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부족의 연대기 실천문학 세계문학선
야샤르 케말 지음, 오은경 옮김 / 실천문학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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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이름이지만, '야샤르 케말'은 터키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이자 터키 근현대 문학을 주도한 터키 문단 최고봉에 있는 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 외에는 <독사를 죽였어야 했는데>라는 제목의 작품집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바 있다. 놀라운 것은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 파킨슨씨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정력적으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바람부족의 연대기>에서는, 1940-50년대 사이에 터키 '추쿠로바' 지방에서 소멸된 유목민 '카라출루' 부족이 갈곳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의 유목민 부족들이 처해있던 현실을 묘사한다.

투르크멘 유목민들은 봄이 되면 산속의 방목지로 올라가고, 겨울이 되면 다시 평지로 내려와 정착하는 생활을 한다. 그런데 19세기 이후 사회적, 정책적으로 상황이 크게 변하면서 이와같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고수할 수 없게 된다. 엄연히 토지의 소유권이 존재하는 이상 유목은 곧 사유지의 무단침입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정부의 엄격한 규제가 내려진다.

유목민을 정착시키고자 하는 정부와 이를 거부하는 유목민들의 갈등은 심화되고, 결국 대부분의 유목민들이 백기를 들고 정착하게 되지만,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정착을 거부했던 것이 바로 카라출루 부족이다.

1950년대까지도 이들의 유목생활이 이어졌다고 하니 그야말로 전통적인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눈물 겨운 투쟁이다. 20세기 중반의 유럽을 배척받는 유목민족으로 살아간 이들의 삶이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지는 감히 짐작도 되지 않는다. 이들을 힘겹게 만드는 것은 비단 정부의 관리들 뿐만이 아니다. 이미 정착을 완료한 타 유목민 부족들의 텃세가 또한 이들을 끊임없이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들은 카라출루 부족을 괄시하며 돈과 여자를 요구하는가 하면,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시에는 무력사용도 불사한다.

카라출루 부족은 본래 하늘과 별과 바람을 신봉하며, 의식을 통해 하늘의 메세지를 전달받는다고 믿는 순수한 사람들이다. 동물들과 교감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와 같은 사유물의 개념은 통용되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문명의 이기인 토지의 사유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결국, 하늘과 땅과 드넓은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가던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인위적으로 도태된 것이다.

현대화된 문명이 많은 혜택을 가져다 준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반면에 선택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게서는 너무 많은 것을 앋아가 버렸다. 수천년에 걸쳐 지속되어 온 인류의 다양한 삶의 방식과 뿌리깊은 문화가 불과 일백년 남짓한 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을 이렇게 활자로나마 복원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나는 카라출루라는 이름을 과연 들어볼 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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