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박수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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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크래딧이 흘러 내려오면 다음 DVD를 플레이어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빌려온 것을 다 보고 나면 또다른 DVD를 대여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여자의 단조로운 하루 일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지나간 사랑의 망령에 붙잡혀 무려 8년을 허덕이고 있는 여자의, 날카로운 히스테리가 처음부터 내내 집요하게 신경을 건드린다.

 

만약 그 히스테리의 상대가 아주 악랄한 놈이었거나, 마성의 바람둥이거나 해서 여자를 동정할 수 있는 간편한 상황이었으면 덜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상대방은 또 여자에게는 비굴할 정도로 헌신적이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묘하게 신경에 거슬리는 볼품없고 기분나쁜 중년의 남자. 그 헌신적인 모습조차도 걷어 차 버리고 싶어질 정도라서, 도대체 어느 쪽을 향해 이 짜증의 화살을 겨누어야 할지도 모를 숨막히는 시간들이 줄곧 이어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여자의 혀에 돋아나 있던 종기처럼, 불편한 이 상태가 조금만 더 계속됐다면 어쩌면 책을 덮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에 몸서리 치면서도 사람들을 밀어내기만 하는 여자, 온갖 냉대를 받으면서도 집요하게 여자의 주위를 맴도는 남자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동거관계가 여자의 외도를 계기로 서서히 감춰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나하나가 복선이 되고 있어서 자세히 말할수는 없지만, 여자의 아픈 과거와 연관된 비밀스런 일들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동안 앞서 불편했던 감정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사랑, 외도, 미행과 보복, 쓰라린 추억, 살인사건 그리고 그 끝에는 결코 게운해질수는 없는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만 여기까지 도달하면 비로소 두 남녀를 이해할수 있게 된다.  

 

둘 중 누구랄 것도 없이, 무언가 결여된 것에 대한 불안감과 그 공허함의 묘사가 너무나 선명하다. 서른 무렵에 이혼하고 승려 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뒤늦게 소설가로 데뷔했다는 저자가 느껴왔을 고독감 같은 것을 정면에서 쳐다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라는 게 이렇게까지 숨막히고 힘든것일까. 충격적인 결말보다도 더 무겁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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