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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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체'된 인간의 땅 모데란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 미래소설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69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64년으로 짐작된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그리 먼 미래는 아니라서 더 섬뜩한 부분들이 있다.  


총 4부로 나뉘어진 소설은 모데란을 배경으로 하는 연작소설로 읽힌다. 1부가 '10번 성채'를 통해 모데란 세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서술했다면, 2부에서 4부는 모데란 세계관 안에서 살아가는 신금속 인간들의 생활상을 비롯해 모데란에 진입하지 못한 올데란과 여성이 강제 이주된 하얀 마녀 계곡 등 성채 주인을 중심으로 종말과 그 이후에 이르기까지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1부가 다소 어둡고 무거운 면이 있는데에 반해 다른 장章들은 풍자와 해학을 통해 모데란의 모순적인 모습을 역설적으로 그려낸다. 







 
핵전쟁으로 지구는 오염되고 인간 세계는 지옥으로 변했다. 9개월이라는 대수술을 받고 모데란을 지켜줄 10번 성채의 신금속 인간의 등장, 그가 위대한 운명을 선택받은 자 '나', 이 책의 서술자다. 


지구 표면은 플라스틱으로 뒤덮여 있고, 오직 전쟁과 쾌락만이 유일한 행위인 모데란 세계관에서 인간의 정신, 선의, 예의, 사랑, 꿈은 거짓된 개념일 뿐이다.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만사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신금속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위대한 운명을 선택받은 지도자가 되기에는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바로 슬쩍슬쩍 비어져나오는 '웃음'이다. 심지어 꿈까지 꾸고 종종 농담까지 한다. 위대한 신금속 인간에게 웃음, 꿈, 유머는 적절한 덕목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인상적인 점들이 꽤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성채 주인의 독백에 가까운 서술들(특히 2,3부)이 상당히 시적이다. 전쟁과 쾌락만이 남은 세상에서도, 인간의 인체가 모두 금속으로 바뀐 세상에서도, 성채 주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아이들, 꽃, 새, 우정, 미소, 질투 같은 존재들이다. 이런 점들이 역설적으로 읽힌다. 그리고 모데란 종말 이후 살아남은 성채 주인의 회고는 우스우면서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살아남은 신금속 인간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은 1에이커의 토양이다. 하지만 플라스틱 아래 묻혀버린 토양을 복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전쟁을 그만두지 않는다. 이는 실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보도블럭으로 뒤덮인 세상이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모데란과 큰 차이가 있을까? 또한 전쟁의 폐해에 대해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음에도 세계는 아직도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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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없는 갈등과 전쟁, 생태계 파괴, 과도한 과학기술에의 의존, 로봇의 출현과 인간 관계의 단절 및 고립, 사회적 약자 차별, 엘리트주의와 산업주의 팽배 등 소설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점들을 압축적으로 꼬집는다.   


모데란이 추구하는 목표는 두 가지, 영원한 삶과 내면의 진정한 악덕을 체현하는 것이다. 모데란에서 생기는 오염은 플라스틱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최고의 신금속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다, 꿈을 꾸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신을 거부하면서 신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며 사유를 거부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스스로 만들어낸 양심의 출현에 공포를 느끼는, 모순적인 존재다.  


꽤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고 『모데란』까지 오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키워드는 '접촉'이다. 그 많은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기저에 두는 것은 접촉을 터부시하는 것이다. 인간과 인간, 인간 외 생명체와 인간 등 디스토피아 세계의 지도자들은 인간과 생명을 고립시킨다. 이를 달리 얘기하면 인간이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궁극적인 계기는 타자와의 관계(접촉)이다. 이것이 가능해야 도덕과 양심도 지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주의를 들어 타자를 차단하고 가상의 세계에 만족하며 이것이야말로 신인류라고 착각하는 지금,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발적으로 디스토피아 세상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다. 마치 10번 성채 '나'처럼. 디스토피아 소설에서나 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거라고 콧방귀를 내뱉을 수만은 없다. 소설에서는 2025년 오늘의 모습이 아주 많이 보인다. 특히 깊은 방에 홀로 틀어박혀 있는 모습이.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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