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몽
야쿠마루 가쿠 지음, 양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를 읽는 동안, 같은 소년범죄를 다룬 '타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떠올렸었는데, 이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13계단>을 읽고 받은 충격때문이라고 한다.

이번 <허몽>에서도 그와 유사한 주제인 심신상실자에 의한 범죄를 다루고 있는 걸 보면 '야쿠마루 가쿠'라는 작가는 모순된 형법의 조항이나 그로인해 억울한 입장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어두운 사건들을 주로 취급하는 만큼, 지금까지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하면 아무래도 객관적이고 냉철할 것 같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알고보면 의외로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심신상실자의 행위는, 이를 벌하지 않는다.
심신모약자의 행위는, 그 형을 감경한다.
-일본 형법 제39조-

책임 능력이 없는 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의 부조리한 측면을 화두로 다루면서도,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피해자의 입장도 가해자의 입장도 모두 배려하고 있다. 우리 한번 다같이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공원에 갑자기 나타난 괴한에게 딸을 살해당한 미카미, 사와코 부부.
칼에 찔린 아내 사와코는 간신히 목숨을 구하지만, 이사건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아 둘은 이혼까지 하기에 이르게 된다. 4년 후, 헤어진 사와코로부터 미카미에게 다급한 전화가 걸려온다. 그때의 그 범인이 나타났다는 것.
재회한 사와코는 이미 정신적으로 많이 황폐화 된 상태였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반복한다. 과연 범인을 보았다는 사와코의 이야기는 사실일까?

이 사건의 범인은 아무죄도 없는 사람 3명을 죽이고 9명에게 상해를 입히는 대사건을 일으켜 놓고도 심신상실 상태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받는다. 교도소가 아닌 병원에서 요양한 그는, 수년후 아무런 제지없이 사회로 복귀한다. 왜, 이런 터무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과연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정상과 이상의 경계를 타인인 정신과 의사가 판단할 수 있을까. 사람을 죽여도 어쩔 수 없는, 죄를 추궁할 수 없는 정신상태라는 건 대체 뭐란 말인가."

작가이기도 한 미카미의 이 고뇌하는 모습에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어째서, 정말로 어째서일까?

타인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그 시점에서 이미 어떠한 심신상실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있지만, 고민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것과 같아 마음의 병은 많든 적든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것일 것이다. 이 이야기에도, 대부분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 치료받을 기회를 부여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법에서 인정하는 심신상실 상태라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몇센티미터 몇킬로그램으로 명확하게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어디까지 죄로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벌을 내릴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
하지만 어떤 상황이라도 고의로 타인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았다면 그에 합당한 죗값은 치루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병이 나았다고 해서, 곧바로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오는 것은 역시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외성은 그다지 없는데도 불구하고 감동과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충분히 있었다. 이야기의 성질상, 밝은 결말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고 상당히 괴로운 기분으로 끝나리라 예상하고 있었지만,  의외로 뒷맛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저자의 우호적인 시선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의 현실의 세계가 픽션인 소설을 넘어 버린지 오래라 이정도 흉악 범죄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버린지도...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어쩐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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