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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를 만났다 - TED 과학자의 800일 추적기 ㅣ 지식여행자 시리즈 2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젊은 민속식물학자 데이비스는 좀비를 만드는 독을 찾아달라는 어느 약리학자 그룹의 의뢰를 받고 아이티로 향한다. 그들은 좀비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에 놓여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이라 판단하고, 그 과정에 사용되고 있을 약초의 성분을 조사하면 새로운 마취약을 만들어낼 단서를 발견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데이비스는 부두교의 비밀 조직에 접근해서 목적대로 좀비를 만드는 독을 입수하고 그 성분을 알아내지만, 그의 개인적인 탐구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티의 역사을 알아가면서 데이비스는 그 특별한 역사 속에서 자생 발전해온 부두교와 비밀조직이 현재의 아이티 사회에 깊숙히 관련되어 있으며, 부두교의 세계관, 인간관을 모르고서는 좀비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아이티 사회속에서 좀비는 단순히 일부집단의 오컬트 문화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호소 - 조사 - 재판 - 처벌이라는 일련의 행정 과정에서의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상 아이티의 기반은 이 부두교의 비밀조직에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우리와 동시대에 존재하는 한 국가의 사회 형태가 특정 인류학자가 잠입하기 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원저가 출판된 해는 1985년) 더욱이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들에 의해 태어난 일종의 토속신앙인 부두교가 불과 수백년 사이에 한 국가의 기반이 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것도 또한 놀랍다. 좀비는 이 나라에서 부두교가 기능하고 있는 증거다.
서양의학과 부두교의 시각은 확실히 대조적이다. 서양 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좀비는 가사 상태에 빠진 후 대뇌에 손상을 입은 채로 깨어난 인간으로 규정될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티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인간을 구성하는 다섯가지의 영적 요소와 관련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좀비의 제작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아이티 사람들이 무서워하는것은 좀비에게 위협받는것이 아니라 좀비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좀비는 완전한 영혼이 없는 육체, 이념을 가지지 않는 물질이라 믿기 때문이다. 부두교에서 좀비를 만들어내는 것은 본질상 주술적인 과정이다.
단기간 동안 신비스런 세계관을 발전시키고, 그 세계관에 의해 사회가 지탱, 유지되고, 결국 육체마저도 여기에 따라가게 만드는 인간의 '정신의 힘'이 흥미롭다. 단순히 젊은 민속학자의 모험담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