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사랑법 - 김동규 철학 산문
김동규 지음 / 사월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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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란 근원적인 언어이며, 언어는 존재의 집 즉 사원인데, 시라는 언어의 사원에 모시는 것은 사랑으로써 이는 존재란 곧 사랑이다. 바꿔 말하면 사랑을 언어로써 보호하고 지키는 집, 그것이 바로 詩다.  

사람이 엄마의 자궁을 집으로 삼고 세상에 나와 반응하는 존재도 역시 사랑이다. 눈맞춤, 울음, 옹알이, 몸짓 등 그 모든 작용은 사랑하는 이와의 교감이다. 이렇게 인간은 태초의 언어(사랑)을 시작한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의 신 에로스가 '가장 오래된 늙은 신'이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그것이 무엇이든 탄생의 전제 조건이 사랑이기 때문이고, 사랑의 본질이 받음이 아니라 '줌'에 있기에 줄 수 있는 이는 연장자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에 둔다. 이는 사랑이 기원과 성숙의 시간이 결부되어 있음을 가리키는데,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더 먼저 더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나르시시즘이란 한갓 이기주의를 뜻하는 에고이즘과는 구분되는 자기애다. 타자를 자기처럼 사랑하는 이타적인 모습까지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나르시시즘은 협소한 에고이즘과 구분된다. 자기사랑이 곧 타자사랑이라는 말은 못난 내 모습까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유의미하려면, 내 못난 모습, 사회로부터 업신여겨지는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자타의 강점이 아닌 약점마저 사랑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요체다. 도달하기 힘든 사랑의 성숙함이다.  

이 책, 왜 이렇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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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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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평범하고 단조로운 나날이 지겨워진 스물여덟 살 가와이 조지는 열다섯 살 여급 나오미에게 호감을 느낀다. 동정심, 무료함을 달래고픈 심정, 일상을 자극해줄 거라는 기대 등 복합적인 이유로 나오미를 데려와 동거를 결심하고, 교육을 받게 해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오미는 동거 제안을 흔쾌히 수락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작가는 아니다보니 고작 한 작품만을 읽었더랬다. 그럼에도 한두작품은 더 읽어보자했는데, <세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가 이 작품을 읽을 기회가 됐다.

20세기 초 + 일본 정서를 감안하고 읽는 중이다.
<롤리타>와 유사한 내용인가 궁금했는데, 결도 문장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불편한 지점이나 읽으면서 딴지를 거는 내 생각도 다르고. 

아직까지는 칼자루를 가와이 조지가 쥐고 있는데, 어째 역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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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사랑법 - 김동규 철학 산문
김동규 지음 / 사월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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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너를 믿는다'라는 말은 '너를 사랑한다'라는 말과 동의어다. 



영어단어 believe 안에 있는 lieve는 love를 뜻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소중하고 가치 있다고 믿고 생각(思=愛)하는 것 이면에는 사랑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가치보다 가장 근원적인 가치라는 말씀이라는 뜻일테다.  

프롤로그에서,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데, 진정한 '자기애'에서 자기(self)란 나르시시스트 개인의 '나'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it-self), 즉 참된 자기애란 '사랑의 자기 사랑'을 뜻한다고 얘기한다. 참된 자기애는 자타(自他)가 없는 절대 존재이기 때문에 고독이 유래하고, 따라서 사랑은 절대적이며 무한하고 고독하다. 

아...... 뭔가 설득된다.

내가 믿는 당신들, 그것은 사랑이었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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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전 시집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서거 77주년, 탄생 105주년 기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뉴 에디션 전 시집
윤동주 지음, 윤동주 100년 포럼 엮음 / 스타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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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제대로 읽기 전, 표지 안쪽에 있는 시인의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1917년생으로 1945년 해방을 불과 6개월 남겨두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8세의 나이로 사망한 그. 1917년생이면 나의 할아버지와 나이 차가 10여년 정도에 불과하다. 할아버지에게도 시인처럼 학생모를 쓰고 찍은 사진이 있다. 시인이 천수를 살았다면 그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시를 썼을까. 사진 속 그의 잔잔한 미소 때문에, 오늘의 맑은 날씨 때문에, 어쩐지 명치 끝이 더 뻐근하다.  










정본 윤동주 전집을 비롯해 시집, 평전까지 시인 윤동주와 관련한 책만 열 권 가까이 소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운 윤동주 시집을 또 읽는다. 책이란 것이, 특히 문학은 내가 처한 상황이나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읽을 때 마다 달라지곤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 시詩가 그렇고, 윤동주의 시는 더 그렇다.  


​이 책의 매력은 시인의 산문과 미발표작, 그리고 윤동주 시집의 초판본에 실린 여러 시인들과 문학계 인사들의 서문 및 발문이다. 특히 1947년 12월에 쓴 시인 정지용의 서문은 무척 인상적이다. 광복을 맞이했으니 이러한 서문도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고 저릿하다. 그리고 유영 선생이 윤동주와 송몽규를 목놓아 부르듯 쓴 시에서 '네 벗들이 여기 와 기다린 지 오래다'라는 문구에 절로 울컥해진다.  


시인 정지용과 친구 강처중, 후배 정병욱의 후기를 통해서 본 윤동주는 누가 달라면 책이나 셔츠까지 내어 줄 만큼 순하디 순한 사람이다.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오랜 숙고를 거쳤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겸허 온순하였으나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 않았으며, 시인이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기꺼이 걸어간 사람이었다. 불러도 대답 없을 그 이름, 동주와 몽규를 헛되이나마 부르고 싶다던 그들의 간절한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후배 정병욱이 "동주 형"이라고 부르는 말이 참으로 다정하고 아련하게 들린다. 문득 '그랬겠구나. 윤동주가 시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학우요, 동료요, 아들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했던건지. 


윤동주의 시가 따뜻한 봄날에 이토록 어울린다는 사실을, 나는 그가 죽은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의 나이에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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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7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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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으로 나뉘어진 이 소설은 화자 '나'와 선생의 관계 맺기를 시작으로 '나'와 가족, 마지막으로 선생의 유서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 있어 1/3의 분량을 차지하는 유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우연찮게 교분을 트고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과 화자의 가족간 관계를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밖에 없었던 선생을 이해함과 동시에 가족과 우리 주변을 돌아볼 수 있다.










소설 초반, 일반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울만큼 염세적이며 비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선생의 모습은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집안에 대학 출신 엘리트인 신체 건강한 남자가 무직으로 삶을 소비하는 듯 보이고, 사랑은 죄악이라는 둥 스스로 세상에 나가 일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둥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한다. 그의 아내는 그가 대학 시절에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싫어서 세상까지 싫어진 것 같다고 낙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생의 비밀은 소설의 후반, 그가 화자에게 서신으로 보낸 고백과 같은 유서에서 모두 드러난다.  


부모 대신에 전적으로 의지했던 숙부의 배신으로 인간 자체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선생은 숙부를 가장 증오하고 혐오한다. 오죽했으면 선생은 젊은 화자에게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남을 신뢰하면서 죽고싶다고 말했을까. 그에게 있어 타인에 대한 신뢰란 진정 갖고 싶지만 갖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결핍 때문에 갈등의 기로에서 늘 포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선생이 K 사건으로 인해 평생을 죄의식에 살았던 이유는 K의 사랑을 가로채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보다, 선생의 행위가 사랑을 쟁취하기보다는 K에 대한 질투와 경쟁심에 기인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의 인간상으로 여겼던 숙부의 모습과 자신이 K에게 저질렀던 행위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선생이 화자에게 '인간은 누구나 여차할 때 악인이 된다' 고 말했던 그 악인이 숙부가 아닌, 바로 선생 자신이었던 것.  


선생의 잘못은 자신의 감정을 K에게 진솔하게 고백하지 않은 점, 사랑보다는 질투와 경쟁심에 눈이 멀어 우정을 저버린 점, 무엇보다 비열하게 친구의 처지와 성정을 이용하고,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지 않은 점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신뢰와 진실을 상실한 선생은 이조차도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지만 안정을 찾지 못한 선생은 평생을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이 죽으면 불행해질 아내를 보며 삶을 연명했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화자를 만나 삶을 이어갈 희망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이 마치 암시라는 듯, 한 시대가 끝난 것처럼 자기의 시대가 끝났다고 여긴다.  


나는 사실 선생의 죽음보다 K가 자살한 이유가 더 궁금했다. 이루지 못한 사랑? 친구의 배신에서 오는 절망? 현실과 동떨어진 부족한 처세에 대한 자괴감? 친구에 대한 복수? 선생은 K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오직 자기만이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과연 그럴까? 서술된 K의 성정으로 봐서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선생의 비열한 계략이 결정적이었다는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선생도 이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과정이야 어찌됐든 선생이 아내를 사랑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K가 그녀를 사랑했고 일정 부분이나마 그로인해 자살한 사실을 아내에게만큼은 끝까지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고, 아내의 기억을 가능한 한 순백의 상태로 보존해 주고 싶은 것이 유일한 바람이었으며 그녀가 살아 있는 한 자기의 고백을 부디 가슴 속에 묻어달라는 당부를 남긴 것을 보면 아내를 깊이 사랑했지싶다. 아내에게 모든 진실을 얘기하고 참회하는 길을 선택했다면 그나마 마음은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을텐데, K가 자살한 직접적인 계기를 모르는 아내에게 자기와 같은 고통을 안겨주기 싫었던 그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K를 더 떨쳐내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그것 때문에 심리적으로 아내를 멀리하게 된 그의 운명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런데 2장에 해당하는 화자 '나'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는 이 소설에 왜 등장했을까? 이 부분을 생각해보다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 '나'와 선생과의 관계, 그리고 '나'와 가족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게 됐다. 소설에서 그려지는 '나'와 부모 형제의 관계는 현실 속 여느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장한 자식은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간섭과 부담으로 다가온다.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이유로 이해하고 이해받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뢰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 대상보다 높다. 반면 이런 절대적인 지지 관계가 결핍된 선생은 늘 진실을 갈구하지만 스스로조차 진실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신뢰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신뢰하고, 어느 대상으로부터 신뢰받는 것은 본인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함을 선생은 너무 늦게 깨달았다. 만약 선생이 아내가 보호하고 지켜줘야할 대상을 넘어서 신뢰하는 대상이었다면 그토록 참담한 삶과 죽음의 길을 가지는 않았을 것 같다.


20여년 전에 읽었을 당시와는 아주 다르게 다가온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젊은 시절에 본 선생은 참으로 어리석기만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선생 내외가, 선생의 죄의식이 가여웠다.  


미래의 모욕과 외로움을 피하기 위해  지금의 쓸쓸한 나를 견디는 중이라는 그의 말이, 자유를 찾기 위해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던,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외롭게 떠났을 그의 모습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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