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탐정 이상
김재희 지음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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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시인 이상이 홈즈라면, 구보 박태원이 왓슨 역할에 충실한 <경성 탐정 이상>은 1930년대 일제치하의 경성을 무대로 벌어지는 연작 추리 단편집이다. 염상섭의 소개로 서로 알게 된 이상과 구보 콤비가 제비 다방에서 의뢰를 받아 의문의 사건들을 해결한다. 명석하고 박학다식하며, 때로는 트레이드마크인 지팡이를 휘두르며 활극도 마다하지 않는 매사에 자신감 넘치는 이상의 모습은 셜록 홈즈와 판박이다.

 

팩션의 묘미는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 해서 또다른 진실의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단편적인 정보만을 알고 있던 역사속 실존 인물들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입혀볼 수 있다는 점이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상이라는 인물의 내력을 보면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를 시작한 '오감도'가 무의미해 보이는 숫자와 기하학 기호의 나열, 맞춤법 띄어쓰기도 무시한 이 작품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었던 대중의 지탄으로 결국 연재중단된 뒤, '제비'를 필두로 쓰루, 식스나인, 무기등의 다방을 잇달아 열지만 이마저 모두 경영에 실패,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동거녀인 금홍은 바람이 나서 곁을 떠나버리고, 지병인 폐병이 악화되면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동생에게 생활비를 받아서 근근히 버텨나갔다. 신여성 변동림과의 결혼도 4개월 만에 이상이 동경으로 떠나면서 파경에 이른다.

 

시대를 너무 앞선 탓에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과 불행한 현실 속에서 방황한 불운아, 현대 문학사상 최고의 이단아 이상은 결국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 찾은 동경이라는 도시에서도 환멸과 고독을 느끼며 서서히 죽어갔다. 27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였다.

이런 비운의 천재 이상이란 인물에 대해 품고 있는 평소의 안타까움이나 동경이 소설속 이상의 모습을 통해서 다소 해소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실제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고뇌하는 시인의 모습이 아니라 이상이 탐정이 되어 멋지게 활약하는 장면들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이들 콤비가 맡게 되는 첫번째 사건은 창경궁 뒤편에서 사슬에 묶여 발견된 모던걸의 변사체. 이 첫번째 사건은 무난히 해결하지만 그 배후에 류 자작이라는 자가 있음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의문의 가면의 남자. 류자작을 돕는 묘령의 여인.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지막 화에서 모든 진상이 밝혀진다는 구성.

 
재밌는 것은 매 에피소드마다 간송 전형필이라던가, 나비박사 석주명 등의 실존했던 인물들이 의뢰인 신분으로 등장한다는 것.
전혀 예상치 못한 역사속 큰 인물과 깜짝조우하는 기회도 얻을수 있다. 이상의 동거녀인 금홍처럼 사실에 근거해 배치한 조연들이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구보 박태환과 천재시인 이상 콤비의 추리극이라는 큰 틀은 셜록홈즈와 왓슨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익숙한 역사속의 인물들이나 친숙한 지명들은 홈즈와는 또 다른 맛을 낸다. 그 시절의 낭만이라고 해도 좋지만 숨가쁜 현대를 무대로 한 추리물에는 없는 왠지 그리운 느낌이 드는 연작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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