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
반도 마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몇년 전, 새끼 고양이를 벼랑에서 떨어뜨렸다는 엽기적인 발언을 해서 파문을 일으켰던 '반도 마사코'의 <사국>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스즈키 코지'의 <링>이 한참 화제를 일으키던 무렵 링과 쌍벽을 이루고 있던 동명의 영화의 원작소설이기도 합니다. 줄곧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품인이라 이렇게 뒤늦게나마 읽어 볼 수 있게 되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설의 무대는, 저자의 출신지이기도 한 '시코쿠'. 시코쿠는 의미심장하게도 제목인 <사국>과 일본어 발음이 같습니다. 시코쿠 지방의 88개의 사찰을 순례하는 유명한 풍습과,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는 토속적인 신앙을 일본인 저자 특유의 호러본능으로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꽤 이름이 알려져 있는 여주인공 '히나코'는, 연인으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옵니다. 그녀는 소꿉친구인 '사요리'가 이미 18년전에 사고사했으며, 그동안 죽은 사요리의 어머니는 딸을 살아돌아오게 하기 위해 시코쿠 지방의 88개 사찰을 딸의 나이만큼 반대로 순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후미야'와 재회한 히나코는 곧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 그들의 주위에서 불가사의한 현상들이 차례차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비교적 심플한 편입니다. 대신에 기상천외한 스토리 없이도 묘사와 문장의 힘만으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저자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속에서처럼,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 시코쿠 88개 사찰을 죽은 사람의 나이만큼 거꾸로 순례하는 것을 '사카우치'라고 합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이런 신앙이나 믿음을 만들어냈겠지만, 실제로 이것을 믿는다고 해도 실행으로 옮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로지 죽은 자식만을 생각하면서 십여년 동안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모습에는, 연상해보면 애틋함보다는 광기라 표현할 수 있는 섬뜩한 느낌이 있습니다. 민간전승이나 전설에는 이런 비정상적인 광기나 집착으로 발현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광기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소름끼치는 원한, 원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명색이 어른이고 이제는 어지간하면 무서움을 느끼지 못하는 터라, 이책을 읽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을만큼 무서웠다고는 빈말이라도 하기 힘들지만, 설사 무섭지는 않았다고 해도 특정지방의 내려진 저주, 굴레와 같은 토착 신앙을 베이스로 한 일본식 호러의 찐득찐득하고 탐미적인 분위기는 정말 좋아합니다. 등뒤로 벌레가 스물스물기어다니는 느낌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자가 <사국>에서 그리려고 한 것은 단순한 호러는 아닌듯 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것인지를 다양한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소설 전반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생각한 추억만큼 상대도 나를 똑같이 생각하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쇼킹함, 이것도 하나의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초등학교 때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친구한테 영문도 모른채 느닷없이 뒷차기를 얻어맞고 패닉상태에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더더군다나 본심을 감추기로 정평이 나있는 일본인들이니만큼 그런 경우는 허다할 듯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부분은 없어도 별로 상관 없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잔혹하리만치 가차없는 비극적 사랑을 그리고 있지만, 그다지 감흥은 없었습니다.

공포 소설은 여름이 제철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냉면이 원래 겨울음식이듯이 막상 읽어보면 겨울에 더 무섭습니다. 어두컴컴하고 꽁꽁 얼어붙은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소설 속 무서운 장면이라도 떠오를라치면 제대로 오싹오싹합니다. <사국>이 정통 호러물은 아닙니다만, 방심할 수 없는 잔잔한(?) 섬뜩함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주의해서 나쁠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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