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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멜로디
조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책의 제목에서도 연상된 작가의 전작.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이름을 본 순간, 혹시나 싶어 그제서야 온라인 서점의 소개글을 읽었다. 역시나 <빛의 호위>. 소설은 이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2022년에서 2023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소설은 권은과 승준의 관점을 번걸아가며 서술하면서 두 사람,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한다. 부모로부터,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인류로부터 버려진 자들이 겪는 절망과 공허를 통해 삶이 갖는 모순과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실한 연대의 필요성을 현실적으로 그린다.
독일 드레스덴에 소이탄을 퍼부은 영국 공군 소속의 조종사였던 콜린 앤더슨, 평생에 걸쳐 분쟁의 현장을 사진으로 증명하며 반전운동을 한 그의 아들 게리. 게리의 여동생 애나는 반전운동가였던 오빠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버지였다고 말하는데, 이는 난민 소녀를 받아들이고 후원하며 양육해온 애나 자신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태어난 지 두 달여 된 딸에게 아름답고 따뜻하고 좋은 것만 보고 듣게 하고 싶다는 민영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말을 듣는 다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며 남편인 승준이 우크라이나 여성의 인터뷰를 맡은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그리고 애나의 아들 데이비드는 브렉시트에 반대하면서도 난민이나 이민자 유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서적으로 불우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후 3개월 딸에게 투영한 민영과 비현실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어머니 애나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지 않는 데이비드가 갖는 모순은 우리 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모습이기도 하다.
유년 시절, 같은 반 급우였던 승준이 건넨 반자동 카메라가 자신을 살게 했다고 말하는 권은. 어느 순간 자신을 살게 했던 카메라가 자각하지 못한 채 신념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녀는 레스보스섬에서 살마를 알아갈수록 살마를 카메라에 담지 못한다. 자신의 유년 시절과 너무 닮아 있는 살마. 그래서, 피사체와의 거리가 유지되지 않아서, 살마를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이는 프레임 밖 피사체가 살아갈 실제 삶에 무지했다는, 사진을 위해 피사체의 고통을 이용해온 건지도 모른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이는 자신이 이룩해 놓은 지난 시간들이 결국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자기 만족에 불과할 수 있다는 허무로 이어진다. 권은은 역사의 증언이 될 거라는 숭고함과 헌신이라고 믿어왔던 신념이 자신이 부여한 허울 좋은 욕망일 수 있음을 반추하게 했다고 말한다. 독자는 이 부분을 어떻게 판단할까.
참전 당시 콜린은 스무 살 어린 청년이었다. 콜린은 자신은 군수 시설을 목표로 투하했을 뿐, 드레스덴이 민간인 지역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말해왔다. 그는 이 작전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오히려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민간인을 죽여 보복하고 독일을 동요하게 해서 항복을 이끌어내는 것. 그때의 기억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고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콜린은 모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몰랐다고해서 무엇이 달라질까. 단지 죄책감의 무게가 조금 덜해지려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콜린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나는 권은의 자각에서 다시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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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무심코 건넨 카메라 한 대가 한쪽 다리를 잃은 권은의 삶을 결정했다고 여기며 자책하는 승준. 하지만 만약 그때 어린 소년이 또래의 그녀에게 카메라를 건네지 않았다면 소녀가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었을 것이다. 열두 살 그 시절, 권은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찾아오는 반장(승준)을 간절히 기다렸었다. 이후 어른이 되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의 불행을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자괴감을 느꼈을 때, 다리를 잃고 의족을 바라볼 때, 그럴 때마다 유년 시절 승준을 기다렸던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기다림만이 살아갈 이유였던 열두 살의 나날들을.
사지를 종횡무진 누비며 죽는 순간까지 카메라와 함께 했던 게리는 수십 번의 생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다. 바로 옆에 있던 동료를 관통한 그 총알은 죽음과 삶을 한 프레임에 담고 있다. 이처럼 생의 매순간에는 우리가 미처 헤아리지 못하는 많은 일들과 감정이 혼재해 있다.
당연하게 지속될 것 같은 우리 일상의 평화, 굳이 전쟁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깨질 수 있다. 일상이 붕괴된 이들의 사연이 언제 나의 사연이 될 지 알 수 없다. 또한 생존과 죽음은 이어져 있다. 천운으로 비켜간 총알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순간, 비켜간 총알을 경험한다. 그 말은 언제든 총알이 나를 향해 날아올 수 있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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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다 읽고나니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 언급했던 '연루됨'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떠오른다. 권은과 승준, 게리와 콜린, 권은과 살마와 애나, 승준 - 권은 - 나스차 - 살마, 그리고 알마를 살린 장 베른의 악보와 권은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반자동 카메라. 정서적으로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살마에 대한 권은의 이해와 살마의 그 짧은 수면 시간만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을 담은 공감. 이들 모두 종과 횡으로 연루된다.
권은이 수 년 만에 승준의 메시지를 받고 답장을 보내는 대상은 승준의 딸 지유다. 과거는 현재와 이어져 있으며, 어떻게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승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권은을 살렸던 것처럼, 권은 역시 중년의 한가운데 서 있는 지금 그들의 삶이 지유의 미래에 보탬이 되기를, 그리고 한 시대를 통과해 온 자신들의 삶을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사족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해주는 소설이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