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낭만 탐닉 - 예술가의 travel note를 엿보다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유럽국가들은 국경이 서로 맞닿아 있고 자유자재로 왕래할 수 있어서, 그것이 유럽인과 일본인의 정신구조 차이의 본질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대륙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도 민통선 너머로는 한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우리의 상황도 그러고보면 일본과 별반 차이는 없다. 그래서인가, 유럽에서는 문을 열고나간 사람이 다음 사람이 다가올 때까지 그 문을 붙잡아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본인들은 자기만 열고나가면 그냥 문을 놓아버려서 허를 찔린 뒷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문을 힘겹게 양손으로 막아내며 비명을 지른 경우도 있었다....는 저자의 목격담이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일본 문화청이 후원하는 예술가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 뽑혀서 떠나게 된 유럽에서의 1년을 정리한 저자 '세노 갓파'의 일종의 메모, 혹은 끄적거린 기록들이다. 순간순간 보고 느낀 것들을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는 실로 세노 갓파답다. 이 책의 경우는 애초에 책의 집필 자체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준비된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먼저 소개된 '인도'편에 비하면 다소 투박한 면도 있지만, 저자의 유별난 호기심이나 따뜻함이 전해져오는 일러스트만큼은 여전하다. 유럽 각국의 차장들의 복장이나, 주택에 달린 창문의 차이, 열차나 호텔 방의 내부 구조등의 세세한 묘사는 서두에서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 <잡동사니 컬렉션>의 영역을 이미 넘어섰다.

저렴한 숙박시설을 많이 찾아다녔었는지, 각국의 싼 호텔의 평면도가 많이 실려 있다. 호
텔의 주소나 숙박료도 적어놓았기 때문에, 지금도 영업하고 있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숙박료가 얼마나 올랐을지도 흥미롭다. 그림 뿐만이 아니라 저자 특유의 맛깔난 설명이나 기발한 생각의 파편들도 즐길 수 있다. 오페라나 친구 관계 등에서 보이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인간성의 차이에 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같은 유럽이라고 해도 그 국민성은 각양각색.... 스위스의 차장은 열차가 흔들릴때 가방이 승객들의 얼굴에 부딪칠수 있기 때문에 무릅까지 내려올 정도로 끈이 긴 가방을 멘다고 하는데 프랑스의 차장은 오히려 끈이 짧은 가방을 메고 있다. 열차가 흔들리면 가방이 승객의 얼굴을 때리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꽉 잡고 있으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결국 정서는 유럽과 동양의 차이가 아니라 나라마다 다 다른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때가 1976년, 이제는 슬슬 구전으로 전해듣기 시작한 시대의 일인데다가, 달나라여행에 필적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외여행이 자랑거리 정도는 되던 시절의 추억의 기록인만큼, '역시 일본과는 그릇이 다르더라'하는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의 시선을 여기저기서 엿볼 수 있다.

재미있지만 단순한 여행기는 아니다. 일본인처럼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 줄거야" 라든가, "속뜻을 알겠지" 같은 미묘한 사고방식이나 아마에(응석, 어리광)의 구조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p. 23) .... 라면서, 우선 타 문화권의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점이다. 습관이나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서 위축되서 여행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은 벗어던져버리고 새로운 시각을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로 여행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이문화 커뮤니케이션의 본연의 자세일 것이다. 그 일례들이 잡동사니처럼 수북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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