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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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첫 장에서 바다와 그 주변 여러 민족 및 국가의 역사, 문화, 정치에서 바다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임을 밝힌다. 해양사를 넘어 흑해를 관통하는 문명사를 다룬 이 책은 흑해의 기원과 용어 정의를 시작으로 지리와 생태, 고고학, 정치, 종교, 경제, 문화, 인구 이동, 전쟁, 산업과 인프라 등 다방면으로 흑해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를 지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시간과 반복되는 흥망성쇠의 순간을 순차적으로 서술한다.  
 


 





그가 짚은 대로 흑해는 지중해나 태평양처럼 어떤 이미지나 연상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지중해라고 하면 곧바로 올리브나 지중해 요리, 휴양지를 떠올리는 것과는 달리), 그래서 인접한 지역 밖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역이다. 따라서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흑해 인접 지역의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고대부터 18세기 무렵까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아무래도 집중해서 읽게 되는 지점은 근현대 이후다. 19세기에 흑해는 오스만제국의 약화와 제국이 어떻게 분할될 것인가에 대한 유럽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복잡한 경쟁 구도 속에 자리했고, 두 차례 세계대전이 치러지는 동안 유럽 보호령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었다. 이후 냉전시대에는 서방의 전위대 역할을 했으며 공산주의가 종식된 시점부터는 불안정한 정치적 전환을 겪는 지역이자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들의 지역이 됐고, 유럽 통합의 기획에서 공백 지대가 됐다.  


저자는 이 책이 약한 국가들의 붕괴로 인한 지역 질서 혼란, 국내 분쟁이 국제 갈등으로 번지는 현실 등 흑해 주변 민족들의 역사와 문화, 정치를 하나로 엮어내고 유럽 동남쪽 변경 지역에 대한 오래된 지적 지도를 되살리려는 시도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민족적 정체성 및 동질성, 바다를 통한 해체와 연결을 유럽과 유러시아를 아우르며 흑해와 인접한 국가들의 정치와 경제와 전략적 환경 변화에 따른 형성과 소멸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이 책이 상당히 공을 들여 면밀하게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독자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용어부터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고, 여러 분야를 아울러 서술하고 있음에도 지칭하는 대상이나 단어를 적확하고 세분화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읽는 내내 전해졌다. 고대부터 서유럽 중심의 서사가 주를 이룬 문헌들을 익숙하게 읽어왔다면 동쪽의 민족과 국가(몽골-타타르, 크림-타타르, 오스만 등)를 중심으로 서술한 책을 읽게 되어 개인적으로 유의미했다.  



저자가 흑해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 강조하는 부분은 구분이 아닌 연결과 연속성이다. 역사상 여러 시점에서 흑해 주변 땅들은 변경 혹은 변방으로 불렸다. 제국이나 국가 사이의 위치로 규정되는 독특한 공동체들의 거점이자, 외부인의 문화적.정치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대조점 역할을 해왔던 흑해가 종교 공동체, 언어 집단, 제국, 민족과 국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 온 것임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독자는 책을 통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흑해와 흑해 연안 국가 및 이웃 지역의 현주소와 당면한 문제점들을 짚으면서 그들뿐 아니라 외부인들 역시 바다가 가진 다양성을 포용하기를 기대하는 저자의 바람이 더 크게 와닿는 까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 


읽고나니 새삼, 러시아가 왜 그토록 우크라이나를 탐내고 있는지, 그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님도 알겠더라. 의도치 않았으나 책을 읽고나니 당면한 문제들을 이해하는 데에 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한 셈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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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메초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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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타자에 대한 첫인상이 있다. 독자라면 책을 통한 작가의 첫인상도 있기 마련이다. 성향상 사람이든 책이든 첫인상이 미래의 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그래도 처음 읽은 책에 호감이 가면 즐겨 읽지 않는 주제를 다룬 작품이더라도 그 작가의 글은 가능한 읽어보려고 한다. 나에게 샐리 루니가 이와같은 작가 중 한 명이다.  
 







 
피터와 아이번, 소설은 두 형제의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었던 연인과 헤어지고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는 피터. 내성적이고 비사교적이며 외톨이로 사는 게 익숙하고 가족으로부터 여전히 아이 취급을 받는 아이번. 사고 이후 연인의 미래를 위해 이별을 선택한 실비아. 중년을 바라보면서 20대 청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낯설고 두려운 마거릿.  


지루하고 굳이 살아야할 이유도 방향도 찾지 못하지만 달리 다른 삶을 생각해볼 여력없이 하루하루 지나가버리는 일상. 아내가 떠난 후 묵묵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며 헌신했던 아버지의 죽음은 형제의 갈등을 표면 위로 드러내게 하는 동시에 그들 스스로 자기 삶에 물음표를 놓는 계기가 된다. 



소설 전반에 걸쳐 간결하게 쓰여진 문장은 인물의 심리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세세한 생각의 편린들을 산발적으로 쏟아내듯 서술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죽음, 삶, 혼란, 사랑, 이별, 욕망, 그리움 사이에서 방황하며 위로와 안정을 갈구하는 인물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얼핏 읽으면 마치 아이번만이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처럼 보여지지만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그들 모두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정말 혼자가 좋은 걸까? 공을 들여 대화로써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단편적으로 드러난 것을 통해 지레짐작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는 게 시간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더 편리하기 때문 아닐까. 소설에서 나타나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는 오해와 갈등을 쌓는 원인이 된다. 피터와 아이번의 대화는 형제 사이라고 하기에는 지독하리만치 어색하다.  


피터는 죽고싶을 만큼 외롭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자극을 찾고 지친다. 마거릿은 다람취 쳇바퀴 돌듯 매일 똑같은 일상 중에 아이번과의 설레었던 하룻밤에 대해 누군가와 말하고 싶지만 이런 얘기를 털어놓아도 될만한 사이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 모두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을 꺼리고, 말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다가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말을 삼킨다. 이들 뿐 아니라 나오미, 실비아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나 의도와는 다르게 말하고, 때로는 생각 중 일부를 절사한 상태로 말하다보니 오해가 쌓인다.  


그런데 이런 대화 양상이 소설 밖 현실의 우리에게서 그대로 보여진다. 고정관념, 빗나간(혹은 과잉) 배려, 자존심 등 여러 이유로 우리의 대화는 어긋나기 일쑤다. 진심을 숨기고 쏟아내는 말들. 소설의 후반부에 형제의 말다툼과 폭력에서 피터의 경멸과 혐오과 섞인 말들은 결국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차오르는 분노의 방향은 정작 나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똑같은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소설 속 그들에 세상은 소설 밖 현실과 괴리가 거의 없다. 애증 가득한 가족 관계(부자, 모녀, 형제 등), 같은 업무, 뻔한 반복적 일과. 요즘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이는 까닭도 자극을 찾아 부유하는 피터와 다르지 않으리라.  


읽으면서 그들의 혼란스러운 감정과 고민들이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들에 나를 대입시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그러한 경험을 했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상대를 함부로 재단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소설적 인물로서 아이번과 마거릿의 관계를, 실비아와 나오미와 피터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적어도 현실에서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죽음보다는 살아가는 것에 무게를 두기로 한 피터를 보면서 말이다. 




※ 도서지원

한때는 인생이 무언가로 이어져야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은 모든 갈등과 의문이 더 큰 정점으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이처럼 정작 충분히 고민 해보지 못한 생각들이 그의 삶을, 그의 성격을 떠받친다. 의미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 삶은 어떤 조건일 때 견딜 만할까?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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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고백 머묾 세계문학 사랑 3부작
기 드 모파상 지음, 구영옥 옮김 / 머묾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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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의 단편집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 시절이었으리라. 사실 그 이후로 모파상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지 않았는데,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2,3년 전쯤부터 몇몇 출판사에서 모파상의 단편집을 출간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은 꼭 다시 읽어야지, 마음 먹었었는데 기회가 닿았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목걸이」 「달빛」을 포함해 열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 주요 테마는 사랑.   


돈 앞에서 사랑은 부서지기 쉬운 모래성 같고, 화려한 상류사회에 대한 분에 넘치는 동경은 비극을 불러온다. 집착이 가진 어리석음, 사랑에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사랑 역시 상대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하며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봄이 뿜어내는 향기로움에 취해 함부로 사랑을 속단하지 마시라, 때로는 봄의 속임수일 수도 있으니. 그녀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걸까, 아니면 그저 연민과 공감과 사랑이 그리웠던 걸까. 전투적인 일상 속에 간간이 찾아오는 축제같은 하루. 뜨거운 태양 만큼 강렬했으나 여름밤의 꿈처럼 끝나버린 격정의 시간이여.  


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가족애.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강요되는 관습과 몰이해. 우리 모두  병病, 배신, 돈, 원한, 사건사고, 죽음 등 막연한 미래의 걱정으로 불안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이번에 모파상 단편들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동안 그의 작품을 다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처음 모파상을 읽었던 그때의 나는 그가 쓴 사랑과 삶의 깊이, 그리고 문장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고 경험도 없었다. 아마도 크게 공감하지 못한 채 머릿속에 박힌 당시의 기억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지싶다.   


사랑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 안에서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엿본다. 아내의 실수로 잃어버린 목걸이를 사기 위해 엄청난 빚을 지고도 묵묵히 아내의 짐을 나누는 남편이 있는가하면, 돈 앞에서는 형제도 부모도 나몰라라 하는 이들도 있다. 거금의 유산 앞에서 아내의 외도쯤은 눈감아 버리는 남자가 있는가하면,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여자는 상실감으로 인해 자신이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죽어간다. 떳떳하게 살아가는 인생에 직업의 귀천은 없다. 너도나도 찰라의 행복에 기대어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이 짧은 소설들에서 인생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파상의 글은 참 귀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다.



요 몇 년 사이에 출간한 모파상 단편집들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은 일단 번역이 부드러워 매끄럽게 읽혀서 좋았고, 행간이 넉넉해서 눈의 피로도가 적은 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이 단단해서 만족. 온라인 서점으로 검색해보면 '선물하는 문학'이라고 안내를 하고 있는데, 쓰인대로 선물하기에 예쁜 책이다.  




※ 도서지원

누가 알겠는가? 삶이란 얼마나 기이하고 변덕스러운가! 얼마나 사소한 일로 사람을 망치고 구원하는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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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 오스트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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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1957년에 처음 글렌 굴드와 교우 관계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날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글렌의 전 생애를 담고 있는 평전이다. 이 책에서 독자가 유심히 읽어야할 부분은 이미 알려져 있는 글렌의 음악적 성과보다는 그의 삶 전반을 좌우했던 심리 및 정신적 측면일 듯하다.  


저자 피터 오스트왈드는 글렌이 죽기 5년 전까지 그와 꽤 오랜 기간 교유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겪은 글렌, 그리고 글렌의 아버지를 비롯해 음악원 동기, 가까웠던 친구와 지인, 사촌, 매니저, 스승, 함께 작업했던 음악계 인사 등 가까운 곳에서 그를 지켜보고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세 살 때 이미 절대음감을 가졌고 글자를 깨치기 전에 악보를 먼저 읽었다. 피아노와 자연 안에서만 안정감을 느꼈고, 손가락을 다치는 것을 두려워해 신체 접촉에 대한 두려움이 평생 이어졌다. 고독과 자연과 동물을 사랑해 유언장에 절반이 넘는 재산을 동물 애호 협회에 기부하도록 명시했다. 천재적인 피아노 연주자이지만 정작 본인은 작곡과 지휘에 더 큰 열망과 야심을 가졌다. 꾸준하면도 열정적인 독서가로서 자발적 고립을 즐겼다. 영리한 데다 뛰어난 기억력, 유쾌한 유머 감각, 재치있는 말솜씨까지 갖추었다. 완벽주의자이고 극도의 건강 염려증과 무대 공포증을 평생 안고 살았다. 겨우 서른한 살에 무대 공연을 완전히 은퇴하고 녹음실에서만 연주하기를 고집했다. 죽기 전 몇 년은 연주보다는 제작자에 더 가까웠다. 만년에 확연하게 드러나는 구부정한 등과 건반보다 한참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글렌 굴드하면 떠오르난 아주 대표적인 형상). 이 정도가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글렌 굴드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간단한 정리로 글렌을 정의할 수 없다. 그의 심리와 정신 세계는 좀더 복잡 미묘하다. 글렌은 자신의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평생 절제하며 살겠노라고 결심하며 사람들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음악을 방패 삼아 숨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내면에서는 타인과의 인간적인 접촉을 열망했다(글렌의 이러한 상반된 태도는 이외에도 많이 드러난다). 이는 피아니스트로서 한창 전성기를 향해 질주하고 있는 20대 음악가가 연주 무대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불편하고 창파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공연이 싫다고 글렌 본인이 밝혔듯이 말이다. 


모짜르트에 대해 혹평을 하면서도 그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긴다든가 상반된 결을 가진 쇤베르크와 슈트라우스를 동시에 옹호하는 등 글렌은 모순된 모습을 보이지만 달리 말하면 틀에 갇히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적으로만 접근해 다 끌어안는 성향, 자연과 동물(특히 늙은 동물)을 사랑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에 의존하는 '녹음'을 지향하는 이중성은 대표적인 글렌의 특이성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946년, 글렌이 열 네 살 된던 해의 일화다. 소년이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고 있을 때 집안일을 하는 아주머니가 피아노 가까이에서 진공청소기를 켰고, 순간 연주는 기계 소음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때 글렌은 자신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지만, 대신 그 소리를 연주해 내는 동작을 더욱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물론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건반의 감촉으로 그것이 어떻게 소리로 연결되는지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무슨 소리를 내고 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을 수는 없었다.(p165)" 이 경험을 통해 글렌은 손가락의 움직임을 더욱 명료하게 의식하면서 내면에 집중하게 된다. 겨우 열네 살 소년이 단순한 경험을 통해 내면의 세계를 깨닫다니. 문제는 상상력의 산물이 현현하다보니 실제 소리에는 만족하지 못해 점점 더 완벽주의가 되어가면서 스스로를 괴롭힌다는 데에 있었다.  


ㅡ 


글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침해당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언제나 관계를 끝냈다. 그에게 있어서 1순위는 자유와 음악이었다. 그러니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이었을 터다. 세상의 잣대로 봤을 때 글렌 굴드는 사회적으로 미성숙하거나 부적응자로 보일 법하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그는 누구보다 음악에 헌신했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사람이다. 모든 걸 차치하고 일단 그의 바흐(특히 젊은 시절의 바흐)를 들어보시라. 이십대 초반에 심코 호숫가 오두막에 틀어박혀 바흐를 연구한 그의 결과물이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렌과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글렌은 함께 일하기 까다롭고 상당히 힘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러웠고, 다시 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에만해도 나는 글렌 굴드를 좀더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음악을, 혹은 음악가를 꼭 이해해야만 하는가에 물음표를 놓는다. 글렌 굴드라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다면 굳이 애쓸 필요 없다. 그저 그의 연주를 들으면 된다. 그가 살아있다면 그 역시 인간 글렌 굴드에 대한 이해보다 자신의 음악에 심취해주기를 바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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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의 마음 - 도망친 곳에서 발견한 기쁨
정고요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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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시, 짧은 소설 등이 담긴 산문집이다. 강릉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저자가 그곳에서의 일상과 산책을 통해 느낀 감상과 깨달음을 잔잔하게 풀어냈다.  

불과 얼마 전에 강릉을 다녀왔고, 요 며칠 전에는 속초에서 삼일을 머물렀다. 이때 읽으면 좋겠다싶어서 동행했는데, 읽는 동안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의도치 않게 하룻밤 사이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처음 서너쪽은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얘기인가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마음에 내 마음이 찰떡처럼 붙어버렸다.   




 



 
「'곁'이란 공간도 '유니콘'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는 타인의 옆으로는 쉽게 갈 수 있어도 타인의 곁으로 가기는 쉽지 않다. 타인이 곁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곁에 가지 못한다. 갈 수가 없다. 곁이라는 건, 있는 공간이 아니고 만들어지는 공간이니까. 옆과는 다르다. 옆에 갈 수는 있다. 그러나 곁은 타인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주지 않는 한 더 이상 갈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곁이라는 공간은 타인이 우리에게 허락해야 마련되는 공간이다. 한 세계와 한 세계가 만날 때 생기는 틈 같은 것. (p25)」  


♣ 나는 종종 친해지기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곁을 좀 내어달라는 말도 듣곤 한다. 그럴때면 가까워지는 데에 시간이 필요한 부류라고 핑계를 대며 양해를 구한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사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누군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데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더 가깝다. 저자의 말처럼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세계라면, 나는 다른 세계를 만나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ㅡ  


「잘하든 못하든 여전히 하고 싶다는 것, 잘하든 못하든 꾸준히 하는 게 하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이 나의 피아노에 대한 소박한 자랑이다. (p101)」  


♣ 이 대목도 참 반갑더라. 잘하든 못하든 꾸준히 하는 것이라면 피아노, 요가, 독서. 어쩌면 평생 쥐고 살았던 성실함과 인내심이 현재 내가 그럭저럭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으리라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위무해 본다.   


ㅡ  


「인생이란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인생은 나와 관계된 사람과 나누어 갖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나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나누어 갖는다. 아이러니한 점은 나와 관계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p123)」  


♣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말이 늘 입속에 맴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제는 저자가 짚은대로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부모, 친구, 동료 심지어 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나의 삶과 크고 작게 관련이 있다. 그러니 누구도 나만을 위해서 살기란 어렵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은 어디까지인지 의문이기도 하고.   


ㅡ  


저자 스스로 산책자라고 자처하는 만큼 산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산책이야말로 시간을 두고 한 도시와 천천히 가까워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오늘 춘천을 다녀왔다. 책을 읽다가 점심도 먹을 겸 육림고개와 중앙시장을 둘러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춘천은 꽤 자주 찾는 곳이지만, 시내 한가운데를 관통해 동네를 산책하는 건 드문 일이다. 내면의 지도를 만들어간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 하루였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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