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폴리스 - 홍준성 장편소설
홍준성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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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사회, 인문을 아우르는 작가의 해박한 지식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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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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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왈도 에머슨의 에세이 두 편과 기계공 도제들의 도서관 모임에서 행한 연설 한 편이 수록됐다. 초독 당시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글이었고, 이후에도 몇 년의 간격을 두고 발췌독을 해왔던 책이다. 이번에는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판본으로 읽었는데, 마지막에 실린 연설문 <개혁하는 인간>이 기억에 남는다.  
 
자기 인생을 뒤로 미루지 않고 시대와 나란히 걸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살라는 말과 함께 자기 신뢰의 네 가지 실천을 강조한다. 첫 번째, 진정한 기도를 올려라.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저속한 기도는 도둑질과 같다. 자연 전체를 통해 들려오는 진정한 기도를 올려야 한다. 후회와 불만은 자기 신뢰의 결핍에서 생겨나고, 그것은 의지의 빈약함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타인에 대한 섣부른 동정도 삼가라. 사상과 신앙의 구분 및 분류는 자기 만족에 근거한다.  진리는 하나 뿐이다. 두 번째, 어디를 가든 너 자신이 되어라. 영혼은 여행자가 아니며 현명한 사람은 집에  머무른다. 여행자는 견문을 넓힐 수 있을테지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리라는 희망은 갖지 말아라. 세 번째, 독창적인 사람이 되어라. 스스로를 믿고 결코 모방하지 마라. 빌려온 남의 재주는 일시적이고 자기의 소유가 되지 못한다. 네 번째, 운명의 본 모습을 파악하라. 모든 사람이 사회가 진보했다고 자랑하지만, 사회정신이 진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전진과 후퇴는 반복되며 새 기술을 익힘으로써 사회는 오래된 본능을 잃어버린다.  
 
저자는 자기 필요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우아한 삶이라는 말과 함께 자조自助를 강조한다. 부정직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식과 옷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정직하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하고만 거래하며 살 수는 없다. 우리가 자문해야 할 것은 "오늘 공공의 이익을 위해야  내 힘을 기꺼이 소진해가면서 밥벌이를 했는가?"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은 말한다.
국가는 가난한 사람을 배려해야 하고 지상에 태어나는 모든 아이가 스스로 자기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공정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재산 관련법은 가난한 자를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양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평한 법칙이라 함은 아무도 자기 몫 이상을 가져가지 않고 그로인해 누구든 만족해야 하며 자신이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의의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여전히 불편한 점은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자유와 진보, 정신적 유대를 강조하는 대상은 남성이다. 여성에 대한 배려와 선의는 곧 동등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인종에 대한 부분에서도 같은 선상에 있다. 물론 그는 여성이나 유색 인종을 비하하거나 폄훼하지 않는다. 다만 차별의 대상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는 느낌은 없다. 당시의 시대성을 감안해서 읽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정신적 유대관계 때문이 아니라면 대중적 자선 행위와 온갖 구제 단체에 의연금 기부하기 등은 사양하겠다고 썼는데, 21세기 현재에 그대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봐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외에도 독자가 과거와 현재의 괴리를 고려해서 읽어야할 부분은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바탕은 다르지 않다.

마지막 장의 <개혁하는 인간>을 읽으면서 앞선 두 편의 에세이와 연계해 현재 한국의 사회상을 떠올려봤다.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고 경제적 성공만을 우선하는 세상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기에 급급할 뿐 스스로 인생의 지도를 그려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부모가 지시하고 이끄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자립적 삶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건물주'라는 웃지 못할 사실이 지금의 모습이다.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 살면 되는 요즘 우리의 모습에서 개인적이고 거짓된 기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는, 보여주기식의 인생이 아닌 진솔하게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신뢰하며 자신의 삶을 살라는 그의 진심어린 충고가 새삼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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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봇 다이어리 : 인공 상태 FoP 포비든 플래닛 시리즈 8
마샤 웰스 지음, 고호관 옮김 / 알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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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삶을 화물선을 타고 드라마나 보며 돌아다니고 싶지 않아 멘사를 떠났던 '나'. 지도를 확인한 후 사설 비상업적 장거리 연구용 선박을 선택했는데 무엇보다 무인용이며 '나'가 원하는 목적지를 경유할 예정이었다. '나'는 자기를 자유봇이며 인간 보호자에게 돌아가는 중이라고 설명했고, 연구용 수송선은 수락했다. 그런데 이 수송선에는 조종봇을 감시하는 인간이 전혀 없다. 더구나 보안카메라는 오로지 승강구에만 달려 있었고 온갖 차폐물과 장비 때문에 우주선 시스템에서 나오는 배경 신호를 빼고는 아무것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런데 피드를 통해 '나'가 탈주한 보안유닛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이가 있었다. 그것도 지배모율이 망가진 봇/인간 구성체라는 사실까지. 그 목소리는 자기의 시스템을 해킹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나'는 이토록 강력한 존재인 수송선을 선택한 자신의 실수를 자책했지만, 얼마 안 있어 이 완벽한 수송선은 '나'가 시청하는 드라마에 관심을 보이면서 두 구성체는 함께 드라마를 보며 대화를 나눈다. 그 대화를 통해 '나'는 자신이 왜 떠나왔는지에 대해 적당한 핑계를 대지만 수송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무사히 목적지 까지 갈 수 있을까? 







멘사의 곁을 몰래 떠난 보안유닛 '나'는 아주 오래 전, 라비하이랄 광산 시설 큐 정거장에서 자신이 고객의 상당수를 죽였을 당시, 그 원인이 지배모듈의 치명적인 고장 여부에 있는 것이 사실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라비하이랄로 향한다. 자발적 살인 여부를 규명하기 위한 보안유닛의 여정에 상당히 높은 능력을 지닌 인공지능이 조력자로 등장하고, '나'는 유약한 인간들을 또 지켜야만 한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인간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겨지는 '친구', '동료'라는 단어가 기계인 구성체간의 대화에서 오고간다. 스스로 기능 정지를 시킨 '나'가 다시 깨어나자 인공지능 ART는 그에게 둘은 이제 '친구'라고 말하고, 멘사 일행을 '나'의 동료로 지칭하면서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설득한다. 그 둘은 가장 인간적인 대화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닛 '나'는 외모든 내면이든 인간의 형태에 근접하는 것을 꺼린다. 또한 인공지능과 자신은 서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가 아니라고 못을 박지만, 오히려 소설에 등장하는 그 어떤 인간들보다 단단한 신뢰로 엮여 있다. 비밀을 공유하고, 그 비밀을 지켜주는 우정과 신뢰. 현대의 인간 사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기에 더 가치있는 단어가 된지 오래다. 


전편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과오의 자발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과거를 되짚는 과정은 인간이 살면서 추구해야하는 자아성찰이다. 더구나 멘사 박사 등 인간들에게 자신이 안전한 존재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떠나고, 계약이 이행 완료됐음 에도 불구하고 그냥 두면 죽을 게 뻔한 라미 일행을 차마 두고 떠나지 못하는 '나'는 충분히 인류애적이다.   


인간이 되고 싶지 않지만 인간을 보호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실감에 빠진 인간을 위로하는 보안유닛 '나'는 심지어 권한과 책임의식까지 고민한다. 또한 자신을 걱정하고 죄책감을 갖는 타판의 마음에 공감하는 유닛의 모습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이 부끄러워하기에 충분하다. 지난 과거의 진실을 알게 된 '나'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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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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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 소개된 것처럼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소설로써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정부에서 시행하는 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을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내밀하게 담고 있다. 소개된 줄거리만 읽다 보면 바튼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바튼처럼 극단적인 입장이 되어 보지 않더라도 그에게서 일면 우리의 단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임에도 독자는 주인공 바튼 도스가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릴 것만 같아 내내 조마조마하다. 그 와중에 소설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음을 새삼 되새김질 하게 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악질적인 기업 인수 방식, 기업 위주의 인프라 구축, 시 당국이 행한 개인 사찰,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에 기반한 예산 운용 방식 등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사람'은 없다. 매글리오리의 말처럼 보통의 사회 구성원들이 장기의 '졸'로만 여겨지는 세상에서 개인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돈을 움직이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렇듯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책임은 과연 국가와 정부에만 있을까? 가장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다수결의 원칙'을 들어 소수를 외면해 온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도시 유목민으로 살고 있는 현재, 언제든 자신이 소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소설에는 집단에 순종하는 자(비니), 저항하는 자(바튼), 방관하는 자(매글리오리), 그리고 그들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까.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인 정책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외에도 수면 아래에 있어 보이지 않는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이에 대한 직.간접 가해자들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심지어 언론조차도 자극적인 이슈만 만들어낼 뿐 누구도 이에 대한 해명과 대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소리없이 망각된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면밀한 감정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크레스탈린가에서 14년간 살아온 바튼의 소소한 일상, 이웃들과의 추억, 젊은 시절에 사장의 후원으로 공부를 마친 바튼이 20년이 지나 올리비아를 후원하는 그의 심정, 아들을 잃은 후 꾹꾹 눌러놓은 고통에 이입되어 그의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바튼과 매리의 전혀 다른 위기 대처의 방식이다. 매리가  아들 찰리가 죽은 후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치유의 과정을 거친 반면, 바튼은 아내보다 찰리와의 유대감이 훨씬 컸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을 밖으로 내뱉지 않고 아들의 죽음을 곱씹었던 탓에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또한 고속도로 확장으로 인한 강제 이주 건으로 부부와의 불화가 생기자 매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그러나 바튼은 지난 과거에 묶여 집착하고 집의 상실을 자신의 존재의 상실과 동일시 한다.  이때 매리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245.
"(...) 하지만 생각해보면 봉인된 환경 속에서 사는 삶일 뿐이었어. 점점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됐지. 나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생각이란 걸 해보려고 사면 머리부터 아프더라. 진짜 아파."
  

소설은 원론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그러나 삶의 의미를 사유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식상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방관자적인 나를 꾸짖는다. 때마침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를 읽고 있는 중이라 이 질문이 더없이 깊게 다가온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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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카의 여행
헤더 모리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로드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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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를 읽었을 당시 랄레에 대한 불편함이 일부분 있었다. 그 불편함 가운데 실카가 자리하고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당한 성폭력에 분노하면서도 결국 그녀의 처지를 이용해 목숨을 구한 랄레가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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