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원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9
제럴드 머네인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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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세 개의 장章으로 나뉘어지는 이 소설은 화자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첫 번째 장에서는 20년 전, 화자가 영화 <내륙>을 찍기 위해 호주의 내륙 깊숙한 어느 평원 마을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후원을 약속한 대지주의 저택으로 들어간다. 두 번째 장은 화자가 대지주 저택에 머물면서 보고, 경험하고, 공부한 것 들과 그에 따른 사유와 영감, 영화적 상상에 대해 적은 메모의 내용이다. 세 번째 장은 저택에 머물면서 지주들과 후원을 받는 다른 전문가들을 관찰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화자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일단 독특한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여타의 소설들과 다른 점을 꼽아보자면,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20년 전 회상에 머물고 있다. 보통 20년 전에서 시작하면 결론은 현재에 이르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더구나 화자가 영화 제작자로서 '평원'을 영상화하는 것에 무척 애를 썼음에도 그에 대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가장 큰 특이점은 화자와 대지주, 그리고 그의 딸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등장인물이 없는데다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 부풀려서 표현하자면 거의 1인극에 가깝다. 심지어 줄거리도 없다(는 게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굳이 빗대어 본다면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른다.  


ㅡ 


소설에서 '평원인'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굳이 그들을 하나의 표현으로 규정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대지주들에게 후원을 받고자 면접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영화 제작자인 화자를 비롯해 시인, 화가, 디자이너, 종교인, 가구 장인 등 다양한데, 그들은 후원을 받기 위해 자신의 분야와 접목한 평원에 대해 온갖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고, 평원을 향한 자신들의 사랑이 얼마나 열정적인지 고백한다. 그런데 그것은 호주 내륙의 '평원인'들의 '평원'이 아니다. 대지주들은 자신들만의 평원의 서사를 바란다(그런 면에서 호주 내륙 평원의 역사까지 애써 공부한 화자의 노력은 보람이 있었던 셈이다). 화자가 경험도 없는 대지주의 딸을 주인공으로 삼기로 한 데에는 후원을 받겠다는 욕심보다는 이러한 평원인들의 의도와 자부심을 이해했기 때문인 듯하다.   


첫 번째 장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장이 독자가 깊게 읽어야하는 부분이라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소설은 광활한 평원을 배경으로 하지만 생태소설이 아니고, 드라마적이지도 않다. 첫 번째 장에서 비평가와 예술가들을 통해 무심히 툭 던진듯한 질문, '평원의 본질적인 정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두세 번째 장에서 근접하게나마 찾을 수 있다. 파벌 싸움으로, 정치적으로, 산업적으로 이용될 위기를 넘기고 평원의 문화를 이루기까지의 역사를 되짚는 과정은 인류사를 축약한 듯한 느낌도 든다. 


첫 장에서 대지주들은 피부색, 새(메추라기), 탐험가, 여인, 소설 등을 평원과 연관지어 무작위로 대화를 한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이러나 싶었는데 문득 이들의 대화 방식 그 자체가 평원이 갖는 속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광활하고 자연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계절과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색깔을 보여주고 있어 하나로 단정할 수 없으며, 이 평원을 배경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달라지지 않으며 영원히 정복당하지 않는  속성.  


ㅡ 


두 번째 장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머릿속에 맴돌았던 단어들은 시간, 사변(추론)과 경험, 철학적 사유를 통한 역사와 예술, 그리고 이것들을 아우르는 서사다.
찍혀서 박제된 사진(장면)은 곧 보이는 세계이다. 그러나 보여지는 장면과 그 안의 서사에 대한 기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이는 논리적 이성으로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으로써 평원을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화자의 고민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여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후원을 받아가면서 평원을 연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며, 대부분 후원을 받는 자들의 자기 만족에 그치고 말, 정작 대지주 자신들에게는 만족할 만한 결과에 도달하지 못함에도 그들은 무엇을 얻고자 꾸준히 후원을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삶이 갖는 속성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는 것, 즉 성찰이야말로 우리가 살면서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닌지, 나 혼자만의 답을 찾았다. 


이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입을 빌어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아마 그에 대한 독자의 답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다소 난감한 면도 없지 않았으나 읽고 쓰다보니 작가가 상당히 지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농담이다). 적은 분량임에도 천천히, 진지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책을 읽을 예정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꼭 쓰기를 병행하기를 추천한다.  




※ 도서지원
  

어떤 역사가들은 평원이란 현상은 전반적으로 평원인과 호주인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처음에는 지극히 평평하고 특색 없이 보였으나, 나중에는 미묘한 풍경이 끝없이 변주되고 눈에 잘 띄지는 않아도 야생 생물이 풍부한 곳임을 알 수 있었다. 평원인은 이러한 발견을 감사히 여기고 묘사하려 노력하는 중에 남다른 관찰력을 갖추면서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를 식별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훗날 세대들은 선조들이 안개 속으로 아득히 펼쳐지는 수 킬로미터에 걸친 초원을 마주하듯 삶과 예술에 반응했다. 그들은 이 세상 자체를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 속 또하나의 평원으로 인식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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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 거장의 재발견, 윌리엄 해즐릿 국내 첫 에세이집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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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랄함을 넘어서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직설적인, 속시원하고 통쾌한 에세이다. 한편으로는 따끔거리기도 했고.  






 
 
혐오를 혐오하지 않는, 혐오의 역설.
어지간한 자극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우리의 강심장을 향해 윌리엄 해즐릿은 날카롭게 일갈한다. 무서움을 타고 싶어서 유령을 만들어 내고, 박해하기를 좋아해서 마녀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말하는 그에 따르면 우리가 열망하는 것은 흥분의 양이다. 우리는 무관심하고 권태로운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악의와 폭력과 혐오를 드러내면 안 되기에 유령이나 마녀처럼 대상을 만들어 낸다. 이 논리를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행, 가짜뉴스, 딥페이크 등 현재 우리 사회에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에 대입해보면 이 모든 것들의 원인이 쉽게 납득이 되고 만다. 


해즐릿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죽음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없앨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삶에 적절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말초적인 자극과 격정을 만족시키려고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면 굳이 삶에 머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삶에서 얻은 좋은 것이 있다면 죽음을 맞을 때의 고통은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부분에서 문득 나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가까운 이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그들의 죽음은 어떠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결국 죽음이 곧 인생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과한 걸까? 


이외에도 질투심, 자기애, 학자들의 무지 등에 대한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아니면 알면서도 아닌 척 했던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꽁꽁 숨겨놓은 진짜 속마음과 욕구를 하나하나 들춰내는 글들이다.  



해즐릿의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는 정말 많은 부분에서 가식적이고, 문명이라는 교육과 관습으로 인해 가식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명분을 만들어 더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으로 읽히는데, 동의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


이렇게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 또 있을까... .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지금도 쉽게 만나기 어려운 글이지 않을까싶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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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녀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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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하고 서정적이기만 할 것 같은 제목과는 다르게 소설은 때때로 가혹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일단, 이 소설이 1960년에 처음 출간 당시 아일랜드 내에서 외설적이고 부적절하다는 이유로 격럴한 항의와 비난을 받으며 금서로 지정됐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두 소녀의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4년을 다루는 소설에서는 한창 성적 호기심을 갖을 사춘기 소녀들의 동성애적 기운이 감지되는 우정, 캐슬린을 향한 젠틀먼의 아동성애, 아버지 뻘 유부남과의 교제, 그리고 두 소녀의 성적 본능에 대한 갈망 등이 문제가 됐던 게 아닐까 싶은데, 소설에서 묘사되는 대부분의 장면이 '수위'를 논할 필요도 없을 만큼 두드러지지 않는다. 짐작컨대 표현 상의 문제가 아니라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기독교적 관습에 의한 사회 정서가 가장 크지 않았을까 싶다.




 

 



순종적인 모범생 캐슬린과 자유분방한 말썽꾸러기 바바. 언뜻 보기에는 유복하고 행동하는 데에 거칠 것이 없는 바바가 캐슬린을 집중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히고, 캐슬린은 바바에게 일방적으로 속수무책 당하는 것 같다. 그러나 두 소녀의 유대는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쪽은 정숙한 아내와 순종적이며 모범적인 딸을 원하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를 두고 있고, 다른 한쪽은 알콜 및 도박 중독에 가정폭력을 휘두르며 결국 재산을 전부 탕진하고 아내를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사람이 아버지다. 자유를 꿈꾸며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거나 혹은 삶에 지칠대로 지쳐버린 엄마 들은 딸의 감정을 헤어릴 여력이 없다.  


그렇게 야비하게 캐슬린을 괴롭히면서도 그녀가 가장 큰 어려움이 닥치면 캐슬린의 곁에 있는 사람은 바바다. 그리고 바바가 일을 벌리면 결국 고초를 겪는 사람이 자신이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캐슬린 역시 바바의 손을 놓지 않는다. 질투와 시기, 연민과 동경을 동반한 이 연대는 정서적으로 지독하게 외로웠던 두 소녀의 버팀목이였을 터다.   




이 소설이 정작 금서가 된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이런저런 내용보다는 이 소설의 결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들의 선택이 한순간의 일탈로 취급되면서 후회와 반성과 회개를 통해 용서를 구하고 정숙한 여인으로서 거듭나는 장면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의 삶의 행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어느 시각에서는 불행하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소설 어디에도 그들에게 후회는 없었다(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비록 슬펐을지언정.  


 『시골 소녀들』 3부작 중에서 첫번째 이야기에 해당하는 이 소설은 보는 시각에 따라 열린 결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 누가 알겠나.  


아일랜드가 아니더라도, 1900년대가 아니더라도, 성장기 한 시기를 지나온 혹은 지나고 있는 여성이라면 캐슬린과 바바가 갈망했던 자유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도서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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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루시 - 루시 바턴 시리즈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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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남편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나고 외로움으로 힘든 루시. 이혼 후 친구로 지내는 첫번째 남편 윌리엄으로부터 함께 전염병을 피해 당분간 시골 바닷가 마을로 피해있자는 권유를 받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를 따라 메인 해안에 있는 크로스비라는 이름의 타운에 집을 빌려 머문다. 소설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뉴욕 한복판으로 밀려들면서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점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어내는 데에 아주 탁월하는 것이다. 화자를 중심으로 그의 가족, 친구, 이웃을 넘어서 주변 인물들이 가지가 가지를 치듯 이어지는 서사의 과정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우며 감동스럽다. 





 



등장인물 중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밥 버지스다. 그는 상대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자신이 듣고 있다는 신호를 적절하게 보낸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자신의 경험도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밥은 루시가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해준다. 가족 누구도 루시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다. 그리고 루시는 남편이었던 윌리엄과 데이비드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밥에게 한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이다. 예전부터 간혹 (아주 드물게) 밥과 같은 사람을 볼 때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에너지를 얻는지 궁금했다. 사실 나 자신을 납득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타자를 수용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하겠는가.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윌리엄이 이부누이를 만나고 와서 어린애처럼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일평생 자신이 외동인 줄 알았고, 자신을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어머니의 비정한 과거를 알게 된,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이부누이 로이스 부바의 존재를 알게 된 윌리엄이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설레임과 행복이었다. 루시는 그때서야 단 한 번도 생각치 못했던 윌리엄이 가진 외로움의 깊이를 깨닫는다. 그는 세 명의 아내와 이혼했고, 딸이 셋이고, 결혼 생활 중에도 만나는 다른 여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윌리엄은 외롭다고 느꼈다. 루시가 그랬듯, 누구도 윌리엄의 내면 밑바닥에 깔린 외로움을 알아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 


얼핏, 팬데믹 시대에 겪어야 했던 단절과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혐오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팬데믹이 아니라더라도 우리는 '이미' 타인의 감정에 무감하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안부를 건네는 것에 인색했으며, 지속적으로 폭력과 혐오를 반복해 왔음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코비드 시국을 빌어 소통의 부재와 타인에 대한 혐오가 지속되어 오고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마치 우리가 외부적 영향으로 인간성을 상실한 것처럼 굴지만, 실은 훨씬 이전부터 '안전한 거리두기'를 해왔음을, 대화와 경청, 공감과 이해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으로 읽혔다.   


누구나 혼자가 되는 것은 두렵다. 이 두려움은 전염병 때문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물론 팬데믹 시대에 그 두려움이 극대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혼자'라는 데에서 오는 무서운 외로움을 감정 소모의 가성비를 따져가며 애써 감춘다. 감정에 손익을 매겨가며. 작가는 우리가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며 눌러왔던 상실과 고립을 이제 서로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럼으로써 더 자유로워지라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결국 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혼자 짊어져야 한다. 그러니 그때 감당해야할 외로움과 두려움이 별 거 아닐 수 있도록,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서로에게 다정하고, 서로를 보살피기를.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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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담덕 9 - 5국 전쟁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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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에 이어 영일만에 나타난 왜선의 등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399년부터 왜국 연합군의 신라 침략과 숙군성 공략, 대방 전투가 벌어진 404년까지 다룬다.


소설은 신라의 '역성혁명' 이후의 정치적 상황과 고구려의 성城(국내성, 평양성, 국원성)에 대한 지리적 위치와 환경, 그리고 세 개 성이 국외 정세에 따른 전략적 요충지로서 군사적.정치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서술한다. 




 



9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새 개의 사건인데, 먼저 400년에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왜국 연합군과 백제의 신라 침공이다(사실상 백제는 크게 한 일이 없다만). 관미성을 빼앗기고 절치부심 복수의 날만을 기다리는 백제, 여러 욕심이 버무려진 왜국, 여전히 권좌를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여기며 다시 대륙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해평의 분노가 절묘하게 맞물려 전쟁이 벌어진다.


두 번째는 고구려의 숙군성 공략. 
예정에 없던 전투였는데, 후연이 고구려의 신성과 남소성을 건드리고 5천 호 고구려 백성을 포로로 끌고 가 노역에 이용하는 바람에 일어났다. 숙군성 공략의 단 하나의 목표는 2년 전에 끌려간 고구려 백성 5천 호를 다시 데려오는 것. 단 시간에 끝내고 목적한 바를 이룬 후 바로 퇴각하는 것도 멋지더라. 후연의 수도성까지 노려볼만 했을텐데. 북위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었다하더라도.


세 번째는 대방 전투.
이 전투는 국가 대 국가의 전투라기보다는 단순 노략질이 목적인 대규모 도적떼를 처리하는 수준이어서 병력의 규모만 아니면 '전투'라는 용어가 민망할 지경이다. 물론 소설의 허구적 상상이지만 길잡이가 되어준 백제의 사두 장군까지 그들의 행태에 낯뜨거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  


ㅡ 


9권에서는 각 나라의 지도자들의 면면이 드러나는 점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특히 모용정과 모용희를 보면서 규모를 떠나 리더가 집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그에 따라 결말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신하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으니 대립하는 의견들을 조율하고, 자신의 소신이나 신념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여러 의견을 합리적으로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춘 군주. 과거의 잘못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현재에 적용하여 더 나은 해결책을 도출해내는 리더십. 참 만나기 어려운 지도자다. 


이 무렵, 담덕의 나이는 이십대 중후반이다.
그는 꿈이 많아서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더라. 사방에 적을 두고 모든 사항을 면밀히 살펴야 했던 젊은 군주. 이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를 어떻게 견뎠을까싶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대임을 감안해도 삼십대 젊은 나이에 죽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아버지가 잘 닦아놓아서 장수왕은 그야말로 천수를 넘겨 산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남은 마지막 10권.
모용희.모용운과 엮인 후연과의 에피소드가 있지만, 그보다는 동부여 토벌을 크게 담으리라 예상한다. 무엇보다 이 대장정이 어떻게 마무리될지가 궁금하다.


10권을 기다리며.  




#도서지원
 
 

‘군주는 그래야지. 지상의 별처럼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그 빛의 세례를 주어야지.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어야지. 가공할 무력으로 전쟁을 그치고(武), 인내와 사랑으로 고통을 없애고(無), 모든 이들이 희열로 춤추는(舞), 무무무武無舞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진정한 군주의 도가 아닐 것인가?‘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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