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같은 험악한 얼굴을 가진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협박, 사기등의 범죄와 악행을 수없이 되풀이 한 결과 32살이 된 지금은 젊음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악랄하고 교활해 보이는 범죄자의 얼굴만 남았다. 그런데 '야가미 도시히코'라는 이 남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저질러온 악행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죽어가는 백혈병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골수를 기증하기로 결심한 것. 야가미는 골수채취를 위한 입원을 앞두고 있었다.
위험한 세계에 발을 담그고 살아온 야가미는 그동안 신변 안전을 위해서 친구와 서로 주거지를 바꿔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입원 전 자금마련을 위해 친구가 살고 있는 자신의 방에 찾아가 보니, 살해당한 친구가 양손과 양쪽 엄지발가락이 교차되어 묶여있는 괴상한 자세로 삶아진채 욕조에 가라앉아 있다. 당황하는 야가미. 그때 정체 불명의 남자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치고 야가미는 반사적으로 아파트에서 도망쳐 나온다. 환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시간 안에 병원에 당도해 입원을 해야한다. 수상 버스, 전철, 택시, 모노레일등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추격자를 뿌리치고,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도쿄도를 종으로 가로지르는 야가미의 필사의 도주극이 시작된다.
수사를 개시한 경찰은 이후에도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무차별 살인 사건에 곤혹스러워한다. 게다가 이 엽기적인 살해방법은 놀랍게도 마녀재판이 행해지던 중세시대에 이단심문관들을 처단했다는 무덤에서 되살아난 자, '그레이브디거'의 수법을 그대로 흉내낸 것이었다. 범인은 현대의 이단 심문관들을 처단하려 하는가? 피해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야가미처럼 골수 이식의 도너라는 점 뿐이다.
현 사형제도의 모순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 '13계단'으로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다카노 가즈아키'.
그레이브디거는 13계단에 이은 작가의 두번째 작품이다. 13계단에서 보여줬던 필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 의료의 최첨단 분야인 골수 이식에서부터 중세의 마녀 재판, 경찰의 비밀 공작, 컬트 교단 등, 다채로운 재료를 버무려 중간에 눈을 뗄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있는, 전작에 비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 최대의 매력인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한 스피디한 전개는 소설이라는 사실이 무색해질 정도로 박진감 넘친다. 쉴새없이 야가미를 따라다니며 영상을 담아내는 카메라맨들이 보일 듯 하다. 여기에 미워할 수없는 주인공 야가미가 과거에는 악당이었음을 상기시켜주는 행동이나, 센스있는 유머가 긴박감넘치는 이야기에 완급을 더해 더욱 즐거운 이야기가 되었다. 압도적인 속도감으로 무장한 논스톱 스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