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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ㅣ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1984Books / 201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차대전 이후 2000년대까지의 기억이며, 한 여인의 인생을 관통하는 시대의 이야기이다. 여성 화자의 기억 뿐만 아니라 다수, 시대를 살아 온 모든 이들의 기억이며, 소녀와 소년, 청년, 남자와 여자, 노인 등 세상에 대한 기록이다.
식량을 배급 받아야 했던 전후 상황을 시작으로 사회의 변화가 시작된다. 재즈와 로큰롤에 열광했으며, 에디트 피아프에는 전율했다. 혁명에 들썩였고 누군가는 사르트르를, 누군가는 프랑수아 사강을 읽었다.
넘치는 물건, 생각의 결핍, 믿음의 소모.
'여가 사회'에서 '소비 사회'로, 물질과 쾌락, 성의 자유,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에 무관심한 냉소적인 세대가, 한편에서는 반인종차별주의와 평화주의, 환경보호를 부르짖었다. 다시 전쟁(미국ㅡ이라크)은 일어났고, 테러는 끊임없이 자행된다. 서로 정의를 외치며 죽이고 죽어간다. 전쟁을 필요로 하는 미국,독일의 통일,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무슬림에 대한 반감.
261.
무기와 경제를 토대로 한 그들의 우월성의 근본적인 빈곤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는 보통 '교만'이라는 단어로 그들을 정의했다. 이념은 없고 기름과 달러만 있는 정복자들. 그들의 가치와 그들의 원칙은ㅡ자신만을 생각하는 것ㅡ그들을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했고, 우리는 '다른 세상'을 꿈꿨다.
경쟁력, 불안정, 고용적격자, 불법체류자, 이민자, 에이즈, 난민, PC와 MAC, 광우병, 시장경제, 핸드폰은 1990년대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2000년의 시작, 우려하던 컴퓨터 버그의 위기는 없었고, 9월11일 이후 미국을 바라보는,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세상은 급속도로 변해간다. 사람의 장기를 사고 팔고, 노화까지 늦출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고 공동 지적 자산은 늘어났고, 정보 출력의 속도는 말이 필요없을 만큼 빠르다. 기억은 고갈될 권리를 잃었다. 인터넷은 세상을 담화로 바꾸는 눈부신 전환을 수행했다.
283.
모든 것이 가혹하게 보였다. 미국은 시간과 공간의 주인이었고, 그들은 필요와 이익에 따라 입맛대로 점령했다. 어느 곳에서나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졌다. 젊은이들은 '거지같은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조소했고 잠깐씩 항거했다. 퇴직자들만이 만족해하며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낼지, 돈을 어떻게 쓸지 연구했으며, 태국을 여행하고 이베이와 만남 사이트를 돌아 다녔다. 어디서 저항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각 연대마다 불거졌던 세계적 사건과 국내(프랑스)의 정치, 경제, 문화의 상황들. 그 변화 속에서 살아왔던 60여년의 세월과 현재를 지식인의 눈으로 들여다본다. 작가가 들려주는 그들의 삶과 사회는 프랑스의 것이지만,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역사이다. 지구 한편에서 겪고 느꼈던 부분들이 우리라고 크게 다를 바 없다.
'그 때는 그랬었지'라고 말하는 듯한, 담담하지만 사실적인 글에서 층층이 쌓인 지난 세월의 무게를 느낀다. 책을 덮고 쌓여진 세월 안에서 내가 보아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자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