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열전 - 제국을 이끈 10인의 카이사르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까치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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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고 소개글도 읽지 않은 채 내가 했던 첫 번째 행동은 '내가 뽑은 10명의 황제'였는데, 나는 열한 명을 뽑아놓은 후 저자가 소개한 열 명이 일치하는 것을 보니 그들이 뽑힐 만한 이유가 나름 짐작이 되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시작으로 로마의 안정과 평화, 폭정과 개혁 등 큰 변화를 일으킨 열 명의 황제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로마 황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유구한 한국의 역사에서 존재했던 왕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부분이 많기에 처음 로마사를 접하는 독자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형식은 공화정을 유지하지만 그야말로 제정시대의 문을 연 초대 황제이자 창건자 아우구스투스부터 시작한다. 열아홉 살에 로마 독재관의 상속자이자 가문의 수장이 되고 탁월한 정치적 수완으로 서른다섯 살에 1인자에 서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체제의 변혁과 안정을 꾀하기 시작한 그는 팍스 로마나의 발판을 마련했으며 45년간 제국을 다스렸다 
 
위대한 전임자 뒤로 따라오는 시민들의 기대치를 감당하고 그것을 지속시켜야했으며, 심지어 애초에 아우구스투스의 선택지가 아니었던 사람이 가져야하는 부담감의 무게를 겨뎠던, 뼛속까지 군인이었던 티베리우스. 현실주의자로서 신중하고 온건하고 냉철하고 검약했던 사람, 쇼맨십이 없으며 정치적이지 못했던 사람, 투박하고 냉정하며 무뚝뚝했으나 로마의 안정을 다진 그가 죽자 로마 시민들이 기뻐했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남는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비단길을 밟고 황제가 된 네로. 차라리 어느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한량으로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황제라는 자리는 그에게도 시민에게도 불행이었다. 로마 황제 역사상 '최초' 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좋은 정치가의 자질을 두루 갖추어 최고의 군주로 불리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방벽으로 유명하며 그리스 로마 문화 생성이 다방면에서 융성하고 예술이 만개했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시대, 19년 재위 동안 끊임없이 시달렸고 황제보다는 학자가 더 어울렸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최초의 아프리카인 황제이며 중동 출신의 황제들의 창건이라고 할 수 있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우구스투스 이래 로마 정부를 극적으로 변모시킨 유일한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리고 크고 작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꾸어 놓은 기독교도 황제 콘스탄티누스. 
 
열 명의 황제는 로마사의 획을 그은 인물들로서 이 한 권으로 가볍게나마 로마의 역사를 흝어볼 수 있다. 저자가 사이사이 기번을 비판하는데,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다시 읽어야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에드워드 기번, 시오노 나나미를 비롯해 몇 가지의 로마사를 읽었을 때보다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서 편안했다. 로마사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문헌이라고 할 수 는 없지만, 방대한 제국의 역사가 부담스럽다면 가볍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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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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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이후 2000년대까지의 기억이며, 한 여인의 인생을 관통하는 시대의 이야기이다. 여성 화자의 기억 뿐만 아니라 다수, 시대를 살아 온 모든 이들의 기억이며, 소녀와 소년, 청년, 남자와 여자, 노인 등 세상에 대한 기록이다.

식량을 배급 받아야 했던 전후 상황을 시작으로 사회의 변화가 시작된다. 재즈와 로큰롤에 열광했으며, 에디트 피아프에는 전율했다. 혁명에 들썩였고 누군가는 사르트르를, 누군가는 프랑수아 사강을 읽었다.

넘치는 물건, 생각의 결핍, 믿음의 소모.

'여가 사회'에서 '소비 사회'로, 물질과 쾌락, 성의 자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냉소적인 세대가, 한편에서는 반인종차별주의와 평화주의, 환경보호를 부르짖었다. 다시 전쟁(미국ㅡ이라크)은 일어났고, 테러는 끊임없이 자행된다. 서로 정의를 외치며 죽이고 죽어간다. 전쟁을 필요로 하는 미국,독일의 통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무슬림에 대한 반감.

261.

무기와 경제를 토대로 한 그들의 우월성의 근본적인 빈곤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는 보통 '교만'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정의했다. 이념은 없고 기름과 달러만 있는 정복자들. 그들의 가치와 그들의 원칙은ㅡ자신만을 생각하는 것ㅡ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했고,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꿨다.

경쟁력, 불안정, 고용적격자, 불법체류자, 이민자, 에이즈, 난민, PC와 MAC, 광우병, 시장경제, 핸드폰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2000년의 시작, 우려하던 컴퓨터 버그의 위기는 없었고, 9월11일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간다. 사람의 장기를 사고 팔고, 노화까지 늦출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공동 지적 자산은 늘어났고, 정보 출력의 속도는 말이 필요없을 만큼 빠르다. 기억은 고갈될 권리를 잃었다. 인터넷은 세상을 담화로 바꾸는 눈부신 전환을 수행했다.

283.

모든 것이 가혹하게 보였다. 미국은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었고, 그들은 필요와 이익에 따라 입맛대로 점령했다. 어느 곳에서나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졌다. 젊은이들은 '거지같은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조소했고 잠깐씩 항거했다. 퇴직자들만이 만족해하며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지, 돈을 어떻게 쓸지 연구했으며, 태국을 여행하고 이베이와 만남 사이트를 돌아 다녔다. 어디서 저항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각 연대마다 불거졌던 세계적 사건과 국내(프랑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상황들. 그 변화 속에서 살아왔던 60여년의 세월과 현재를 지식인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삶과 사회는 프랑스의 것이지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역사이다. 지구 한편에서 겪고 느꼈던 부분들이 우리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때는 그랬었지'라고 말하는 듯한, 담담하지만 사실적인 글에서 층층이 쌓인 지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책을 덮고 쌓여진 세월 안에서 내가 보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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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충동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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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보통'의 범위에 들지 않는 두 인물을 등장시켜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느 범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를 독자에게 묻고 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후 법적인 처벌까지 받고 사회에 복귀한 남자와 자신의 살인 충동을 스스로 인지한 소년이 그들이다. 이미 국내에서 출간된 앞선 두 편의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가 던진 질문에 독자는 시원스럽게 답을 내놓기 어렵다.


이리이치 가나메는 세 여성을 끔찍한 방식으로 폭행했는데 어이없게도 세 번째 사건 당시 피해자가 죽을 것 같아 자기가 직접 신고해 체포됐다. 오히려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았다는 어처구니 없는 고백을 하고, 정신의학자들은 그가 조현병이냐 아니냐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열여섯 살 소년 아키나리는 특정한 상황에 처하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오래 전 이리이치와는 다르게 아키나리는 이 사실을 믿을만한 선생에게 털어놓았고 자기가 저지르게 될 범죄로 인해 누군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 결과로 가족들이 입을 피해까지 염려하며 두려움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이 두 사람은 우리가 사는 지역 한 가운데에 살고 있다. 이제 고민은 독자의 몫이다.


이리이치와 아키나리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고립이다. 타인에 의한 고립과 스스로를 단절시킬 수 밖에 없는 고립이 모두 존재한다. 소설에서 지하야와 그녀의 스승 데라카네의 논쟁이 독자를 대신한다. 지하야는 사회 구성원들이 인내를 가지고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 그러나 데라카네는 어차피 인간은 자신을 제외하면 타인이니 애초에 완전한 이해란 존재하지 않고, 현실에서 포용이란 이론적 세뇌에 불가할 뿐이므로 범죄자들이 사회 구성원의 이해와 관용으로 흡수되는 일은 요원하다는 주장이다.


소설에서 덴조시 사람들은 이리이치를 쫓아내기 위해 마을 간담회를 열어 작위적으로 토의를 끌고 가고, 학교에 등교하지 않는 아키나리에 대한 괴소문은 하루가 다르게 퍼져나간다. 시라이시는 범죄자들 재활을 위해 회사를 설립해 이리이치를 첫 번째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어하고, 데라카네는 아키나리를 자신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시키기를 권유한다. 회사와 연구실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과거의 범죄 이력을 들어, 그리고 앞으로 범죄가 벌어질 것을 우려해 그들을 격리시키는 것은 정당할까? 그렇다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


허구의 이야기에 한정될 때에는 지하야의 손을 들어주겠지만, 현실이 될 때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이라이시나 데라카네의 손으르 들어줄 거라고 짐작한다. 몇 년 전 성범죄자 신상이 우편물로 도착했을때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마음 속에서 빨간불이 켜졌던 내가 떠올려진다. 지하야는 '편견과 갈등을 동반한 자유와 그런 것들에서 분리된 속박'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냐며 자조섞인 말을 읊조린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권조차 있기나 할까? 결국 강요받는 선택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이리이치는 삼촌의 가족들을 걱정해, 아키나리는 가족들을 걱정해 격리를 선택한다. 결국 작가가 썼듯 우리 모두가 염소 조련자일지도 모른다. 사실 모든 사람은 본능과 충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식물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아름다운 꽃을 꺾고, 동물을 보호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강탈하며 사육한다. 인간의 욕망은 모순의 순환을 동반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 혹은 피해자의 입장만 고집할 수 없다. 이 소설이 갖는 씁쓸한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예측 가능한 결말과 예상치 못한 반전을 하나씩 던져준다. 이 두 가지가 해결된 순간 독자는 한동안 먹먹함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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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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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는 서문에서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가 스스로 나서서 프랑스에 대해 다방면으로 칭찬하는 것을 비틀어 꼬집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공적인 정보와 여론을 만들어 내는 문필가 집단을 두 가지의 종으로 분류해 분석할 것이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발자크가 사람을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법처럼 직종을 풍자적으로 종種, 혹은 품종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과 찰떡같이 들어맞는 삽화들, 그리고 '이렇게 써도 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통쾌한 문장들로 인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짜릿함이 전달된다.
 
발자크는 '논객Publiciste'이라는 명칭이 옛날에는 위대한 작가에게 부여했지만, 지금은 시류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치나 하는 엉터리 삼류작가에게 부여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예전에는 논객의 평론이 하나의 구심점이 있는 큰 거울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이 거울을 산산조각 내 그 가운데 조각만으로 이것이 전체인 양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요즘의 비평가는 생각이나 개념이 중요하지 않으며 그냥 비판만 해서 상처를 줄뿐만 아니라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대중과 인기에 따라 움직인다고 평한다.  
 
 
우선 논객으로 분류된 이들은 기자다. 그중 신문사에서 편집국장부터 사주에 이르기까지 상위층에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논객을 행세한다. 정치인이 되기 위해 신문사를 경영하거나 언론의 지배력을 이용해 이윤을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기업으로 성장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진보와 개혁에 앞장서야 할 언론이 공격해야 할 정부와 닮아가고, 순수 언론인은 설 곳을 잃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설은 야당 혹은 여당 편으로 두 가지 틀 밖에 없다보니 사설 담당자는 매번 같은 방식으로 엇비슷한 문장만 쓰게 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대다수의 구독자의 생각을 도식화해 표현하기에 급급하다(신문 사설의 대다수 구독자가 어떤 계급인지는 알만하다). 주필은 습관적으로 쓰고, 구독자는 습관적으로 읽는다. 사설 작가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스스로 죽어가는 글을 쓰는 줄도 모르고 있으며 언론은 약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 대해서만 자유롭다. 특히 특정한 소재를 다루는 전문기자는 문장 몇 개로 신문의 견해에 의견을 보태야하기 때문에 사설의 미사여구를 담당한다. 배치와 편집, 광고를 담당하는 기자야말로 신문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 기사의 내용과 분량이 결정되고, 무엇보다 잡보 안에서 신문사에 이득(광고)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는 것도 이들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도당파라고 품종을 나눈 국회 출입기자들은 국회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기에게 이로운 편을 저울질하면서 글을 쓴다.. 
 
58.
우선 때리고 변명은 나중에. 
 

신문에 색깔을 입혀주고 그 신문과 결탁해 그 신문을 보호하는 자들이 정치인이다. 신문사는 권력을 따라 움직이고, 국가의 장래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 신문사에서 기생하는 사람들 중 한 부류가 파견 담당관인데 발자크는 신문사에 기사를 물어다 주고 정치.문학 평론을 하며 정관계 인사들 사이에서 배신하기가 일쑤인 그들을 '주인을 쫓아다니는 개'라고 빗대어 표현했다. 통속주의자들은 상투적 논거 안에도 써놓기는 장황하게 써놓지만 들여다보면 그 어떤 명료함도 없는, 텅 빈 지하 창고같은 냄새가 난다. 발자크는 공기가 통하지 않는 지하실 저장고에 놓인 촛불처럼 지성이 언제 꺼질지는 불보듯 뻔하다고 말한다.  
 
107.
개념이 없을수록 승승장구한다. 
  
 
기자 혹은 뉴스 앵커가 국회의원이 되고 신문마다 사설은 지지하는 정당의 색깔에 맞춰져 있고 정치, 언론, 경제는 사랑의 작대기처럼 서로 엇갈려 복잡하게 유착되어 있어 서로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발자크의 말처럼 근거도 없는 일을 사실처럼 보도해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위기에 몰리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눙치면 그만이다. 교묘한 화법으로 어림짐작해 기사를 쓰는 언론과 국회위원. 여론몰이에 휩쓸리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자발적으로 헌신하며 거의 신앙에 가까운 맹신을 보여주는 부류의 사람들을 바람잡이 삼아 사실 왜곡과 진실 은폐를 관행인 양 일삼는 언론과 정치 관계자들. 주변에서 자주 보여 낯설지도 않다.
 




 


그렇다면 비평가는 어떤가. 
 
134.
오늘날 비평은 단 한 가지를 위해 쓰인다.
바로 비평가를 먹여 살릴 것.  
 
사상의 의무를 다 해야한다고 믿으며 연구하고 분석하는 부류의 구식비평가는 더 이상 없다. 발자크는 사상가인 척 무조건 부정하거나 혹은 신랄하지 않는 칭찬 일색의 평론, 허세만 가득한 글을 쓰는 이들을 비판한다. 발자크가 모든 삼류자가 가운데 가장 하위 종이라고 분류한 이들인 문예 비평가들은 돈의 논리에 따라 법적인 틀 내에서 비도덕적인 것을 기꺼이 감행하고, 신문은 출판 도서들을 포함한 (비평을 가장한) 문화 광고로 가득해 제대로 된 문학 비평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유명세를 위해 혹은 돈을 좇아 양심이라고는 내다버리고 자극적이며 왜곡된 글을 쓰는 자들, 푼돈을 받으며 과장.과대 때로는 저급한 언어로 쓴 기사로 타인을 조롱하는 자들과 광고 일색인 월간지들을 짚어내면서 오히려 그러한 저급하고 속물적인 인쇄물에 돈을 지불하고 읽는 사람들이 있음을 의아스럽다는 듯 꼬집어 말하고 있다. 이는 그저 '읽을' 뿐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를 각정하지 않는 지성인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읽다보면 이 책이 정말 1842년에 출간됐던 책이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괴리감은 고사하고 불과 20세기, 21세기 어느날에 출간되었다고 해도 시의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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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모폴리턴 칭기즈 칸 - 팍스몽골리카, "수레가 통하는 길이 끊기지 않게 하라"
서정록 지음 / 학고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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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로 기억한다. 아빠는 입학 축하 선물로 대백과사전을 사주셨다. 출판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급스런 빨간색 양장본으로 권당 천쪽이 훌쩍 넘는 책이었는데 인명사전에는 사이사이 인물들의 에피소드가 이야기처럼 실려있어서 동화책을 읽듯 인명 백과사전을 읽었더랬다. 내가 칭기즈칸을 처음 만난 건 그때였다. 익숙치 않았던 몽골이라는 나라, 우리나라 역사에서 흔치 않은 유목 민족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유발했고, 모래알 같다는 부족을 일시에 통일한 지배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고등학생 시절에 원나라를 접하면서 다시 몽골의 역사를 살짝 들췄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칭기즈칸을 만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 예수게이의 이른 죽음으로 비참한 어린시절을 보내야했던 테무친. 힘을 따라 움직이는 부족들은 예수게이가 죽자 곧바로 다음의 권력자를 향해 떠났고 테무친 일가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나 삶의 힘겨운 여정을 통해 테무친은 수장이 갖춰야할 소양과 몽골인이 국가로서 체제를 갖춰야하는 이유를 찾게 되며 무엇보다 평생의 지기들을 얻는다. 
 
힘있는 부족의 수장은 그 힘만큼 적들도 많다. 키야트족 예수게이가 죽은 후 테무친이 열다섯 살이 되는 해에 형제 부족 타이치오드족 사람들 300명이 그가 성년이 되기 전에 죽이기 위해 키모르카를 찾아온다. 테무친이 끌려간 곳은 타이치오드족의 본거지 빈데르였는데, 이곳은 칭기즈 칸과 인연이 깊다. 칭기즈 칸이 유년 시절을 보냈고, 그의 탄생지로 유력하며 몽골 고원 통일 후 대칸에 오른 곳으로서 고통과 영광이 공존하는 장소다. 타이치오드 사람들이 테무친을 죽이려고 하자 타르코타이 키릴토크가 그들을 만류한다. 죽음보다 더한 모욕을 주자고 제안하는데 이것으로 테무친은 목숨을 연장해 탈출할 수 있었다. 이때 테무친을 도왔던 소르칸 시라와 그의 두 아들 침바이와 칠라온은 평생 테무친의 동지가 된다. 테무친 일가가 몰락한 채로 핍박을 피해 숨어 들어간 푸른 호수에서 살 때 테무친은 말 여덟 마리를 도둑맞는다. 이때 우연히 만나 3일 밤낮을 함께 달려 말을 찾아준 보오르초 역시 영원한 친구로 곁을 지킨다. 
 
1185년 테무친이 스물네 살 되던 해 옹 칸을 찾아간다. 옹 칸이 위기에 빠져있을 때 구해준 이가 아버지 예수게이었고, 당시 그는 예수게이와 안다 맹약을 맺으며 "네 자손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고 말했다. 그를 찾아간 테무친은 옹 칸을 아버지로 섬길 것을 맹세했고 실제로 그는 웅 칸을 끝까지 존중했다. 이때 보르칸 칼돈산에 사는 오리앙카이족의 자르치오다이 노인이 젤메라는 젊은이를 데려와 테무친에게 주고 갔는데 그도 평생동안 최측근으로서 테무친을 지킨다. 그리고 메르키트족이 테무친의 아내 버르테를 납치한 사건은 영원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자무카를 하나로 묶어준다. 물론 자무카는 안다 맹약을 두 번이나 맺으면서도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눌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이렇게 테무친의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면서 그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갔다. 그런데 몽골 고원의 부족들이 아무것도 없는 테무친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떠돌아 다니는 유목 부족의 특성상 칭기즈 칸에게 잔인한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책에서도 배신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부족은 가차없이 멸족시키는 테무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이 무자비하고 야만적인 도륙이 아닌 원칙의 안에서 이루어진 결단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테무친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끝까지 고수한 부분은 신뢰와 존중과 소통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자신 혹은 부족의 야망이나 복수가 아닌 몽골 고원의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상이 있었다.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비참한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으로 하층 유목민의 생활에 깊이 이입한 테무친은 그들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자기의 이상으로 받아들였다. 칸에 오른 후 천호제, 만호제를 통해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각자의 능력만큼 대접받는 세상을 열고자 했으며 쿠릴타이 문화를 특권층이 아닌 모든 백성들에게 확대했고 관철시켰다. 이러한 진정성있는 노력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추종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저자가 소개한 글들을 읽어보면 그는 칸이라는 칭호가 무색할 만큼 소박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자신에게는 특별한 자질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 같은데, 그러한 모습을 백성들은 친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몇 해 전, 지인들이 몽골 답사를 갔을 때 개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새삼 못내 아쉽기만 하다. 지도를 옆에 두며 테무친의 발자취를 따라 갔는데, 그때 답사를 다녀왔다면 그를 따르는 발길이 좀 수월했을까? 여건이 되기를 기대하며 초원에서 그가 나누었던 신뢰와 소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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