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외 지음, 엄일녀 옮김 / 톨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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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명이나 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놓는다면 전부 취향에 맞기도 힘들고 게 중에는 중간중간 쉬어가는 격인 작품이 섞여있을 법도 한데, 초지일관 각성상태로 편식하지않고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건 진정한 이야기꾼이라 불릴만한 개성강한 작가들로 이루어진 라인업 덕분이다. 20명이나 되는 이름을 일일히 열거하긴 귀찮지만 스티븐킹, 닐게이먼, 엘모어 레너드 등의 정상급 작가들의 이름은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집의 퀄리티를 말해준다. 공포스런 상황을 주제로 한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범위를 넓혀서 기발한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면 될듯하고, 하나같이 일단 시작하고보면 예외없이 마지막문장이 나올때까지 잡아끄는 힘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표제작 <안그러면 아비규환>의 저자는 '현재 영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라는 수식어가 익숙해진 닉 혼비. 그동안 닉혼비가 참여한 작품집을 몇번 읽은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항상 그의 작품이 맨 앞에 실려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뭔가 앞에 나서는걸 좋아하는 성격인걸까.

 

<안그러면 아비규환>은 이혼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15살 소년이 어떻게 한 여자와 한 침대에 눕게 되었는가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게 단순히 한 여자아이와 동침한 사연 정도로 끝나는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함정이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보면 "서두가 있고, 기묘하게 전개되다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이야기다. 안그러면 스티븐킹 스타일의 얘기 즉, 서두가 있고, 기묘하게 전개되다가, 우라지게 무서운 엔딩으로 마무리해야되는데 그렇게 하긴 싫거든. 그런건 지금 나한테 전혀 도움이 안되니까." 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시작하는데, 무서운 엔딩으로 마무리 하기는 싫어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버클리 청소년 빅밴드에서 가장 예쁜) 마사와 한 침대에 눕게 된 사연은 언뜻 해피엔딩인듯 하지만 좀더 깊은 내용을 알고나면 놀랍도록 처참하고 슬프고 치가 떨리도록 무서운 얘기다. 매사에 긍정을 강조한 엄마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해피엔딩이 되기에는 턱도 없는,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없는 소재.

 

원래는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레이이커스의 경기를 녹화하기 위해서 엄마를 졸라 사온 5달러짜리 중고 VCR이 그 화근이었다. 테입도 없이 지상파 방송을 빨리 돌릴 수 있는 수상한 VCR.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보면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것은? 정말로 긍정적인 면이라고는 미사와 한침대에 눕는 것 말고는 눈꼽만치도 찾을수 없는 사상최강의 배드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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