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여자들>을 읽었다.

부코스키 본인임에 틀림없는 '헨리 치나스키'라는 50세를 넘긴 방탕한 남자가 술에 취하고, 경마를 하고, 글을 쓴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들로부터는 인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엮은 반 자전적인 소설.

 

경쟁이 싫어 사회에 등 돌리고 앉은 치나스키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무언가를 호소하거나 하려는 시도는 없고, 그저 몹시 취해서 이 여자 저 여자 바꾸어가며 잠을 자고 다음 날 숙취로 토하는 1970년 대의 그의 하루하루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후회나 슬픔은 따라붙지 않는다. 중년의 호색가에 어울리는 와일드하고 뻔뻔한 날들이 이어진다.

 

투박하고 적나라한 묘사에 기분이 상쾌해질 리는 없다. 동시에, 이런 나날을 보내는 치나스키에게는 깨달음도 없고, 성장도 없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애정이란 것도 없다. 자책의 감정이나 후회가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지만 그럴 때조차 그의 곁에는 새로운 여자들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치나스키 자신에게도 여자라는 존재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이런 편력에 혐오감 같은 걸 느끼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에 얻을 수 없었던 애정을 지금에 와서 만회하련다는 당당함은(당당함이든 뻔뻔함이든) 교활한 위선보다는 낫다. 어찌되었든 타인의 삶을 편협한 잣대로 단칼에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그 틈새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요염하지만 우스꽝스럽다. 성실한 시민이라면 뒷걸음질 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좋다. 어쩐 일인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치나스키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니까.

 

그런데 그는 시인이다. 이러한 방탕한 사생활을 가감없이 문학의 형태로 발표하고 이것이 또 여자를 부르는 연쇄반응이 이어져 왔을 그의 삶이, 실은 그에게 있어서는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것이라면 술, 담배, 여자의 생활을 꾸역꾸역 반복할 뿐인 이런 인생도 매혹적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