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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무언가에 중독된다는 것은 그만큼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반증은 아닌가. 중독이란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 헤매는 상태가 아닐까 싶다. 190에 육박하는 큰 키에 250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위험한 몸으로 집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고 음식에 탐닉해 부풀어가던 중년 남자나, 알콜에 의지해 하루하루 자신을 죽여가던 싱글맘이나, 운동에 빠져드는 소년이나 모두가 공허함을 채워줄 무언가가 간절한 것이다. 반드시 채워져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비어있는 그 자리를 음식으로, 술로, 운동으로 채운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다.
아서 오프는 대학교수였지만 지금은 10년이 넘도록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외로움의 고통을 지우기 위해서 집안에 틀어박혀 먹기만 한다. 먹고 또 먹는다. 아서가 사랑했던 한때의 제자 샬린 터너는 이혼후 혼자 아들을 키워왔다. 지금은 약과 술에 찌들어 점점 시들어 가고 있다. 샬린의 외동아들 켈 켈러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주목하는 열여덟살의 야구 유망주. 훤칠한 외모와 빼어난 운동실력을 갖춘 인기인이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아픈 엄마를 돌보아야 하는 힘겨운 삶이 가져다 주는 컴플랙스에 짖눌리고 있다.
아마 더 오래전에 이소설이 나왔다면 그렇게 깊은 울림을 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십년전으로 되돌아가보면, 아니 그보다 더 과거로 회귀하면 할수록 이 소설이 주는 울림의 파장은 옅어질 것 같다. 아마도 이 소설이 현대인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만큼 타인과의 접촉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인터넷으로, 모바일로 소통을 하고, 그런 편리한 관계가 마치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식될만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응당 전해져야 할 온기같은 것은 옅어져간다.
그 온기가 그리운 것이다. 정이 그리운 것이다. 사람이 그리우면서도 어떻게 손을 뻗어야 하는지, 뻗어오는 손길을 눈치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외롭다. 가상의 내모습을 만들고 편지로 거짓안부를 보내면서까지 아서는 오래된 인연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나누지 못한다. 나누지 못하고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삶은 고독하다. 고독은 무겁다. 그런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는 우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