. 신문 활자를 오려 만든 편지, 검은 턱수염의 미행자, 새로 산 갈색 구두 한 짝과 낡은 검은색 구두 한 짝 분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갈색 구두 한 짝. 헨리 경이 영국에 도착한 이틀 사이에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었다. 홈즈는 헨리 경이 저택가로 가기로 한 결심에 찬성하고, 모티머 씨로부터 찰스 경의 많은 재산과 관련한 유산 상속 문제에 대해서 듣게 된다. 홈즈는 헨리 경에게 왓슨을 동행시킨다. 그리고 홈즈를 사칭하는 의문의 사나이.

헨리 경과 왓슨이 바스커빌 저택에 도착한 날 들은 첫 소식은 사흘 전에 흉악한 살인범 셀던이 탈옥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늦도록 잠이 들지 못한 왓슨은 여자의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듣는고, 아침이 되어서 그 울음 소리의 주인공이 집사 배리모어의 아내였음을 눈치챈다. 찰스 경의 시신을 찾은 사람도, 헨리 경을 미행했던 사람과의 인상착의와도 비슷한 배리모어. 그가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의심이 가는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건에 유독 관심이 많은 박물박사 스테이플턴, 왓슨을 보자마자 헨리 경으로 착각하고 오빠 몰래 다가와 곧장 이곳을 떠나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경고하는 스테이플턴의 여동생 베럴, 늙은 괴짜 이웃 플랭클랜드, 늦은 밤마다 창가에 서 있는 배리모어, 황야에서 들려오는 개가 짖는듯한 괴이한 소리, 찰스 경이 죽기 전에 만나기로 약속한 L.L이라는 이니셜의 여성, 그들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 그리고 헨리 경의 옷을 입은 채 절벽에서 추락사한 탈옥범 셀던. 드디어 현장에 나타난 셜록 홈즈, 그리고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진실!



[마지막 문제]

천재 수학자이자 대학교수인 모리아티는 좋지 않은 소문이 퍼져나간 탓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런던으로 와서 육군 교관으로 일을한다. 그러나 악마적인 성향을 가진 그는 최고의 두뇌를 이용해 거미줄을 치듯 악행을 계획하면서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은 채 조직된 수많은 하수인들을 통해 일을 수행하는, 한 마디로 범죄 세력의 중심에 있었다. 또한 교활하게 안전장치를 곳곳에 심어놓아 경찰은 법정에서 그의 유죄를 선고할 만한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셜록 홈즈는 호적수를 만난 것이다. 홈즈는 모리아티로부터 사회를 구해낼 수 있다면 자신의 탐정 경력을 내려놓아도 좋다고 했다. 모리아티 조직의 일망타진. 왓슨과의 여행, 그리고 홈즈의 마지막.



[빈집의 모험]

홈즈가 실종된지 3년이 지났다.

아너러블 로널드 아데어가 자신의 방에서 리볼버 탄환에 맞아 머리가 무참히 으스러진 상태로 사망했다. 방문은 잠겨 있었고 그의 방 안 탁자에는 10파운드 지폐 두 장과 10파운드 17실링어치의 금화와 은화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으며 그 옆에는 카드 노름을 함께 즐겼던 클럽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데어가 방문을 잠글 이유가 전혀 없었고, 살인범이 잠갔다고 하더라도 6미터 높이의 창문에서 도망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창문 아래쪽 화단과 도로 사이의 풀밭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 따라서 아데어가 스스로 문을 잠갔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해되었으며,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방을 빠져 나갔다는 말인가?

이 사건의 수수께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왓슨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 셜록 홈즈. 모리아티와 함께 폭포에서 떨어져 실종됐다고 여겼던 홈즈의 귀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대표하는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를 비롯해서 모두 열한 작품이 실렸다. 이 모음집에는 홈즈가 좀더 막강한 적수들을 상대하고 있고, 심지어 주인공 홈즈가 실종 및 귀환을 다루고 있어 1권보다는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아서 코난 도일은 <마지막 문제>를 끝으로 셜록 홈즈 시리즈를 끝내려고 했는데, 독자들의 엄청난 요구로 다시 시리즈를 시작했고, 그때 들고나온 작품이 <바스커빌 가의 사냥개>였다고 한다. 만약 작가가 독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리즈를 접었다면 이 흥미로운 소설이 세상에 나올 수 없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그점도 재미있다.


소설에서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3일 동안 물 한모금도 넘기지 않은 홈즈의 집념, 저열한 악당을 상다하기 위해 좀도둑이 되는 것쯤은 감수하는 발랄함(?), 감정이라고는 없는 이성주의자같지만 부부의 사랑에 감동도 받는 훈훈함 등 다양한 면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또한 인종차별, 여성을 억압하는 가정 폭력 등을 통해 당시 사회적 편견과 의식에 대해서도 깊지는 않지만 짚어볼 수 있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요소 없이도 재미를 느낄 수 있고 피로도가 낮아 정통 추리소설이 아직까지 사랑받을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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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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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나는 수전 손택의 작품을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해석에 반하다> 순으로 읽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거꾸로 되짚어간 셈이었다. 이 세 권을 읽었을 당시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에게 앉은 자리에서 홀딱 반해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단 이 평전을 통해 읽은 손택의 인생은 독자인 나에게 있어 반전의 연속이다. 사실 그의 20대 이전의 삶을 거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몇 가지 면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쓴 저자의 글 덕분에 나 역시 수전 손택이라는 인물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손택의 개인사에 깊이 아는 바가 적기에 저자의 글과 인용된 손택의 말을 통해서 손택 이면에 대해 혼자 짚어가는, 그리고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손택 그 이상의 입체적인 인물을 만날 수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긍정적인 가정상이 형성되지 않았던 손택이 결혼을 이른 나이에 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남편을 통해서 본인이 상상한 이상적인 가정 안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바람했던 가정상과는 괴리를 느끼고 이혼을 단행한 수전의 결정은 강한 자아를 본격적으로 표출한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를 상품화해 홍보에 이용한 부분도 상당히 낯설었다. 초기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과 흑인해방, 게이와 레즈비언의 대안적 생활 방식 인정과 같은 개혁에 관련한 문헌들을 접하면서 손택이 받았던 영향들을 떠올려봤을 때 상업적 홍보에 외모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또한 대중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며 이것을 적절히 즐기는 처세와 돈을 좇아 글쓰기를 했다는 것 역시 의외였는데,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로 대표하는 미국에서 먹고사니즘에 초연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역량을 개인의 명성에 보태어 공익 활동을 하는 데에서 오는 나의 개인적 딜레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코 열정을 넘어선 치열한 삶이다.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죽음을 얼마 앞둔 상태에서 '살기 위해서 삶의 질 따위는 필요없다'고한 손택의 말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는 배움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고, 영화를 비롯해서 춤, 연극, 오페라 등 문화예술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내면에서 단 한번도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와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스물한 살'처럼 살았다. 60대 후반에도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발전을 접하면 흥분할 줄 알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지식인으로서 손택의 정체성은 도덕적 의무에 기반한다. 손택은 2001년 5월, 예루살렘국제도서전에서 예루살렘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 중 두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손택이 이스라엘의 정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손택은 주최측을 직접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그의 비판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작가로서의 소명에 기초한다. 손택은 이 소명에 책임감이라는 윤리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급진적이고 거친 손택의 행보가 개인적이냐 대의적이냐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식인이 가져야 하는 소명과 책임 의식을 회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손택은 모든 도덕적 소명을 대중 안에서 이루고자 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았으며, 뉴요커와 파리지엔느로, 세계인으로 하루를 48시간으로, 만년 스무살 청춘처럼 살았던 사람. 유년 시절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했던 그가 찾아낸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수전 손택'이라는 본인 그 자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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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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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라는 남자가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좀머 씨'라고 부르지만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 아내에게 생계를 맡긴 좀머 씨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걷기'다. 겨울이면 검은색에 폭이 지나치게 넓고 길며 이상하게 뻣뻣한 너무 큰 외트를 입고 고무장화를 신었으며 빨간 색 털모자를 쓰고 다녔다. 여름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캐러멜색 리넨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항상 손에는 지팡이와 등에는 배낭을 메고 마을 근교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매일마다 좀머 씨의 걷는 모습을 보지만 정작 그가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잰걸음으로 하루에 열넷 혹은 열여섯 시간까지 근방을 헤매고 다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7월 말 어느 일요일 오후,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그친 직후 여느날과 다름없이 길을 걷고 있는 좀머 씨를 발견한 마을의 남자가 집까지 태워다주겠다며 차에 타기를 재촉하자 그가 던진 한 마디.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한 소년이 있다.

어린 시절 하늘을 날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기에 날아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나무타기를 좋아하고, 조금 더 자라서는 짝사랑하는 소녀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실망하며, 그보다 더 자라서는 호랑이같은 피아노 선생님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무기력한 자신과 일방적인 세상에 분노를 터뜨리기도 한다. 5~6년쯤 지난후 소년은 더이상 나무를 타지 않는 대신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며 피아노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내키는대로 연주한다. 열여섯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소년은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으며 고전문학 작품을 읽고 보호자 없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볼 수 있다. 그의 인생 크고 작은 변곡점에는 항상 좀머 씨가 있었다.








소설은 한 소년이 몇 년에 걸쳐 좀머 씨라는 남성을 지켜보고 우연찮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시기에 좀머 씨와 맞닥뜨리며 그에 대한 감정과 단상들을 잔잔하게 펼쳐놓는다.


소년은 나는 것보다 땅에 다시 내려올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에 두려움을 느껴 대신 나무타기를 한다. 어린 소년이 나무타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무 위는 늘 조용하고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기 때문이며 탁 트인 시야와 귓가에 울리는 자연의 소리를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위에 있으면 항상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좀머 씨다. 키가 고작 1미터를 겨우 넘긴 어린 소년은 좀머 씨가 자신이 나무를 타듯 자기 만족과 괘락을 위해서 걸어다니는 것이고 거기에 다른 설명은 필요치 않다고 이해한다.


소년이 좋아하는 카롤리나가 그에게 월요일에 함께 하교하자는 말을 건넸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한 소년에게 카롤리나는 약속이 취소됐음을 알리고 제 갈길을 간다. 낙담한 채 터덜터덜 걸어가는 소년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 좀머 씨. 변함없는 걸음걸이로 시계의 초침처럼 빠른 속도로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남자, 소년은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로부터 1년 후, 피아노 레슨을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유로 10분이 늦은 소년. 그날 레슨 선생님은 그의 사정을 듣지도 않은 채 소년에게 온갖 모욕과 멸시를 퍼부었고 제 분에 못이겨 분노를 폭발했다. 고작 10분 지각했을 뿐인데(물론 피아노 연습도 안했고, 문제의 코딱지도 있었지만). 소년은 자괴감을 거쳐 불공정하고 포악스러운 세상에 분노를 일으키며 작별을 고하리라 작심하고는 죽음으로써 세상에 복수를 하고자 제일 큰 가문비 고목에 올랐다. 숨을 들이쉬고 셋에 뛰어내리겠노라 호언장담하지만 머뭇거리는 그 순간 여지없이 나타난 좀머 씨. 나무 위에서 그의 행동을 지켜본 소년은 각성한다. 그까짓 코딱지 때문에 자살하려고 했다니, 일생을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려는 사람도 있는데!


이제 사춘기에서 어른으로 가는 입구에 서있는 소년은 해질 무렵 친구네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찮게 제 발로 강으로 걸어들어가는 좀머 씨를 발견하고 말리지도 못한 채 지켜본다. 소년이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이유는 아주 오래 전 좀머 씨가 외쳤던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라는 말과 물속에 가라앉는 모습 때문이었다. 이후 누구도 그리워하지 않는 그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에른스트 에기디우스 좀머'였다.







소설 속에 화자인 소년은 특별하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인물상이다. 어른들의 시시콜콜한 잔소리가 듣기 싫고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한번 쯤은 거절당해 봤으며 어른들의 부당한 분노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어른이 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과에 대한 압박감과 조바심,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조여오는 시간의 부족과 긴장, 그리고 스스로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 등은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내내 달고 다녀야하는 족쇄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좀머 씨는 소년을 통해 이야기한다.

딱 한번 도움을 간청하였을 때 침묵하거나 외면한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의리를 지킬 필요는 무엇이며, 이런 세상이 나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지만 소년이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두려웠듯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좀머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도망치는 것 뿐. 어쩌면 스스로 강물에 들어간 것 역시 그 연장이 아니었을까... .


지금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 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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