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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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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매체에서 소개된 것처럼 스티븐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소설로써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 정부에서 시행하는 고속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파국으로 치닫는 내용을 주인공의 심리를 통해 내밀하게 담고 있다. 소개된 줄거리만 읽다 보면 바튼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바튼처럼 극단적인 입장이 되어 보지 않더라도 그에게서 일면 우리의 단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복잡하지 않은 줄거리임에도 독자는 주인공 바튼 도스가 당장 무슨 일이라도 벌릴 것만 같아 내내 조마조마하다. 그 와중에 소설은 현재, 우리가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음을 새삼 되새김질 하게 한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악질적인 기업 인수 방식, 기업 위주의 인프라 구축, 시 당국이 행한 개인 사찰,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에 기반한 예산 운용 방식 등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사람'은 없다. 매글리오리의 말처럼 보통의 사회 구성원들이 장기의 '졸'로만 여겨지는 세상에서 개인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돈을 움직이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이렇듯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책임은 과연 국가와 정부에만 있을까? 가장 공정하다고 여겨지는 '다수결의 원칙'을 들어 소수를 외면해 온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 않은가. 도시 유목민으로 살고 있는 현재, 언제든 자신이 소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소설에는 집단에 순종하는 자(비니), 저항하는 자(바튼), 방관하는 자(매글리오리), 그리고 그들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등장한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할까. 정부와 기업의 일방적인 정책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외에도 수면 아래에 있어 보이지 않는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이에 대한 직.간접 가해자들은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한다. 심지어 언론조차도 자극적인 이슈만 만들어낼 뿐 누구도 이에 대한 해명과 대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소리없이 망각된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들의 면밀한 감정선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크레스탈린가에서 14년간 살아온 바튼의 소소한 일상, 이웃들과의 추억, 젊은 시절에 사장의 후원으로 공부를 마친 바튼이 20년이 지나 올리비아를 후원하는 그의 심정, 아들을 잃은 후 꾹꾹 눌러놓은 고통에 이입되어 그의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흥미로운 점은 바튼과 매리의 전혀 다른 위기 대처의 방식이다. 매리가  아들 찰리가 죽은 후 슬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치유의 과정을 거친 반면, 바튼은 아내보다 찰리와의 유대감이 훨씬 컸음에도 불구하고 울음을 밖으로 내뱉지 않고 아들의 죽음을 곱씹었던 탓에 그 자리에서 단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또한 고속도로 확장으로 인한 강제 이주 건으로 부부와의 불화가 생기자 매리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는다. 그러나 바튼은 지난 과거에 묶여 집착하고 집의 상실을 자신의 존재의 상실과 동일시 한다.  이때 매리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245.
"(...) 하지만 생각해보면 봉인된 환경 속에서 사는 삶일 뿐이었어. 점점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됐지. 나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생각이란 걸 해보려고 사면 머리부터 아프더라. 진짜 아파."
  

소설은 원론적인 메세지를 던진다. 당신에게 있어 삶의 의미는 무엇이냐고. 그러나 삶의 의미를 사유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식상하지만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방관자적인 나를 꾸짖는다. 때마침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를 읽고 있는 중이라 이 질문이 더없이 깊게 다가온다.




*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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