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2년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의 저자 '얀 마텔'의 무려 9년만의 신작.

젊은 작가 '헨리'는, 대성공을 거둔 처녀작에 이어 후속작으로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소설과 논픽션을 플립북(앞뒤가 모두 표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양쪽에서 시작되서 가운데서 끝난다)형태로 출판할 생각이었다. 의욕적으로 구상한 이 컨셉이 출판사로부터 보기좋게 거절당하자 헨리는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아내와 함께 캐나다를 떠난다.

새로운 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헨리에게 그가 유명작가임을 알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우편물이 날아든다. 거기에는 19세기 프랑스 작가인 '플로베르'의  단편소설(성 쥘리앵의 전설)과, 희곡 대본이 들어있었다. 대본은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2명의 등장 인물이 서양배를 주제로 밑도 끝도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과 성 쥘리앵의 전설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헨리. 동봉된 메모에는 "선생님의 책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수수께끼에 끌려 주소를 찾아간 헨리는 어느 박제사의 가게에 도착한다. 이 가게에서 헨리는 박제상태의 베아트리스(당나귀)와 버질(원숭이)과 조우한다. 연로한 박제사는 헨리에게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을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음침하고, 무례한 이 박제사에게 헨리의 애견도 아내도 직감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내지만, 희곡 '베아트리스와 버질'에 기묘하게 이끌리기 시작한 헨리는 계속해서 박제사를 찾아간다. 마침내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와 성 쥘리앵의 관련을 깨달은 헨리는 돌연 자신이 놓여진 상황에 아연실색한다.

맨처음 이 이야기를 읽기 시작했을 때의 나의 반응은 "What the F**k?"이었습니다. 첫부분은, 마텔 자신이 이 <아트리스와 버질> 처음 썼을 때의 실제 편집자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생각했더니, 이번에는 그가 다른 도시로 옮겨 이렇다할 사건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계속됩니다. 그리고나서 한동안은 수께끼의 인물이 보내 온 플로베르의 단편이 지리하게 이어지다가, 다음에는 서양배에 대한 알 수 없는 대본입니다. 이것만으로 270 페이지 남짓한 책에서 벌써 70페이지 이상입니다. 점점, 이것은 혹시 실패작이 아닌가....하는 의심스러운 기분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만, 틀림없이 무언가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 수수께끼를 쫓아 계속해서 읽어 나갔습니다.

이후에도 특별히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박제사는 무례한 괴짜이고, 베아트리스와 버질 희곡 속의 메타포는 도저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때부터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존재가 서서히 마음속에 스며들어 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헨리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이해되고, 아연실색 합니다. 거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우화적인 표층 밑에 그야말로 묵직하고 복잡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그러한 깊은 소설이었던 것입니다.

문예 작품으로서는 높이 평가 받을만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만, 과연 <파이 이야기>와 같은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왜냐하면, 파이이야기는 어떤 레벨의 독자라도 수용하는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즉, 작품의 깊이를 이해 할 수 없어도 재미있다고 느낄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베아트리스와 버질>은 처음 100 페이지 가량을 참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숨겨진 사물의 의미나 상징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면 마지막 헨리의 놀라움이나 수치심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든 독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고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인내하면 끝까지 읽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깊은, 아주 깊은 소설입니다. 상징의 힘, 우화의 힘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읽으면 처음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이야기의 테마는 '속죄'. 그리고 이책을 읽으려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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