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 (전3권) (반양장) - 전체주의의 기원 + 인간의 조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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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주를 이루는 노동과 작업, 행위를 중심으로 고대 철학, 과학부터 현대의 마르크스와 자본주의까지 인간이 살아왔던,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대두되는 문제들을 엮어서 서술한다. 한나 아렌트는 핵심적인 인간의 조건은 지구라고 정의하며 지구는 그 어떠한 인공물 없이 숨쉬고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유일한 곳이고, 인간실존은 인공적 세계를 가진다는 점에서 동물적인 환경과 구분된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진행되는 과학적 연구의 상당수가 인간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을 자연에 속하게 하는 마지막 끈조차 없애려한다고 썼는데, 이 문헌이 세상에 나오고도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인간 수명의 인공적 불멸을 목표로 삼은 현재를 생각해보면 저자의 우려가 기우는 아니었음이 확실해졌다.

한나 아렌트는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노동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다고 이야기한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은 더이상 긍정적인 의미로 남아있지 않다. 돈이 돈을 버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노동의 가치는 잃어가고 인간의 활동이 없는 사회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속적이고 일반적인 인간능력을 분석하는 논의를 주로 다루고 현대세계는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지만 책은 이미 예견하듯 현대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저자는 노동과 행위, 사유가 설 자리에 고독과 소외가 들어서는 사회를 분석하며 단호하게 비판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희망을 기대하는 것은 인간의 탄생이다. 탄생으로써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기에.

두 번째 읽으면서 깊이 고심했던 부분은 '사유'의 함의였다. 초독 당시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는 것에 급급했다면 이번에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마르크스까지 이어진 철학과 과학, 그리고 사회철학까지 복잡하게 맞물려 있는 내용들에서 내가 찾아내야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읽어야했기에 오히려 분량이 두 배가 넘는 <전제주의의 기워>만큼이나 시간이 소요됐다. 나에게는 여전히 숙제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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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장소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미셸 포르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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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진정한 나만의 장소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은 내가 자리한 모든 장소들 중에서 유일하게 비물질적인 장소이며, 어느 곳이라고 지정할 수 없지만, 나는 어쨌든 그곳에 그 모든 장소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서문에서)  

 




 


작가 아니 에르노가 실제로 글을 집필하는 장소에서 진행한 인터뷰집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바로 그 집 밖에서는 글을 절대 쓰지 못한다는 작가는 처음 이 집을 보는 순간 집이 자신을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34년째 살고 있는 '보호막'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는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삶과 글에 대한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게 담겨 있다.  
 
많이 배우지 못했고, 공장 노동자에서 벗어나고자 평생 열심히 일했던 부모님. 딸의 감정을 보듬었던 아버지와 더 높은 사회적 계급을 얻기 위해 교육에 힘썼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들로부터 받았던 영향과 문화적 괴리에서 오는 사춘기 시절의 당황스러움으로 인해 이후에 갖게 된 부모님을 향한 죄책감 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문학은 아니 에르노에게 어떤 역할을 했을까? 그는 상상의 장소이자 사회적인 모델을 제공하는 양면성을 가진 역할, 그리고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수많을 것들을 배웠다고 말한다. 또한 문학 뿐만 아니라 영화, 예술이 갖는 가치 평가와 상관없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해낼 수 있으며 생각하는 힘을 갖게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누구도 주변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아니 에르노에게 글쓰기는, 비록 상상에 의한 허구의 글이기보다는 기억과 현실에 기반하는 글이었다하더라도도피였다고 덧붙인다. 일례로 그녀가 <빈 옷장>을 썼을 당시 억지스러운 삶을 살던, 혼란한 시기였다고 하는데, 애초에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은 채 사춘기 시절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 부르주아층 남자아이에게 버림받는 느낌을 이해시키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뒤이어 그가 한 말, 자기의 작업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으며 이는 문화의 형태 혹은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과 단절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서 그의 작품이 개인의 경험을 통해 사회적 문제점 혹은 모순으로 확대시키는 특유의 강점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사회적 참상 묘사주의와 포퓰리즘, 이 양쪽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아니 에르노가 생각한 글쓰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단조로운 글쓰기였다고 한다. 기사 형식이 아니면서 확인된 사실과 가치 판단과 정서를 걷어낸 글쓰기, 이를 통해 더 이상 자신을 분리하지 않는, 그래서 분리되지 않는 세계의 바람과 한계를 느끼기 위한 글쓰기를 한다고. 또한 구원의 역할까지. 아니 에르노가 글을 쓸 때 추구하는 정확함이란 명백함처럼 필수불가결한 어떤 것이다. 비록 글을 쓰는 내내 지속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시작할 때는 명백함 감정, 확신이 필요하다는 아니 에르노. 그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현실ㅡ여성, 역사, 낮은 사회 계급ㅡ속으로 하강한다. 작가가 20년째 쓰는 글의 주제는 시간과 기억이다. 그것은 불변하는 정체성을 말할 수 없는 범위 내의 시간, 그리고 과거에 대한 후회 혹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대조가 아니라 시대와 삶, 사람, 일상, 책 등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구원이다. 
 
글을 쓰지 않고 살 수 있겠냐는 물음에 아니 에르노는 진짜 삶을 살지는 못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에게 잘 산다는 것은 머릿속에 늘 책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글은 때때로 가장 끔찍한 장소이기도 하고 자유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행복과 불행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아니 에르노는 오늘날의 세상을 보는 시각은 '~주의'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으며 극단적인 단절을 끝내고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지 않은 인터뷰집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었던 그의 작품들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의 나이쯤 되면, 나도 그처럼 나 자신을 그리듯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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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 3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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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부터 시작된 기근은 6월 막바지에 이르자 더욱 극심해졌다. 가뭄과 염천같은 무더위로 열병까지 나돌고 사람의 자취가 끊긴 들판에는 붉은 땅뿐이었다. 제 고장을 등지고 떠도는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걸인이 되어 갓난아기를 버리는가 하면 어미와 자식이 서로 길을 잃어 울고불고하는 광경은 비일비재하였으며 이들로 인해 원주민들도 불안에 떨었다. 심지어 백성을 돌봐야할 고을 수령들은 역병과 난민들의 분노를 피해 아예 동헌을 비워버리기를 부지기수로 하였다. 
 
길산이네가 서흥을 비롯해 산천 등 지방 각처를 다니며 활빈을 하자, 해서 지방 곳곳에서 활빈당을 자처하는 장두령 무리에 대한 소문이 백성들 뿐만 아니라 관리들 사이에서도 났고, 몇몇 무관들을 통하여 구월산 깊숙이 숨어 있는 화적이 강길산의 무리라는 것이 알려졌다. 구월산의 마감동, 오만석을 위시한 일당들은 황해도 서남쪽 지방에, 자비령의 장길산 일당들은 동북지방의 관가에까지 나타났다. 이에 감영에서는 무관 여섯 사람을 뽑마 구월산을 탐지하고 장길산의 목을 쳐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관찰사 이세백은 장교 김식을 비롯한 여섯 명에게 구월산으로 가 길산의 목을 가져오라고 명을 내리나 김식은 마감동의 칼에 죽고, 감동이 살려준 두 명의 장교가 후에 구월산 일당들에게는 가장 큰 후환거리로 남게 되었다. 
  
 






지역 유지인 늙은 양반에게 보쌈을 당한 누이를 구해내다가 살인을 저질러 졸지에 검계의 혈당이 된 산지니, 서사촌동생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자결하는 서씨 부인, 노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혁명을 꿈꾸었던 복성, 사모하는 중인 여인이 양반 도령에게 버림받고 자결하자 신분제에 경멸감을 느끼고 홧김에 떠도는 말을 입에 담다가 졸지에 살주계의 혈당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숙주 개천. <제3부>에서는 기근과 돈, 그리고 권력있는 자들에게 핍박을 받아 더는 견딜 수 없는 백성들의 울부짖음과 분노, 그리고 사람답게 살고자하는 그들의 몸부림이 역동적으로 펼쳐진다. 평온하게 농사짓고 굶주림 없이 이웃들과 오손도손 나눠먹는 것이 소망의 전부인 사람들을 도적으로 만든 자들, 본인들이 도둑을 생산해 낸 장본인임을 알려고 하지 않는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사람들.
 
녹림당 무리가 양민이었다가 관리의 악덕과 탐욕으로 도적이 된 것이므로 덕이 있고 넉넉한 정사를 펴서 스스로 양민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이인하의 말을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돈만 있다면 중인에서 양반으로, 돈이 없다면 천민이 되어야 하는 세상, 권력자에 기생하며 자신과 같은 약자를 짓밟는 인간 군상. 그러니 먹고 살기 어려우면 누구든 장길산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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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완벽한 스파이 1~2 - 전2권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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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희대의 사기꾼 아버지를 둔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평생에 걸쳐 누군가에게 속고 속이는 삶을 살아왔던 한 남자의 고백이다.

정치적으로 유력한 집안의 배경을 노리고 여자를 유혹해 결혼하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거짓과 사기로 일관된 삶을 살아왔으며 자기를 위해서라면 연인과 아들까지도 배신을 일삼았던 아버지. 아버지가 어떠한 경로로 돈을 버는지 짐작하면서도 그 혜택을 자연스럽게 누렸고 표면적으로 보이는 그 이상의 것을 숨기기 위해 사랑없이 위장결혼 했으며 친구를 위해 조국을 배신한 아들. 아버지에게 분노를 느끼지만 결국 그 역시 아버지의 삶의 궤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이 매그너스를 얼머나 지치고 힘들게 했는지 그가 아들에게 독백하듯 남긴 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아들 톰에게 항상 자유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그가 과거, 죄책감, 아버지 릭, 정부, 잭, 메리로부터(그리고 어쩌면 악셀까지도) 벗어나 홀가분한 인생을 바랐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톰에게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도망치라'고 한 말은 결국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었을까? 도망조차 치지 못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아버지의 요란한 파티와 그의 친구들, 정부요원들, 그리고 위장과 형식에 불과한 친구들과 사교 모임.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늘 사람이 그리웠고 외로웠던 매그너스 핌에게 유일하게 안식이 되어주었던 이는 립시와 안가의 던버 부인 뿐이다. 그가 아무 연관이 없는 던버 부인을 남몰래 살뜰하게 보살핀 까닭은 그녀가 립시와 불행한 삶을 산 어머니 도러시에 대한 죄책감의 대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은 끝까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들 톰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던 매그너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소설 곳곳에서는 톰 역시 매그너스의 어린 시절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나타난다.

자유와 평화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너무나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죽이고 자유를 박탈한다. 자신들의 과정이 더 이상 '매그너스처럼 슬픈 친구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사회를 만들거'라는 악셀의 말이 과연 매그너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은연 중에 생존을 빌미로 부정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합리화하는 모습은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양쪽에 한 발씩 담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매그너스를 향해 단호하게 손가락질을 하기 어렵다. 스파이 소설이라고 읽었는데 이토록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다니.

인간성을 먹어치운다는 표현을 쓸 만큼 온전히 자신으로 살지 못했던 매그너스의 바람은 고작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마을에서 소설을 쓰는 것이었다. 매그너스가 선택한 마지막 방식을 이해하지 않으련다.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비극적이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완벽한스파이

#영미장편소설

#리뷰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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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완벽한 스파이 1~2 - 전2권
존 르 카레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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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가 극찬한 스파이 문학, 존 르카레의 사유와 철학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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