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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자신이 가진 한가닥 재능조차 발견해 내는데 실패하고 안타까이 놀고만 있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세상이라, 이렇듯 전방위적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에너자이저들이 발산하는 열정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책의 저자 '닉 케이브'는 펑크 락 밴드의 리드싱어에서부터 영화배우, 작가이자 각본가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다방면에서 발휘하고 있는 조금 '바쁜 사람'이다. 그렇다면 한가지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지지 않겠냐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여러 유명인들의 예를 봐도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러한, '재능과 노력의 몰빵 = 완성도'라는 공식을 체감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아티스트 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개성있는 소설이었달까. 아무튼 이소설 <버니 먼로의 죽음>은 현재 티비 미니 시리즈로도 제작되고 있다. 원래 처음에는 각본으로 쓰여지고 있던 것이, 좀처럼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서 차선책으로 소설로 플랫폼을 바꿔 고쳐 쓴 것이라 한다. 블랙 유머로 버무려진 이 이야기는, 화장품 세일즈맨인 '버니 먼로'의 '아내의 자살 이후에 변화된 인생'의 모습을 뒤쫓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버니 먼로가 여성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비단 화장품만이 아니다. 왕성한 성욕을 자랑하는 매력적인 플레이보이로서의 기질을 어김없이 발휘해서 고객만족을 실현해 내곤 한다. 이런 바람둥이 남편을 견디다 못한 아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만다. 졸지에 아홉 살 짜리 아들이 딸린 홀아비가 된 버니는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내가 목을 매단 침실은 더이상 안락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버니는 아들을 차에 태우고 도망치듯 집을 나와 버린다. 그때부터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화장품을 파는 단조로운 생활이 이어진다. 한편, 같은 시간대에 잉글랜드 반대편에서는 엉뚱하게도 뿔달린 연쇄살인범이 암약하고 있었다.
주인공 버니 먼로는 아직 덜 성숙한, 말하자면 아이같은 어른이지만, 그 뿐이다. 한심할 것도 비현실적일 것도 없다. 난봉꾼임에는 틀림없지만, 결코 폐륜아라거나 막되먹은 인간은 아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말에 이렇다할 반박도 못하는가하면, 죽은 아내에 대한 죄책감은 그를 점점 작아지게 한다. 자식에 대한 사랑도 사실 여느 부모와 다를게 없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뿐이다. 주기싫은게 아니고, 받지 못했으니 주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영혼이 길을 잘 찾아 들어섰다면, 한끝발 차이로 락스타쯤 되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얼마전 관람했던 <크레이지 하트>라는 영화에서, 82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인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한, 한물간 컨트리 가수의 사는 방식이 바로 그랬다. 시종 버니의 그것과 오버랩된다.
컬트 운운하면서 여러 수식어가 따라붙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그저 한마리 상처입은 들개와도 같은 한남자가 사는 이야기로 들렸다. 내용이나 묘사 자체는 외설적이지 않지만, 노골적인 단어나 문장들은(심지어는 파격적으로 '카일리 미노그'와 '에이브릴 라빈'마저 재물로 삼아) 잊을만하면 한번씩 출몰하므로 주의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