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겨울을 견뎠나 봐 - 봄을 맞이한 자립준비청년 8명의 이야기
몽실 지음 / 호밀밭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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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 시설에서 생활하다 보호 종료로 자립한 여덟 명의 청.장년 젊은이들이 자신에 대해 직접 쓴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보육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의 사례는 다양하다. 신생아 때 맡겨진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가정폭력에 의해서 분리 조치된다. 원인과 사연이야 저마다 다르지만, 가정 경제 붕괴 - 부모의 알코올 중독 및 가정 폭력 - 부모의 이혼(혹은 부모 한쪽의 가출) 같은, 이와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가장 가슴 아픈 지점은, 아이들은 가족이 흩어지고 혼자가 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점이다. 또한  피해자로서 상처를 치유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도 무척 안타까웠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어른의 역할이 중요다는 것을 깨닫는다. 특히 유아동 시기의 돌봄은 정말 중요하다.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는 이가 반드시 부모여야하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그들의 말에 귀기울여주고 관심을 보이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쓰였던 부분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앞선 경험을 나누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정은 본인이 하더라도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 년에서 수십 년을 먼저 살아본 인생 선배의 조언을 듣고 충분히 고민할 기회가 그들에게는 거의 없다. 모든 것들을 맨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해야만 하니 그 충격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필자가 있다. 고비 때마다 스스로에게 "그래서?"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필자.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다. 주어진 상황이 달라지지 않음이 분명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임을 어린 나이에 터득하고, '혼자 자립'이 아닌 '더불아 하는 자립'의 가치를 깨달은 그는 보육 시설에 있는 이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없지만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것일테다.  


녹록치 않은 여건에서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성장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음을 칭찬하고 앞으로의 삶을 응원한다. 그런데 단지 격려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 필자들이 글을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육 시설의 어린 아이들이 좀더 양질의 보호받기를 바라고, 보호 종료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홀로 세상에 나가야 할 청년들을 위한 자립 지원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람하기 때문일 것이다.  


몽실은 같은 시설에서 자란 자립준비청년이 모인 공동체다. 자립 멘토링 활등을 시작으로 보육 시설에서 퇴소한 후 자립한 청년들이 후배를 돕기 위해 카페를 만들었다. 모임원들이 각자 빚을 내어 돈을 모았고, 자금이 턱없이 부족해 인테리어 공사부터 기자재 구입까지 직접 뛰어 들었다. 하지만 계약 기간인 2년을 끝으로 재연장하지 않고 종료 예정이다. 카페를 열면서 각자 얻은 빚을 갚을 정도의 매출도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가 문을 닫게 되면서 그 빚은 각자가 알아서 갚아야 했다. 이러한 내용을 읽으면서 제도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실린 글의 필자들은 건강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상처들을 모두 극복했는지, 이 책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과거에 혹독한 터널을 지나왔음에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스스로 깨우친 이들이다.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낸 가치를 잊지 않는다면, 그들은 또다시 이겨내고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들의 건강한 일상을 기원한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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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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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처음 만난 두 남녀. 크리스마스 트리 뒤에 숨어있다시피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온 여자. "나 클라라예요."  


소설은, 처음 만난 여성을 향한 끌림,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낯선 감정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게 맞는 건지, 그리고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뒤섞이며 갈등하는 첫 번째 밤부터 여덟 번의 밤에 걸친 그들의 심리를 섬세하고 예리하게 포착한다.   


이 이야기는 이렇다하게 정리할 만한 줄거리는 없다고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애치먼의 소설이 늘 그랬듯 이 소설의 묘미는 두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황과 그에 따른 심리적 묘사가 현실의 우리 이야기처럼 아주 사실적이면서 아름답다는 데에 있다.  






 
가장 인상적인 밤을 꼽자면 세 번째 밤과 다섯 번째 밤. 세 번째 밤이 두 사람의 사이의 감정이나 관계가 전환점을 맞는 밤이었다면 다섯 번째 밤은 서로의 감정을 확신하는 밤이다. 특히 세 번째 밤에 클라라는 화자 '나'를 데리고 시골에 있는 전 연인인 잉키의 조부모 집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나'는 클라라와 잉키의 과거가 어땠을지를 떠올리고 짐작하는 자신에게 지치는데, 이를 계기로 클라라에 대한 감정이 자기와는 확연하게 다른 상대에게 느끼는 단순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사랑에 가까운 감정인지 고민한다. 클라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머릿속에서는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리지만, 정작 입밖으로는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나'. 그리고 다섯 번째 밤에 이르러서 사랑과 우정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비록 의견에 차이가 있고 조금 다툼이 있었을지라도 그 말다툼 끝에 서로의 감정을 더 확실하게 알아간다. 이때 명확하게 드러난 '나'의 진심.  


ㅡ 


이십 대 후반, 사랑이 처음도 아니고 상처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새로운 사랑은 설렘을 동반한다. 어쩌면 상처가 있어서 조심스럽게 다가간 사랑에 깊이 빠지면 더 헤어나오기가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지나간 사랑을 가슴에 채 묻기도 전에 다시 찾아온 사랑을 대하는 두 젊은 연인의 감정ㅡ갈망, 그리움, 공감, 조심스러움, 질투, 질투에 의한 유치함, 불안과 오해, 조바심, 연민 등ㅡ을 아주 세밀하고 밀도있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 하나로 행복과 불행이, 희망과 절망이 롤로코스터를 탄다. 사랑할수록 고통스러운 기분이라니.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실이나 자신 혹은 상대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묻지 않고 미루어 짐작만으로 판단할 때 지옥은 시작된다. 


사랑은 어차피 서로 다른 종의 만남이다. 그 다름에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고, 그 다름에 지쳐 헤어진다. 엉뚱함이 매력적이었다가 예측이 안 되는 엉뚱함을 감당 못하기도 하고, 말갛게 훤히 보이는 에상 가능한 상대에 안정감을 느끼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그 일관성이 지루함으로 다가온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사랑을 대하는 태도도, 사랑에 대한 정의도, 색깔도 저마다 다르다. 온갖 생각과 감정이 뒤섞여 스스로조차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소설 속 두 연인, 책을 읽는 우리, 여전히 사랑을 갈망한다.  



「여섯 번째 밤」에서 연인의 실랑이를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라이처」와 비유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곡에서 1악장이 그 느낌과 가장 흡사하다. 개인적으로도 1악장을 가장 좋아하는데, 피아노와 바이올린, 두 악기가 경쟁하듯 연주하는, 그러면서 조화가 무척 아름다운 곡이다. 쓰다보니 영락없이 프린츠와 클라라다.  




※ 도서지원

우리가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매 굽이에서 속이게 되기를 언제나 갈망했던 대로의 우리의 삶. 끝내 알맞은 조성으로 조옮김되고, 알맞은 시제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우리에게 또 우리에게만 알맞은 언어로 다시 말해진 우리의 삶.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밝혀지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부터 움켜쥐어지고, 도저히 낯선 사람일 리 없지만 그녀가 낯선 사람밖에는 무엇도 아니기에, ‘오늘 밤 나는 네 삶과 삶의 방식에 네가 쓰는 얼굴이야, 오늘 밤 나는 너를 돌아보는 세상을 향한 너의 눈이야, 나 클라라에요‘ 하고 말하는 시선으로 우리의 눈길을 붙드는 사람 때문에 끝내 실재가 되고 빛나게 된 우리의 삶. - P14

그녀를 기다리는 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녀를 기다리는 나의 방식에 그녀가 콧방귀를 뀌리라는 생각마저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두 시간 만에 우리가 영화관을 떠나게 되자마자 그녀가 돌연 작별 인사를 건네는 상황을 미리 연습하는 것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나를 더더욱 행복하게 한 것은, 떨어져 보낸 지 채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우리가 다시 함께였다는 점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존재가 오늘이 흘러가게 된 방식을 내가 좋아하게 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내 삶과 삶의 방식의 얼굴이자, 나를 되쏘아보는 세상을 향한 나의 눈이었다. - P237

나는 왜 그녀를 믿지 않았던 걸까? 왜 그녀를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이 여자는 추워하는 거다. 왜 그녀에 관해서 뭔가 다른 것을 찾고, 왜 말과 다른 이유를 그렇게 물색하는 걸까? 경계하는 걸 명심하기 위해서? 그녀가 지난밤에 내게 말했고 오늘 아침에는 적어도 두 번은 되풀이 한 것을 믿지 않기 위해서? - P345

클라라, 나 거짓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실망하는 게 무섭지 않아요. 나는 내가 가질 자격이 없으면서 가지게 될 터라거나 매일 가지고자 분투하는 법을 배우기는 커녕 가진들 뭘할지 모를 터였을 것이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맞아요. 당신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일까 봐 무서워. 내가 오늘 밤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일 더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디에 있게 되겠어요? -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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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 세계의 역사를 뒤바꾼 어느 물고기의 이야기
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 최재천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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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크인의 역사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인류의 가장 대중적인 어족 중 하나인 대구를 통해 중세 이전부터 이 책을 집필한 20세기 후반까지의 식민지 산업, 경제, 환경, 기후 등 다방면으로 (유럽 중심의) 인류사를 톺아본다. 책을 따라가다보면 대구의 역사뿐 아니라 15~19세기 중반의 세계사, 특히 식민지 시대 및 플랜테이션 경제 지도를 그려볼 수 있다. 


대구의 어원 및 생태적 특성과 종류 및 종류별 차이점, 서식지를 통해 알 수 있는 생태 환경, 대구 어업에 의한 어업 무역 시장의 변화와 항구 건설과 산업 전쟁, 대구 어업 산업의 발달과 덩달아 주요 산업 품목이 된 소금, 그리고 대구 어업 산업의 활성화로 인한 폐해 등을 이야기한다. 또한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으로 대구 어업의 현장에서 일하는 어민들의 작업 환경과 실태, 대구잡이에 사용됐던 선박과 어업의 새로운 기술 및 조선업 발달로 이어지는 현대화 과정, 장거리 이동을 위한 급속 냉동 공정의 개발과 식재료의 다변화에 따른 새로운 기계들의 발명과 도입 등 산업적 측면을 자세하게 다룬다.  





 



대구 어업 산업 덕분에 달라진 여러 기조들이 각 국가 및 국가 간의 관계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대구 및 생선 가공식품이 개발되면서 소금뿐만 아니라 면화, 담배, 설탕 등 부수적인 물품을 들이는 선박이 생겨났다. 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대구를 매매했던 상인들은 모두 노예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식민지에 건설된 플랜테이션 체제에 식량을 공급했을뿐만 아니라 나아가 아프리카인 노예 무역을 축진시켰다. 거기다 식민지 경쟁은 자연스레 전쟁을 불러온다. 지나친 경쟁의 부작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규모에  맞지 않은 과잉 생산이다. 일례로 영국의 경우 무역 및 항해 조례에도 불구하고 과잉 생산된 대구를 처분하기 위해 뉴잉글래드인들의 대구 무역을 눈감아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현대사회에서 국가 간 배타적 수역 확보 및 조업 용량을 둔 갈등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20세기 후반으로 들어서면서 대구 어족의 감소로 조업 금지 조치 및 조업 할당량 부과가 시행됐다. 원하는대로 대구를 퍼올리던 시절은 끝난 셈이다. 이는 단순히 조업량을 줄이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실업률이 치솟았으며 어민들의 생계가 흔들렸고, 특히 냉동 장비 및 선박 개조에 따른 선투자를 그대로 빚으로 안가 가야하는 상황에 몰렸다. 어민들은 다른 어족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와 같은 조업 금지 조치는 연쇄적으로 일어날, 앞날이 훤히 예견되는 상황이다. 어민들은 대구가 돌아오기를 기대하지만, 20세기 초에 치어까지 싹쓸이하고 원인불명의 몇 가지 이유,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 환경의 변화까지 더해져 대구가 돌아올지는 미지수다.   


남획은 전 지구적 문제다. UN 식량농업기구가 추적하는 물고기 유형의 약 60퍼센트는 거의 고갈 수준에 이르렀다. 이 자료가 1990년대임을 감안하면 지금은 더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을 것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명태가 사라진지 오래고, 최근에는 오징어 어획량이 현저히 줄어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이에 따라 어민들은 새로운 어종을 찾아 점점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하고, 새로 발견한 어족 역시 사라진 다른 물고기와 같은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저자가 대구 어족의 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꼽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병적인 집단 부정이다. 사람들이 대구 어족수가 멸종에 가까워지고 있다기보다는 단지 무리를 지어 이동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이는 대구뿐 아니라 고래를 비롯한 멸종 위기종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점일 것이다. 저자의 경고는 담담하지만 섬뜩하다.


사실 멸종 위기종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심각하다는 것은 알지만,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를 모르거나 혹은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여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러 이유들을 일일이 설명하기에는 자료가 차고 넘친다. 이 책은 현재 직면한 해양 산업과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종들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담긴 기록이 될 수 있다. 모쪼록 한 번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 리딩투데이를 통한 출판사 도서지원
 
 




#대구 #마크쿨란스키 #리딩투데이 #독서카페 #리투서평단  

사람들은 자연과 진화를 인간 활동과 완전 별개인 것으로 간주하고 싶어 한다. 마치 한쪽에는 자연의 세계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인간이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세계에 속해 있다. 만일 인간이 광포한 포식자라면 그 역시 진화의 일부분이다. 만일 대구와 해덕대구와 기타 종이 인간 때문에 전멸해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그놈들보다 더 잘 적응한 뭔가가 그놈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궁극적인 실용주의자인 자연은 뭔가 성공할 만한 것을 끈덕지게 물색한다. 그리고 바퀴벌레의 경우에서 잘 드러났듯이, 자연에서 가장 성공한 놈들이라고 해서 항상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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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다 바뢰이 연대기 2
로이 야콥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잔(도서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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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뢰이 연대기』 두 번째 이야기. 1권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한스 바뢰이를 중심으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척박한 환경에 대항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대응하고, 자연의 경이에 감탄하면서도 때로는 자연의 힘 앞에 무참히 꺾여 절망하지만 또다시 몸을 일으켜 조화롭게 살아가고자하는 바뢰이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2권은 전쟁의 폐허와 고통 속에서 꿋꿋이 삶을 꾸려나가는 잉그리드와 그녀의 주변 사람들의 서사다. 








1권인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읽지 않아도 2권을 읽는 데 별 문제는 없으나 1권을 읽고 난 후에 이 책을 접한다면 훨씬 풍성한 감성으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은 잉그리드가 고되고 헛헛한 메마른 도시의 일상에 낙담해 바뢰이섬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가 걷는 섬 곳곳에는 바뢰이가 사람들의 흔적이 녹아 있다. 그물, 정고, 창고, 부두, 부두의 밧줄, 오리털, 확장한 남쪽 방과 덧댄 지붕 등 잉그리드의 추억이 마냥 아름답게 펼쳐지지만은 않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앞서 언급한 것들이 잉그리드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고,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한 그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2권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연대다.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도시에서 배를 타고 전쟁 난민이 쏟아져 들어온다. 해안가에는 격추된 배에서 흘러나온 수백 수천 구의 시신이 밀려온다. 누군가는 점령군을 도와 제 살 길을 모색하고, 누군가는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려고 애를 쓴다. 잉그리드는 피난민을 주도적으로 돕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자신의 돈과 배급표를 털어 음식을 구해 나눠 먹이고, 제 부모조차 어쩌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전쟁 고아들을 씻기고 입힌다.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해 그들의 동참을 이끌어낸다.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우선하고 반드시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난민 여성들이 성폭행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그렇다고해서 잉그리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 절망이라는 절벽 끝에 서서 삶을 그만두고 싶을 때 손을 내미는 이가 있다. 잉그리드가 희생에 가까운 선의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역시 절벽 앞에 서 있었던 경험이 있고 누군가의 조용한 선의가 그녀를 구원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잉그리드는 자신과 무관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쟁의 참상 속, 춥고 황폐한 시대. 잉그리드를 스쳐간 사람들에 대해 그녀가 아는 건, 그들 삶의 이력이 아닌 죽음과 이별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그리고 그들을 살게 한 것은 삶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을까.   


딸과 함께 돌아온 수잔, 잉그리드의 딸 카야의 출생, 가족들을 데리고 섬으로 귀환한 라스와 펠릭스. 그리고 바뢰이섬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쟁 난민들. 상실과 이별의 아픔을 함께 공유하며 혈연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로 공동체를 이룬 그들의 화합은 다시 피어나는 바뢰이섬의 생명력이자 종전 후 인류의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아홉 개의 똑같은 문장,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카야의 눈. 
이것이 잉그리드가 앞으로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리라.


​올해 읽은 작품 중 아름다운 소설로 꼽는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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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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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상당히 공감되는 제목이다.
이유야 갖다붙이기 나름이지만 사실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 이유가 억지춘향이라는 것을.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그냥 싫을 때.  


균등하지 않은 사랑, 격려와 흔들림, 늘 한 세트처럼 붙어다니는 밝음과 그늘, 천성적으로 대인배가 될 수 없는 소인배의 항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낙차, 사랑과 결혼, 우정, 그리고 늙어짐.  






 



책에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부모를 배반하는 것애 대해(단어 선정이 오해를 부를만하지만). 부모들 역시 자신의 삶을 두고 최선의 삶이었다고 확신하기 어렵기는 자식 세대와 마찬가지다. 특히 미래에 대한 경험의 부재는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은 입장이고 심지어 위기 대처 순발력은 기성세대가 훨씬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세대는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세상에서 과거의 경험을 고집하는 우를 범한다.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많은 부모들이 '나'처럼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들은 모른다. 기성세대의 역할은 그들 앞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뒤를 좇으며 필요할 때 손을 뻗어 등을 받쳐주는 것일테다. 자식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가 살아가는 방식이 지금과는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신이 부모보다 더 나은 삶으로 살고 있으니 부모도 그에 맞게 발맞춰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자식이 부모의 간섭(그것이 비록 애정에 기반한다고해도) 혹은 무관심이 부담되거나 상처가 되듯 부모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부모와 자식이야말로 가장 적정한 거리두기의 폭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새삼스럽게.  


저자는 가난한 삶을 쉬이 아름답게 여기지 않는다고 썼다. 그의 글이 아니더라도 가난한 삶이 아름답기는 기실 어렵다. 장마철이면 불안해하는 반지하 거주자,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가 되는 청년, 보호종료가 되면 방 한 칸 얻을 수 없는 돈으로 독립해 각자 도생해야 하는 보호종료 청년들, 살인적인 더위에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 하는 독거 노인들. 그들 앞에서 가난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다. 그럼에도 저자는 살아 있음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썼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 사랑받았던 기억, 그리움 들이 그의 삶을 아름답게 한다. 저자의 오뚜기 같은 생명력이 그를 더 아름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추억과 기억만으로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제도적으로 고민해야할 것들이 개인의 노력과 같이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생각은 '말'이었다. 그야말로 입조심.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고, 자신의 체면도 깎지 않는 적당한 언어를 골라내기 위해 애를 쓰다보면 어느새 자기검열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 이러다가 결국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는 것에 피로도가 높아지고, 자연스레 대화의 폭은 일정한 지점을 넘어서지 못한다. 보통 누군가의 말에 상처를 받는 경우,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게서다. 특히 서로를 향해 느끼는 친밀도가 상이할 경우 더욱 그렇다. 하나의 대화를 두고도 한 사람은 '우리 사이라면 용인 가능하다'고 여기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정도로 친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괴리에서 오는 갈등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도 어렵다. 이 친밀도라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이니 말이다.  



학업, 취업, 재테크, 노후 대비. 
어쩌면 이런 것들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 틈에서 모난 돌이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아가는 일이다. 요즘에는 '보통'으로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서, 혹은 해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 모두가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뒤표지에는 「어쩌면 '싫음'은 곡절 없이 좋아하는 것을 몇 곱절 더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이 쓰여있다. 싫음과 좋음의 간극을 줄여가는 게 나은 것인지, 앞서 쓴 문장처럼 싫음이 좋음에 대한 명암을 분명하게 해주니 싫음은 그것대로 그냥 놔두는 것이 더 좋은 것인지, 그것 역시 사람마다 다를 터다. 어쨌든 간에 '싫음'이 꼭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부정한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용기가 있을 때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애써 증명할 필요없이, 일상에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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