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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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나는 내가 사랑한 유일한 것을 내 인생에서 자꾸만 몰아내고 있었다. 사랑은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인 척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했다. 심지어 나라는 사람은 함께 살기 좋은 사람이고 따라서사랑도 변치 않을 것처럼 나 자신을 속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죽어야 한다면 빨리 죽기를 바랐다. 우리의 사랑은 덫에 걸려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조그만 짐승과도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목을 비틀어야만 했다. 
 

 
이전 작품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나는 이 작가의 문체가 좋다. 건조하지만 건조하지 않게 전달하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읽도록 하는 힘, 군더더기 없는 문장, 그 적당한 무게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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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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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화자인 조지의 회고로 서술되는 소설은 앤과 조지, 그리고 조지의 동생 솔랜지를 중심으로 1968년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조지와 앤이 학교를 떠난 이후다. 조지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살아갔다면, 앤의 삶은 예상치 못한 급진적인 변화를 맞는다. 20여년간 재소자 신분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절대 놓지 않았던 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시대가 바뀜으로써 앤이 추구했던 혁명과 진보는 퇴색하고 오히려 앤 본인이 그토록 경멸했던 자신의 출신 때문에 그의 소신과 진정성까지 폄훼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바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앤의 무구한 이상을 곡해없이 바라본 이가 바로 다수의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조지다.  


법정에서 정신과 의사는, 앤의 물질적.정서적으로 유복했던 어린시절에서 결여된 것은 삶의 잔혹성이나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얘기한다. 조숙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기의 앤에게 전 세계에서 저질러지는 죄악들,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죄악들은 선택받은 자로서 갖는 자기혐오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한 증오라는 것. 판사는 앤이 응석받이로 자라 자신의 판타지 속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무지하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앤에게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앤의 변호사는 그가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일 수도 있다'고 달리 말한다. 판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와 변호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의 의미는 각각 무엇일까.


조지는, 앤을 소설 중반에서는 '시몬 베유'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개츠비'에 비유한다. 앤의 삶의 결이 시몬 베유와 아주 유사함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개츠비일까. 어쩌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 이상이 차별받는 계층을 향한 조지의 신념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7부]의 화자로 등장하는 동료 재소자는 앤의 면전에서 그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앤은 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그 누군가는 대개 자기 자신이었다며 그가 보기에 앤은 자신을 죽이고 있었고, 그에겐 그것이 최악의 이기심으로 여겨졌다는 말과 함께 앤이 증명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 생각으로는, 앤은 증명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삶을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냈을 뿐이다.  


소설은 [5부]와 [7부]를 제외하고 모두 조지가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서술한다. 5부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는데, 3인칭이지만 조지가 관찰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앤이 가장 증오하고 분노하는 특권층 세상 한가운데에 자리한 조지는 처음에는 이 윤택한 생활과 다정한 부모를 버린 앤을 납득하지 못하지만, 앤조차도 몰랐던 이면들을 터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가며 앤을 향한 더 큰 이해와 연민을 갖게 된다. 이는 조지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앤의 유년 시절ㅡ다정한 아버지(연인),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생활,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존재ㅡ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로써 앤의 삶을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7부]는 짧지만 앤의 수감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 재소자의 1인칭 서술로 진행한다. 이는 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인물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갖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두 여성의 삶과 생각에 한발자국 더 들어가 보자.  


학교를 중퇴하고 여성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한 조지는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간다. 일보다는 육아를 우선하고, 남편과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행복감을 느낀다. 조지의 주변 여성들은 전업주부일 때 혹은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우선하는 그를 경멸했다. 그는 다른 여성들처럼 육아에 매달릴 때 왜 갇혀 사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전업주부로서 사는 조지를 납득하지 못하고, 왜 어머니 세대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지 의아해 하는 동시대 여성들.


우리는 간혹 성평등을 외치는 와중에 육아와 살림을 폄하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은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다만 황금물질주의 시대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육아=경제적 무능으로 치부되고 있다. 누가 할 일인지보다 누구든 반드시 해야할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앤이 콰메에게 복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오히려 조지가 의문을 품는 모습은 우리가 짚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ㅡ 
 


앤은 학교를 떠난 후 한때 흑인 급진주의자였으나 평범한 교사로 일하는 할렘 출신 남자 콰메와 사랑에 빠진다. 콰메는 안정된 가정을 원했고, 앤의 생활 방식이 바뀌기를 바랐으며, 순종적인 아내를 요구했다.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떠올려지는 남성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앤의 태도는 아버지 터너에게 쏟아내는 비난에서도 나타난다. 어머니가 타락한 부르주아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어머니를 휘어잡아 교육시키지 않는 아버지의 방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앤은 왜 남녀의 불평등은 당연하게 여겼을까. 소설에서도 앤이 여성을 친구나 동료로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여길 뿐(물론 콰메가 백인이었다면 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라는 가정도 생각해볼만 하다). 인종 평등을 외치며 성평등은 외면했던 앤의 모순.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집단을 이루며 각자의 입장에서 평등을 외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자에 대한 평등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의 모순과 닿아있다. 
 

앤은 부모가 돈 때무에 결혼을 했다고 여겼고, 부모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돈과 피부색으로 결정된 특권층을 본인이 정해놓은 규격화된 모델 틀 안에 우겨넣은 셈이다. 돈 많은 백인에게는 진정한 사랑도, 인류애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백인과 부자의 특권에 수치심을 느꼈고, 계층적 죄책감은 그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앤의 외골수적인 우직함이 그녀의 삶을 결정지었던 것 같다. 앤이 아버지 터너와 대화하는 데에 시간을 조금만 할애했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특권층으로서 갖는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비극적이되 불행하지는 않은 사람, 앤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 입체적인 인물을 어떻게 납득하고 이해해야할지 고민스러워 완독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됐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치열하게 살았을 앤이 단지 소설 속 인물에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이미 세상과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수많은 '앤'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안온한 삶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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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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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비오는 캄캄한 밤에 우산도 없이 공원에서 서성이는 헨리와 1년 6개월만에 재회한 모리스 벤드릭스. 아내 세라의 부정을 의심하는 헨리는 사설탐정을 고용하기 위해 알아보는 중인데, 이러한 의심과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과 사설탐정을 만나보고 싶다는 감정이 뒤섞여 갈등하는 순간에 우연히 옛친구 모리스를 만나 상의하게 된 것이었다. 과거 세라와 모리스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모리스는 자신이 세라의 연인 행세를 하고 사설탐정을 만나보겠다는 제안을 한다. 모리스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헨리는 그저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결국 헨리는 아내를 의심하고 염탐하는 덫에 걸린다. 심지어 모리스가 좋은 친구라고 여기면서.  




질투와 증오는 사랑을 부채질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개인적으로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만). 1부를 읽으면서 성마른 성격으로 느껴지는 모리스가 세라를 사랑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질투와 증오의 다른 이름일지는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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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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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시야는 므이쉬킨에게 가냐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늙은이가 자신을 가냐와 결혼시키려고 한다면서 이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묻는다. 므이쉬킨은 혼인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마치 기다렸다는듯 나스타시야는 공작의 말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더불어 토츠키에게 지참금으로 받기로 한 7만 5천 루블은 필요 없으며 자신을 속박했던 9년간의 대가로 주겠다고, 내일 당장 이 집을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말한다. 만난지 얼마 안 된 므이쉬킨의 말을 따르는 나스타시야를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 그러나 그는 므이쉬킨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신뢰하게 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나스타시야가 소란을 일으키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또다시 일당을 이끌고 들이닥친 로고진. 그에게는 가냐의 집에서 약속한 돈 10만 루블이 들려있다.  사람들은 이 소동이 나스타시야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눈치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탐욕스러운 인간군상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이 장면은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낯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이 된다. 젊은 여인에게 민낯을 들켜버린 속물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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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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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작품이 연작 형태를 이루고 있는 소설은 1904년부터 1981년까지 30~40년의 간격을 두고 진행한다. 소설은 신의 존재와 신앙, 사랑과 연민,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주제를 꼽으라면 '상실'이다. 각 장章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상실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무림친다. 어떤 이는 상실의 아픔을 죽음으로 승화하고, 어떤 이는 상실을 초월하는 위로와 교감이, 어떤 이는 상실보다 더 참담한 고통이 있음을 깨닫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들의 인연의 시작은, 연인과 아들과 아버지까지 연달아 잃은 토마스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율리시스 신부의 십자고상을 찾아나서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선교사로서 아프리카 땅에 도착한 율리시스 신부는 식민지에서 선교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성직자답게 자신의 소임을 성실하게 수행하지만, 원지민들을 폭압하고 학살하는 문명인의 모습에서 회의를 느끼면서 선교 활동에 낙관과 위로를 찾지 못한다. 그는 이에 대한 고통을 투영한 십자고상을 완성하고, 이 조각품은 이후 포르투갈의 어느 한 교회에 소장되어 있다. 율리시스 신부의 선교 생활은 토마스가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찾아가는 과정과 닮아 있다. 이방인이 되어 식민지의 원주민들과의 교류는, 토마스가 자동차를 끌고 지나는 마을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상황과 유사하다. 식민지에서 자만으로 가득찬 문명인 제국주의자는 토마스 자신과 자동차에 비유되며, 토마스가 낮잡아 봤던 작은 시골마을(호즈마니냘)은 식민지와 같은 선상에 있다. 저자가 묘사한 상투메의 모습과 율리시스 신부의 한탄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연상케 한다. 마침내 고난의 여정을 끝낸 토마스의 앞에 나타난 십자고상은 그의 예상과 아주 달랐고, 더불어 자신이 부둥켜 안고 있었던 아픔은 이제 또 다른 누군가도 겪게 될 터였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이 고통의 고리는 끝나지 않는 걸까.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였던 내용은 [제2부 집으로]였다. 이 장은 거의 대부분 두 명의 마리아라는 여성(여성의 이름이 둘 다 마리아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사이사이 에우제비우가 질문을 던지기는 하지만). 첫 번째 등장하는 마리아는 병리학자이자 의사인 에우제비우의 아내다. 그는 특별한 용건도 없이 일하는 중인 남편을 찾아와 '애거서 크리스티'소설에 대해 한참을 떠든다. 모든 죽음은 살해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죽음이며 그게 우리의 운명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자신이 피해자인 살해 미스터리에서 산다는 말을 남기고 올 때처럼 홀연히 돌아간다. 그리고 곧바로 뒤어어 찾아온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마리아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의 투이젤루라는 마을에서 왔다고 소개하며 죽은 남편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부탁한다. 진료기록도, 사망증명서도, 시신 인식표도 없는 남자의 시신을 부검해 달라고 하다니. 더 황당한 것은 시신을 부검하면서 남편 라파엘이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를 밝혀달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반전. 아내 마리아가 남편에게 전한 말은 상실의 무게에 짓눌린 그를 구하기 위한 위로였고, 에우제비우가 처음 본 마리아의 부탁을 들어줬던 것은 상실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이입이었을 것이다.  



투병 끝에 아내가 떠나고 아들마저 이혼하며 일상이 흔들린 상원 의원 피터는 지칠대로 지치고, 동료의 권유로 미국 오클라호마 주 의회 초청 방문단에 합류한 후 일정 마지막날 혼자 방문한 영장류 연구소에서 우연찮게 마주한 침팬지 오도와 교감한다. 피터는 의학계 아우슈비츠를 전전했던 오도를 데리고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 부모님 고향이었던 '포르투갈의 높은 산' 투이젤루로 향한다. 피터는 때때로 찾아오는 외로움과 수시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오도에 대한 두려움을 확실하게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나 온전한 교감과 그로인해 전해지는 위무는 피터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다독인다. 상실감이 인간에게만 있으랴. 얼마 후 오도 역시 그 상실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소설에서 재미있는 장치는 라틴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다. 토마스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이 혼재된 듯한 어느 지역에서 길을 잃은 것이나, 라파엘의 시신에서 튀어나오는 엉뚱한 물건들, 남편의 시신을 관으로 삼아 봉합되어지는 장면 등 이외에도 몇몇 장면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부분들이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더 신비롭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신의 존재와 믿음, 종을 초월한 교감과 위로와 극복, 그리고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상 현상과 인간의 의지를 통해 죽음이 아닌 삶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주요 등장인물들의 결론을 들여다보자면 그들이 향한 곳은 모두 '집'이다. 그들이 각각 향한 집이 어디일지는 독자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것과 극복 중 어느 것이 더 쉬울까. 둘 다 쉽지 않다. 다만 질끈 감아버리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지만, 극복은 혼자 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는 늘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두 번째 읽는 이 아름다운 소설에 대한 나의 소감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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