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고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달리의 고치>라는 제목에서 '달리'는 초현실주의 거장인 '살바도르 달리'를 말한다. <기억의 지속>이라는 그 유명한 시계녹는 그림의 화가이자,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터무니없는 콧수염을 과시하는 포즈로도 익숙하다. 대단히 인상적인 모습이라 일본에서는 달리수염이라고 하면 이 수염을 쉽게 떠올리는 모양이다. 그저 얼룩덜룩한 녹색표지라고만 생각했는데, 뒤늦게 표지 속에 달리의 얼굴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겁 했다.

 

이 살바도르 달리에 심취해 있던 어느 쥬얼리 회사의 사장이 살해당한다. 시체는 그의 별장에 있던 프로트캡슐이라는 독특한 명상기계 안에서 발견된다. 게다가 어찌된 일인지 애지중지하던 달리수염까지 깨끗하게 면도된 상태였다. 곧 아리스가와의 친구가 이 괴상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추리작가 아리스가와와 범죄학자 히무라 콤비가 친구를 돕기 위해 출동한다.

 

이 프로트 캡슐이란 생소한 물건을 잠시 들여다보면,

"에포지움이라는 물질을 녹인 비중 1.28의 물이 든 캡슐이야. 수온은 체온과 비슷한 37도로 맞춰놨고, 그 안에서 벌거벗고 누워있으면 몸이 뜬다고 하는군. 캡슐 속으로는 빛도 들어오지 않고 소리도 차단되지. 어머니의 자궁속에서 양수에 잠긴 상태, 한마디로 태어나기 전의 상태를 체험할 수 있는거야. 무중력의 어둠 속에서 명상에 잠겨 몸과 마음을 해방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단지 캡슐 안에 들어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피로 회복, 어깨결림, 요통, 두통, 근육통, 숙취, 위장 장해, 불안 긴장, 불면증 등에 효능이 있는 고마운 기계라고 한다. 게다가, 단 40분 사용으로 무려 6시간의 수면효과가 있다고 하니 피로를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흥미를 느낄만 하다. 삽화가 있어서 기계의 외,내형을 볼 수 있으면 재밌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이 최신기계를 도입한 사건의 추리과정은 대체로 담백하고 모범생 같은 이미지다. 용의자는 수차례 바뀌지만, 딱히 혼선을 빚는다거나 엄청난 벽에 막히거나 하는 일 없이 한명 한명 순서대로 혐의를 벗겨나가다 보면 얌전히 진상에 다다른다. 범행수법도 주도면밀하다기 보다는 충동적인 편이고 용의자들도 하나같이 착하고 협조적인데다 히무라도 놀라운 활약은 없다.

 

그런데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일단 추리과정이 품위있다. 이 소설이 걸작이라 불리는 이유는 기묘한 살해방식이나 복잡한 트릭보다도, 히무라 & 아리스가와 콤비의 절묘한 궁합, 그리고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고치'라는 큰 테마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서 고치란 편안함을 느끼는 각자의 안식처, 쉘터의 의미를 갖는다. 모든 것을 잊고 도피하고 싶은 곳이다. 여러가지 형태로 보여지는 등장인물들 저마다의 고치를 보면서, 히키코모리와 같은 식으로 왜곡되는 현대인들의 고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는 아리스가와도 마찬가지. 현재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의외로 큰 상처가 있었음을 털어놓는다. 여자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 히무라에게도 무언가 아픔이 있었을 것 같고,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작품에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아리스가와와 히무라의 신혼놀이를 봐서는 혹시 히무라가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있었다던가 하는 이상한 전개도 멋대로 예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