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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지유, 거기서 뭘 봤니?"
아내는 아프고 빠듯한 살림에 도우미를 고용하기에는 여의치 않다. 일을 하면서 두 딸을 건사하기 어려운 남자는 결국 그나마 손이 덜 가는 큰 아이를 남겨두고, 작은 딸을 당분간 시골 처가에 보내기로 한다. 아이는 아빠에게 가기 싫다고, 언니를 보내라고 떼도 부리고 사정도 하지만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 아이, 유나는 앞으로 자신의 행복에 걸림돌이 되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요소는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간다. 그 대상에 예외는 없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심지어 자식조차.

행복이란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라고 믿는 한 연쇄살인범을 통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되돌아본다.
어린시절, 엄마의 발병으로 몇 년 간 시골에 보내져 외조부모와 함께 산 유나는 손녀의 학업에 열정적이고 숨막히도록 엄격한 할머니와 이를 방관한 할아버지 밑에서 부모가 자신을 버렸듯(유나의 입장에서) 할머니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 순종하며 지낸다. 그러나 자신이 시골로 보내진 원인이 언니에게 있다고 단정한 유나는 재인에게 끊임없이 원망과 저주를 퍼붓는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 중 유나의 결핍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이는 유나의 엄마 뿐이다. 이는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인범의 범죄 형태가 극악스러운 것은 차치하고, 엄마가 아프고 살림살이가 녹록치 않다는 속사정을 어린 유나가 이해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사실을 전제하더라도 유나의 심리는 납득하기 어렵다.
일단 주말마다 시골에 있는 작은 딸을 찾아가 집에서 쓰던 방과 똑같이 인테리어를 해주는 아빠, 떼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겨 쉼없이 자책하고 작은 딸을 불쌍해 하며 편애하던 엄마를 떠올려보면 그녀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정서적 결핍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자기 대신 동생이 시골로 보내졌다는 죄책감을 내내 느끼고, 엄마의 한탄을 감내하며, 아빠의 영세한 사업의 실상을 알고 착한 딸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재인에게 동정심이 쏠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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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3인칭 화법으로 진행하지만 지유, 은호, 재인의 관찰자 시점으로써 독자는 그들과 함께 그들의 시선을 통해 유나를 관찰하고 그녀의 속내를 짐작한다. 유나의 극단적이고 주도면밀한 폭력적 성향의 기저는 무엇일까? 소설을 다 읽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위에 썼듯 일단 그녀의 어린 시절은 이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생각 중에 오래 전 작가가 언급했던 '절대 악'이라는 단어와 함께 <종의 기원>의 주인공 유진이 떠올랐고, 이어서 든 생각은 과대하게 포장된 '자아'였다. 유나는 스스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지만 여기에는 자신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그릇된 자아감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결핍(유나의 경우에는 결핍이라고 하기에도 어렵지만)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있다고 모든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재인의 깨우침처럼 각각 여덜 살, 일곱 살에서 멈춘 그들의 성장이 유감스럽다. 어쩌면 어린 시절이 아닌 성인이 된 후에 단절한 가족 관계, 자식에 대한 어긋난 편애 등이 유나의 범죄를 방조한 셈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면 최악의 양육환경에서 성장한 지유의 미래는 어떨까? 은호는 지유에게서 복종 밑에 도사린 저항감을 읽는다. 이 점이 유나와 지유의 다른 점이다. 유나가 스스로를 향해 완전한 존재라고 세뇌시킨 자아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았다면, 지유는 엄마에 대한 절대적 복종에 물음표를 던진다. 지유의 이 저항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그래서 적어도 현실에 있는 수많은 지유가 고통에서 벗어나 부모와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람한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인간의 욕망은 제한되지 않으니 독자는 이미 제목에서 행복에 대한 역설을 읽는다. 왜곡된 자아는 위험하다. 그 위험에 빨간불을 켤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본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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