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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
프랑크 틸리에 지음, 박민정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7월
평점 :
한편의 본격 미스터리 소설을 예상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단도직입적인 시작입니다. 이렇다할
전개도 없이 다짜고짜 지하 동굴안에 끌려와 갇히게 되는 사람들. 여느때처럼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있거나 했었을 터인데 정신을 차려보니 알수없는
컴컴한 동굴안. 게다가 저마다 쇠사슬에 묶여있거나 철가면을 뒤집어 쓰거나 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모인 것이 세명의 남자와 한마리의 개입니다.
각자의 등뒤에는 '누가 거짓말쟁이일 것인가', '누가 도둑일 것인가', '누가 살인자일 것인가' 퀴즈와도 같은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철가면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은 다른 두 남자와 50미터 이상 떨어지면 가면이 폭발하도록 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시작부터 본격적으로 물음표를 몇개씩
달고 출발합니다. 이 도입부가 굉장히 강렬하고 흡입력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쓸데없는 예열과정은 집어치우고 무작정 수수께끼부터 던지고
시작하는 셈이니까요.
이 상황은 곧 이들의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두뇌싸움, 눈치싸움으로 변해갑니다. 아무것도
모른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어딘지도 모를 이상한 공간에 유배되어 있는 상황.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제공한 약간의 도구와 생필품만이 전부인
공간에서 세명의 인간과 한마리의 개의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자생적으로 공포를 만들어 냅니다. 수수께끼의 진상은 둘째치고 인간의 본능이 어디까지
바닥을 드러내는지, 이들이 광기로 가라앉는 모습 그 자체가 스릴러가 됩니다.
인간은 환경에 좌우된다. 인간은 환경이 만들어내는 동물이다랄까요. 극한의 상황이 인간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 그 처절한 본능을 정면에서 보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주위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며 한사람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평범하던 사람들이 극한의 상황에 놓였을때 광기에 사로잡혀 철저하게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충격적입니다.
사람의 인격이 바뀌는 것만큼 극적인 반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악취미라면 악취미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괴로운 이야기가 즐겁습니다. 물론 이런
긴박감과 공포감이 주는 스릴을 사랑하는 것이지 현실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소설은 '스콧 스미스'의
<폐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