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여자는 체르노보로 간다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4
알리나 브론스키 지음, 송소민 옮김 / 걷는사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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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보에 되돌아온 사람은 남과 어울려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암에 걸린 페트로프, 우울증이 있는 마르야, 시인 시도로프,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사는 가브릴로프 부부, 레노치카가 그들이다. 체르노보에는 컴퓨터는 고사하고 전화선도 끊겼으며 우편함도 멀리 있어 연락이 쉽게 닿지 않는다. 체르노보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말리치, 채소밭, 저장품, 이웃 뿐이다.   
 
얼마 안 있어 체르노보에는 버스가 다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체르노보 사람들은 으스스한 존재다. 바바 두냐가 종종 말리치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연금으로 들어온 돈을 찾기 위해 은행에 가는 것인데 그녀는 그 돈을 모아서 독일 마르크로 환전해 손녀 라우라에게 모두 주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우체국 우편함에서 소포와 편지들을 찾고 필요한 것들을 산다. 마르야는 바바 두냐가 말리치에 갈 때마다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말리치 사람들은 바바 두냐를 안다. 그들은 그녀뿐만 아니라 죽음의 땅으로 귀향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북쪽,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 원자로가 폭발해 50명이 사망하고 피해 복구 과정까지 포함한 20여만 명이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최고 등급인 7단계에 해당하는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평가되었고, 체르노빌은 죽음의 땅으로 불렸다.

소설은 80대 노인 바바 두냐가 체르노빌을 연상시키는 '체르노보'로 귀향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죽음의 땅으로 전락하고 폐허가 된 체르노보에 첫 귀향자로서 언론에 의해 전세계에 알려진다. 바바 두냐의 생활권인 말리치에서 그녀를 모르는 이는 없다.  

원전 사고 이후 체르노보에서는 벌을 찾아볼 수 없고, 고양이는 기형으로 태어난다. 사람이 살지 않고 방사능 피폭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기에 우편물이나 전화선이 끊긴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르노보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고 이전, 체르노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시골마을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아름다운 추억 때문에 돌아온 것은 아니다. 바바 두냐 역시 체르노보에서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남편으로 인해 힘든 시절을 보냈던 여성이다.  

그들은 늙고 아픈,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연대의 개념은 없었다. 마을 공동체로서 뭔가 같이 해 본 일이 없고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해 본 일도 없기 때문에, 바바 두냐는 자신들이 마을 공동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폭자라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 고립,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서로를 보살핀다. 법정에서 바바 두냐의 증언과 출소 후 그녀의 선택은 이러한 공감을 기반한다.

생면부지의 소녀를 구하기 위해 폭력을 감수하고,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이리나와 라우라의 삶의 진실을 알게 되지만 낙담하지 않으며 오히려 딸을 위로하는 바바 두냐. 그녀가 갖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지치지 않는 생명력은 지켜보는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소설에서 바바 두냐는 망자들의 혼령을 볼 수 있다. 이 장치는 소설을 유쾌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건의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판타지적 요소와 서정적이면서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는 한 편의 긴 산문시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길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가슴 한 켠이 찌릿했다가 따뜻했다가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는데, 책 뒤표지의 한 저널리스트의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을 꼭 껴안고 싶었다"는 말에 동감하면서, 만약 바바 두냐가 앞에 있다면, 그녀와 깊은 포옹을 나누고 싶었다.  

가장 약한 몸으로 폐허가 된 땅과 삶, 그리고 인간성을 지켜낸 바바 두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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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없는 삶 - 나와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바스티안 베르브너 지음, 이승희 옮김 / 판미동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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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택일을 전제하는 양극단화 현상으로 인한 분열이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어디에서나 사회적 골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분열과 혼란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안정과 평화 속에서 국가가 존재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방법에 대한 질문이다. 이 책은 그 방법, 즉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저자는 난민, 인종, 종교, 정치적 신념, 동성애,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제 사례를 들어 접근한다. 저자가 말하는 해법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단이 아닌 개인적인 접촉이다. 집단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개인 대 개인으로 만난 사람들의 변화를 통해 이 만남이 어떻게 새로운 사회 구성원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구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사회가 세분화되면서 우리는 필터 버블 사회에 살고 있고, 반복되는 궤적 안에 있다. 비슷한 수입, 비슷한 직업, 지지 정당 등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교류하므로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일을 점점 더 힘들어 한다. 이러한 상황은 부자와 빈자, 노인과 젊은이, 이민자와 정주민, 정규직과 비정규직,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등의 거리감을 커지게 하고 편견을 배양하고 강화시키는 토양이 된다. 또한 동질화된 사회 환경에서 타인에 대한 편견이 싹트기 마련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대화의 장을 마련하지만 대체로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은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한 집단의 편견을 강화시키거나 반대로 편견을 바꿀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미디어다. 그러나 현재 미디어는 주로 부정적인 방식으로 작동한다. 취재를 하지 않고 기사를 보도하는 오보와 자극적인 과잉 단어의 사용 등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이는 개별 기자의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디지털 세계에서의 저널리즘은 분, 초 단위의 시간 압박에 의한 경쟁으로 최소한의 취재와 자극적인 기사를 부추긴다. 거기에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의 시선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부정적인 기억은 직접적인 경험이 아닌 미디어가 전한 이야기들이 다수이다. 다름에 의한 적대감은 실제 이해관계에 근거를 둔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상상과 공포의 산물이다. 이슬람교도들을 테러리스트로, 난민 지지자들을 민족 변환자로, 난민 회의론자들을 나치로 규정하지만 이런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는 사회가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직접 만남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접촉이 늘 공감과 평화와 우정을 일으키지는 않으며 갈등은 존재한다. 다만 사실에 기초한 갈등은 개인을 향하고, 편견에 기초한 갈등은 언제나 군중을 향한다. 따라서 접촉에 의한 개인적인 갈등은 좀 더 평화적일 수 있다. 개인적 접촉은 상대를 인종, 민족, 성별, 사회적 위치 등 상대에게 붙은 인식표를 떼어내고 오로지 '사람'으로만 존재할 수 있게 한다. 각자가 가진 신념은 바뀌지 않을지라도 인간으로 교감할 수 있다. 더 많이 접촉하고 더 가까이 있을수록 편견은 줄어든다. 이 명제를 일반화할 수 없을까? 저자가 던진 질문에 아일랜드의 시민의회와 스위스의 칼크브라이테 입주민 공동체 규약과 보츠나와의 교사직 전근의 사례는 상당히 흥미롭다.  
 
정치권의 동질성은 대의 정치를 위한 좋은 전제가 아니다. 이는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된 바이며 현재는 선거를 통해 공고히 하고 있다. 공직자를 추첨으로 임명하면 민주정으로, 선거를 통해 임명하면 과두정으로 여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사회계약론>을 통해 진정한 민주정에서 관직은 특혜가 아니라 짐이 되는 책무라고 한 장 자크 루소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정치란 올바른 말과 인격이 하나의 신경망 안에서 만나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사례를 들었던 사람들처럼.
 
원론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양극화를 극복하는 성공의 키워드는 인간의 선량함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는 곳으로, 피부의 색깔로, 종교로, 정체성으로 인간을 규정짓지 않는 사회. 이제 우리는 개인적으로 나와 다르다고 여기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책이었다. 우리가 알면서도 간과하는 혹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짚어낸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갈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책을 노골적으로 추천하기 꺼려지지만, 이 책은 추천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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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자의 딸
카리나 사인스 보르고 지음, 구유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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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이다는 이모들이 있었지만 유일한 가족이라고 여겼던 엄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연찮게 5층의 아우로라 페랄타의 집에 들어가게 된다. 거실 바닥에 죽은 채 누워있는 아우로라.  아델라이다는 아우로라 거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과 집 열쇠 다발, 그리고 카라카스의 스페인 영사관에서 보낸 우편물을 확인하고 스페인 국적을 가지고 있는 아우로라가 스페인으로 출국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짐작했다. 아델라이다는 스페인 영사 편지와 생존 증명 요구서를 챙기고 안에서 조용히 문을 잠갔다. 이제 그녀는 아우로라의 시신을 처리해야하만 했다.  

아우로라의 시신을 발코니 밖으로 던진 후 티셔츠로 얼굴을 가린 채 내려가 길에 굴러다니는 화염병 안의 휘발유를 시신에 들이붓고 불을 붙였다. 최류가스를 막기 위해 모두 얼굴을 셔츠로 가리고 있는 시위대와 그들을 진압하는 무장부대, 곳곳에 널부러져있는 시신들과 화염,그리고 최루가스가 구름처럼 피어나는 아비규환 속에서 불에 타고 있는 시신을 신경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소설은 1980년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정권으로 인해 20여년 동안 최악의 인플레이션과 민주주의 역행, 정부를 등에 업고 손발이 되어 막강한 권력과 이익을 얻으면서 부정부패와 폭력을 휘두르는 집단으로부터 희생당하고 저항하는 민중의 모습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점차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국 지폐는 가치가 없어진지 오래이고, 모든 거래는 유로화를 선호한다. 국가정보원은 가택 수색을 빌미로 약탈을 밥 먹듯이 하고, 무장대원들이 약탈한 물건을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는 다른 무장집단이 빼앗아가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물품의 가격과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다. 중병에 걸려도 치료받을 수 없고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암시장에서 약을 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를 기다려야 한다. 죽어가는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혁명군 테러부대에게 죽을만큼 구타당하는 사회복지사, 시위에 참여한 학생 뿐만 아니라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까지 무분별하게 체포해 '무덤'이라는 곳으로 끌고가 극악한 고문과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을 가할 뿐만 아니라 반정부 행위를 했다는 강제 자백을 받아 시위 진압대원으로 이용한다. 끌려갔던 청년은 더이상 청년일 수 없다. 소설 속 아델라이다는 말했다. 개처럼 우리를 죽였다고.
그냥 지옥이다.
  

이런 곳에서 선택적 삶이란 가능하지 않다. 생존은 수치심과 부끄러움과 죄책감의 다른 말이 되고, 이러한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는 배신의 다른 형태였다. 국가는 사람들에게 서로 남이 되는 형을 선고했고, 분열을 야기시켰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떠난 자와 남는 자, 산 자와 죽은 자.

주인공 아델라이다 팔콘은 오직 살기 위해 이미 죽은 사람의 신분을 도둑질한다. 그러나 지식인에 속했던 그녀는 시신을 불에 태우고, 어머니 곁에 묻힐 망자의 권리을 말소시킨 도덕적 책임에 괴로워하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자신의 본질과 모든 것을 버리고 누군가의 이미지에 최대한 근접하게 흡수해 만들어진 모습으로 산다는 것이 관연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친구의 동생 산티아고를 통해 자신을 반추하며 용기가 아닌 도피를 선택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괴감과 부끄러움을 나타낸다.
 
 
소설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아델라이다 팔콘이 어머니와 같은 이름인데, 아델라이다는 어머니를 긍정적이고 존경하는 인물로 그린다. 어머니 아델라이다 팔콘은 시골의 무지한 집안에서 스스로 교육받기를 선택하고 약혼자가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았으며 자식과 타인에게 독서와 교육을 강조했다. 매사에 신중하고, 존중과 예절이 살아있었던 어머니. 작가는 어머니 아델라이다 팔콘을 국가로 대변하고, 그녀의 죽음이 국가의 추락이며, 아델라이다가 어머니의 이름을 버린다는 것은 국가를 스스로 버리는 지식인의 이탈을 상징한다.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딸 아델라이다의 생존이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참혹하다.

이 소설이 참 낯설지 않다. 장소와 사람의 이름만 바꾸면 우리의 현대사와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에 깊이 이입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곧 5월 18일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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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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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릭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삼촌에게 입양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배고픔과 애정 결핍에 시달리던 울릭은 카블루나(백인, 유럽인, 이누이트인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 단어)가 세운 기상대에 드나들었고 이후 성인이 되어 다른 카블루나가 마을에 석유탐사기지를 세웠을 때에도 우호적으로 지내왔다. 그러나 카블루나와 가까이 지낸 것(명분은 연이은 곰사냥이었지만)이 화근이 되어 어린 시절 집안끼리 약속되었던 혼인 상대 집안으로부터 정식으로 파혼당한다. 그러던 중 한 카블루나 남자가 문화적 교류를 위해 이누크를 한 명 선별해 자신의 나라로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왔고, 울릭은 이를 기회로 삼아 카블루나의 나라로 떠난다. 목적은 오직 하나, 다시 돌아와 파혼당한 약혼녀 나바라나바와 결혼하는 것이다. 
 





 
카블루나의 나라에 도착한 울릭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그는 잡지사와 방송사의 인터뷰, 르포르타주 영화, 광고 등에 출현하면서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다. 그런데 주거와 가족 형태는 차치해 두고라도 카블루나들이 느끼는 성평등과 사랑, 그리고 고독에 대한 관점이 이누이트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문화와 이누이트의 전통을 비교하며 사랑과 행복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 후 두 아이를 양육하는 워킹맘으로서 유네스코가 울릭의 가이드로 지정해준 마리 알릭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외면한 채 일에만 매달리는 잡지사 사장 플로랑스,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숨기고 남성이 없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아드린느, 여성이 세상을 지배해야한다고 거칠게 주장하는 마틸다, 젊은 여성과의 외도를 후회하는 샤를르, 여자친구 대신 페미니즘 모임에 나올만큼 성평등에 적극적인 알렉스, 그리고 울릭에게 카블루나에 대한 이해를 돕는 꾸뻬 박사 등을 통해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상실감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남녀의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를 가진 이누이트 나라에 대해 해맑게 말하는 울릭은 여성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하고 시대에 뒤처진 야만인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왜 그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지를 고민한다. 카블루나들은 왜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지, 사랑하는 대상이 있고 가족이 있는데 왜 다른 이성을 찾는지, 외롭다고 하면서 왜 독신을 고집하는지, 왜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지 울릭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왔던 부분인데, 소설 초반에 나오는 '안다'라는 의미를 읽다보면 울릭을 이해할 수 있다. 이누이트 나라에서는 좋고 나쁜 일을 겪으며 몇 년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함만 주고 받아도 안다고 말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누이트처럼 '알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감수하지 않는다. 이누이트의 의미에 가까운 아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무시한 채 혹은 그 과정에 쏟는 에너지 소모가 피곤해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는다.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을만큼 경제력을 갖추고 적당한 외모와 센스, 무시못할 학벌과 집안, 따뜻한 마음과 이해심과 배려를 갖춘 사람. 여기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외롭더라도 혼자됨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을 나누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어쩌면 의도적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만이 아니라 문명화를 명분으로 소수 민족의 전통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우리의 모습을 에둘러 꼬집고 있다. 울릭은 카블루나 나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욕망이 삶을 갉아먹는 독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리 알릭스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가족, 우성, 사랑, 상실감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너무나 다양하다. 이러한 세상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해 스스로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두는 건 어떨까. 추운 나라에서 온 따뜻한 사람, 이누크 울릭처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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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날의 거장 열린책들 세계문학 271
레오 페루츠 지음, 신동화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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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페루츠. 이 다섯 글자만으로 충분히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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