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관 2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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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수스의 죽음으로 실로가 주도하는 이탈리아의 목적의식은 명확해졌다. 그들에게 평화적으로 찹정권을 획득할 수 있다는 희망은 완전히 사라졌다. 두루수스가 죽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 여덟 개 부족이 코르피니움에 집결했다. 그들은 이탈리아 의회를 구성해 곧바로 전시 내각 체제로 돌입했으며 그날부터 바로 업무에 착수해 로마와의 전쟁 준비에 관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들은 서로의 결속을 확인이라도 하듯 피켄툼족과 마루키니족은 서로 어린아이 50명을 인질 교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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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이때 반란 음모를 비롯해 이탈리아의 전반적인 문제를 살피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를 시찰 중이던 법무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가 피켄툼에 도착했다. 마치 운명처럼 이탈리아인들의 분노에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 위해 제 발로 들어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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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대표단 스무 명을 꾸려 로마 원로원에 면담 요청을 했지만 거부당했고, 돌아가면서 로마의 최고 의원 스카우루스에게 은밀히 선전포고를 알리는 문서를 전달했으나 원로원은 마르시 족이 전쟁을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과 어수선한 내부 사정으로 무시하고 만다. 마리우스조차도 뭔가 미심쩍다는 의문만 남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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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퀸투스 세르빌리우스여, 심상치 않은 조짐이 곳곳에 보였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심지어 도발까지. 당신의 죽음은 당신의 무능한 눈과 혀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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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풍부한 사진과 이해하기 쉬운 간결하고 구체적인 지도다. 무엇보다 지역에 편성된 부대의 명칭을 기입해 읽으면서 지도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은 나에게 무척 도움이 되었다(전쟁사 책을 나름 읽는다고 읽는데도 나는 여전히 군대 단위를 모르겠다. 다만 부대 명칭을 통해 짐작만 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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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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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슬픈 선행] 
 
 
'좋은 사람들'이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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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선행, 슬픈 거짓말, 슬픔 사랑. 
 
나쁜 짓은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안 하면 그것되 죄. 부르주아들의 관대함은 올바른 삶, 올바른 사람, 올바른 세상에 대해서 증오를 가지기 때문에 생긴다. 계급 간의 가시 뿐만 아니라 같은 계급 내에서도 상호 경쟁의식은 가득하다.  
 

멘토의 자의식은 착한 사람, 나르시시트, 영웅주의자, 치유주의자에서 나온다. 아도르노의 논리는 모든 것이 더럽고 모순투성이인 세상에서 예외는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치유주의자의 맹점은 상처의 아픔에는 예민하지만 상처가 왜 생겼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이는 감정의 소비로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소비주의자가 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소비를 하느냐는 질문에, 모든 소비가 타자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라 한다면 이 치유하는 사람들 또한 나르시스트이다. 본질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외면하며 봉합하려는 이기주의다. 아도르노는 이것을 시민적 차가움이라고 부른다. 즉 궁극적으로 자기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루고자 하는, 잘못된 리버럴리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자의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는 자발적 자아가 아닌 타율적 자아(강요된 자아)이며 사회에서 생산된 자아들이다. 상처의 본질을 물어볼 떄에만 치유의 방법도 확연해진다. 
 

아도르노에 의하면 우리가 아파하는 사람(약자)들에게 다가갈 때 어떤 겸손함을 갖는데 이 겸손함은 상대의 약점을 보았기 때문에 가능하고, 이는 이미 이 비교 의식이 우월감에서 온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게 되면 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 그리서 우리는 약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저자는 이기는 게 목적인 경쟁 사회에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도록 강요한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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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사람의 얼굴이 이 시대의 얼굴임을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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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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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즈-말메디 교차로에서 사망한 시신에서는 이마, 관자놀이, 뒤통수 등 여러 곳에서 총상이 발견되었고, 손을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시신도 있었다. 확인 사살을 했다는 흔적이었다. 전쟁 범죄 재판을 위한 증거를 수집했고,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냉전시대 초기에 다하우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자들은 모두 감형되어 1950년대에 석방되었다.  
 


수감된 기간이 고작 10여년에 불과하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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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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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 거기서 뭘 봤니?" 

 

아내는 아프고 빠듯한 살림에 도우미를 고용하기에는 여의치 않다. 일을 하면서 두 딸을 건사하기 어려운 남자는 결국 그나마 손이 덜 가는 큰 아이를 남겨두고, 작은 딸을 당분간 시골 처가에 보내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에게 가기 싫다고, 언니를 보내라고 떼도 부리고 사정도 하지만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아이, 유나는 앞으로 자신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요소는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대상에 예외는 없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자식조차.
 









행복이란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라고 믿는 한 연쇄살인범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되돌아본다. 
 


어린시절, 엄마의 발병으로 몇 년 간 시골에 보내져 외조부모와 함께 산 유나는 손녀의 학업에 열정적이고 숨막히도록 엄격한 할머니와 이를 방관한 할아버지 밑에서 부모가 자신을 버렸듯(유나의 입장에서) 할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 순종하며 지낸다. 그러나 자신이 시골로 보내진 원인이 언니에게 있다고 단정한 유나는 재인에게 끊임없이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 중 유나의 결핍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이는 유나의 엄마 뿐이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인범의 범죄 형태가 극악스러운 것은 차치하고, 엄마가 아프고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속사정을 어린 유나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유나의 심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단 주말마다 시골에 있는 작은 딸을 찾아가 집에서 쓰던 방과 똑같이 인테리어를 해주는 아빠, 떼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 쉼없이 자책하고 작은 딸을 불쌍해 하며 편애하던 엄마를 떠올려보면 그녀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결핍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자기 대신 동생이 시골로 보내졌다는 죄책감을 내내 느끼고, 엄마의 한탄을 감내하며, 아빠의 영세한 사업의 실상을 알고 착한 딸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재인에게 동정심이 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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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3인칭 화법으로 진행하지만 지유, 은호, 재인의 관찰자 시점으로써 독자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을 통해 유나를 관찰하고 그녀의 속내를 짐작한다. 유나의 극단적이고 주도면밀한 폭력적 성향의 기저는 무엇일까? 소설을 다 읽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위에 썼듯 일단 그녀의 어린 시절은 이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 중에 오래 전 작가가 언급했던 '절대 악'이라는 단어와 함께  <종의 기원>의 주인공 유진이 떠올랐고, 이어서 든 생각은 과대하게 포장된 '자아'였다. 유나는 스스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여기에는 자신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그릇된 자아감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핍(유나의 경우에는 결핍이라고 하기에도 어렵지만)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인의 깨우침처럼 각각 여덜 살, 일곱 살에서 멈춘 그들의 성장이 유감스럽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된 후에 단절한 가족 관계, 자식에 대한 어긋난 편애 등이 유나의 범죄를 방조한 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최악의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지유의 미래는 어떨까? 은호는 지유에게서 복종 밑에 도사린 저항감을 읽는다. 이 점이 유나와 지유의 다른 점이다. 유나가 스스로를 향해 완전한 존재라고 세뇌시킨 자아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지유는 엄마에 대한 절대적 복종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유의 이 저항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그래서 적어도 현실에 있는 수많은 지유가 고통에서 벗어나 부모와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람한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간의 욕망은 제한되지 않으니 독자는 이미 제목에서 행복에 대한 역설을 읽는다. 왜곡된 자아는 위험하다. 그 위험에 빨간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다.





#완전한행복 #완행리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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