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봄의 불확실성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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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신이 직접 1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봉쇄 조치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직전 죽음을 맞은 친구의 장례식에 모인 다섯 명의 친구들과의 동창회, 그리고 봉쇄 이후 화자가 지인의 반려새 금강앵무(이름은 유레카)를 맡아 돌보면서 겪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이를 통해 사회 현상을 짚어간다.  


유년 시절의 순전하고 의도치 않았던 악의. 노년과 질병, 죽음에 대한 단상. 동성애에 대한 고질적인 거부감. 여성의 성적 욕구와 갈망의 실현 및 여성의 외도와 정절. 점점 더 극단적이고 양분화되어가는 대립과 성 차별주의에 대한 고정관념, 그리고 무의식적이고 관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성 인식.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과의 친밀감. 동물 학대 및 그들과의 공존 방식. 지구온난화 부정론자들과 반反환경 운동가들의 생태계 파괴 조장. 팬데믹 시기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불평등, 더하여 막연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혐오 조장. 경제적 취약 계층의 고립. 이를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타인의 안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세태다.   






 



소설에는 '날개 자르기'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러 이유로 반려새의 날개를 정기적으로 다듬어 준다고 한다. 날개 자르기(혹은 날개 다듬기)를 통해 장거리 비행을 통제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 찬반논란이 있다. 새에게 물리적인 통증을 주지 않고 다시 자라며 새를 보호하는 측면이라는 주장과 활동 범위를 제약해 새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반려새 주인들은 거의 다 날개 자르기를 한다고 한다. 찬반을 떠나서 반려새의 날개 자르기는 예시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팬데믹 시기의 우리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보호와 안전을 명분으로 봉쇄 조치까지 내려진 적지 않은 몇몇 나라의 도시들을 떠올려 볼 때 한동안 우리는 커다란 새장에서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에 대한 화자의 생각을 읽으면서 잠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화자는 유레카(금강앵무)를 지켜보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단지 지켜보기만 하는 것과 반려인의 취향에 맞게 훈련을 시키고 성과를 이루었을 때 보상을 해주는 것에서 오는 기쁨은 다른 문제다. 또한 반려 동물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방치하고 버리는 것도 쉽게 행한다. 그러면서 정작 도움을 필요로 하는 구조 동물 입양은 외면한다. 청년 베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신랄하게 꼬집는다. 화자와 그의 친구는 이를 두고 베치를 향해 맨스플레인, 에코 테러리스트, 인간 혐오자라고 비판하는데, 나는 오히려 인간 집단 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은 얼마든지 목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ㅡ  


1부는 소설, 2부는 에세이에 가깝다.
팬데믹 시기의 타인을 향한 무작위적인 경계심과 혐오는 우리 모두 경험한 바다. 그런데 특정 집단(이주민, 유색인, 무슬림 등)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2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도저히 한 집에서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베치와 화자의 관계 변화다. '간헐적 폭발 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베치가 자기와 다른 생활 방식을 배척하지 않고, 아주 사소한 부분을 생색내지 않으며 화자를 배려한다.  


어디 '그해 봄'뿐일까. 우리네 삶이라는 게 늘 불확실성의 연속 아니던가. 타인을 향한 두려움과 의심이 커져서 세상이 위험해진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위험해져서 두려움과 의심이 커진 것인지 종잡을 수 없지만, 항상 그래왔듯 우리는 해야할 일들을 함으로써, 선의롤 가기 위한 방법을 찾아감으로써 세상을 지켜나가게 될 것임을, 그래서 자신도 소설을 쓰고 있다고, 시그리드 누네즈는 이야기한다.    



시그리느 누네즈의 작품은 큰 틀 안에서 우리가 놓쳤던 사회적 현상이나 감정들을 세밀하게 짚어낸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공감하는 바가 크다. 담담하게 서술하는 이 소설이 와닿는 이유는 단지 팬데믹을 경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 종식을 선언한지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혐오와 갈등은 여전하고 해법이 아닌 국제 정세가 힘으로써 끌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말을 빌려 누네즈가 글을 쓰는 이유를 말했듯, 함께 희망을 써야할 때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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