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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3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대우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7월
평점 :
소설은 절도와 살인 혐의로 기소된 스물일곱 살 여인 마슬로바가 법정에 서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자신이 비정하게 버렸던 마슬로바와 재회하면서 각성하는 네흘류도프를 통해 당시 러시아 정부와 귀족을 비롯한 기득권층의 모순, 지식인의 이중성, 억업과 착취당하는 인민들, 그리고 자본주의에 의해 진정한 신앙심과 인간성을 저버리는 사회를 향해 비판의 소리를 높인다.
한쪽에서는 연일 만찬을 벌이고 한쪽에서는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굶어죽는다. 정부는 국민의 행복을 배려한다는 명분으로 매춘을 합법화한다. 배심원이 지식인이면 대부분 무죄로 판결, 농민들이면 유죄로 판결될 가능성이 높은 재판. 사회의 운명을 고작 매춘부 한 명에게 지우려는 마녀사냥, 재판장조차도 사건의 진실과 범인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는 소명의식의 결여, 교육받고 교양도 있지만 고아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싹이 지니고 있었다는 검사의 말로 대변되는 인민을 향한 사회적 편견 등 정부의 잘못된 관행과 사회 부조리를 다방면에서 이야기한다.

먼저 마슬로바를 살펴본다.
검사는 법정에서 먹고 살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창가로 스며든 여성에게 욕정을 채우기 위해 매춘에 빠져들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마슬로바가 건전한 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해도 남자들에 의한 강간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며 그녀의 교양까지 악의적으로 평가한다.
오래 전, 군대에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지 않는 네흘류도프를 만나기 위해 새벽에 기차역으로 달려갔으나 창가에서 얼굴만 스치듯 보고, 그에게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안 바로 그날부터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 마슬로바는 선(善)을 믿지 않았다. 임신한 몸으로 집안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녀를 내쫓은 지주 자매, 육체적 욕망만 갈구하는 남자들, 그녀를 이용해 돈을 벌기에 급급한 사람들 등 그날 이후로 그녀가 만난 사람들은 그녀의 믿음을 굳혀놓았다. 마슬로바가 보기에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살고 있을 뿐이다.
이제 네흘류도프를 들여다본다.
그는 막대한 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한편 토지는 사유 재산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던 자신이 대지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불쾌하는 양가적 감정에 갈등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지고 물려받은 자유재산을 단념할 것인지, 지난날의 자기 생각이 모두 잘못되고 가식에 찬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침묵을 지킬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러나 생계 수단이라고는 토지 뿐이고 화려한 생활 습관을 버릴 수 없고 그에게 있어 신념 따위는 어차피 얄팍했으니 유산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런데 과거 대학생이었던 네흘류도프는 스펜서의 <사회 역학>을 통해 토지 사유 제도의 잔학성과 부당성을 깨달아 도덕적 요구라는 명분 아래 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흘류도프가 한계에 부딪친 까닭은 책에서 배운 학문적인 것에 그쳤고, 실질적으로 농민의 입장에서 갖는 부당함에 이입하거나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후 사치스러운 생활 습관을 고치지 못했으며 그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토지 사유에 대한 잔악성을 머리로는 인지하지만 막상 다시 실천에 옮길 엄두는 내지 못하는 것, 한마디로 지적 허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네흘류도프가 방탕해지는 변화를 집안에서는 더 반겼다는 것이다. 토지 사유화를 반대하고 철학자같은 말을 하는 아들보다는 적당히 사치를 즐기며 귀족적 타성을 버리지 않는 부르주아 아들이 더 반가워하는 어머니 역시 부조리의 한 단면이다.
결혼관은 어떤가. 본인은 방종한 연애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청혼할 여자의 나이(27세)와 과거는 용납하지 못하고, 결혼의 장점으로 도덕적인 생활을 할 가능성과 가정을 꾸리면 자신의 무의미한 생활에 의미를 부여할 것으로 꼽는다.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자유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여자의 본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장점과 단점은 본질적으로 결혼과 무관한다.
열아홉 살 네흘류도프는 군에 입대하고 3년이 지나서 사치와 향락을 즐기는 방탕한 남자가 되었고 스스로 그 모습이 참된 자아라고 믿었다. 이 변화는 자신을 신뢰하기보다 타인을 맹종하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데, 이는 자신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너무 힘들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 대목은 '부활(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 원인의 주체를 깨달음으로써 네흘류도프의 내적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타인을 신뢰하면 책임 또한 타인에게 전가되므로 모든 일의 해결이 수월해진다. 왜냐하면 문제와 갈등의 원인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찾을 때에는 도덕적 책임감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배심원은 '절도할 의사도 없었고 사실 금품을 훔친 바도 없으나, 유죄임에는 틀림없다'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소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사위를 던져서 죄의 유무를 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배심원도 누가 죄를 저질렀는지보다는 재판을 빨리 끝내는 평결에 동의할 뿐이다. 그리고 판사들은 마슬로바가 무죄라고 판단하지만 배심원단의 결정과 들끓는 여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유죄를 선고한다.
톨스토이는 마슬로바가 창녀라는 처지는 수치스러워하지 않지만, 죄수라는 처지는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을 들어 자기합리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작가가 겨냥한 사람은 약탈로 재물을 얻은 부자나 폭력으로 권력를 구축한 군인과 집권자들이다. 세상은 이러한 왜곡된 관념을 가진 집단이 수적으로 많고 우리도 그런 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 마슬로바가 네흘류도프의 속죄와 인도를 거부하는 것은 자신이 십년동안 존재감을 인정받아왔던 삶의 방식을 부정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이는데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싶다.
작가는 형식과 권위에 치중한 예배는 진실한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메세지를 던지면서 기도란 각자의 영혼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예수는 투옥되고 고문하고 처형하는 행위와 타인에 대한 일체의 폭력을 금했는데, 감옥 안 예배당에서의 이루어지는 예매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앞에서 이루어지는 예배 의식은 일종의 기만이라고 말한다. 이는 말년에 신앙에 깊이 침잠했던 톨스토이의 사유가 그대로 녹아있는 부분이라고 보여진다.
이처럼 톨스토이는 정부와 계급 사회, 신앙의 부조리를 깊이있게 파헤친다. 네흘류도프는 마슬로바를 면회하기 위해 감옥에 드나들면서 정치범부터 방화범, 무고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들까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연을 듣게 되면서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다. 특히 '상권'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죄책감도 없는 기득권층의 진심이 결여된 아첨과 이해득실에 의한 교제가 난무하는 마슬렌니꼬프 집의 저녁 초대 만찬 모습과, 소박하고 진실된 말에서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동료를 생각하는 교도소 면회실의 모습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심경의 변화는 네흘류도프 뿐만 아니라 그의 진심을 느낀 마슬로바에게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네흘류도프를 통해 인간은 하나의 특성으로만 분류될 수 없는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톨스토이의 말에 동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