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다보면 혼자 관람하기도 하고 시간이 맞아 도슨트 해설을 들으며 감상할 때도 있다. 각각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혼자 관람하면 고즈넉하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해설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장점은 무엇보다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까지 들을 수 있어 작품 혹은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 작품과 작가, 사조 등 서른네 개의 꼭지로 나누어 도슨트가 해설하듯 구체적이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놨다. 장프랑수아 밀레, 귀스타브 쿠르베, 클로드 모네, 일리야 레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수잔 발라동,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에드바르 뭉크,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케테 콜비츠, 피트 몬드리안 등을 비롯해 지면에 언급되는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이 책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고독, 쾌락, 고통, 불안, 사랑, 슬픔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들에 대해 썼다.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를 거쳐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인 현재에 이르러 예술 시장도 예외없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과시하는 돈의 힘에 좌우된다. 모더니즘의 시작을 통해 어느 분야든 새로움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틀을 깨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여성 혹은 여성 화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예술가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인종, 연령, 성별 등 각각의 카테고리로 묶어 동일시해 개개인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고자 노력해야하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알폰스 무하 편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업 예술가로 유명해진 그가 민족주의자이자 코스모폴리타니스트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인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하와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작품과 인생을 별개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할까라는 생각도 다시 해보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입체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장은 입체주의에서 활성화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피사체가 아닌 보는 (그리는)사람이 가만히 앉아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좀 어렵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납득되는 말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자신이 바라본 시각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을 복수화하는 것이 입체주의의 본령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는 말레비치의 <나쁜 예감>이다. 저자는 책의 표지로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나쁜 예감>에 대한 저자의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된다. 획일적인 기준을 내세워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개인의 행복과 선택은 사라진다. 말레비치는 자신의 그림처럼 개인의 얼굴이 지워져 익명의 존재로 남게 되는 사회에 대한 우려는 아닐까? 
 
  




모딜리아니, 수잔 발라동은 평소에도 좋아하는 화가였고, 이 책을 통해 좀더 깊게 와닿았던 이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을 화가는 케테 콜비츠다. 그녀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워낙 좋아했지만, 저자의 해설을 덧붙인 여운은 정말 오래 남을 것이다. 독일인 화가로서,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서 반전주의자였던 그녀. 더하여 김향안 님이 쓴 문구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의 70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사실 그림은 여타 다른 문헌에서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크게 차별성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깊은 사색이다. 화가와 그림을 대하는 저자의 사유는 단순한 미술을 넘어 우리네 삶의 전반에 걸쳐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들어가는 글'이 무척 좋았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 예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해준다는 것, 고전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것, 그래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앞으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게 되면 저자가 쓴 문장들과 몬드리안의 바람이 새록새록 생각날 것 같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조화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 될 것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고독 안에서도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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