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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역 사기본기 1 ㅣ 사기 완역본 시리즈 (알마)
사마천 지음, 김영수 옮김 / 알마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역대 모든 역사서 중에서 단 한권의 역사서를 들라고 하면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사마천'의 <사기>를 꼽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까지 이런 <사기>에 대해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무래도 난해하다는(난해 할 거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쩍 펼쳐보기만 해도 순식간에 고문서 감정가가 된 듯한 기분에 둘러쌓일 것 같은 한자의 압박, 그리고 대체로 딱딱한 표지나 번역은 왜 이렇게 위압감이 느껴지는지. 그렇다고 저연령층을 타겟으로 쉽게 풀어낸 버전을 읽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다. 결국에는 까짓거 안읽으면 어떠랴 하는 심정으로 오랫동안 방관자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다.
한자 병기 없이 한글로 기술한 사기 완역본이다. 외국인 최초의 사마천 학회 정식회원이라는 저자의 20년 연구결과가 집약된 해재, 사마천의 현장답사를 되집어보는 천하유력도, 사마천의 생애를 상세히 기술한 연보와 일람표, 해설을 돕기위한 각시대 사건별 지도, 삽화, 자료사진,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게 만드는 생생한 현장사진, 각 왕조들의 세계도, 명언, 명구 풀이, 인명, 지명, 서명을 정리한 표, 인명표, 용어풀이 등 단순한 사기의 번역서가 아니라 이쯤되면 대략 한글판 사기의 종결서쯤 되겠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디자인과 편집에 상당히 공들인 티가 역력하다. 가까이 다가가기만 해도 어려운 기운이 맥반석의 뜨거운 열기처럼 솟구쳐 올라오는 여느 책과는 그 친밀감에서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쉽게 읽히거나 심심풀이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무겁고 지루한 사서의 이미지를 중화시켜서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사기 완역본을 꼭 접해보고 싶은데 적당한 책이 없어서 미뤄오던 사람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1권인 이책에서는 제왕의 기록에 해당하는 <사기 본기> 12편 중에서 우선 오제본기, 하본기, 은본기, 주본기 그리고 진본기의 다섯 편을 다루고 있다.
<사기>는 통사라는 점에서 다른 정사들과는 다르다. 다른 정사들은 모두 한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단대사인데 비해, 사마천이 죽음보다 치욕스럽다는 궁형을 당한 뒤 비웃음과 지옥같은 고독을 이겨내고 완성했다는 이<사기>는 전설시대의 제왕들인 오제로부터 사마천 자신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5000년의 중국 역사 중 무려 3000년을 다루고 있는 거대한 통사다. 특히, 같은 역사서라도 인간 중심의, 인물에 대한 평가에 큰 비중을 두고 기술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한 과거의 기록 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돌고돈다 하지 않는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교훈과 통찰력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역사가 단순히 지적호기심이나 도전욕을 충족시켜주는 어려운 무엇이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지침이 되어주는 거울이자 스승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면 생각보다도 훨씬 이책은 (나같이 역사에 무지한 사람에게도) 재미있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