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나는 수전 손택의 작품을 <타인의 고통> <사진에 관하여> <해석에 반하다> 순으로 읽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인생을 거꾸로 되짚어간 셈이었다. 이 세 권을 읽었을 당시 수전 손택이라는 사람에게 앉은 자리에서 홀딱 반해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일단 이 평전을 통해 읽은 손택의 인생은 독자인 나에게 있어 반전의 연속이다. 사실 그의 20대 이전의 삶을 거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몇 가지 면에서 짐작하지 못했던 면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쓴 저자의 글 덕분에 나 역시 수전 손택이라는 인물을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손택의 개인사에 깊이 아는 바가 적기에 저자의 글과 인용된 손택의 말을 통해서 손택 이면에 대해 혼자 짚어가는, 그리고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손택 그 이상의 입체적인 인물을 만날 수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먼저 유년 시절의 경험으로 긍정적인 가정상이 형성되지 않았던 손택이 결혼을 이른 나이에 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부재했던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남편을 통해서 본인이 상상한 이상적인 가정 안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바람했던 가정상과는 괴리를 느끼고 이혼을 단행한 수전의 결정은 강한 자아를 본격적으로 표출한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를 상품화해 홍보에 이용한 부분도 상당히 낯설었다. 초기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과 흑인해방, 게이와 레즈비언의 대안적 생활 방식 인정과 같은 개혁에 관련한 문헌들을 접하면서 손택이 받았던 영향들을 떠올려봤을 때 상업적 홍보에 외모를 이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다. 또한 대중적이고 타인의 시선을 즐기며 이것을 적절히 즐기는 처세와 돈을 좇아 글쓰기를 했다는 것 역시 의외였는데, 한편으로는 자본주의로 대표하는 미국에서 먹고사니즘에 초연하기는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자신의 역량을 개인의 명성에 보태어 공익 활동을 하는 데에서 오는 나의 개인적 딜레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단연코 열정을 넘어선 치열한 삶이다.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는지는 죽음을 얼마 앞둔 상태에서 '살기 위해서 삶의 질 따위는 필요없다'고한 손택의 말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는 배움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고, 영화를 비롯해서 춤, 연극, 오페라 등 문화예술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글쓰기에 대한 고통을 토로하면서도 내면에서 단 한번도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와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여전히 스물한 살'처럼 살았다. 60대 후반에도 일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발전을 접하면 흥분할 줄 알았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았다.


지식인으로서 손택의 정체성은 도덕적 의무에 기반한다. 손택은 2001년 5월, 예루살렘국제도서전에서 예루살렘상을 받았는데, 심사위원 중 두 이스라엘 정치가들은 손택이 이스라엘의 정착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손택은 주최측을 직접적으로 모욕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그의 비판은 정치적 신념이 아닌 작가로서의 소명에 기초한다. 손택은 이 소명에 책임감이라는 윤리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급진적이고 거친 손택의 행보가 개인적이냐 대의적이냐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지식인이 가져야 하는 소명과 책임 의식을 회피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의무라고 여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손택은 모든 도덕적 소명을 대중 안에서 이루고자 했다.


어디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았으며, 뉴요커와 파리지엔느로, 세계인으로 하루를 48시간으로, 만년 스무살 청춘처럼 살았던 사람. 유년 시절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워했던 그가 찾아낸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은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수전 손택'이라는 본인 그 자체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