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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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대결의 결말은 역사가 말해주지만 이들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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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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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마리우스와 전성기를 향해 가는 술라의 대결. 이것 역시 어떻게 엮어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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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1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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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본격적인 술라가 등판했다. 처세술이 능한 그의 행보에 작가의 어떤 상상력이 덧붙여졌을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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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생리학 인간 생리학
앙리 모니에 지음, 김지현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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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이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이라는 말과 함께 생리학의 거장이라 지칭했다는 앙리 모니에가 쓴 부르주아에 대한 이야기다.







글은 부르주아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부르주아는 처한 입장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지만, 보다 고유한 의미에서 정의내리자면 3000~4000리브르 가량의 연금이나 정기 수입이 있고 빚이 없으며 넉넉하게 먹고살면서 원만하게 제 인생의 강을 원만하게 따라 내려가는 남자다(여성은 부르주아즈라는 명칭으로 저자는 따로 서술한다). 이 대목에서 잠깐, 몇 년 전에 모 언론에서 중산층의 기준에 대해 나열한 기사가 생각났다. 자산 규모, 직업, 수입, 보유 차량 등이 순차적으로 적혀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3000~4000리브르의 가치를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으나 '넉넉하게'라는 대목에서 쓴웃음이 나고 만다.

​사는 것이 '넉넉'하다보니 부르주아는 모든 신문을 읽어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국가가 어느 체제이건 관계없이 자신들의 행복의 요건을 잘 찾아낸다. 그들은 폭동과 소요를 싫어하고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시국이 닥치면 방관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리고 본인이 살만하니 일요일까지 하등 쓸데없는 일로 새벽부터 일어나 하인들을 괴롭힌다. 그리고 교육에 있어서 부르주아들은 자식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며 기계적인 인간으로 양육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자식들이 흥미로운 인생을 살기에는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고 비판한다.


앙리 모니에는 부르주아의 허영과 허위, 자만심, 그리고 무지에 가까운 언어적.예술적 소양을 꼬집으며 그들을 우습게 여긴다. 초상화에 열광하는 부르주아의 모습을 들어 그들의 허영과 자기과시를 꼬집고, 더불어 예술을 사고파는 상품 정도로 치부하며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직업이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정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편견을 갖고 폄하하면서 예술가들의 후원가를 자처하는 부르주아의 무례함을 지적한다.

​은퇴를 준비하는 부르주아들은 노년의 평온한 생활을 위해 귀농을 선택한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귀농은 도시 생활의 연장이다. 시골의 간소함과 거리가 멀고 마치 도시를 하나 건설할 듯한 채비를 갖추고 내려와 불편함 없는 삶을 유지하고자 한다. 노동을 해 본 경험이 없으니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시골에서조차 감투에 연연하며 허영심을 놓지 못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 시골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정리를 하는데, 이것조차도 남들에게 줏대 없고 경솔한 사람을 비춰질 것을 우려해 적당한 기간까지 버티다가 헐값에 집을 팔아치운다. 욕심과 허영심으로 가득 찬 부르주아에게 전원생활의 따스함은 존재하기 어렵다.


​이백 프랑의 분담금 혹은 재산세를 내면 누구든 배심원단이 될 수 있다. 부르주아로 채워진 배심원단에 대해 저자는 단순 절도 등 경범죄를 저지를 자들은 5년 감옥형을 선고하는 반면, 살인 등 정작 엄중하게 다뤄야할 범죄에 대해서는 정상 참작을 들어 관용을 베푸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대해 역설과 풍자를 곁들여 비판한다. 즉 단순 경범죄인들을 겁주는 즐거움을, 흉악 범죄자들에게는 박애주의적 사상을 내세워 자기들의 허위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함과 덧붙여 중형을 선고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이 부분은 풍자를 넘어 비아냥으로 들릴 정도다.

극장에서 나타나는 두 부류의 부르주아를 읽고 얼마나 웃었던지. 제 흥에 겨워 끊임없이 장단을 맞추며 아는 체를 하는 부류와 세상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불평 불만을 쏟아내는 다른 한 부류. 그런데 이러한 관객은 부르주아가 아니더라도 아주 많을 뿐만 아니라 요즘에도 극장이나 공연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나도 수없이 경험한 바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우스운 것은 브루주아들이 공짜표를 얻기 위하 배우들과 친분을 트고자 하면서도 뒤에서는 그들을 험담하는 부르주아의 이중성이다. 그나마 극장은 낫다. 부르주아 군인은 군대 부역조차 친분을 쌓는 사교장으로 여기고, 소소한 저녁 초대에도 과시를 위한 허례허식을 일삼는다.


그런데 사실 부르주아를 지칭하는 대상은 본래 이런 모습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중에서 실질적 활동의 주체로 산업을 비롯한 문화, 예술 등을 아우르는 지식인이자 개혁과 혁명에 앞장선 진보의 주체였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을 지나 가장 유력한 사회적 계급으로 자리하면서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이 되었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부르주아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르주아'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오히려 '부르주아'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혁명과 진보와는 다르게 안주하며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쁘고, 연대와 조화와 공존보다는 탐욕과 허위와 과시를 중요하게 여긴다. 앙리 모니에는 이러한 실태를 빈정거림에 가까운 풍자로 일갈한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왜곡된 부르주아의 형태가 더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복권과 비트코인처럼 한탕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성실하게 노동하는 가치는 폄하되고, 인류가 지켜야하는 가치들은 돈 앞에서 점점 사라져가며, 내면의 성찰보다는 자기 과시를 통한 타인의 인정에서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욕망이 크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앙리 모니에가 교육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주입하는 가치관이다. 시키는 대로, 주입시킨 대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앙리 모니에가 비판했던 그 시대보다 더 암울해질지도 모르겠다(사실 지금도 그다지 밝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읽으면서 저자의 재치와 역설에 키득거렸지만 웃고 말 일이 아니다.

재밌고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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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2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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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다보면 혼자 관람하기도 하고 시간이 맞아 도슨트 해설을 들으며 감상할 때도 있다. 각각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데 혼자 관람하면 고즈넉하게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해설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장점은 무엇보다 작가와 작가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까지 들을 수 있어 작품 혹은 문화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 작품과 작가, 사조 등 서른네 개의 꼭지로 나누어 도슨트가 해설하듯 구체적이고 쉽게 이야기를 풀어놨다. 장프랑수아 밀레, 귀스타브 쿠르베, 클로드 모네, 일리야 레핀,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수잔 발라동,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에드바르 뭉크,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케테 콜비츠, 피트 몬드리안 등을 비롯해 지면에 언급되는 화가들의 면면을 보면 이 책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고독, 쾌락, 고통, 불안, 사랑, 슬픔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감정들에 대해 썼다.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를 거쳐 자본주의, 신자유주의인 현재에 이르러 예술 시장도 예외없이 어마어마한 위력을 과시하는 돈의 힘에 좌우된다. 모더니즘의 시작을 통해 어느 분야든 새로움이 늘 환영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 전통 혹은 관습이라는 틀을 깨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여성 혹은 여성 화가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예술가 사이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인종, 연령, 성별 등 각각의 카테고리로 묶어 동일시해 개개인의 개별성을 무시하고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고 답을 찾고자 노력해야하는 자세는 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알폰스 무하 편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상업 예술가로 유명해진 그가 민족주의자이자 코스모폴리타니스트의 길을 걷게 된 그의 인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이 떠올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무하와 반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 작품과 인생을 별개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할까라는 생각도 다시 해보는 시간이었다. 
 



저자의 입체주의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장은 입체주의에서 활성화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피사체가 아닌 보는 (그리는)사람이 가만히 앉아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좀 어렵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납득되는 말이다. 피카소의 그림은 자신이 바라본 시각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시점을 복수화하는 것이 입체주의의 본령이라는 것.  
 



이 책의 표지는 말레비치의 <나쁜 예감>이다. 저자는 책의 표지로 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 <나쁜 예감>에 대한 저자의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 어렴풋이 짐작이 된다. 획일적인 기준을 내세워 생각과 감정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하나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개인의 행복과 선택은 사라진다. 말레비치는 자신의 그림처럼 개인의 얼굴이 지워져 익명의 존재로 남게 되는 사회에 대한 우려는 아닐까? 
 
  




모딜리아니, 수잔 발라동은 평소에도 좋아하는 화가였고, 이 책을 통해 좀더 깊게 와닿았던 이는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을 화가는 케테 콜비츠다. 그녀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워낙 좋아했지만, 저자의 해설을 덧붙인 여운은 정말 오래 남을 것이다. 독일인 화가로서, 전쟁터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로서 반전주의자였던 그녀. 더하여 김향안 님이 쓴 문구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람의 70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가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 







 
사실 그림은 여타 다른 문헌에서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몇몇 화가들의 작품을 제외하면 크게 차별성이 없다고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깊은 사색이다. 화가와 그림을 대하는 저자의 사유는 단순한 미술을 넘어 우리네 삶의 전반에 걸쳐 있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들어가는 글'이 무척 좋았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 예술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인간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해준다는 것, 고전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결론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것, 그래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라고 묻는 질문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포되어 있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크게 공감했다.  
 


앞으로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하게 되면 저자가 쓴 문장들과 몬드리안의 바람이 새록새록 생각날 것 같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조화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 될 것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고독 안에서도 우리의 삶은 가치가 있음을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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