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린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그 나이 때 여자애들은 믿기지 않을만큼 섬세하고 오만하고 여립니다.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유리 기린처럼 말이죠. 언제나 힘껏 목을 길게 잡아 빼고, 발돋움을 하고, 그래서 매우 불안정하고, 깨지기 쉽고, 늘 뭔가를 망설이고 있는 거에요."

 
'사춘기 소녀'라는, 세상이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이 지극히 섬세하고 위태로운 생물체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막힌 길이라면 잠시 돌아가도 좋으련만 이들은 언제까지고 그 앞에 서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모든 것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길로만 보이는 것이다. 이 시기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특유의 고민이나, 불안, 죄책감, '나 때문이야', '내가 이렇게 하지만 않았더라면'... 이책에서는 그런 깨지기 쉬운 그녀들의 심리를 '안도 마이코'라는 17살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이야기 해나간다.

'안도 마이코'는 뛰어난 머리, 수려한 외모,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 언제나 친구들의 동경의 대상이지만, 반면에 교만하고 어딘가 비틀린 면도 가지고 있는 고고한 소녀. 그런 그녀가 2월 22일 밤 괴한에게 살해당한다. 바로 그 날, 일러스트레이터인 나오코의 아버지는 살해당한 마이코의 동급생인 자신의 딸이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목격한다. 티비를 통해 뉴스를 지켜보던 나오코가 갑자기 자신이 안도 마이코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나오코에게 정말로 죽은 마이코의 영이 빙의되기라도 한 것일까,

6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등장인물들 저마다가 안고 있는 고뇌와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살해당한 안도 마이코의 마음속 아픔을 들여다 볼 수 있게된다.

뛰어난 통찰력으로 범인을 추리해 내는 매력적인 양호 선생님, '진노 나오코'를 찾아오는 소녀들 중에는 육체적인 상처보다도 주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녀들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단서로 진노 선생은 복잡하게 뒤얽힌 인간 심리를 추리해 나간다. 사춘기라는 미묘한 시기에 있는 소녀들의 마음이, 의지할 곳 없이 얼마나 흔들리고 있는지를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때 그녀에게도 사춘기 소녀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의 그녀 역시 소녀들의 그것과 닮은 불안함을 마음속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한마리 '유리기린'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모든 경우에 모범답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올림 해서 얼추 비슷하게 맞추는 것 조차 쉬운일이 아니다. 본인 이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느끼며 고통스러워하고, 때로는 이것이 실제로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장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하지만, 한발짝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그 고민이란 것이 정말로 사소한 것일 때도 많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심각하게만 느껴졌는지 부끄러워질 때가 틀림없이 온다. 결국, 마음의 평온이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뿌옇게 먼지가 내려앉은 유리를 깨끗하게 닦아내고 나면 모든 것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의미없는 삶은 싫다 하지만 무의미한 죽음은 더 싫다.'
- 마지막 네메게토 사우르스 중

의미없는 삶 같은게 있을리 없다. 필요한 것은, 중압감이나 좌절이 아니라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