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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평점 :
주 화자인 조지의 회고로 서술되는 소설은 앤과 조지, 그리고 조지의 동생 솔랜지를 중심으로 1968년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조지와 앤이 학교를 떠난 이후다. 조지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살아갔다면, 앤의 삶은 예상치 못한 급진적인 변화를 맞는다. 20여년간 재소자 신분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절대 놓지 않았던 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시대가 바뀜으로써 앤이 추구했던 혁명과 진보는 퇴색하고 오히려 앤 본인이 그토록 경멸했던 자신의 출신 때문에 그의 소신과 진정성까지 폄훼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바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앤의 무구한 이상을 곡해없이 바라본 이가 바로 다수의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조지다.
법정에서 정신과 의사는, 앤의 물질적.정서적으로 유복했던 어린시절에서 결여된 것은 삶의 잔혹성이나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얘기한다. 조숙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기의 앤에게 전 세계에서 저질러지는 죄악들,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죄악들은 선택받은 자로서 갖는 자기혐오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한 증오라는 것. 판사는 앤이 응석받이로 자라 자신의 판타지 속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무지하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앤에게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앤의 변호사는 그가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일 수도 있다'고 달리 말한다. 판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와 변호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의 의미는 각각 무엇일까.
조지는, 앤을 소설 중반에서는 '시몬 베유'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개츠비'에 비유한다. 앤의 삶의 결이 시몬 베유와 아주 유사함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개츠비일까. 어쩌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 이상이 차별받는 계층을 향한 조지의 신념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7부]의 화자로 등장하는 동료 재소자는 앤의 면전에서 그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앤은 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그 누군가는 대개 자기 자신이었다며 그가 보기에 앤은 자신을 죽이고 있었고, 그에겐 그것이 최악의 이기심으로 여겨졌다는 말과 함께 앤이 증명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 생각으로는, 앤은 증명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삶을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냈을 뿐이다.
소설은 [5부]와 [7부]를 제외하고 모두 조지가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서술한다. 5부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는데, 3인칭이지만 조지가 관찰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앤이 가장 증오하고 분노하는 특권층 세상 한가운데에 자리한 조지는 처음에는 이 윤택한 생활과 다정한 부모를 버린 앤을 납득하지 못하지만, 앤조차도 몰랐던 이면들을 터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가며 앤을 향한 더 큰 이해와 연민을 갖게 된다. 이는 조지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앤의 유년 시절ㅡ다정한 아버지(연인),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생활,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존재ㅡ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로써 앤의 삶을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7부]는 짧지만 앤의 수감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 재소자의 1인칭 서술로 진행한다. 이는 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인물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갖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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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의 삶과 생각에 한발자국 더 들어가 보자.
학교를 중퇴하고 여성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한 조지는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간다. 일보다는 육아를 우선하고, 남편과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행복감을 느낀다. 조지의 주변 여성들은 전업주부일 때 혹은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우선하는 그를 경멸했다. 그는 다른 여성들처럼 육아에 매달릴 때 왜 갇혀 사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전업주부로서 사는 조지를 납득하지 못하고, 왜 어머니 세대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지 의아해 하는 동시대 여성들.
우리는 간혹 성평등을 외치는 와중에 육아와 살림을 폄하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은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다만 황금물질주의 시대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육아=경제적 무능으로 치부되고 있다. 누가 할 일인지보다 누구든 반드시 해야할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앤이 콰메에게 복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오히려 조지가 의문을 품는 모습은 우리가 짚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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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은 학교를 떠난 후 한때 흑인 급진주의자였으나 평범한 교사로 일하는 할렘 출신 남자 콰메와 사랑에 빠진다. 콰메는 안정된 가정을 원했고, 앤의 생활 방식이 바뀌기를 바랐으며, 순종적인 아내를 요구했다.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떠올려지는 남성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앤의 태도는 아버지 터너에게 쏟아내는 비난에서도 나타난다. 어머니가 타락한 부르주아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어머니를 휘어잡아 교육시키지 않는 아버지의 방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앤은 왜 남녀의 불평등은 당연하게 여겼을까. 소설에서도 앤이 여성을 친구나 동료로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여길 뿐(물론 콰메가 백인이었다면 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라는 가정도 생각해볼만 하다). 인종 평등을 외치며 성평등은 외면했던 앤의 모순.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집단을 이루며 각자의 입장에서 평등을 외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자에 대한 평등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의 모순과 닿아있다.
앤은 부모가 돈 때무에 결혼을 했다고 여겼고, 부모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돈과 피부색으로 결정된 특권층을 본인이 정해놓은 규격화된 모델 틀 안에 우겨넣은 셈이다. 돈 많은 백인에게는 진정한 사랑도, 인류애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백인과 부자의 특권에 수치심을 느꼈고, 계층적 죄책감은 그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앤의 외골수적인 우직함이 그녀의 삶을 결정지었던 것 같다. 앤이 아버지 터너와 대화하는 데에 시간을 조금만 할애했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특권층으로서 갖는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비극적이되 불행하지는 않은 사람, 앤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 입체적인 인물을 어떻게 납득하고 이해해야할지 고민스러워 완독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됐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치열하게 살았을 앤이 단지 소설 속 인물에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이미 세상과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수많은 '앤'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안온한 삶을 기원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