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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기쁨과 슬픔 - 인간이 꿈꾼 가장 완벽한 낙원에 대하여
올리비아 랭 지음, 허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평점 :
정원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자 인류가 걸어왔고, 앞으로 걸어 가게 될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권력과 착취, 배제와 차별과 혐오, 환경과 기후변화 등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사회문제들과 모순적인 사회 구조와 현상들을 작가 본인의 개인적 서사와 문학, 그리고 정원을 통해 탐구하고 공유한다.
'paradise'의 어원은 기원전 2000년 페르시아에서 쓰던 아베스타어로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의미하던 pairidaeza에서 파생된 말이라고 한다. 13세기에 들어서 파라다이스는 '탁월한 아름다움이나 기쁨, 또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장소'라는 뜻이 되었다. (본문을 읽다가) 결국 정원이 기쁨과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장소라는 의미라고, 내 마음대로 해석해본다.

이 책에는 밀턴의 『실락원』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브렉시트와 극우가 득세하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세상은 밀턴이 『실락원』을 쓰던 시대, 혹은 당시 밀턴이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올리비아 랭은 절망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절박했고, 그래서 밀턴이 낙원을 꿈꾸었듯 정원을 만들고 싶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이 글을 집필하던 시기가 아마도 2020년인 듯하다. 랭은 미국 대선 당시 조 바이든이 당선된 사실을 쓰면서 불안했던 4년이 끝났다며 안도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 책이 출간된 2025년, 연일 보도되는 미국발 국제 뉴스를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랭은 땅과 인간과 식물은 뗄 수 있는 관계이고, 매일 잡초를 뽑고 죽은 초목을 잘라내며 땅을 솎아주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에 대해 서술한다. 하지만 이 행위에서 식민지 시대의 플랜테이션과 노예 시장을 떠올린다. 이러한 인권 유린으로 잔혹 행위와 고통 위에 세원진 정원은 묘지와 다를 바 없으며 너무 비싼 값을 치르고 만들어진, 애초에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노동의 시공간이 다를뿐 노동 현장의 안전은 여전히 취약하다.
올래비아 랭은 정원이 흑인보다는 백인이, 비숙련직이이나 임시직 혹은 실업자보다는 전문직이나 관리직 종사자가 정원에 접근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정원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치이자 특권이고, 이러한 근거는 배제와 착취의 역사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음을 짚는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이유로 정원을 갈망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건강하고 활기찬 결속과 아름다움, 진보를 통해 맺는 열매, 종을 뛰어 넘는 아름다움과 완전함이 존재하며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동력을 발휘하는, 종을 뛰어 넘는 생태계야말로 인류가 추구하는 정원이라고 말한다.
죽음과 탄생과 결실이 반복적으로 재생 순환되는 공간, 정원. 죽음이 없으면 풍요로움 또한 없으며, 영원한 풍요로움이란 환상임을 알려주는 정원을 통해 인류사 역시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이와 같은 이치가 현재 직면한 기후변화와 영원한 생산성에 기반한 고성장이라는 환상과도 연관이 있다. 랭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인간이 원하는 세상 사이의 긴장이 기후 위기의 핵심이고, 정원은 어떻게 하면 이 관계가 새롭고 덜 해로운 방식을 존재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즉 정원이 변화의 공간으로 구현되기를 바람한다.
이 책에서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하는 부분이 두 군데다.
먼저 정원 가꾸기에 대한 감상이다. 흙과 식물을 만지고 보듬는 행위가 주는 일상의 변화와 동기 부여, 특히 팬데믹 시기에 자연만큼은 변함없이 본래의 순리대로 흐른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늦가을에 시작된 팬데믹으로 사회 현상은 급격히 달라졌지만 싹이 트고 꽃봉오리가 올라오고 하루가 다르게 초록으로 변해가는 자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식물과의 관계다. 이 관계에 녹아드는 방법은 혼자 있는 것이라고 썼다. 텃밭이나 정원이 아니더라도, 작은 선인장 화분 하나만 데리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식물과 나는 일대일 관계다. 여러 화초를 키운다해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식물에 하나의 나로서 존재한다. 그래야만 충분한 몰입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 책은 거시적이면서 상당히 미시적이다.
정원을 상상하면서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꽃과 풀들을 상상하게 되고, 각각의 큰 카테고리 내에 형성된 수많은 개개인을 떠올리게 한다. 랭은 마지막에 '모두의 정원이라는 그 이단적인 꿈'이라고 썼다. 그는 숱한 불의 속에서도 공존과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