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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열살짜리 아프가니스탄 소년이 버림받은 파키스탄 국경마을을 탈출해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안주의 땅 이탈리아에 정착하는 데 성공한다. 무려 7년에 걸친 그 고난의 여정을 소년의 목소리를 빌어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사실만이 전할 수 있는 비정한 실태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가까스로 생존한 이야기에 여행이니 모험이니 하는 속 편한 말은 어울리지 않을 듯 싶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의 아프가니스탄. 소년 에나이아트는 파키스탄 국경과 인접한 작은 계곡 사이에 있는 하지라 족 마을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소수민족이자 종교적으로는 시아파인 하지라인들은, 수니파인 파슈트인들이나 탈레반에게 언제든 목숨을 빼앗길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들의 횡포는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아들의 장래가 염려된 엄마는 에나이아트를 파키스탄으로 피신시키지만, 그를 낯선 곳에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불굴의 정신과 강인한 의지력, 그리고 삶의 지혜를 스스로 몸에 익히며 에나이아트는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 남는다. 안주할 곳을 찾아, 아무리 힘들고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유럽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간다. 물론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권 없는 밀입국자 신세, 언제 적발되서 추방될 지 모르는 위험한 날들이다.
비슷한 신세의 다른 아프가니스탄 소년 5명과 함께 고무보트 하나에 의지해 터키에서 그리스로 탈출을 시도한다. 한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이 소년들의 대화가 고스란히 이 책의 제목이 되고 있다. 에나이아트는 운 좋게 살아 남지만, 이 중에는 영원히 바닷속으로 사라지는 친구도 있다. 그렇게 죽음과 인접한 나날들이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리스, 이탈리아에 가까워질 때마다 소년을 도와주는 친절한 사람들이 잇달아 나타나는 대목은 세상에는 여전히 희망적인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고난의 세월을 보낸 이 난민 소년이, 결국은 갈망하던 안주의 땅에서 이렇게 지난 날을 회고할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 여러가지 정치적, 종교적 입장으로 인권이 사라져 버린 장소가 여전히 같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나 무겁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저자의 펜끝은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