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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숨 쉬는 법 - 철학자 김진영의 아도르노 강의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평점 :
39.
항상 깨어 있어라.
이 책은 고故 김진영 교수가 아도르노의 철학 에세이 <미니마 모랄리아>를 토대로 그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우리의 현주소를 고찰한 강의다.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소재ㅡ꿈, 사랑, 행복, 자본주의, 선물, 외모, 도덕, 사치, 육체, 남성, 여성, 불면, 두려움, 고독, 삶, 죽음 등ㅡ들로부터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혹은 외면했던 상처와 진실들과 마주한다.

읽는동안 저자의 쉬운 해설과 말씀으로 머릿속에서 정리가 안된 채로 맴돌았던 것들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이 책이 무척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저저가 어떤 명제를 놓고 니체식 바르트식 벤야민식 아도르노식으로 해석해 설명하는 것이 묘하게 흥미롭다.
강의 내용 중 저자가 가장 현실적으로 지적한 부분은 강자와 약자의 연대가 실패했을 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애 대한 극명함이다. 이를 통해 지식인들의 우월감을 넘어 육화되어버린 부르주아 기질을 꼬집는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나 교양에 있어서 점점 고급화되어가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 세계를 들여다보면 허위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스노비즘 사회라는 지적에 공감했다. 결국 개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자기의 관점을 가져야 하는 필요성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다.
깊이 동의하는 부분은 소유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전제와 소유는 나와 타자, 나의 사물의 관계 맺기이며 내 호주머니에 접어넣는 게 아닌 관계를 맺는 것이 진정한 소유라는 점이다. 오늘날 나와 타자와의 관계는 경쟁구도를 갖고 있다. 그래서 모든 시장적 합리성, 경제 관념, 교환 원칙, 등가 원칙 속에는 복수와 원한의 정신이 작동하고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문명을 가꾸어왔으나 그 끝에서 야만인이 되었다는 아도르노의 글에 부정하기가 어렵다.
불행이 일반화되어가면서 어지간한 불행은 불행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사회는 점점 더 차가워진다. 우리 사회에서 부끄러움조차 없어지면 더 나아질 가망이 없다. 롤랑 바르트의 인상적인 사유는 노예로 살면 이렇게 생기게 되는구나가 아니라, 사람의 얼굴을 이렇게 만드는 노예주의 얼굴이 어떤지 알 수 있다는, 즉 노예의 얼굴은 주인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사유를 통해 진정한 지식인의 얼굴은 세상을 닮은 얼굴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얘기하는데, 따라오는 생각이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얼굴이 결국 나의 얼굴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테크놀로지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런 마당에 인간성 상실을 들어 이제와서 퇴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를 폐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테코놀로지의 꿈을 기억해내는 일이며 더불어 상처를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허파로 만들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도 와 닿는다. 우리는 배려와 위로가 쉽지 않으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실제로 우리는 위로에 얼마나 서투른가). 나는 진심을 담는다해도 자칫 섣부른 위로가 될 수도 있기에 위로와 배려는 주고받는 어떤 입장에서도 참 조심스럽다. 그리고 배려를 배려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라면 이렇게 비인간적인 사회가 되지도 않았을 거라는 말에 동의한다. 위로가 상처를 부르는 세상. 오직 가치 획일화 문제만일까? 저자의 말씀에 혜안이 있다.
"그 사람의 상처를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예요. 절대로 사랑이 먼저가 아니에요."
아도르노에게 인간적이라는 것은 유보 없는 행복이다. 아도르노가 볼 때 야생적이고 맹목적인 것은 쾌락이다. 유보 없는 행복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관계의 성찰이다.
'산다'와 '살아 있다'는 다른 것('살아 있다'는 그냥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고, '산다'는 꿈을 실현한다는 것이다)이라는 아도르노의 지적이 박힌다. 나는 그냥 사는 걸까, 아니면 살아 있는 걸까. 강자와 약자, 싸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문명의 꿈이었지만 현실은 착취와 억압과 차별이라는 사실이 씁쓸하다. 요즘 우리 사회는 습관화된 반응만 하는 무감각 사회다. 정념 아니면 무감각, 그야말로 극단적인 두 가지만 존재하는 사회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는 개인이라는 약자에게 수행해야하는 것들을 지시하고 개인은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로 돌아가게 만드는 '객관적 권력'과 '성찰'이다. 오늘날의 삶은 물질에 의해서 완전히 종속된 삶이기에, 삶이 살아 있지 못함을 고찰하는 이 강의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버려진 것들의 고통에 대한 뼈아픈 통찰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생을 파괴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씀대로 타인의 상처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주변을 돌봐야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자신의 상처 안에 오래 머물러 스스로를 성찰할 시간을 깊이 갖는 것을 우선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와 나르시시즘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성찰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당한 분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