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나의 얼굴을 - 제2회 아르떼문학상 수상작
임수지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갑자기 스노우보드를 타러 가니 사나흘만 할머니를 돌봐달라는 고모의 부탁을 받고 광주로 내려간 나진. 유년 시절, 10년 동안 살았고, 10년 전에 떠나온 할머니 집이다. 그런데 사나흘이면 된다던 고모는 열흘이 훌쩍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데다 심지어 연락두절이다. 약속한 3일이 삼 주가 됐다. 그리고 그 시간 후 어딘가 달라진 그들. 




  


 
학대를 당하지 않았고, 크게 눈치를 보며 산 것도 아니고, 조부모로부터 나름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며,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아빠와 무심한 듯해도 보이지 않게 마음을 쓰는 고모가 있었다. 그러나 나진은 사이사이 부모와 함께 했던 열 살 이전의 추억을 새겼고, 때때로 가슴을 지나가는 스산한 한기를 느꼈고, 혼자 꿋꿋해져야한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는,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으로 읽힌다. 나진은 할머니 집이 언제나 떠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과 '내 집'이 아닌 이곳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두 개의 걱정이 따라 다녔다. 만날 때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달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을 데려가지 않는 엄마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빈 집에 있을 때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초등학생때부터 이어진 나진의 불면증은 이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진이 본 어른의 세상. 어른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어린 나진이 버티고 지나와야했던 시간들. 어른이 되어가고 마침내 어른이 되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켜 떠올려 본, 긴 시간 안에서의 나진과 경은. 그리고 깊은 외로움과 우울을 아무도 눈여겨 봐주지 않았던 김희라의 일탈과 자기 자신만으로도 완전해지고 싶은 그녀의 열망.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하나하나 파헤쳐보면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있었던 순간들을 누구나 겪고 감내하고 있는 일상의 담담함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특히 말을 아끼는 김희라의 숨막힐 듯 차오르는 정서적 고립은 침묵으로 인해 더욱 안타깝다. 또한 한 개인의 서사를 통해 돌봄의 무게, 조손가족 및 한부모가족, 타인과 혈연의 관계성 등을 요란스럽거나 극적인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작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화해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켜켜이 쌓이고 끈적끈적해져 풀어내기 망설였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떼어낸 나진의 이야기가 그녀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상작품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라인업이 화려하다.
실린 작품이 모두 좋았다. 어느 작품이 대상감이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김영춘」이 대상인 이유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 왜곡된 진실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서술자와 이를 받아들일 청자(독자)에 대한, 즉 보편적인 우리의 태도가 어떠한지를 짚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가장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할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일(사건)들에서 가장 가볍게 무시되곤 한다. 
  





 
작가의 노트가 아니더라도 소설의 몇 페이지를 넘기면 이 소설이 1980년 4월에 일어난 사북항쟁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등산객의 부부처럼, 나는 김춘영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길 기대했던 걸까. 광부와 광부의 가족만 연상되는 탄광촌. 그 이면에 다른 이들의 삶도 있었음을 미처 생각치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알고싶다기보다는, 우리가 바라는 혹은 짐작하 바가 진실이기를 기대하는 건 아닐까. 박정윤은 기대와는 다른, 대중의 잣대에 올바르지 않았던 김춘영의 생애를 청자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김춘영」 


ㅡ 


「거푸집의 형태」는 돌봄과 혈연으로 묶인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이에 대한 제도적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작은 사건들을 통해 노골적으로 던진다. 중증 환자에 대한 돌봄 지원, 가족 간의 보이지 않는 질투와 시기와 의존. 사실 이 소설은 읽는 내내 불편하다. 그 짧은 소설에 기가 빠지는 느낌이다. 전혀 따뜻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은 이 이야기가 혐오와 멸시에 가득찬 우리 사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ㅡ 


삶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정말 어느 것하나 쉽게, 혹은 거저 얻어지는 게 없더라. 어떻게 해야 좀더 손해보지 않고 영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해야 서로 오해 없는 소통을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느 정도 거리에 있어야 중력이 유지되는지... .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고민은 더 깊다.
(「스페이스 섹스올로지」) 


ㅡ 


일상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자의든 타의든 삶은 우리를 흔들며 시험에 들게 한다. 매일이 복붙처럼 그날이 그날같은 지루함 속에 자아는 저 깊숙한 어딘가에 묻어둔듯 싶지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반복 역시 내 자아 중 하나임을 잊지말기. 그럼에도 때때로 작은 일탈이 필요하기는 하지. 그 사소한 일탈조차 오해로 점철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건 또 불편한 일이고. 어쩌면 삶이 지루해지는 것은 복붙의 일상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
(「빈티지 엽서」) 


ㅡ 


뚜럿한 줄거리 없이 사건의 나열이 전부인 「눈먼 탐정」. 대부분의 사건은 죽음, 상실, 실종과 연관되어 있다. 의식의 흐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와 '눈먼 탐정'이 구술하는 그들의 서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가족과 연인과 친구를 잃어도 삶은 계속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의 그들은 자신을 내주어 현재를 살아가라 말하고,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처럼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 그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는 그래왔고 그래야함을. 하지만 그 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 소설 「눈먼 탐정」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ㅡ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의 창문을 깨고 진입을 시도하는 그 시각, 조은빛은 낯선 곳에서 지갑과 귀중품을 빼앗긴다. 폭력배들은 온갖 협박과 폭력을 이용해 조은빛을 위협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다리도 다친 조은빛은 두려움에 떨지만 결국 스스로 그 두려움에서 빠져나온다. 소설은 계엄과 조은빛을 각기 다른 프레임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마치 하나의 장면으로 읽힌다. 헌법에도 명시된 행복추구권. 조은빛도, 계엄에 저항한 이들도 궁극적으로 가고자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돌아오는 밤」) 


ㅡ 


우리가 숱하게 접하는 돌발적인 사건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그것이 기후 위기가 됐든, 뉴스에서 보도되는 여타의 사건들이든. 항상 사건의 최전선에서 목놓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사리 전달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그 무리 속에 들어가게 될지 알 수 없음에도 말이다. 제목이 무척 역설적으로 다가온다.
(「문제없는, 하루」) 



이번 수상작들은 대체로 적잖이 무겁다. 그러나 그 무게감 이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마도 작품들 대부분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우리네 모습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때로는 주인공이나 서술자에게서, 때로는 소설 속 제3자에 속하는 어느 인물에게서, 나 자신 혹은 우리 주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후안과 '나'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팰리스에 사는 노인 후안 게이는 죽어가면서 자신을 찾아온 청년에게 '잰 게이'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완성하라는 유언과 함께 대부분의 페이지를 검게 칠해 지운 책 두 권을 남긴다. 그 여자의 이름은 얀, 또는 잰, 또는 헬렌.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책이, 첫 챕터에 등장하는 '팰리스'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떠돌이들이 머무는 사막의 '펠리스'는 현실 세계이면서 동시에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기거하는 듯한, 계절이 바뀌고 밤과 낮의 길이가 달라지는, 영적이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환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후안은 이곳을 '유령 마을'이라고 말하는데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물리적으로 죽고 영혼만 남은 자들이라는 의미, 다른 하나는 살아 있음에도 살아 있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 곳곳에 이중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문구와 상황들을 많이 배치한 것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제냐가 공황이 와서 꼼짝 못한 채로 눈물만 흘리는 어린 후안을 시장에서 발견했을 때 던진 질문("길을 잃었구나, 그렇지?") 역시 단순한 '길'만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제냐의 그림책에 대한 내용을 비롯해 많은 부분들에서 발견된다. 
(4부에 이르면 '나'와 후안이 머무는 곳을 왜 '팰리스'라고 부르는지, 어떤 목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취급되던 시대. 동성애를 정신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착각. 동성애에 씌어지는 범죄화, 낙인, 병리화. 그에 따른 그들의 정신적 붕괴 유도. 인종주의와 동성애 억압은 자연스럽게 우생학으로 이어진다. 발언권을 잃고, 아무도 기억하기를 꺼리는 이들의 목소리와 기록들. 두 권의 책, 거의 모든 페이지마다 그어진 검은 줄 밑에 있는 문장들은 억압당하고 삭제 당한 그들이다.  


낙인찍인 이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 위해 대항 서사를 만들고자 했던 잰의 저항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검게 칠해져 삭제를 강요당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이제는 귀기울여보자.   


논픽션처럼 전달되는 이 소설은 여느 퀴어소설보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곧 죽을 듯 말라서 뼈만 남아 힘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후안의 목소리에서 낙담이나 절망보다는 처절한 저항을 느낀다.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 정원 - 2025 제1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주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상작 「겨울 정원」 외에 후보작 다섯 편이 실려있다.

수상작이기도 하지만 나 역시 실린 작품 중 「겨울 정원」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겨울 정원] 


혜숙은 오피스텔 건물 청소일을 하는 예순 살 여성이다. 독립했다가 다시 집으로 들어온 소설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의 큰글자모임에서 만나 친구와 연인의 중간쯤의 따뜻한 관계에 있던 오인환씨와 헤어졌다.  


독자는 예순 살 혜숙씨의 인생 전부를 알 수 없다. 다만 소설에서 보여지는 혜숙씨의 삶은 무척 단조롭고 평안해보이지만 작은 소요들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같은 청소일을 하는 언니들을 만나 일상을 나누고, 아직 유명하지는 않지만 자기를 닮지 않은 딸(정작 딸은 엄마를 닮았다고 우기지만)을 내심 대견하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하는가하면, 오인환씨의 딸들이 쫓아와 모멸감을 안겨도 오히려 그네들을 이해한다. 어디에서는 너무 젊다고, 어디에서는 노인 취급을 하는, 이제 노년기를 준비해야 하는 예순 살의 혜숙씨는 더 이상 분노하지 않고,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간다. 허전하고 텅 비어버렸으나 봄이면 다시 꽃을 피우게 될 겨울 정원을 바라보며 아픔도, 헛헛함도, 그리움도 흘려보낸다. 다만 행복했던 추억들이 오래 남아있기만을 바란다. 다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자신에게 생길 수 있을지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는 혜숙씨의 마음이 느껴져, 나는 조금 스산했고 조금 슬펐다. 


1인칭 시점 소설의 화자는 혜숙씨다. 차분하게 읊조리듯 이야기하는 화자의 서술이 무겁지 않아서 좋았다. 장난기가 가득하다가도 가볍게(?) 진지하고, 뭔가 서글퍼지다가도 명랑해지는, 혜숙씨가 읽는 이에게 '사는 게 원래 그래. 그러니 웃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언젠가는 다가올 나의 육십과 과거 육십이었던 때의 엄마가 떠올랐다. 지금은 칠십을 훌쩍 넘겨, 예순이면 청춘이라고 주장하는 엄마는 나와 많이 다르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았다고 우기고, 나는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우긴다. 이 정답도 없는 실랑이를 만날 때마다 한다. 이래서 미래와 혜숙씨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ㅡ 


후보작 중 두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했던 소설은 「사랑 접인 병원」이다. 물론 나는 아무리 사랑해도 '약지 교환식'은 절대 할 수 없지만(일단 아픈 게 너무 싫어. 그리고 헤어지면 내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그 손가락은 어쩌냐고.), 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서로 진실한 반려가 되고 싶은 그 마음. 그리고 혼자 있고 싶지만 사회 시스템 안에서, 혹은 소속된 집단에서 벗어나 온전히 혼자가 되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대다수 현대인들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다른 하나인 「그동안의 정의」는 뭔가 굳었던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다. 15년 가까이 소식을 모르고 살았던 오빠의 죽음에 무감각한 정의. 오빠보다 자신을 닮은, 처음 본 일곱살 조카 현수.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올라오는 현수를 향한 애정. 이 모든 것이 담백해서 좋더라. (특히 현수가 너무 사랑스러워.)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작가의 삶 전반에 대해, 2부는 정신병동에 입원했던 시기, 3부는 퇴원 이후와 정신질환을 앓던 예술가 및 페미니즘 작가 들에 대한 탐구 그리고 정신질환자로서 살아가는 삶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그중에서 저자가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던 4년여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2부가 기억에 남는다.  




 
 


유년 시절,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수잰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책 전체에서 직.간접적으로 언급하는 이 부분이 두드러지게 눈에 띈다). 특히 난치병으로 고통에 빠진 채 자신이 죽어가는 것에 대한 절망적인 엄마의 그 표정이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엄마의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거식증이 생긴다. 절대 떠나지 않겠다던 엄마는 결국 이런 방식으로 수잰의 곁에 남은 셈이 됐다.  


수잰은 자기 감정의 깊이를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 자기를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 너무나 멀리 외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자기를 미치게 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수잰은 거의 평생을, 자신을 압도하는 외로움을 무서워했다.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과 사랑이 부재했고, 그걸 받는 방법을 몰랐던 그의 유일한 버팀목은 작가와 그들의 글이었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 그리고 평생에 걸쳐 수잰은 뒤라스,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샬럿 퍼킨스 길먼, 조앤 디디온 등의 글들에 의지했다. 


ㅡ 


'나'라는 존재, 결함, 애착, 훈련, 엄마의 죽음과 그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 상처 파헤치기, 새어머니의 정서적 학대, 숱한 질문과 대답, 악화, 투쟁, 여성 등 그의 삶에 따라다녔던 어휘와 문학 들, 그가 겪어왔던 많은 일들이 가진 의미. 그리고 그 모든 의미를 통틀어 수잰이 확신하는 것은 독서와 글쓰기는 그의 삶과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수잰을 바뀌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선택, 살겠다는 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자살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그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수잰은 단기적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자살하지 않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고, 친구와 지인 들을 관찰했다.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늘 인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읽고 쓰며 독서 안에서 항상 가르침을 찾았다. 그는 현대 (정신) 의학에서 인문학을 도려냄으로써상실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정체성'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개인의 정체성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며(혹은 사회 시스템이 지정해 놓은 테두리에 임의로 갇히는 것에 대한 의견), 정체성은 선택 가능한가(혹은 타인에 의해 부여된 정체성을 거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읽으면서 나에 대한 정체성을 써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된 정체성들, 그리고 선택했지만 이제는 거부하고 싶은 정체성들에 대해서도 정리해 보았다. 이런 경험적 쓰기가 생각을 정리하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책을 덮고 든 생각은, 삶에 있어서 무의미한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굳이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내 삶의 흔적으로써 저절로 하나의 의미가 되어가는 것들이 있더라는. 저자가 가졌던 외로움의 깊이. 어쩌면 그도, 나도 외로움조차 인생의 의미로, 흔적으로 남아 있으리라. 




※ 도서지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