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을유세계문학전집 149
마이클 온다치 지음, 김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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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종전, 산 지롤라모 빌라에 상실을 안고 있는 이들이 머물고 있다. 아버지와 연인이 죽고 아이까지 유산한 뒤 사람들과 담을 쌓은 간호사 해나, 두 손가락이 잘린 카라바조, 의사의 길이 정해져 있었으나 반제국주의자인 형을 대신해 자원 입대한 후 영국으로 파병된 시크교도 인도인 청년 키르팔 싱, 그리고 역사, 지리, 문화, 예술 등 온갖 해박한 지식과 자신의 여행 경로를 머릿속에 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만 기억하지 못하는 수수께끼같은 남자 잉글리시 페이션트. 
 








 
이야기는 영국인 환자가 왜, 어떤 과정으로 전신 화상을 입은 채 이탈리아에 있는 영국군 병원까지 흘러들어왔는지를 따라간다. 소설은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두 남녀의 사랑과 네 인물을 통해 시대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에서도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독자로서 갖는 가장 큰 질문은, 해나는 왜, 굳이 생존의 위험과 불편을 무릎쓰고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영국인 환자와 남는 것을 선택했냐는 점이다. 그녀는 영국인 환자를 만나기 전까지 1년 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던 해나는 빌라에 남은 그때서야 거울을 본다.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알아보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전쟁 중에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을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싶다.  


전쟁의 끔찍한 참상과 억울한 죽음, 제국주의와 인종차별 등 눈여겨 볼 대목들이 있지만 이 작품은 분명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불륜이라 비난받을 알마시와 캐서린의 비극적 사랑, 끝나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지 못했던 남자의 고통은 지난 과거사처럼 흐르지만 여러 이유로 결실을 맺지 못했던 해나와 싱의 사랑으로 이어진다. 아마 이 소설이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그 아름다운만큼 가슴이 아픈 건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죽음으로써 사랑을 끝낸 연인, 이별로써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 거기에는 전쟁이라는 비극이 존재한다. 그런데 전쟁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그들 모두 만날 일도 없었을 거라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설을 다 읽고, 도대체 리뷰를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다. 위에도 썼듯이, 시사적인 부분들이나 상징하는 바들이 있지만 일일이 따지고 의미를 찾기에 이 소설은 그들의 사랑만으로도 이미 차고 넘치도록 아름답다. (특히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서로를 그리워 하는 해나와 싱의 모습은 뭉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헛헛하다.)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며 읽는 것만으로도 눈을 뗄 수 없었고, 다른 것들은 염두에 두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랄프 파인즈의 리즈 정점을 찍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 소설과 영화는 조금씩 다른 점이 있다. 무엇보다 킵(싱)의 서사가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아직 영화와 소설을 다 접하지 않은 독자라면 소설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전쟁을 관통한 그들의 사랑이 남긴 여운 덕분에 지금 나는 꽤 뭉글하다. 




사족 
불발탄 및 시한폭탄 처리 부대원의 수명이 10주였단다. 지식과 장비 부족으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해야했던 그들.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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