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슬로바의 상소가 기각되고 슬픈 마음을 안고 슈스또바의 집을 방문한 네흘류도프는 정치범으로 몰려 투옥되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지막으로 어느 종교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담당자 또뽀로프를 찾아가는데, 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그 이유는 오직 네흘류도프가 뻬쩨르부르그에 연줄이 있는 영향력 있는 귀족이라는 것이었다. 탄원서 한 장만 내밀었을 뿐이데, 그 자리에서 유배가 취소되다니. 네흘류도프 자신도 어떨떨할 지경이다. 
 
 
네흘류도프는 또뽀로프의 집을 나오면서 며칠동안 그가 만났던 민중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투옥되고 추방되는 이유가 정의를 파괴하거나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재산을 갈취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러시아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리와 부패, 무능과 부당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마리에트의 초대로 극장을 찾은 네흘류도프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희생을 바탕으로 출세하고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허위와 위선에 역겨움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슬슬 네흘류도프에게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458.
정의나 선이나 법률이나 신앙이나 종교 같은 말들은 단지 구호에 지나지 않으며, 그 속에 가장 야비한 탐욕과 잔학성이 숨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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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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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의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전쟁에 동원되었다. 예술가 중 일부는 전쟁에 자발적으로 동조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예술가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성 상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의 <군인으로서의 자화상>이다. 그림 속 군인은 상처입은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뒤에 누드 여성은 온전한 몸 그대로다. 
 
​ 
 
전쟁이 끝나고 집권한 히틀러는 모더니즘 예술작품을 조롱하기 위해 퇴폐미술전을 개최했다. 같은 시기에 나치는 '위대한 독일 미술 전시회'를 열었다. 나치가 추구하는 온전함이란 가부장적인 남성과 남성이 주도하는 가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는 여성의 이미지를 실현해 그 이미지는 고통받는 사람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게르만족이 유일하게 위대한 민족이라는 차별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현실과 인간성을 왜곡한다. 퇴폐미술전에서 모욕을 당한 키르히너는 1938년에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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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표현주의 계보를 이어간 것은 신즉물주의 예술가들이었는데, 이들은 아무런 환상 없이 현실을 그려내려고 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솜전투에 참전한 화가 오토 딕스는 냉정한 시선으로 현실을 묘사했다. 그의 작품 <전쟁 환생자>는, 전쟁에는 위대한 영웅 따위는 없고 희생당한 나약하고 가련한 인간만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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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남성을 약하게, 여성을 강하게 만들었다. 전쟁으로 남자가 부재한 세상에서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육체적. 정신적 노동 현장에 여성이 투입됐다. 그러나 자기주도적인 여성은 갖은 험담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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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참혹함은 예술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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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아말 엘-모흐타르.맥스 글래드스턴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평점 :
절판



17.
이 편지는 단 한 번만 읽도록, 다 읽으면 없어져 버리도록 만들어졌다.  



에이전시의 네드와 가든의 블루는 각각의 진영에서 최고 요원으로 꼽힌다. 둘은 적대적 관계로서 시간의 가닥을 오르내리며 서로의 흔적을 파괴하고 시간선을 차지하려고 전쟁을 벌이는 시간여행자들이다.  







 


일단 이 책은 차 한 잔 놓고 고즈넉하게 읽기를 추천한다. SF소설로 인지하고 책을 펼쳤는데 셰익스피어, 밥 딜런, 성서, 디킨스 등의 문구들을 인용하며 그림처럼 묘사한 이 아름다운 문장들은...! 요즘에 밤에 책을 잘 읽지 못하고 이른 아침에 읽는 편인데, 읽으면서 밤에 읽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 소설은 대단한(?) 스토리가 있지 않다. 어느날 레드와 블루가 장난처럼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점점 닮아가고 결국 두 존재는 진심어린 감정을 공유하며 적이 아닌 동지가 된다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블루와 레드, 그리고 그들의 편지를 통해 우리가 점점 잃어가는 것과 결핍된 것들을 짚어보게 된다.  
 


133.
난 네 안의 내가 나의 어딜 닮았는지 궁금해. 




 
먼저 두 조직을 이루는 근간이 눈에 들어온다. 생태학적인 조직 가든과 기계적인 조직 에이전시. 에이전시가 시간의 실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것에 중심을 둔다면, 가든은 그 실가닥을 심고 다듬어서 시간 타래로 묶는 데에 무게를 둔다. 실의 위 쪽이 안정된 과거, 실의 아래쪽은 살벌한 미래다. 에이전시는 까마득히 먼 아래쪽을 차지해 가닥 위쪽으로 요원들을 파견하고, 가든은 이를 저지하기에 바쁘다.  
 


시간 전쟁을 소재로 한 만큼 두 주인공이 개입하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에 대한 상상도 흥미롭다. 카이사르 암살 현장, 몽골 칭기즈칸의 기마 부대, 소크라테스와 이백, 페루의 고대 제국인 타완틴수유, 진시황제, 한고조, 아편전쟁, 쥐라기 시대, 2차 세계대전의 러시아 전선 등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그 시간 가닥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레드와 블루. 읽으면서 한번쯤 경험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았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타완틴수유와 중국이 은을 교류했다면 서양이 중국 왕조에 뒤쳐지지 않았을까라는 가정인데, 과연 서구 중심의 역사가 다르게 바뀌었을 알 수 없지만 있다는 상상이 나쁘지 않더라는. 역사의 가정에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지만, 그 가정이 긍정의 상상이 되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종종 한다.
 


두 인물이 편지를 주고받는 행위는 상당한 위험을 수반한다. 조직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배신자로 낙힌 찍혀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진 속의 단서들을 통해 서로의 삶의 자취를 따라가며 공허함과 외로움을 위로한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온 위기. 레드가 살기 위해서는 블루를 공격해야 하고, 블루가 레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몰린다. 각자의 임무에만 충실할 뿐이었으나 현재 서로가 전부인 두 존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레드는 말한다. 승리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무한경쟁 시대에 우리가 그 경쟁의 톱니바퀴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세상은 좀 달라지려나. 레드와 블루는 이러한 메세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더불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 한다. 

 
우리는 이렇게 이길거야. 
(마지막 문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 가든의 요원은 숨을 거두면 포자를 통해 퍼져나가고, 바람에 날리는 홀씨로 씨앗을 뿌리고, 깊숙이 내린 뿌리에서 새순을 돋운다. 문득 인간의 죽음도 이와 같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계적인 에이전시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 연쇄를 중단시키고자 한다는 설정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는 인간의 미래를 암시한다. 
 


블루가 느끼는 허기, 타인과 상관없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고 싶은 욕망, 순수하고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자아로 여기는 '나다움'에 대한 갈망. 이는 조직 사회에 발맞춰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느끼는 허기요 갈망일 것이다.  
 


단 하나의 '우리'가 된 블루와 레드. 그들이 식물과 기계를 대표한다는 것, 여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적대적인 관계에서 연대의 관계로 전환하며 끈끈한 동지가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지 생각해 볼 일이다. 
 


"블루, 난 너를 사랑해." 
 


그 어떤 사랑 고백보다 진솔하게 와닿는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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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미래주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미래주의가 지향하는 산업화와 그에 따른 속도를 사랑했다. 예를들면 피사체보다 피사체가 내는 유무형의 속도를 담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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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발라는 두 딸의 이름을 '프로펠라'와 '라이트'라고 지을만큼 속도와 현대문명에 환장했고, 발라의 제자 보초니는 움직임과 속도를 조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알렉산터 콜더는 키네틱 아트를 통해 속도를 보여줬다. 그런데 그들이 찬양한 현대문명과 속도는 전쟁으로 귀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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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자코모 발라의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은 요즘으로 치자면 만화의 한 장면 같고 <속도를 내는 자동차>는 자동차를 알아 볼 수 없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인류에게 경종을 울렸지만, 현대 사회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은 나라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한때 광고에서 나왔던 '빠름 빠름 빠름'이 유행어처럼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현대사회는 속도전이다. 내일이 어떠할지 꿈꾸는 공간이 오늘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미래에 대한 꿈을 만들어가는 이는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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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간호 보조로 일하고 있는 마슬로바를 찾아간 네흘류도프는 그녀의 표정과 태도에서 어딘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마슬로바는 네흘류도프가 건넨 빠노보의 사진을 보면서 행복했던 추억에 잠겼다가 그의 배신에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덩달아 고달프고 피폐했던 매춘부 생활까지 떠올리면서 네흘류도프를 향한 분노가 치솟았고, 그동안 삶의 회한에 흐느낀다. 오래 전 약속을 어겼던 그를 이번에는 믿어도 될까? 다시 농락당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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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네 가지 용무때문에 뻬쩨르부르그로 향한다. 고등 법원에 마슬로바의 상소장을 제출하고, 청원 위원회에 페도시야 비류꼬바의 사건을 소청하며, 해당 기관에 슈스또바의 석방을 요청하는 동시에 요새 감옥에 갇힌 아들을 어머니가 면회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구속되어 가족들과 헤어져 까쁘까스로 추방되게 생긴 어느 종파 교도들에 대한 문제가  그의 용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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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흘류도프는 약자들을 위해 나섰지만 사사건건 모순된 현실에 고통스럽다. 생각이 많아지면 사는 게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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