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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남친
아리카와 히로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고래남친>이라는 제목을 보고 어째서인지 우렁각시 같은 걸 연상해 버렸는데, 알고보니 달착지근한 '자위대' 러브 스토리였다. 설마 이런 의미의 '고래'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수록된 단편들은 하나같이, 일이든 연애든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계열의 작품집이라는 인상. 재미있고, 웃기고, 한편으로는 순수하다. 진지한 연인들의 모습이 귀엽다. 느끼하고 질척질척한 연애소설은 당분간 사절이지만, 이런 가벼운 터치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는 부담없이 상큼하게 다가온다.
표제작인 <고래남친>은 전화통화 조차도 제대로 하기 힘든 잠수함 승조원과 그 연인의 이야기. 고래는 나오지 않는다. 온갖 쿨한 척은 다 하고 있지만, 일년 중 대부분을 잠수함 속에서 보내야 하는 남자의 그 초조한 심정이 줄곧 초음파처럼 전해져 온다.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기다리는 여자 쪽의 불안감이나, 그녀에게 뻗쳐오는 유혹의 손길 등이 메인으로 그려져 있지만, 사실 대범해 보이는 남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도저도 못하는 잠수원 승조원으로서의 체념과도 비슷한 심정이 묻어나온다. 언뜻언뜻 그런 심리가 엿보일때마다 '똥폼잡지 말고 미리미리 붙잡아라!' 라는 말이 목구멍 언저리까지 치밀었다가 고래처럼 잠기기(가라앉는다는 표현은 이책에서는 금물)를 수차례.
자위대원들의 연애담으로만 한정해서 그리고 있는 이 6편의 심하게 달콤한 러브 스토리는 하나같이 해피앤드. 우여곡절은 있어도 비련은 없다. 이중에는 저자의 전작인 <하늘속>과, <바다밑>의 스핀 오프 격인 이야기도 몇편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어도 별로 곤란 한 적이 없었던 걸 보면, 이 작가의 책을 처음 읽는 사람도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여기에 나온 인물들의 또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다른 책도 읽어볼까 현재 검토 중.
저자도 후기에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활자로 된 달착지근 러브로맨스는 영상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독특한 울림이 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시각적인 매체와는 다르게, 각자의 판타지에 맞게 머릿속에서 자체적으로 변환을 거치는 과정이 따르기 때문이 아닐런지. 게다가 군이라는 일반인과는 동떨어진 집단을 소재로 하고 나니까, '폐쇄적인 활동공간에서 제복차림의 젊은남녀들이 엮어내는 여러 가지 러브스토리....' 라는 묘하게 두근두근한 맛이 나는 완성품이 나왔다. 다만, '탈영'이라던가 '인식표'와 같은 기본적인 군대용어 까지도 '탈책'이니 '도그태그'니 하는 식으로 그대로 옮겨놓아서 이따금씩 이질감이 느껴지는 건 아쉬운 부분. 군이라고 하면 으레 완전군장에 소총을 둘러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모습을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의외로 군대에는 여성스러움이 부각되는 일들이 꽤 많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