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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대에 사진을 찍어 글을 쓰는 취미가 있었더랬다. 거창하게 글을 썼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으로 일기나 사진을 찍으면서 떠올랐던 단상들 혹은 요즘 표현대로 어느 순간을 스샷하는 의미였던 것 같다. 지금도 창고 어느 구석에 박혀있는 공책에 붙어있는 즉석 사진은 색이 바래 알아보기 힘들고 썼던 문장들도 그 나이가 아니면 쓰지 못했을, 미화된 철부지의 허영투성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공책을 꺼내놓으니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
아니 에르노는 책에 실린 사진을 찍을 당시 유방암 투병 중이었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온몸으로 겪고 있었다. 살기를 선택한 몸은 치료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진 온갖 폭력적 행위를 감수해야 했다. 한쪽 가슴은 종양으로 부풀어 오르고, 항암제 치료는 머리털을 한 움쿰씩 빠지게 하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안긴다. 작가는 사진을 찍어 자신과 연인의 몸, 그리고 그 프레임 안의 순간을 미화도 과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긴다. 사물만 존재하는 사진 속에서 우리는 그 사물의 주인을 짐작한다. 그들의 신발, 속옷, 침대, 이불, 그리고 방의 환경. 그것이 인물의 표정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고통을 지켜보는 연인의 시선. 그녀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에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어떤 미래를 약속하지 않은 채 '지금'을 붙잡을 뿐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 두렵지 않을까? 그녀도 가끔은 두렵다고 고백한다. 심지어 글로써 자신의 공간을 내놓는 일은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작가의 글들은 모두 자신을 향해 있을까? 그녀의 모든 글을 삶으로부터 왔다. 작가의 작품에 스포일러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의 삶일 것이다.
사진, 박제된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프레임 안에 갇힌 시간에게 감정은 없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고통도 느낄 수 없는 사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진은 기억에서 사라진 과거의 실재를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사진에 글을 부여하면 감정의 실체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작가가 시간에 매료되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어느 때부터인지 내가 프레임 안에서 우선해지는 것은 공간이 아닌 시간이다. 그것과 그들이 존재했던, 한때의 삶을 확인시켜주는 시간의 존재, 그래서 이제, 피사체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